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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주해(01-02)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장 14-25절


 

처음부터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숨 쉬고 움직이며 번성하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로 나왔습니다. 인간이 생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과 원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생과 사가 모두 그에게 달려있습니다. 그가 생명의 주권자임을 인정합니까? 하나님‘도’ 생명의 주권자가 아니라 하나님‘만’ 생명의 주권자임을 인정하십니까?

  

넷째 날에 빛이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발광체인 태양과 달이 하늘에 만들어지고, 더 나가서 별들도 창조됩니다. 다섯째 날에는 하늘(공중)과 물(수중)에 생명체들이 탄생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각자의 영역에 가득 채웁니다. 여섯째 날에는 땅에 동물과 인간이 창조되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마무리 됩니다. 생명체는 식물과는 달리 호흡을 하는 생물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흡을 가진 생명체들에게 복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넷째 날의 창조(14-19)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온 우주 만물이 아무리 크고 놀랍다 할지라도 천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뿐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상은 신이 아닙니다. 한낱 사람이나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창조주를 떠나 살면 삶은 질서를 잃고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삶의 틀과 내용 모두 주님이 창조하시도록 허락합니다.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14-19)

넷째 날부터는 세상을 충만하게 채우고 살아갈 존재들을 창조하십니다.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신 것에 대응하여,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창조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늘의 해와 달을 만드셨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태양과 달이 이날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초의 ‘빛이 있으라’는 명령과 더불어 지구를 비추는 태양과 달, 별들이 이미 창조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마 첫날 창조된 광명체인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이 지구에 온전히 발현되어 계절과 하늘의 시간표 역할을 시작한 것이 넷째 날일 수 있습니다. 하늘의 광명체인 해와 달을 구분할 뿐 아니라,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결정하는 우주의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징조’는 동양의 춘분, 추분, 하지, 동지와 같은 천계 변화의 변곡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며, ‘계절’은 사계절, ‘날’은 365일의 날짜, ‘해’는 1년의 기간을 뜻할 것입니다. 따라서 3절에서 ‘빛’의 창조가 이미 지구 생태계 조성을 위한 광명체들을 포함했다고 본다면, 앞서 말할 대로 태초에는 직두의 기상 조건에 의해 하늘에 또렷이 나타나지 않았던 해와 달이 이때 드러난 것을 묘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14절의 ‘광명체들이 있으라’는 명령은 이미 창조된 해와 달에 대한 지구 중심적인 문학적 묘사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해와 달이 지구의 시간표 기준으로 정상적인 기능을 하도록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3절에서 빛이 창조될 때 지구를 비친 임시적인 광명체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매우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1장의 우주와 지구의 창조 과정 및 생명체의 출현 순서는 과학적으로 드러난 생명체의 출현 순서와 거의 동일합니다. 과학 진화론에서 우주/지구-(미생물)-식물-동물-인간 순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은 과학과 전혀 무관하며, 오로지 신학적-문학적 진술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과도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만일 문자적으로 6일 창조를 믿으면서 식물 이전에 태양은 없었다면, 하루 뒤에 즉시 태양의 창조와 더불어 식물이 자생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넷째 날부터 여섯 째 날까지의 3일은 창조의 처름 3일과 다음 도표와 같이 대조될 수 있습니다. 첫째 날의 광명체들과 별들의 창조로 구체화됩니다.

형태 갖춤/자원
(혼돈에 반대)
영역 채움/사용자
(공허에 반대)
창조물 창조물
1 4 광명체들과 별
2 궁창(1:6-8),
하늘, 바다
5 서식 생물들, 새, 물고기
3 마른 땅(1:9-10)
식물(1:11-13)
6 육상동물(1:24-25),
사람(1:26-31)

둘째 날 궁창의 창조와 더불어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는데, 넷째 날 하늘에는 새가 바다에는 물고기가 창조됩니다. 셋째 날 마른 땅이 드러나고 거기에 식물이 싹트기 시작하며, 여섯째 날에 땅 위의 동물들과 사람들이 창조되고 식물은 그들의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다섯째 날의 창조(20-23)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이성과 의지로 내적인 것에 속한 것을 유용하고, 먹고 마시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속사람에 속한 것이 내적인 것을 먹고 마셔야지 자연적인 것을 먹고 마셔서는 안 됩니다. 내적인 사람에게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내적인 것을 먹고, 남에게 전하여 주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20-23)

다섯째 날에 둘째 날 준비된 하늘(궁창)과 바다에 생물을 채우십니다. ‘생물’(네페쉬 하야, היה שׁנפ)은 숨 쉬며 살아 있는 생명체(iving creature)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더불어 물에 생물들이 번성하여 가득 찹니다. 물은 물고기를 비롯한 각종 수증 생물들의 영역입니다. 강과 바다, 호수가 다양한 생물들로 채워집니다. 21절 수중 생물의 ‘번성’(샤라츠 רץשׁ)은 떼 짓는다는 뜻입니다. 물속의 때 잣는 생물은 수영하는 물고기 떼와 바닥에 기는 것들을 포함할 것입니다. 하늘의 궁창은 공중을 나는 새들의 영역입니다. 각종 새들이 하늘을 날면서 지구 생태계에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생명의 역동성을 더합니다. 수중 생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큰 바다 짐승들’과 ‘떼 지어 움직이는 생물들’입니다. 아마 후자는 작은 생물체들일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큰 바다 짐승들’의 히브리어 타니님(תננים)을 우가릿 신화에서 바알의 대적인 바다 괴물 얌(yam)의 별칭인 타난(tnn)에서 차용한 용어로 봅니다. 물론 창조 기사는 ‘타니님’의 신화적 색체를 걸러내어 단순히 피조물로 보고 있지만 그 단어의 우가릿 기원설은 가능한 견해일 수 있습니다. 타니님(단수 타닌)은 구약의 몇 군데에서도 이러한 신화적 특정이 반영된 상징적인 ‘용’으로 번역됩니다(시편 74:13-14: 이사야 27:1; 51:9; 예레미야 51:34). 하지만 다른 여러 곳에서는 그것이 단순히 고래, 악어, 뱀과 같은 짐승들로 번역됩니다(출애굽기 7:9, 10, 12: 신명기 32:33; 시편 91:13; 에스겔 29:3, 32:2). 타닌/타니님의 정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우나 현재의 번역 ‘큰 바다 짐승’은 무납해 보입니다. 대체로 ‘큰 바다 짐승’은 수종에서 개체로 헤엄치는 큰 생물로 볼 수 있으며, ‘물에서 번성하는 모든 생물’은 기는 것을 포함하여 때 지어 헤엄치는 작은 생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날의 창초 작업을 나타내는 동사는 1절에 이어 다시 하나님의 창조 작업에만 사용되는 바라()입니다. 이것은 동사의 의도적인 사용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호흡이 있는 생명체의 창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와 물고기의 창조 후,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어 번성할 수 있게 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법이지만, 이것은 자신이 친히 생물들을 축복하여 온 땅을 생물들로 가득 채우려는 창조주의 의지와 계획에 대한 표현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복을 주다’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최초로 나타나는데, 최초의 복의 대상은 생명체들, 곧 새와 물고기들입니다.

 

여섯째 날의 창조(24-25)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이기도 하고 축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것을 듣지 못하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여 그냥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표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리고 이루심을 받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니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내리십니다.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4-25)

여섯째 날의 창조물은 공중의 새와 수중 생물에 이어 땅의 생물들인 육상 짐승과 사람들입니다. 이 단락에서 짐승의 창조가 언급되고 이어지는 단락에서 창조의 절정으로 연간 장조조가 묘사됩니다. 육상 동물들이 종류별로 구분되어 나열됩니다. 가축, 기는 것, 땅의 짐승. ‘땅의 짐승’(하에토 에레츠 )은 매우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범주로 보여지만, 앞선 ‘가축’과 대비되는 ‘야생 동물’로 볼 수 있습니다. 새나 물고기의 경우와 달리 육상 동물에는 복이 선언되기 않습니다. 다음 단락의 인간 창조에서 보듯이, 인간에게도 역시 복이 선언되고 생육과 번성의 명령이 내려집니다(28). 그러나 육상 동물에게는 복뿐만 아니라 생육과 번성의 명령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생육과 번성이 하나님의 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상 동물의 복과 번성이 언급되지 않은 이유로 어떤 사람은 동물의 번성이 인간을 위협하고 거주지와 이를 둘러싼 경쟁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주 창조의 절정이자 생물 창조의 절정인 남녀 사람에게 선언 복과 번성의 명령 아래 동물이 자동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2장에서 아담이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짓습니다. 반면에 식물의 작명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하지만 식물계 또한 그에게 위임되었기에 그가 식물의 이름도 지었다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의 자리를 주시고, 각 생물체에게도 걸맞은 자리를 주십니다. 두신 자리에 있을 때 그 생명은 빛나고, 종류대로 만드신 다양성을 발현할 때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합니다. 우리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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