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02-01)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베드로전서 2장 1-10절
아프리카 소망을 준 리빙스톤은 영국에서 태어나 선교사를 꿈꾸며 자랐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의사가 되었고, 아프리카에 가서 작은 희망의 빛을 전해 주었고 그의 사역은 아름답지만 그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한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곳에 영원히 살아계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리지널 리빙스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는 당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성전에 모퉁잇돌이 되신 예수님처럼, 성도들도 고난 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잘 깨달아서 구원에 이르도록 말씀으로 자라가라고 권면합니다. 항상 살아있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난 성도들이 주님 오실 때까지 힘써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은혜를 살펴가겠습니다.
다섯 번째 명령 : 신령하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1-3)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은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하게 합니다. 거듭나게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적을 거듭난 이후로도 계속해서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소아시아 교회 성도들이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니 젖을 먹고 자라가는 것처럼, 구권에 이르도록 자라가라고 권면합니다.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1-3)
베드로로는 1:13에서 시작된 일련의 명령 중 다섯 번째입니다. 그 명령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 성도로 잘 살아가기 위해 말씀을 포함한 하나님의 포괄적 은혜를 추구하라는 말입니다.
이 명령도 앞의 명령들처럼 ‘왜’와 ‘어떻게’ 차원을 수반합니다. ‘왜’ 차원은 두 가지로 전달합니다. 첫째, ‘그러므로’는 1:23-25 성명을 전제로 명령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독자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 세상 어둠의 영역에 대해 죽고 그의 부활로 빛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그의 자녀로 마치 갓난아이들(2)처럼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아이가 젖을 찾듯이 영적 아이인 독자들도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둘째, 조건문 구조입니다. 1-3절은 전체적으로 ‘만일’(에이)이란 조건절(3)과 그에 대한 주절(2)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는 조건절 내용 역시 독자가 거듭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을 말합니다. 시작 과정에서 그분의 인자하심을 경험했기에 이후 과정에서도 계속 추구하라는 말입니다. 한편, ‘어떻게’ 차원은 주절을 꾸미는 분사절(1)에서 설명됩니다. 세상 삶의 모습을 버리는 방식입니다. 앞선 명령들처럼 구원 이전과 이후의 대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외에 주목할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목적절(히나)을 통해 명령의 목적을 기술한 것입니다(2). 앞 명령들에서는 없었습니다. 다섯째 명령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왜’와 ‘어떻게’를 통해 주의 은혜를 추구함으로써 구원, 곧 구원의 미래 완성을 향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것과 이 땅에서 다른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경의 구원은 완성을 향해 가는 ‘구원 과정’이고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관계에는 끝이 없습니다. 영원히 그분을 알아가고 사랑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이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저자는 거듭난 신자에게 세상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함으로써 구원의 삶을 계속 귀하게 만들어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소명(4-10)
이 세상에 생명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점점 싱싱하게 성장하던지 아니면 점점 노쇠화 되든지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날마다 싱싱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성도는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집인 교회의 일부가 된 존재며,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4-10)
베드로는 구약성경(이사야 28:16; 시편 118:22)을 인용해 돌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분인지를 증언합니다. 소아시아 교회 성도들에게 사람들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지만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께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합니다.
(1) 산 돌 예수로 인한 신자의 상태: 제사장 일을 위한 지어지는 신령한 집(4-5)
‘주의 인자하심’이란 3절 표현과 연결해 주 예수님으로 얻게 된 독자 상태를 설명합니다. 몇 가지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시편 118:22을 인용해 예수님을 살아 있는 돌로 묘사합니다(4).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는 돌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거절하지만, 예수님은 그 위에 집을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이 택하는 신 보배롭고 살아 있는 돌입니다(5). 둘째, 예수님에 대한 독자의 반응과 결과입니다. 두 동사를 사용해 묘사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에게 ‘간다’는 표현입니다. 중간태 분사형(프로세르코메노이/προσερχομενοι)을 사용합니다. 주동사 내용의 전제 혹은 선행 과정으로 독자의 능동적 행위를 부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건물로 세워지다’라 게는 표현입니다. 현재 직설법 수동태(오이코도메이스테/οἰκοδομεισθε)입니다. 문장 주동사로서 분사를 통한 과 은정의 결과입니다. 독자는 예수를 향해 긍정 반응을 하고 있고, 그 결과 신적 도움으로 인한 긍정 결과를 경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셋째, 건물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신자를 살아 있는 돌같이 건축되는 건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넷째, 성전이 되어가는 목적입니다. 신자를 성전으로 소개한 것은 고린도전서(3:9)나 에베소서(2:20-22)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초점이 다릅니다. 고린도전서는 분열된 교회를 회복시키려는 내용이고, 에베소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하나 됨을 다룹니다. 베드로전서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일을 위한 성전입니다. 그 신령한 제물은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즉 신자들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예물처럼 하나님께 드릴 목적으로 존재하는 성전입니다. 9절에서 말할 ‘왕 같은 제사장’ 개념입니다. 정리하면, 독자는 예수께 긍정적으로 반응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갑니다. 예수님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제사장 일을 위해 세상에 존재합니다.
(2) 산돌 예수님으로 인한 두 가지 결과(6-8)
살아 있는 돌 예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심판과 구원을 가르는 시금석으로 소개합니다. 독자(‘너희’)와 세상(‘그들’)의 상태가 대조되며, 구약 인용과 적용의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먼저, 독자들 상황입니다(6-7a). 이사야 28:16 인용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었는데,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독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믿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 그대로 보배로운 돌입니다. 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다릅니다(7b-8). 예수님을 믿지 않기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치 건물이 잘 세워지게 하는 초석인데도 눈먼 건축자들에게는 쓸모없는 돌로 여겨지는 것과 같습니다(시편 118:2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돌이 다른 기능을 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부딪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됩니다(이사야 8:14). 믿지 않는 세상은 그들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이런 설명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 듯합니다. 첫째, 세상에 거하고 있는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판단이 옳은 듯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힘이 있고 잘사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면적 진실은 다릅니다. 독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험하고 있지만, 세상은 멸망 길로 가고 있습니다. 단지 그 결말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독자들 선택이 더 옳습니다. 저자는 진실을 확증시켜 독자들이 잘 견디도록 돕고 싶은 것입니다. 둘째, 보다 구체적으로 세상 속 신자 삶에 대한 권면의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체적 권면들은 11절부터 시작됩니다. 그전에 신자와 세상에 대한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저자 권면을 따라 바른 삶을 잘 살도록 돕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의도는 9-10절을 통해 한 번 더 강조됩니다.
(3) 새 언약 백성으로서의 성도들(9-10)
6-7절에서 말한 예수님과 관련한 신자와 세상 간의 대조를 연장하고, 4-5절에서 말한 신자 모습을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독자의 모습을 네 가지 호칭으로 묘사합니다. 택하신 족속과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모두 언약 관계를 배경으로 하며, 과거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출애굽 백성을 묘사한 것과 동일합니다(출애굽기 19:5-6). 독자들 역시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새 언약 관계 안에 있음을 전달합니다. 구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세상을 하나님과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분이기에 그분을 드러내는 계시의 통로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그 관계를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 예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역할을 하도록 선택되었습니다. 새 언약 백성도 율법의 뜻인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5). 저자는 목적절(히나)을 통해 독자들 역시 동일한 소명으로 부름 받았음을 부연합니다(9b).
더 나아가 구원 이전과 이후를 하나님의 긍휼과 백성의 관점에서 대조하여(10) 독자들의 정체성과 소명의 중요성을 확인시킵니다. 이 모든 것은 왜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새 언약 백성인 편지의 독자에게 이런 소명이 있다면, 동일하게 예수님으로 인해 새 언약 백성이 된 우리 역시 같은 소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그분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드러내고, 예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통로입니다.
어두움에서 불러내서 빛으로 인도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선포하기 위함을 깨달았습니다. 한 번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살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잘못된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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