디모데전서(05-02)
교회 안에 존경해야 할 사람들
디모데전서 5장 17절-6장 2절
‘자리’, ‘관리’, ‘능력’은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다른 지도자에 대한 태도, 역시 자신의 발전과 건강한 권위의 확보 그리고 지도자 간의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지도자 간에는 어떤 태도가 필요합니까? 오늘날은 마땅히 존경할 만한 분이 없다고 탄식하는 시대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존경해야 할 대상이 누구며, 또 어떻게 그분들을 대해야 할지 교훈합니다.
교회 안에 과부에 대한 지침이 주어진 후, 장로들에 관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21-25절은 디모데 자신이 성도들을 대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6:1-2은 믿는 노예들에게 주어진 권면입니다. 노예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하거나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경건한 삶인지 알려줍니다.
장로에 대한 태도(17-20)
항상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자신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역하는지, 그들이 복음으로 해산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였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이 말씀 연구와 기도, 목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러한 건강한 모습이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17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9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17-20)
앞 강에서 바울은 목회자가 교회 안에 각기 다른 부류로 구성된 모든 성도들을 대할 때, 마치 가족처럼 대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특히 과부들을 어떻게 처하여야 하는지 교훈했습니다. 그들을 온전히 깨끗함으로 접대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장로들에 대한 예우와 교회에서 권징을 행하는 경우와 그에 관된 목회 지침에 관해 언급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1-13절에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논한 것이라면 본문 17-18절은 그런 자들에 대한 마땅한 존경과 예후에 관한 언급인 것입니다. 이제는 장로에 대한 예우 문제에 관해 거론합니다.
⑴ 잘 가르치는 장로를 존경(17)
바울은 디모데에게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고 권고합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다스려감에 있어서 잘 섬길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설명합니다. 지금까지는 과부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대우에 대해 소개했다면, 이제는 그 공동체를 다스리고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는 장로에 대해 소개합니다.
여기에 ‘장로(πρεσβυτεροι)’란 나이가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초대교회 안에서 지도자의 직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참고 3:1-7; 디도서 1:5-9; 사도행전 20:17-38). 구약에서 이 명칭은 처음에는 ‘연장자’(욥기 32:4), 한 가문의 ‘어른’(창세기 10:21), 한 지파의 ‘장’(레위기 4:15)에게 적용되었습니다. 후에 유대교적 개념에서의 ‘장로’를 의미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회당의 관리와 재판을 주관하였으며(마태복음 5:21) 71인 장로로 구성된 공회가 있어 사실적인 최고의 법적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신약 교회에 있어서 ‘장로’는 그러한 장로의 직분과는 약간 개념이 다릅니다. 즉 이들은 교회를 다스리고, 감독의 직을 수행하기(사도행전 20:17; 디도서 1:5-7)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이 사도의 권위 아래에 있었으나(사도행전 20:18) 베드로(베드로전서 5:1)와 요한(요한삼서 1:1)이 장로로 지칭한 것을 보면, 반드시 사도 아래에 종속되는 직분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장로들이 맡은 일을 크게 두 종류로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로 구분합니다. 이는 ‘치리 장로’와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 즉 ‘목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직분이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초대교회 형성기를 지나서 확장기에 형성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장로의 책임은 교회를 잘 다스리고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장로들은 교회의 리더십을 형성하면서 각자의 재능에 따라 맡은 일이 달랐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잘 가르치는 장로는 배나 존경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잘 가르치는 장로’는 실력이 뛰어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헌신하는 장로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배나 존경하라’는 것은 ‘더 많은 존경을 보이라’는 뜻도 되지만, 재정적으로 보수를 잘 뒷받침하게 해주라는 뜻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⑵ 존경의 근거(18)
바울이 말하는 ‘존경하라’는 보수를 지급하는 것과 관계있다는 것은 18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수고하는 사역자들이 보수를 받을 마땅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개의 성경을 인용합니다. 첫째는, 신명기 25:4을 인용하여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권합니다(참조. 고린도전서 9:9). 다음으로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는 말씀도 인용하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마태복음 10:10; 누가복음 10:7).
이는 교회 안에서 시간과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수고하는 장로에게 존경과 또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강조하기 위한 인용입니다. 바울이 장로들의 권위와 대우에 대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초대교회의 질서와, 동시에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목양에 전념하며 교회를 든든히 세워갈 수 있도록 위함일 것입니다.
⑶ 장로에 대한 고발(19-20)
바울은 디모데에게 장로들에게 대해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고 권합니다. 모세 율법에서도 어떤 사람을 송사하려면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신명기 19:15). 이 제도는 제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제도인데, 초대 교회에서도 시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장로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장로들이 실수할 때, 어떻게 처리하는지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장로에 대한 고소는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첫째는, 그의 지위가 교회에서 중직이므로 그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교회에 큰 영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장로는 지도자이므로 항상 교회 안과 밖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바, 중상모략으로 인해 무고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를 고소하려면 항상 두 세 명의 증인이 요구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장로의 송사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것은 디모데를 염두해 두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디모데는 선량하고 경건했으나 아직 연소하기 때문에 이런 중상모략에 대하여 주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만약, 장로에 대한 고소가 사실로서 범죄 사실이 드러난다면, ‘범죄한 자들’은 엄중하게 책망해야 합니다. 장로에 대한 고소를 신중히 받아들여야 하듯이, 죄를 범한 사실에 대해서는 더욱 엄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일단 장로의 죄가 판명되면 교회 앞에서 엄격히 공개적으로 책망하여 다른 성도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도록 본보기로 세우라고 명합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은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정열을 바치는 지도자들의 수고는 교회에서 인정을 받아야 당연한 것입니다.
지도자가 염두해야 할 원리들(21-25)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지도자를 세우는 과정, 그의 사역을 평가하는 과정은 매우 엄격해야 합니다. 일반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원칙보다 더 엄격하게 지도자들을 평가해야 됩니다. 종종 지도자의 허물은 감추어져서 교회에 더 이상 충격이 생기지 않도록, 너무 지나치게 배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바울은 장로들에 대한 권고하고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21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2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23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4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21-25)
교회 안에서 지도자들의 사역은 언제나 계속 되고 있지만, 또한 반대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역에 대한 반대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너무나 힘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역을 천편일률적으로 단순하게 다룰 것이 아니라 매우 신중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훼방자의 비난으로부터 교회가 보호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이미 말했습니다(3:2,7). 그리고 다시 언급할 것입니다(6:1). 바울은 정당한 고발과 거짓 고발을 구별할 수 있는 절차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⑴ 공평무사하게 처신하라(21-22)
먼저,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라고, 여기서 교회 지도자들의 징계 문제나 임직 등에 관한 자신의 교훈이 주께로부터 부여 받은 사도적 권위에 근거해 주어진 것을 천명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디모데에게 장로에 대한 재판 문제나 그 외의 제반 문제에 있어서 엄격히 경계해야 할 것을 권고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문제를 진행할 때, ‘속단이나 편향’을 경고합니다. 지도자가 편견이나 편벽으로 다스리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복음 전도를 가로막는 중대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디모데에게 장로를 안수하는 일에 대해 특별히 주의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경건한 목회이기 때문입니다. 직분자를 세울 때,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당시에 장로를 안수하는 일은 장로회에서 행하는 것이었지만, 디모데는 주관하고 통솔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먼저 장로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 공평무사하게 처신하여 합당한 자격을 가진 자를 세우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편견 없이 하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한 개인적 편견으로 그 사람을 부당하게 평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에 대한 편애로 그 사람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장로를 세울 때는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22)고 권고합니다. 임명할 때부터, 신중하게 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22)라고 권고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장로의 모임에서 편견에 의해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안수하려고 할 때, 거기에 경솔하게 동조하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만약 안수한 다음에, 나중에 그 사람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것이 드러나면, 죄인을 안수한 죄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에게 먼저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고 또한 정결한 사람을 장로로 안수하라고 명합니다. 자신이 정결할 때, 정결한 장로를 알아보고 잘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슨 부탁을 하던지, 먼저 디모데 자신이 그럴만한 영적인 자질이나 인격적인 자질을 갖춘 것이 중요하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⑵ 건강을 잘 챙기라(23)
이번에는 바울은 디모데의 건강을 걱정해 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영적인 경건에 대해 신경을 쓴 것과 함께, 육체의 연단이 유익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디모데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고합니다. 이 구절은 문맥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너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행하라’(22)는 말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는 것은 포도주를 전혀 마시지 않고 물만을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는 나실인이나 레갑 사람들처럼 독주나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민수기 6:3-4; 예레미야 35:5-9). 이러한 것들을 마시지 않음으로 성결을 힘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에게는 위장병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위장병을 치유하기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는 것이 디모데의 문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디모데에게 금욕주의적인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을 지켜 정결케 행한다는 것이 포도주를 전혀 마시지 않는 것과는 상관없다고 설명합니다.
⑶ 선악 간에 모든 일은 드러나게 된다(24-25)
바울은 왜 사역자들이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24-25) 인간의 모든 죄는 결국 다 드러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과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명백하게 모든 사람 앞에서 밝히 드러나는 죄가 있고, 은밀하고 교묘하여 잘 드러나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영원히 감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지 않는 죄는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죄가 금방 드러나지 않고 벌을 받지 않는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죄뿐만 아니라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선행은 금방 드러나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선행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결국은 모든 선악 간에 행한 일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연소한 디모데에게 사역을 해 나가는 일에는 당장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죄에 참여하지 말며, 선한 일에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종들에 대한 태도(1-2)
신분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세상에게 마저 그것을 강요할 순 없습니다. 성도로서 종들이 평등의 문제를 잘못 적용하여 주인을 가볍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관계를 정립해 줌으로써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게 한 것입니다.
1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1-2)
에베소 교회에서는 노예 제도가 있던 당시에는 성도들 중에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은 노예들에게 권면한다. 먼저 믿지 않는 상전을 둔 노예들에게 말합니다. 바울은 자유인이나 노예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으며 모두 같은 믿음의 형제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고린도전서 7:21-23).
그러나 노예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다고 세상에서 그들의 신분을 등한시하여 주인에게 충성하지 않거나 불평을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노예는 노예답게 살라고 권고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들은 상전에게 더 진실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믿지 않았을 때에는 주인의 채찍이 무서워 충성했지만 이제 진실하게 주인을 공경하고 섬기면서 충성해야 합니다.
믿는 상전을 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상전들은 노예를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의 형제로 대하고 부드럽게 대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들은 믿는 주인의 그러한 호의를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믿는 주인이 선을 베푼 만큼 더욱더 주인에게 충성하고 잘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에게 충성하고 잘 섬겨서 유익이 되게 한다면, 그 유익을 받는 사람은 같은 믿음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게 유익을 베풀고 사랑을 해야 합니다. 노예가 믿는 주인을 사랑하는 방법은 더욱더 주인을 공정하고 진실하게 충성하면서 잘 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것을 잘 가르치고 권하라고 명합니다.
바울은 분명히 종이나 주인이나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해왔습니다(갈라디아서 3:28; 에베소서 6:9). 그렇지만 성도로서 종은 자기 주인을 존경해야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노예제도를 인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 구조에 깊이 뿌리박혀 있던 제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잘못이 들어났을 때는 변명하거나 숨지 말고,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실 때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지도자는 다른 지도자를 자신처럼 소중히 여기고, 그의 권위를 지켜주기 위해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필요에 민감해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영적인 정결과 육적인 건강을 잘 지켜서 사람들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의 건강이 공동체의 건강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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