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03-01)
그리스도의 증인인 세례 요한
마태복음 3장 1-10절
‘하늘나라’는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죄악된 삶에서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기 전에 유다 광야에서 살고 있던 세례 요한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의 사역은 이사야 예언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인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증거 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신 뜻, 곧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에 앞서 그 길을 예비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주의 길을 준비(1-4)
과거의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회개는 새로운 왕을 영접하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 과정입니다. 그래서 회개 없는 천국 입성은 없습니다. 항상 자신의 삶의 주인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돌아서야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하라고 선포하십니다.
1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1-4)
마태는 수 그리스도의 시작에 앞서서 그의 길을 여는 세례 요한의 사역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 광야에서 주의 길을 선포하는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1) 주의 길을 준비하는 요한(1-2)
요한의 사역 시작을 ‘그 때에’(1)라고 소개합니다. 1-2장의 주인공인 메시아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시점이 드디어 임했음을 알립니다. 그 시점은 세례 요한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 네 복음서가 모두 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누구보다 구약 예언 성취에 강조점을 둔 마태에게 세례보다 구약 예언 성취에 강조점을 둔 마태에게 세례 요한은 더더욱 중요한 인물입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그는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말합니다(2). 천국, 곧 새로운 질서가 열릴 것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이 나라에 들어가도록 촉구합니다. 마태는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이사야 40:3을 통해 구약의 예언의 성취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사야 본문에서, 애굽을 탈출한 백성을 맞이하러 광야로 오셨던 ‘주’는 하나님이셨습니다.
3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고 정확하게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광야의 소리’로 인식하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며 평탄케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었고 그의 허리에 가죽 띠를 했습니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야생 꿀이었습니다. 마태는 요한의 모습을 엘리야 선지자와 연결합니다(참조. 11:14; 17:12). 위에서 본 것처럼 요한은 구약에서 다시 올 것으로 예고하고 기대한 엘리야의 역할을 수행합니다(왕상 19:13,19; 왕하 1:8;2:8, 13:14). 그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주변 온 지역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오고 있었습니다(5).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것에 걸맞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알고 분수를 지킬 줄 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어디서든지 자신의 신분과 분수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29-30)
예수님께서는 결혼식장의 주인공 신랑으로, 요한 자신은 신랑의 들러리에 비유했습니다. 인간의 질투, 경쟁의식들을 버리고 자신의 역할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역할은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니라.”라고 외쳤습니다. 만약 아주 유명한 석학이 강연회를 한다면, 그를 소개할 다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고 강연을 시작하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소개하고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사역을 소개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펼치실 그 구원의 사역을 미리 준비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미리 증언하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설교 중심은 ‘회개’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이는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조건이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세(3-4)
마태는 세례 요한을 메시아가 가져올 천국의 도래를 선포한 선구자라로서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선지자’로 소개합니다. 앞서 ‘처녀의 잉태와 임마누엘’(사 7:14) 예언처럼 이사야 40:3 인용도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갖습니다. 네 복음서 기자들이 공히 인용하는 이 본문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포로귀환과 회복을 약속했고 성취되었지만, 종말에 있을 메시아 대망과 그의 회복의 사역을 내포합니다.
마태는 그 때가 세례요한이 출현한 지금 성취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이사야 예언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스라엘에 촉구한 회개와 베푼 세례는 새 시대와 새 질서를 준비하는 행위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요한에 대한 마태의 묘사는 구약의 또 다른 선지자 엘리야를 연상케 합니다(참조, 왕하 1:8; 슥 13:4;말 4:5).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엘리야에 비유할 것입니다(11:14). 그의 메시지만큼이나 외모와 삶의 방식도 충격적입니다. 낙타털 옷에 가죽 띠를 차고, 메뚜기와 야생 꿀을 양식으로 삼는 광야의 기행적 삶은 철저히 구별된 자의 삶입니다. 그의 출생에서 암시하듯 나실인의 운명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참조. 눅1:15-17).
하지만 당대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세례 요한의 선포가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큰 분으로 전했습니다. 그는 이 사역을 위해 세상의 모든 세속의 사치와 안일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의지하는 단순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회개의 세례(5-10)
큰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불로 자신을 영접한 백성을 정결하게 정화하시고, 순종의 열매가 없는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로 정결케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설 수 있습니다.
5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5-10)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어서 하나님 나라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도와줍니다. 그들의 마음에 메시아를 왕으로 모시려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당시에 새로운 소식이 전달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광야에서 유대교의 심장부인 예루살렘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1) 요단강 물세례(5-6)
세례 요한이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회개하라는 촉구의 메시지를 들은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부근, 즉 모든 부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가 죄를 자백하며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방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죄를 자복했습니다.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를 올바로 들었던 것입니다. 직설적인 메시지에 반응도 직접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들의 자복에 이어 곧바로 세례 받음을 소개합니다. 요한의 메시지와 사역이 유대 전반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점은 분명하나, 그것이 전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몰려든 사람들의 자복은 다만 개인 차원을 넘어 이스라엘 공동체 차원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정치적 세속성과 종교적 형식에 화석화된 성전 유대교에 신물을 느꼈을 것입니다.
(2) 회개에 합당한 열매(7-8)
일반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경건함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았던 바리새인들과, 주로 고위 제사장으로 이루어진 사두개인들도 세례 요한에게 찾아왔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광야로 몰려든 사람 중에서 그들을 구별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본 요한은 매우 거칠고 부정적이었습니다. 이들은 향후 예수님을 대적할 대상들에 대한 복선일 것입니다. 그들은 앞선 무리와 다른 태도로 요한에게 나왔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왔지만, 세례를 받으러 온 것인지 여부를 모호하게 합니다.
요한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습니다(7). 예수님께서도 이 무리를 향해 이러한 같은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12:34; 23:33; 참조 사 14:29). 그래서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경고합니다. 요한의 질책은 곧,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8). 스스로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종교적인 자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요한이 선포한 회개의 메시지에는 구원과 심판의 양면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회개하며 메시아를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임합니다. 천국을 가져오실 메시아의 도래가 임박한 것과 같이 구원과 심판도 임박했습니다. 이 진노의 심판을 피할 유일한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 진노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3)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9-10)
요한이 말하는 회개는 단회적 행위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나오는 자의 합당한 삶의 열매를 포함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이 특히 회개를 거부한 까닭은 습관처럼 지키는 율법과 정결 예식을 통해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확신과 신념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택과 특권일 것입니다. 그들은 혈통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자신들의 영적 안전이 보장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회개 이외에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한 것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요한은 그런 ‘아브라함의 자손’의 그릇된 특권과 신념을 깨부수듯, 돌들을 예로 듭니다. 누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그 사람은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허락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혈통적 차원이 아닌 믿음의 차원이 요구됩니다. 세례 요한에게 믿음의 차원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오실 메시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나무뿌리에 놓인 도끼’라는 구약에서 익숙한 말씀이 등장합니다(사 10:33-34; 렘 11:19; 겔 17:1-4). 심판의 임박성을 강조하는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는 것은, 곧 베어질 나무 아래 나무꾼의 도끼가 놓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합당한 반응이 요구되고 반응에 실판한 사람을 요한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로 표현합니다. 그들은 베어질 것이고 불에 던져져 불에 탈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요구했는데, 회개란 단순한 뉘우침이 아니라 죄를 범하던 삶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혹시 거짓 회개는 있을지라도 그 회개는 열매가 없는 회개일 것입니다. 경건의 상징인 종교지도자의 지위와 율법에 대한 지식과 세례, 심지어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의식도 회개의 열매를 대신하지 못합니다(롬 9:6-8). 회개와 절대 복종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좋은 열매란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감정적 차원의 후회에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삶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당신은 최근에 회개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회개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의 진실성은 고백 뒤에 따르는 모습, 즉 열매를 통해 증명됩니다. 요한은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내세우며 임박한 진노를 모면하려는 회개를 가장하는 이들을 무섭게 책망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했습니다. 회개는 마음과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기에 반드시 그에 따른 변화와 열매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회개하며 회개 후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입니다. 회개란 말이 불편하고 낯선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구미에 맞는 회개 없는 복음, 회개 없는 구원, 회개 없는 신앙이 난무하면서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양산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임박한 지금 거침없는 광야의 소리가 더욱 절실합니다. 더 늦기 전에 열매 없는 쭉정이 허위를 벗어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백성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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