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01-02)
순종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1장 18-25절
새로운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현재에 대한 안정적인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쉽사리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결단이 없으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원하지만 새로운 결단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결정해야 할 사항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고 새로운 복된 결정이 하시길 바랍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그들이 뛰어나거나 위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의 뜻을 내려놓은 결정과 순종이 그들을 위대한 인물을 만든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 이어서 예수님의 탄생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던 때의 구체적 정황을 소개합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아직 그와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합니다. 이 사실은 안 요셉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 파혼하고자 합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모든 정황을 알립니다. 사자의 진술 속에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공개됩니다. 요셉은 사자의 명령에 순종했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아이를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탄생(18-19)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거운 것은 ‘영적인 부담감’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데는 언제나 부담이 따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된 사건에 마리아가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18-19)
앞 1-17절 부분을 통해 예수님의 족보, 기원을 이야기했다면,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잉태가 성령으로 된, 즉 예수님의 심적인 기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마리아의 성령 잉태도 믿지 못합니다. 성령 잉태의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가지신 주권자가 되시며 선재하신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1) 마리아의 잉태(18)
마태는 마리아의 잉태가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단도직입적 설명을 덧붙이며 서사의 전재를 빠르게 가져갑니다(18). 이 일이 성령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적시하며, 예수님의 기원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마리아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알게 된 요셉의 태도와 대응이 이어집니다. 약혼 기간에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이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라고 소개하면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소개합니다. 동정녀 탄생은 그 일을 감당해야 했던 마리아에게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결혼을 앞둔 여인이 잉태한 것은 정결함을 지키지 못한 결과입니다.
(2) 요셉의 반응(19)
마리아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알게 된 요셉의 태도와 대응을 소개합니다.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요셉조차도 처음에는 결혼을 파기하려 했습니다. 요셉은 약혼녀가 임신한 사실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들어내지 않고 마리아를 생각해서 조용히 정리하려 했던 것입니다. ‘남편 요셉’이란 표현은 주후 1세기에 약혼은 법적으로 혼인과 같은 효력을 지녔기에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간음은 약혼을 파기하는 사유였고, 약혼 기간에 저지른 간음에 대한 형벌은 투석형이었으나(신명기 22:13-21), 로마 치하에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 판결권과 집행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긍휼과 배려심이 많다는 뜻보다는 법 또는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아내의 음행을 확인한 남편이라면 마리아의 사건을 공적으로 드러내고 이혼을 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가만히’(마 1:19; 2:7; 막 5:33) 이혼하려고 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게 비밀리에 처리하는 것을 묘사합니다(참조, 27; 요 11:28; 행 16:37). 요셉은 법적인 아내에게 공적인 수치를 주지 않고 은밀히 이혼하려고 했습니다. 요셉은 율법을 지키는 의인이었지만, 동정심으로 인해 공적인 수치를 주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요셉은 의인됨과 동정심의 조화를 보여주며, 요셉의 태도는 마태복음 전체에서 의와 동정심(또는 긍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되고 교회를 통해 행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미리 보여줍니다.
예수 탄생을 설명하는 천사(20-23)
하나님께서 죄인된 몸으로 오시기 위해 거쳐야 했던 일들은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 안에서 기적적으로 잉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처녀 잉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일하신 놀라운 역사입니다.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0-23)
마리아가 남자의 동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이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받아 들을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남편 요셉은 마리아와 조용히 헤어지려고 했습니다. 요셉의 시나리오가 실행되기 전, 마리아의 운명에 개입하셨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1)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고지(20)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매우 번민하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가 이 일에 대해 조용히 헤어지려고 행동을 생각하고 있을 때, 번민하는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꿈 속에 나타납니다. 그 사자는 요셉을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칭호는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다윗의 계보로 들어오는 데 있어 요셉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주의 사자인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때 마리아를 ‘네 아내’라고 부른 것은 앞선 배경을 고려할 때 의아해할 일은 아닙니다. 요셉이 가만히 정리하려 한 심리적 배경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이를 간파한 주의 사자는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 이유를 말합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의 성취(21-23)
요셉에게 나타난 사자는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고지합니다. 또한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Ιησούς)’라고 지으라고 전합니다(눅 1:31). ‘예수’(21)는 1, 16, 18절에 이어 네 번째로 나오는 이름입니다. 마태는 21절에서 ‘구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21절은 백성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며, 죄에서 구원받는 백성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새 백성’(내러티브가 전개되면서 ‘교회’로 드러남)인 사실을 암시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백성을 분리하고 속박 가운데 갇히게 합니다.
포로 상태가 된 이스라엘의 희망은 죄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는 것뿐입니다(사 40:1-2; 렘 31:31-40; 겔 36:24-25,28).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고난과 죽음으로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20:28; 26:28). 그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의 피를 흘리는 그림은 이사야 53장에 있는 고난 받는 종의 그림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왕의 모습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에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21).
세상의 문제는 죄입니다. 죄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죄는 모든 민족의 문제이므로,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은 죄 용서를 통해 성취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다스리셔서 나라를 회복하기 시작하셨다는 소식입니다(사 52:7). 회복된 나라가 온 증거로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복음입니다.
22-23절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열 개의 성취 공식 중 첫 번째 것으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마태의 설명입니다. 마태는 마리아의 잉태를 이사야 7:14의 성취로 해석합니다. 명확히 처녀를 지칭하는 ‘베툴라’가 아니라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알마’가 사용됩니다. ‘알마’는 ‘베툴라’처럼 처녀에 주로 초점을 맞추지는 않지만 처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알마’가 처녀성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70인역에서 ‘알마’를 ‘파르쎄노스(παρθενος)’로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남 유다가 가장 어려운 시절에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아기는 ‘임마누엘’, 곧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알리는 표적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의미를 두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세상에 개입하시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것으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이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특히 암울한 시기에 유다에게 임마누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계보가 암시된 내용처럼 포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 즉 포로 상태에 있는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임마누엘이 태어나셨습니다.
둘째, 임마누엘은 구원의 목적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하십니다.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마태복음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주제로서(18:20; 28:20; 참조 14:26; 17:17; 26:29),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밝혀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백성과 함께하심으로써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백성들과 함께하십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구원과 해방을 베푸는 방식이기에,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종으로서 십자가에 달리는 수치를 겪으면서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실 때도 우리와 함께하시지만, 구원받은 백성과도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상황적으로 볼 때는 마리아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억울한 누명에 시달려야만 하는 불명예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태에서부터 키워 낳아 기르는 일은 역사에 남는 영광이었습니다.
성령 탄생한 사건에 대한 요셉(24-25)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이따금 의심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우리의 믿음이 참되지 않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의심이 들 때는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과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조언자가 필요합니다. 공동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죄를 죽이려고 힘써 노력하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확신이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24-25)
마태의 설명이 끝나고, 21절에 있었던 탄생 이야기는 24-25절에 이어집니다. 요셉이 잠에 일어났다는 표현은 환상을 본 자가 순종할 때 하는 행동입니다(겔 2:1-2; 단 8:27; 눅 1:39). 요셉의 순종은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아들을 낳기까지 아내와 동침하지 않고, 아이의 이름을 ‘예수’로 짓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요셉은 꿈에서 깬 다음 꿈의 메시지를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입니다. 18절에서 설명한 언급한 것처럼, 마리아를 집으로 데려오는 행위는 결혼이 공적으로 완료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부부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음으로써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사실을 확증하는 일에 기여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마태는 요셉을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했는데(19), 의로운 요셉의 순종에 초점을 맞춥니다(24-25). 마태복음에서 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은혜)과 이 은혜에 대한 순종, 즉 하나님의 행위(하나님은 약속에 의로우시다!) 둘 다를 의미합니다. 요셉은 이사야 7:14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에 순종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모든 의를 성취하기 위해 세례를 받는 것처럼(3:15), 요셉의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신 예언이 성취됩니다. 임마누엘의 탄생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요셉의 순종이 사용되었습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의 헌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통로가 됩니다.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은 큰 고통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조용히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20)도 계시하십니다.
요셉의 의로운 결정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결정이나 결단을 하는데 성령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상황들을 성령을 결정하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우리들도 신앙적으로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놀라운 결단이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셨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24).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불리신 적은 없지만, 그분의 역할이 ‘성전보다 더 크신 분’(12:6)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계획은 ‘은혜의 소식’, 곧 ‘복음’입니다. 이 계획은 순종하는 의인을 통해 이 땅에 실현됩니다. 마태복음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뜻에 대한 순종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사람의 반응을 사용하십니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며, 이러한 순종은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의로운 행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며, 이러한 순종은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의로운 행위는 소자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며(18:21-35; 25:31-46),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태도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탄생 기사의 요셉은 마태복음의 중요한 주제인 ‘의’에 대해 예고하는 인물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회적, 법적 가정으로 울타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지도자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눈에 보이는 압제자의 통치로부터가 아니라 죄의 통치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라 예수님의 백성입니다. 아직도 우리를 얽매이고 짓누르는 죄는 무엇입니까? 그 모든 죄로부터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통치를 받는 주의 백성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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