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03-02)
의를 위한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
베드로전서 3장 13-22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을 허락하시며 아내와 남편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가정을 세워 가기 위해, 배우자를 존중하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함께 상속받을 자로서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복을 이어받기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면서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세상 속 하나님 백성의 삶을 계속 다룹니다. 이번에는 고난의 삶에 대해서입니다. 이 부분은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3-17절은 독자가 중심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선을 행할 뿐 아니라, 참고 견디는 소망의 이유를 준비함으로써 증거의 기회로 삼으라고 합니다. 18-22절은 메시아 예수를 고난의 모본으로 소개합니다. 고난 이후 승리의 영광을 경험한 주를 기억하고 함께 누릴 영광을 기대하고 견디라고 합니다.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한 권면(13-17)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선을 행하고 바르게 살아 누구에게든지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행하면서 살아가가도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 받을 때에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오히려 선한 일로 고난 받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야 합니다.
13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13-17)
악한 세상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악한 이 세상을 거스르는 것이고 그들을 불편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고난이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복 있는 삶의 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고, 악을 행하면서 고난 받는 것보다 났습니다.
(1) 선을 행하라(13)
2:11에서 시작한 세상 속 신자의 삶에 대한 설명을 이어갑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고난 상황을 다룹니다.
조건문이 담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만일 선한 것에 열심 내는 자가 되면 누가 ‘너희’를 해하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 질문은 수사 표현입니다. 내용에 담긴 원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뜻을 추구하고 살면 그분이 지키시고 악한 자들이 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유도한다. 독자들은 현재 고난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의 기능은 14절에 언급할 또 다른 상황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이 질문의 실제 초점은 독자들이 선한 것에 열심인 상태입니다. 독자들이 잘못해서 어려움을 만든 것이 아님을 말해주기 위해서입니다.
(2)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을 때(14-17)
13절처럼 조건문을 사용하지만, ‘그러나’로 다른 상황을 다룹니다. ‘만일 의를 위하여 고난 받으면’ 상황입니다. 하나님 뜻을 따라 선하게 살아도 어려움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신자의 이중 정체성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나그네’ 표현으로 제시했던 것입니다(1:1).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저자는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바른 상황인식입니다. 주절의 ‘복 있는 자’ 표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는 상태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따르다가 얻는 고난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는 표지이며, 그 고난을 견딘 사람에게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내용이 17절에 반복됩니다. 바른 생각과 인식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둘째, 복음 증거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일련의 명령법과 관련 표현을 통해 설명합니다. 우선,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라고 합니다(14b). 오히려 독자들 마음 안에 메시아를 주(主)로 거룩하게 모시고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합니다(15a). 삶의 이유 되신 하나님과 그분으로 인한 소망을 소개하여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과 연결하는 제사장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행하는 과정에 하나님 경외함과 사람에 대한 친절함과 함께 선한 양심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선행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신자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15b-16).
이런 요소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묻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핵심 토대는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지식입니다. 신자로 하여금 1)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하고, 2)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며, 3) 지속적으로 그분이 기대하는 삶의 모습을 살아가고, 4) 적절한 때 그분을 증거할 수 있게 합니다.
메시아 예수의 고난과 승리(18-22)
성도들은 고난에 대한 인식을 재조명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고난은 불행이나 실패가 아닙니다. 형통함은 고난 없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복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난 없는 삶을 걱정해야 합니다.
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18-22)
그리스도께서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죄인을 위한 의인의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장에는 실패로 보였지만, 부활로 그 고간이 옳다는 것을 인정 받으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 당하는 노아와 그 가족만 구원을 얻었고, 그리스도께서도 왕의 자리에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1) 메시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18)
‘왜냐하면’을 통해 고난에도 불구하고 왜선을 행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예수 때문입니다. 고난에서 승천 이후 영광까지의 과정을 다룹니다. 시작은 십자가입니다. 메시아가 죄들을 위해 단번에 고난당했다 의인이 불의한 자들을 대신한 것이다. 신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18a).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2:24; 모라서 5:1-2).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고난 사역은 이후 진행될 영광스런 승리의 시작입니다. 승리의 첫 모습은 부활입니다(18b). ‘죽임 당함’과 ‘다시 살림 받음’이란 두 분사의 대조로 소개됩니다. 육체에 대해 죽임 당했지만, 성령에 의해 다시 살림 받았습니다(참조, 로마서 8:11). 표면적으로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세상이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면적 진실이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세상과 죽음의 통치가 패배했음과 함께 예수의 삶과 죽음이 옳았음을 선포한 것 합니다.
(2) 옥에 있는 형들에게 승리 선포(19-20)
예수님의 승리 이야기가 계속 진행됩니다. 부활한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옥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부활과 승천 사이의 기간인 듯합니다. 악한 영들은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불순종한 자들입니다.
어려운 신약 구절 중 하나입니다. 구약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습니다. 중간기 문헌 에녹1서 6-11장을 반영합니다. 내용 이해를 위해 두 가지를 짚고 가야 합니다. 첫째, 영들입니다. 홍수로 죽은 사람들이란 견해도 있지만, 에녹 1서 경우처럼 인간 사회를 망가뜨린 타락한 천사들을 지칭하는 듯합니다. 노아 홍수 때 그들도 붙잡아 옥에 가두고 최후 심판 때까지 가두어 두었다고 합니다.
둘째, 선포입니다. 흔히 복음 전파와 관련해 많이 사용하지만, 본문에서는 승리의 선포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악한 천사들에게 부활로 인한 승리를 선포하고 예수가 그들의 심판주임을 보인 것입니다.
(3) 물과 신자들의 세례(20b-21)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살짝 주제를 이탈합니다. 방주와 물을 세례로 연결시켜 신자의 구원을 설명합니다. 방주는 노아가 준비한 것이라는 20a절 표현과 연결된 것입니다. 방주 안에 있던 소수의 사람만 구원 얻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방주가 아니라 ‘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 말한 점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방주에 있었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초점은 물을 통한 심판과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모든 이들은 물 심판으로 죽었지만, 노아를 비롯한 여덟 사람은 그물 심판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입증 받았습니다. 물은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통로입니다. 구원과 멸망이 완전히 갈릴 역사의 마지막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심판을 통해 완전한 죄 사함을 받고(로마서 5:9) 구원 안에 있음을 확인할 것입니다(참조, 4:5).
마지막 심판에서의 구원은 이 땅에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회개와 믿음으로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그 참여의 외적 표현이 세례입니다. 저자는 노아 때의 물을 예수와 함께 하는 세례의 물과 연결시켜 신자의 구원을 묘사합니다(21a). 물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죄와 옛 세상에 대해 죽은 것을 상징하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그의 부활에 참여해 하나님 나라에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참조, 로마서 6:1-14). 이 세례는 또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세례를 단순히 육체의 더러움을 씻는 목욕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맹세라고 부연합니다(21b). 이제는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라는 말입니다. 선한 양심으로 바른 삶을 사는 제사장으로서의 삶입니다.
(4) 메시아의 승천과 만물의 복종(22)
다시 예수에 대해 집중합니다. 승천을 통해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시편 110:1의 성취이며 예수님의 원래 영광을 회복한 것입니다. 당연히 피조물인 천사들과 모든 능력과 권세들이 그에게 복종하며 또 영원히 복종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서 부활과 승천과 영광 회복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몇 가지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첫째, 예수에 대한 진실입니다. 고난으로 죽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부활로 승리하신 만유의 주님입니다. 독자들은 바로 이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둘째, 세상 운명의 진실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커 보여도 언젠가는 그분 앞에 복종해야 합니다. 셋째, 고난에도 불구하고 지지 말고 계속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신자는 그 예수와 함께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산 자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의 핵심은 그분의 고난을 닮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비에 가깝습니다. 고난당할 필요가 없고, 당하지 않아도 괜찮은 예수님이 외 굳이 고난을 당하시었습니까? 그 삶이 왜 승리의 길이고 선한 길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 말과 삶으로 설명한 만큼이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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