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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06-02)


성령 충만한 인간관계(III)

에베소서 6장 5-9절


전북 김제에는 역사가 오래된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1908년에 건축한 한국 초대교회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유명한 교회입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유명한 내용이 있습니다. 자신의 집 머슴을 장로로 섬긴 주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첫 장로 투표 때, 조덕삼과 그 집의 종이던 이자익이 같이 장로 후보가 되었습니다. 머슴이던 이자익이 1대 장로로 선출되자, 주인 조덕삼은 종을 장로로 성심성의껏 섬겼습니다. 종인 이자익 장로가 강단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할 땐, 조덕삼 영수도 함께 정성껏 예배를 드렸습니다. 집에서는 종전대로 다시 주인과 머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공과 사가 분명했습니다. 반년 뒤 조덕삼 영수도 2대 장로로 장립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 충만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본보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족을 넘어서 이웃에 대한 관계를 가르쳐 줍니다. 고대 가정은 부부관계와 자녀 관계 그리고 종과 상전 관계까지 포함됩니다. 종은 고대 사회에서 가정에 한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관계 회복에 대해 설명하면서 종과 상전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주인과 종과의 관계 즉 오늘날로 표현하면, 고용주와 피고용인까지도 포함합니다.

 

종들로서 자세(5-8)

종종 ‘교회’를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는 특정한 시간에 예배와 모임을 가진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흩어지는 교회’는 세상에 보냄을 받아 성육신적인 삶을 사는 흩어진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흩어진 교회는 성도들이 생활하는 가정과 직장입니다. 이곳에도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5-8)

사도 바울 시대인 로마 시대에는 6,000만명이나 되는 노예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 중에는 노예 신분의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가정의 범위를 확장 시켜서 그리스도의 머리됨의 원리를 상전과 종의 관계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종(從)’은 ‘노예(奴隸)’를 말합니다. 종(從)에 대한 취급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고대에는 노예에게 상해를 입힌 죄가 상대방 물건을 손상시킨 죄와 동급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종을 인간으로서 대했다기보다는 좀 비싼 물건으로 대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1)상전을 두려움으로 섬김

먼저,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상전을 대할 때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종이 주인을 너무 어려워하거나 무서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경외하면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종들이 상전(주인)을 사랑하면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고려하고 배려합니다. 자기 위에 있는 상전들에게 대해 불쾌하지 않도록 자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괜히 자극해서 화와 분노를 자극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려해서 배려하면 그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시대에 종과 주인이 같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가령 종이 먼저 믿고 주인이 나중에 믿을 수 있습니다. 먼저 믿은 종이 주인보다 믿음에 대해 잘 알 수 있고 종이 먼저 직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교회 안에서 세상적인 질서가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종이 주인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종이 어떤 환경에서 주인보다 낫다고 할지라도 주인을 바르게 섬겨야 합니다. 주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원칙은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종들은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종의 자세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순종(順從)입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에도 갑을 관계는 뜨거운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는 종들을 향해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주인에게 순종하라 했습니다. 단지 눈가림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섬기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상전의 종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종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마음으로 상전을 섬길 때 이 모든 수고는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이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상사에 대한 태도를 권고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로마서 13:1-3)

(2)상전을 순종함으로 섬김

두 번째,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말씀하십니다. 위에 있는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주인을 섬김이 하나님을 섬기듯이 성실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를 묵묵히 지켜야 합니다. 자신이 맡은 자리가 가장 적절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만족하시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충성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엘리에셀이라는 종이 있었습니다(창세기 24:1f). 나이가 많아서 힘이 없는 아브라함을 위해 충성을 다합니다. 아브라함의 심부름으로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선택하는 장면 속에서 충성스러운 종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는 주인 뜻대로 행하며(1), 기도하는 종이며(10-12) 그리고 사명에 충성스러운 종이었습니다(33). 순종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그리스도께 하듯이 하라고 권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도 자신의 자리에 대해 항상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당신을 다른 자리로 옮겨 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그 자리를 지키시길 바랍니다. 다른 자리가 아무리 좋은 자리라 할지라도 충성스럽게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시길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베드로전서 5:6)고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높여주실 것입니다.

(3)상전에서 눈가림하지 말 것

세 번째, ‘눈가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눈가림’은 ‘주인에게 마음에 들려고 일한 것처럼 눈속임하는 행동’이며 다른 표현으로 ‘주인을 속이는 행동’입니다.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없는 것을 있는 척 허영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수준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눈가림으로 일하는 것은 노예 수준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인에게 순종해야 할 것은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8)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행한 대로 상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순수하게 지속하지만 거짓과 가짜는 금방 들통 나기 때문입니다. 눈가림으로 하는 행위는 금방 들통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 인격은 금방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주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일을 할 때에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선을 행한 종들에게 보답해주십니다.

요셉처럼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을 해나갔습니다. 이러한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요셉의 삶에 대해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 39:23b)고 소개합니다.

 

주인들로서 자세(9)

오늘날도 직장에서 상사나 CEO라면 자신의 유리한 점으로 다른 사람들은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법을 앞세워 힘없는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상전들도 자신들의 종들에게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하십니까?

9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9)

한편, 상전 역시 종들을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심을 기억하며, 종들을 말로 위협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지위와 상관없이, 우리의 신실한 삶과 행위에 따라 상급 주시는 분임을 기억하십시오.

(1) 종들과 같은 자세

사도 바울은 주인들에게 ‘그와 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이 뜻은 앞에서 노예들에게 말한 ‘주께 하듯 하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섬기듯이 노예를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전들에게도 종들에게 주셨던 당부를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두려워’하고 ‘성실’하고 ‘눈가림하지 말라’는 것처럼, 주인들도 종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종이 아랫사람이라고 막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전들은 하나 더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 종들에게 위협하지 말 것

노예들이 하나님을 섬기듯이 상전을 대한 것처럼, 상전들도 또한 노예들에게 ‘위협을 그치라’고 합니다. 조금 직위가 있다고 아랫사람들을 협박하는 것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노예들을 위협하는 것은 당시에 아래 사람들을 통제하는 보편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공갈(恐喝)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종이라고 그들에게 위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래 있는 사람들을 위협이나 협박하거나, 자신 마음대로 조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인이라고 종들을 무례하게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종이나 주인이나 모든 이들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종이긴 하지만, 그리스도께 하듯 인격적으로 대하고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종들에게 허세를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힘(능력)을 적절하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고 허세를 부립니다. 주인은 능력(실력)과 인격(영성)을 갖추고 있으면 종(아래 사람)들은 당신을 순수하게 순종하고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왜 위협을 그치라고 하겠습니까? 주님은 주인과 노예의 주인이십니다.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능력에 따라서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하십니다.


직장은 단순히 돈을 벌거나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직장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의 현장입니다. 당신의 직장에서 하나님의 향기를 발하고 있습니까? 요셉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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