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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02-02)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전서 2장 11-10절


종종 주위에서 ‘나이가 들어 늙으면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정말로 나이가 들면, 과거의 습관에 매어서 변화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도님들을 볼 때, 그것은 절대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습관을 고칠 수 없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모든 잘못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은 받아 드린다고 확신합니다.

 

새 언약 백성이 세상에서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그 내용은 4:11까지 진행됩니다. 이 부분은 3:12까지 첫 주제로서 사회 구성원 역할에 대해서입니다. 2:11-25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첫째, 11-12절은 권면의 도입부입니다. 나그네와 이방인으로서 세상과 다르게 살라고 합니다. 둘째 13-17절과 셋째 18-25절은 구체적 권면들입니다. 각각 인간 제도의 권세자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가정 섬김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권면의 도입 : 세상 속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11-12)

우리는 세상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동안에 자신의 시선대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11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1-12)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와 ‘내가 권한다’ 표현으로 권면을 시작합니다. 특별히 세상 속에 사는 신자의 삶을 다룹니다.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표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지만, 남의 나라, 곧 세상 어둠의 영역에 잠시 거주하거나 여행자와 같은 신자의 이중 정체성을 전제합니다(참조. 1:1).

11-12절은 도입 부분입니다. 두 가지를 주문합니다. 첫째, 개인 차원의 권면입니다(11).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반역의 나라의 충돌을 배경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거절하는 세상 요소들을 따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둘째, 사회적 차원의 권면입니다(12). 이방인, 곧 하나님 백성이 아닌 사람들 속에 살면서 세상을 따르지 말라는 것은 은둔자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선한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 향하여 제사장으로서 언약 백성 의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 목적은 비방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주의 재림과 심판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 목적에는 몇 가지 함의가 있습니다. 첫째, 신자가 이 땅에서 선한 삶을 살아도 비방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의 재림 때라야 비방하는 자의태도가 바뀔 것입니다. 신자나 교회가 선한 일을 하면 세상이 회개하고 전적으로 새롭게 될 거라는 믿음은 순진한 착각입니다. 죄악 세상은 재림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둘째, 주님이 계획하신 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모든 자들=]-\\ 정하고 믿지 않는 자들도 신자가 옳았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자는 1) 끈질긴 세상 죄의 속성을 인식하고 2) 구원의 미래를 기대하며 3) 사람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기대하고, 오늘 세상에 대한 제사장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인간 제도의 권세자들에 대해 (13-17)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막고 선을 장려하기 위해 세우신 권세자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지만, 그 자유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용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이기에 결코 악에 굴복하여 악에 동조하는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13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13-17)

베드로는 선을 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합니다. 그는 성도들이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하는지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이 세상의 제도와 권세를 존중해야 합니다.

(1) 인간 제도의 권세자들에 대한 명령: 순종하라(13-15)

이 세상 속 신자 삶에 대한 첫 번째 구체적 명령입니다. 왕이나 왕이 임명한 총독 등 인간 제도의 권세자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본문 정보와 관련해 몇 가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본문은 보편적 상황을 전제합니다. 악한 권세자 같은 특별 상황이 담긴 교리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순종의 삶이 초점입니다. 둘째, 사람은 사회 구조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구조의 핵심은 관계입니다. 사람은 관계로 인해 태어나고 관계 속에서 살고 죽습니다. 셋째, 사회 구조 속 위아래 관계도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작은 부모와 자식 또는 형제자매 구조입니다. 이렇듯 위계질서 역시 필연적입니다. 넷째, 사회 구조 속 통치자 역시 필연적입니다. 원래 창조명령에는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피조물을 잘 다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거절한 이후 모든 관계가 망가졌고,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권세자들이 생겨났습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반역의 세상 영역에서도 여전히 그분의 뜻이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일하십니다. 선을 장려하고 악을 징벌하는 통로로 권세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저자는 이런 권선징악 기능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15). 구약에서 이방 왕을 들어 죄악의 나라들을 징벌하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 이런 면에서 권세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들 을 통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를 위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세상 관계나 구조를 깨지 않는 것 혹은 그 안에 있는 권세자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선한 삶을 통해 세상에 대해 제사장 역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대이며 성도들 소명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2)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16-17)

권세자에게 순종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순종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자유도 있지만, 하나님께 속한 노예처럼 악이 아니라 선을 위해 그 자유를 사용해야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사람을 존중하고, 동료 신자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해야 합니다. 

 

가정 섬김이(종)에 대해(18-25)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당한 고난을 받아 돌아가심으로 살리는 사람들입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있기에 그런 고난을 감내하면서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처럼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사람으로 살도록 말입니다.

18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18-25)

베드로는 당시 종(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연결합니다. 이들이 비록 한 인간의 종일지라도 동시에 하나님의 종이기에, 기꺼이 선을 행하고 고난을 받으며 인내하면서 다르게 살아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1) 가정 종(노예)에 대한 명령: 순종하라(18) 

가정에서 섬기는 사람들에게 모든 일에 두려움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참조, 1:17)으로 인간 제도 속 또 다른 권세자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순종은 그 대상의 성품과 상관없이 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노예제도가 없기에 이 명령을 보편적 원리로 직접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일터를 비롯한 인간 제도에 대한 일반 원리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2) 순종의 이유 1: 선행으로 고난 받는 것은 은혜다(19-20)

가정 섬김이(종)들이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특히 까다로운 주인에게 억울하게 어려움 당하는 상황을 전제합니다. 한마디로 선행으로 고난당할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참는 것이 그분 앞에서 은혜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내용을 19-20절에서 반복합니다. 선을 행하기에 고난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칭찬’이란 표현은 보상이 있음을 의미하지만(20), 그 보상이나 고난 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되는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란 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고난에도 참고 계속 선을 행하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오늘날 일반 성도나 교회의 생각과 많이 다릅니다. 사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승리입니다. 상황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어주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자녀의 모습을 계속 견지해가는 것이 복이며, 그 일을 통해 고난 받더라도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승리입니다(마태복음 5:10-12). 하나님을 향해 신실함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순종의 이유 2: 예수 메시아의 예(21-25)

가정 종(노예)들이 순종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를 제시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고 견디기 위해 부르심 받았기 때문입니다(21a). 첫 번째 이유처럼 예수 믿어 미래를 보장받고 이 땅에서도 복(?) 받고 사는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충격적 내용입니다. 부르심의 이유를 고난과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자의 이중 정체성과 제사장 역할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을 아는 자들에게는 놀랍지 않다. 오히려 그런 소명 맡기신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저자는 예수를 예로 들어 이 내용을 부연합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면에서 신자에게 중요합니다. 첫째, 예수의 고난은 그를 따라가는 신자들에게 귀한 모본입니다(21-23). 세상에서 선을 행하다가 겪는 신자의 고난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가 겪고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가 없었고 입에 거짓도 없었습니다. 세상을 따라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았습니다(참조. 11). 그럼에도 욕을 먹고 고난당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했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버티고 견뎠습니다. 고난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믿고 그분에게 주어진 구원의 통로로서의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속 죄인을 연결하는 온전한 대제사장의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 이 땅에서 언약 백성으로서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하는 신자에게 최고의 모본입니다. 둘째, 예수는 신자에게 구원의 새로움을 주신 분입니다(24-25). 그분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세상 어둠의 영역에 속해 있던 자들의 죄를 대신 담당함으로 그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독자들은 예수로 인한 하나님 구원의 산 증인들입니다. 그렇기에 그 예수를 따라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선한 삶을 꿋꿋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처럼 살면 됩니다. 그분이 보여주고 가셨습니다. 세상을 존중하되 세상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인지 아닌지를 잘 분별하여 살아가셨습니다. 우리도 나그네와 거류민의 정체성을 기억하면서 영원히 살려고 하지도 말고, 무책임하게 관광하듯 살지도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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