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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6-02)


이스라엘 왕 시므리, 오므리 그리고 아합

열왕기상 16장 15-34절


신앙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믿는 일입니다. 그분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과 상관없이 누리는 번성은 그분의 존재감을 지우고 망각하게 만드니 재앙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왕들이 북이스라엘에 계속 일어남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점점 가까워집니다. 분열왕국 이해 60년이 채 안 되어 이스라엘에는 시므리와 오므리를 통해 각각 왕조가 바뀝니다. 제4왕조를 시작한 오므리와 그 아들 아합은 그들 전의 어떤 왕들보다 악을 더 행했습니다. 아합은 이내 이세벨의 영향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고, 그들의 제단과 우상들을 만들었습니다. 우상숭배를 이스라엘 전역에 퍼뜨려 여호와의 노를 부추겼습니다.

 

이스라엘 왕 시므리(15-20)

우리가 자격도 되지 않는데 인간적인 욕심을 이루기 위해 비성경적이고 비인륜적인 행동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고립됩니다. 욕심은 죄입니다. 욕심에 빠져 사악한 행동을 계속할 때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15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 왕이 되니라 그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16진 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매 17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18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 19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20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15-20)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왕 시므리(주전 885년)는 7일간의 짧은 통치와 악한 왕이라는 평가를 역사에 남깁니다. 그가 바아사의 아들 엘라를 암살하고 왕위에 오른 때는 유다의 아사 왕 제27년이었습니다. 시므리의 반역으로 엘라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은 깁브돈(디르사의 남서쪽 80km)에 진 치고 있던 군대 지휘관 오므리와 온 이스라엘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반으로 왕좌에 오른 시므리를 합법적인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의 지휘관인 오므리를 왕으로 삼아 시므리에 대항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행보는 오므리가 시므리보다 군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모반자 시므리를 처단하기 위해 깁브돈에서 행군해 올라와 디르사를 에워쌌습니다. 오므리를 따른 군대는 ‘온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무리”)로 나와 그가 군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지도자임과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암시합니다. 마침내 오므리 군대는 디르사를 함락했습니다. 결국 시므리의 반역은 이스라엘에게서 깁브돈을 함락할 기회를 빼앗고(15:27; 16:17), 애꿎게도 자국의 수도가 함락되게 만들었습니다. 시므리는 디르사가 오므리의 손에 점령당하자 좌절하여 왕궁 요새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왕궁에 불을 질러 자신도 그 속에서 재가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시므리는 왕의 자질이 부족했으며, 그의 반역은 무모했습니다. 그는 경쟁 상대를 예상치 못했고, 강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바아사 가문에 대한 숙청은 빈틈없었으나 정작 자신의 모반에 대한 공격과 저지 세력에 대한 준비는 미약했습니다. 왕이 된 지 7일 만에 방화와 자살을 함으로써 자신이 세운 왕조와 지지자들과 스스로를 버린 행동 또한 무분별함과 무책임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의 몰락이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한 죄’의 ‘심판’임을 단호하게 지적합니다(19). 그의 죄는 다른 왕들과 같이 개인이 지은 죄(‘여로보암의 길로 걸은 죄’)와 백성을 악으로 이끈 죄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짓게 만든 죄)입니다. 짧은 통치로 생을 마감한 시므리에게 여로보암의 죄를 묻는 것은 그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자임을 뜻합니다. 그가 저지른 암살과 숙청 자체가 자기 욕심을 위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규례에 어긋난 죄이며, 나라의 분열과 갈등을 가중시키는 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오므리(21-28)

우리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업적을 자신의 영적 현주소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이룬 위대한 성공과 업적으로 우리를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로보암의 길’로 언급되는 죄, 즉 자신의 목적을 절대화하거나 하나님을 수단화하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1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더니 22오므리를 따른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른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23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24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25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26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27오므리가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8오므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21-28)

시므리의 자결 후 이스라엘의 여섯 번째 왕이 된 오므리(주전 885-874년)는 강력한 왕조의 군주였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왕정은 여로보암 이래 암살과 숙청이 난무하던 이스라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약 25년 전 깁브돈에서 나답과 함께했던 온 이스라엘은 그를 암살에서 지켜주지 않았으나(15:27), 오므리와 함께한 “온 이스라엘”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여 든든한 지지 세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시므리가 이미 왕 엘라를 죽이고 바아사 가문을 다 숙청했고, 시므리 자신마저 자살함으로써 오므리는 앞선 왕조에 대해 손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의 등극 당시는 유다 아사 왕 제27년으로(15), 분열왕국 이래 47년이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유다는 다윗 왕조가 지속되고 아사가 세 번째 왕으로서 장기 통치 중인 반면, 이스라엘은 반세기 동안 왕조가 네 번 바뀌고, 왕도 여섯 번째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첫 정권을 잡은 여로보암 왕조는 말년에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끝났고(대하 13:20), 그의 아들 나답이 암살당하여 더 위태해졌습니다(15:27). 새로이 권력을 잡은 바아사가 20년 이상의 긴 통치를 이루었으나(15:17), 유다의 아사 왕 때 벤하닷의 침략으로 영토를 많이 잃어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엘라는 1년 새에 시므리에게 암살당합니다(16:10). 그러나 시므리는 7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북왕국 내에 내분이 생깁니다. 백성의 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주전 885-880년)를 왕으로 삼고, 반은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시므리의 등극 시기가 아사 제27년이며(15), 디브니가 제거되고 오므리가 왕이 된 때가 제31년(23)인 것을 계산하면, 분열 기간은 약 4년 정도입니다. 오므리 왕조는 4대에 걸쳐 44년간(주전 885-841년) 지속됨으로써 북이스라엘 9왕조 중 예후 왕조(5대, 89년) 다음으로 장기 집권하면서 가장 강력한 왕조를 이뤘습니다.

오므리는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겼습니다. 사마리아는 예루살렘 북쪽 약 67킬로미터, 세겜에서 약 20킬로미터의 거리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원래 소유자는 세멜이며, 그의 이름을 따 ‘사마리아’라 이름 지었습니다(24). 은 2달란트(68kg)에 구입한 이곳은 해발 약 400미터에 위치하여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므리가 땅을 매입한 행위는 레위기 25:23의 ‘땅 매매 금지’ 규례를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유업으로 주신 것은 각 가정과 후손에게 삶의 터전을 확보해주시는 의미였습니다. 땅의 소유자는 하나님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영원히 팔거나 양도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오므리가 이를 가볍게 여기고 땅을 산 데에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오므리는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더구나 여로보암처럼(14:9) 이전 모든 자들보다 더 악을 행했다는 내용이 부가되었습니다. 선왕들처럼 여로보암의 길을 따름으로써 자신도 죄를 짓고 백성들이 우상숭배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열왕기는 오므리에 대해 여덟 절을 할애했으나, 실상 그와 그의 왕조는 성경 밖에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메샤 비문(Mesha Inscription)에는 오므리가 모압을 정복한 내용이 적혔고,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오므리의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열왕기는 악한 왕의 정치 군사적 업적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의 악행을 고발하고 죄에 합당한 심판이 있음을 알림으로써 독자들에게 죄와 심판에 대해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29-34)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의 총체적 삶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신앙을 양보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가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과 세상을 겸해 섬기는 이분법적인 태도나 혼합주의적인 모습은 없는지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29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34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29-34)

오므리에 이어 다섯 번째 왕이 된 아합(주전 874-853년)은 이스라엘의 가장 약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유다 아사 왕 제38년에 왕좌에 올라 22년(실제 21년)간 통치했습니다.

30-33절에 빼곡히 기록된 죄목은 그의 죄가 질적, 양적으로 무거움을 알립니다. 그는 부친 오므리처럼 이전 모든 자보다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했습니다. 특히 오므리가 주선한 정략결혼을 통해 아내로 맞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인해 죄가 가중되었습니다. 아합은 그녀가 섬긴 바알을 함께 숭배했고, 그녀를 위해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과 제단 및 아세라 상을 만들었습니다. 유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데 반해,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에는 이방신 바알의 신전이 자리 잡았습니다. 아합의 배역 행위는 솔로몬이 이방 아내들을 위해 산당과 제단을 지어, 자신과 백성을 이방 신 숭배로 이끌어, 하나님의 큰 책망을 받은 일을 상기시킵니다(11:1-13). 솔로몬의 이런 배역으로 이스라엘이 분단되지 않았습니까! 아합의 악행이 크므로 여호와의 진노도 증대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일어났던 여리고 재건축도 이스라엘의 악행과 하나님의 진노가 드러난 한 사례입니다. 과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성읍의 재건을 금하고 저주를 선언하셨습니다(수 6:26-27). 그러나 아합 때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했습니다. 이 건축은 왕의 명령으로 시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성을 재건한 결과, 히엘이 성읍 터를 쌓을 때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읍 완공 후 성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의 선포된 말씀은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왕과 백성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점점 패망으로 가까이 갑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 종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좋은 만남을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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