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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05-01)


위대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서 5장 1-11절


이 시대는 불확실한 시대입니다. 사람, 조직 그리고 공동체들이 기초가 흔들리고 무너져갑니다. 앞날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존재입니다. 이 불안한 시대에서 누군가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지켜주는 후견인이 대단한 능력자이며 위대한 분이라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탁월한 후견인이십니다. 그분은 능력이 많으시며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내어 주시기까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본문에서 아론 후손의 대제사장보다 예수님께서 위대한 대제사장의 역할한 것을 알립니다. 구약 대제사장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직분은 아닙니다. 아론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선택된 대제사장의 모습(1-4)

예수님 같은 대제사장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받으시고 사람들의 연약함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먼저 구약 대제사장의 자격과 역할에 대해 설명합니다. 대제사장의 위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신 것을 설명합니다.

1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3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 때문에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죄를 씻는 방법인 제사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백성을 대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유대인들은 유다 지파 출신인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제사장이 될 있내고 반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제사장으로 새워졌던 멜기세덱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특별한 임명으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1) 대제사장의 자격(1a)

‘왜냐하면’이라면서 대제사장 예수님과 관련한 결론적 권면의 이유를 제공합니다. 대제사장이 누구인지 왜 예수님께서 큰 제사장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대제사장이 세워지기 위한 자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사람 가운데서’라고 소개합니다(1).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부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하므로 신적인 존재가 아닌 사람만 가능했습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한 신성을 가지고 태어나신 분이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에 대해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장으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해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사람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자격으로 대제사장은 ‘취한 자’로서 택함을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사람 중에서 취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선택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2) 대제사장의 사역(1b)

본문에서 대제사장의 사역을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선택함을 받은 대제사장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예물과 속죄 제사들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가 백성들을 위해 중보를 감당했습니다. 요약하면, 대신 제사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중요한 역할은 1년에 단 한번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모든 백성들의 죄를 놓고 용서를 구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3) 대제사장의 자질(2-3)

대제사장의 자질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대제사장은 일반 사람들과 거룩하게 구별된 일을 하지만, 그들은 일반인과 똑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먼저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2) 대제사장조차도 특별한 능력 있는 존재가 아니라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연약한 사람들을 용납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백성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지만, 자기를 위하여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대제사장’이란 거룩함과 독특함이 있지만, 자신도 일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4:15).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해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선포했습니다(벧전 2:9). 모든 성도는 대제사장입니다. 이제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항상 자신을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속한 사역을 하는지, 아니면 육신에만 매어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리스도(4-6)

지상의 대제사장은 스스로 이 존귀한 신분을 취할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늘의 부르심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불러주신 아론과 그 자손들만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대제사장의 영광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신 이유를 소개합니다.

4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6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4-6)

지금까지는 사람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에 관해 설명했지만, 이제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대제사장의 역할을 잘 감당한 분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부르심을 받은 대제사장(4)

다시 원리적인 측면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존귀는 사람이 스스로 취하거나 아무나 스스로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자라야 그 존귀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이는 첫 대제사장 아론을 세울 때부터 지키던 원리입니다(출애굽기 28:1-3; 29:1). 이런 원리를 무시하고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어 거룩한 직무를 자의대로 수행하려 했던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했습니다(고라, 민수기 16장; 웃시야, 역대하 26장). 왕 같은 대제사장인 성도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2)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5-6)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그 영광을 치하실 충분한 자격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저자는 시편 2:7을 통해 예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소개합니다.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편 2:7)

예수님께서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라고 스스로의 지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시편 2:7은 이제 1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인용되었습니다(1:5).

‘내가 너를 낳았다’는 선언을 통해 그리스도의 아들 되심이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이루어진 일임을 밝힙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으로부터 지명받듯이 그렇게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지명하셨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시편 110:4은 신약성경에서 딱 한 번 인용됩니다.

4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110:4)

시편 110:1은 신약 여러 곳에서 나오는(마태복음 22:44; 마가복음 12:36; 누가복음 20:42-43; 사도행전 2:34-35)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만큼 4절이 히브리서 신학의 독특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서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란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이셨다면 대제사장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과 같은 중보의 역할을 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순 있지만, 사람으로 바뀐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성육신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의 혈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아무나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론의 자손들만이 대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존귀한 직분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때 한 번 나타난 아무 독특하고 신비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를 소개하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창 14:18).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을 만나게 하시고, 축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바친 하나님의 제사장은 일반적인 위치를 초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신적 기원을 같은 멜기세덱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적인 레위지파의 반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레위의 자손들로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과 달리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멜기데섹(히 7:3)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사람을 통해서 세워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온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친히 일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것처럼 귀한 축복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 인간 대제사장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십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완전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죄인들의 연약함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인간 죄를 위해 속죄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대제사장 자신들도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위한 제사를 먼저 들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으로 갈등하는 백성들과 공감하며 도와줄 주 있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이어서 설명하기를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신을 위한 속죄 제사가 필요 없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불완전한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을 능가합니다.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이 돌아올 때마다 죄 사함의 제사를 드려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은 사람이 하지 못하는 탁월한 속죄를 가능하게 하는 증표가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확신하고 기뻐하며 평강 중에 거할 수 있는 까닭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중보자로 자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벨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예수님(7-10)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예수님의 본을 좇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삶에 자신을 드릴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대제사장들과 차이점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의 사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참된 성도답게 살 수 있는 보여 주셨습니다.

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7-10)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대제사장의 영예를 취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랐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겸손에 대한 좀 더 깊은 묵상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스스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영적인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몇 가지 구체적인 행동과 성품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육신 기간 그리스도의 신분과 성품을 특징짓습니다.

(1) 간구하셨던 예수님(7)

예수님께서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능히 구원하실 하나님께 심판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고, 고난을 거절하지 않고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은 육체에 계실 때, 자신을 죽음에서 구원하실 이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오신 예수님께서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성부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대신해 고난 당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2) 순종하신 예수님(8-9)

예수님께서는 고난 중에도 ‘순종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사람들과 자신을 위해 대제사장의 사역을 행하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아들이지만 고난의 터널을 통과합니다. 순종을 배우게 되고 온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고난과 죽으심을 당하심은 인간을 위한 영원한 구원의 근거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모든 자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고난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완전함을 성도들이 본받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비결은 순종입니다. 할 말 다하고 살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끝까지 침묵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말 있어도, 침묵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실 때, 할 말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의 불의한 재판에서도 침묵하신 예수님을 목상해 보시길 바랍니다(마태복음 27:14). 침묵하시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3) 멜기세덱의 반차이신 예수님(10)

6절에서 처음 인용되었던 멜기세덱이 10절에 다시 등장하게 된 단서는 9절의 ‘영원한’ 구원의 모티프입니다. 시편 110:4에서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으로 칭해졌습니다. 영원성은 존재 혹은 기원뿐 아니라 수행한 직무의 결과와도 관련됩니다. 속죄를 통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 그것이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6절의 인용 구절과 10절에서 반복된 표현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제사장’이 ‘대제사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또한 사소해 보이지만 우연이나 실수가 아닌 저자의 분명한 의도를 엿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9절 이하에서 더 명확하게 그려질 대속죄일 제의에서 그 속죄 제의의 담당자는 일반 제사장이 아닌 대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만드신 세상의 빛과 어둠을 다 겪으셔야 했고, 기쁨과 영광만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도 아셔야 했고, 기쁨과 영광만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도 아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온전하게 되셔서 그분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으로 칭함을 받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진심 어린 사랑을 느끼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바로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사람들은 ‘조물주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세상을 내버려둘 수 있느냐?’고 항의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주시요 온전히 장성한 믿음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진리의 말씀에 대한 계속적인 훈련 없이 신앙의 연조만을 자랑하지 맙시다. 우리를 초보적 믿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부단한 진리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경건의 훈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을 향해 분발하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그 사랑을 외면하는 세상을 향해 열정적으로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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