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31-01)
애굽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신 하나님
에스겔 31장 1-18절
작년 '네이쳐'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자신을 꾸미는 데 과도한 열정을 쏟는 종일수록 멸종 위험이 높다고 합니다. 이러한 종들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하여 멸종에 취약합니다. 또한, 교만하게 아름다움을 과시했던 열왕들은 신적 주권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적응으로 인해 몰락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도 교만과 자아 과시가 가져오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결국, 겸손과 적응력이 생존의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합니다.
- 애굽에 대한 다섯 번째 예언입니다. 특이하게도 앗수르의 멸망과 비교해서 애굽의 멸망을 선포하는데 그 이유가 없는지 많습니다. 앗수르 왕 앗수르바니팔은 주전 603년 애굽의 노아몬(테베)을 점령하고 애굽을 포함한 근동의 거의 모든 나라를 굴복시켰습니다. 애굽을 점령했던 앗수르가 멸망했다면, 애굽의 멸망은 차라리 쉬운 일에 속합니다.
도입부(1-2)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하신 일과 하시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권력을 주시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홀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주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강력한 애굽에 대해 멸망을 예고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 생활에 중요합니다.
1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1-2)
애굽에 관한 네 번째 예언이 주어진 지 두 달이 조금 못 미쳐(참조. 30:20) 다섯 번째 예언이 주어집니다. 애굽은 강한 나라였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애굽에 대한 멸망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몇 차례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1) 계시가 주어진 시기(1)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는 주전 587년 6월 21일입니다. 열왕기하 25:2-3에 의하면 시드기야 왕 십일 년 넷째 달 구 일에 예루살렘 성벽이 뚫리기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기 사십 일도 남지 않은 때가 됩니다. 이때쯤은 예루살렘 주민들이 궁지에 몰릴 때로 몰린 상황입니다. 하나님 말고는 의지할 곳이 절대로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완악하기 때문에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려고 안 갓 힘을 씁니다. 유다는 그러한 행동을 했습니다.
(2) 바로에게 주는 말(2)
‘아홉째 해 열째달 열재 날’(주전 588년 1월 15일)부터 시작된 바벨론 군대의 포위 공격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돕기 위해 원정에 나섰던 애굽 군대는 바벨론 군대에 쫓겨 돌아간 이후 다시는 국경을 넘지 못했습니다(참조. 렘 37:5-10). 예루살렘 성의 식량도 바닥이 났기에 애굽이 긴급하게 개입하지 않는다면 성의 함락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사람들의 실낱같은 마지막 소망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이 생각하듯이 애굽의 바로 왕이 대단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한에서만 그러할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목숨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주기로 결정하셨기에, 그는 이제 스울로 내려가야 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앗수르 왕(3-9)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심판이든 번성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이 다 그렀습니다. 믿는 사람이든지, 안 믿는 사람이든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 순종하여 쓰임 받는 자녀가 될 때,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앗수르에게 멸망이 임한다면, 나일강이 준 부요로 인해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 애굽에게도 심판은 임할 것입니다.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5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크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뻗어 나갔고 6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7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10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11내가 여러 나라의 능한 자의 손에 넘겨 줄지라 그가 임의로 대우할 것은 내가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쫓아내었음이라 12여러 나라의 포악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 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 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떠나매 13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주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14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는 키가 크다고 교만하지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가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가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음에 넘겨 주어 사람들 가운데에서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라 15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가 스올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 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이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를 그로 말미암아 쇠잔하게 하였느니라 16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7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스올에 내려 칼에 죽임을 당한 자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나라들 가운데에서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던 자니라(3-17)
당시 강대국이던 애굽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은 먼저 멸망했던 앗수르의 멸망을 통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를 멸망시킨 하나님께서 애굽을 멸망시키신 일은 차라리 쉬운 일이었습니다.
(1) 레바논의 백향목(3-9)
2b-18절이 애굽의 바로 왕과 그의 무리에게 전해야할 말씀입니다. 처음(2b)과 마지막(18)만 바로와 관련되고, 그 사이에 나오는 3-17절은 앗수르 왕을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해서 그의 위대함과 몰락을 회고적으로 노래합니다.
그처럼 위대했던 앗수르 왕도 멸망을 당했는데, 그의 그림자처럼 바로의 운명이 기술됩니다. 물론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 앗수르는 애굽 사람들에게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충격적인 혼적을 남겼습니다. 주전 8세기 중반 이후 서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던 앗수르는 주전 7세기 초중반에는 애굽을 포함한 근동 전 지역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앗수르 왕 에살하돈(Esarhaddon)은 주전 671년에 고왕조 시대 애굽의 왕도였던 멤피스(놉)를, 그의 후계자인 앗수르바니팔(Assurbanipal)은 주전 663년에 제25왕조의 왕도였던 테베(노아몬)를 점령했습니다. 앗수로의 지배가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애굽을 충격에 퍼뜨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애굽을 점령했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역사 경영에 따라 스올로 내려갔다면, 멸망이 결정된 바로에게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앗수르 왕이 고대 근동에서 최고의 나무로 인정받던 레바논 백향목에 비유됩니다. 꼭대기가 구음에 닿을 정도로 키가 크고, 숲의 그늘처럼 거대한 그들을 드리울 정도로 가지들이 무성했습니다(3). 나무가 그처럼 크고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 대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량이 작은 ‘독의 불’에 의존하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레바논 백향목은 직접 땅 아래 있는 ‘깊은 물’에서 흘러나오는 강에서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서 다른 나무들이 시들어갈 때도 무리를 땅속 깊은 물에 내리고 있던 레바논 백향목은 더 크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4-5).
앗수르 왕은 그 위대함에 있어 다른 큰 나라의 왕들과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큰 나무의 가지에 하늘의 새가 보금자리를 틀고, 그 그늘에 들의 짐승이 쉬는 것처럼 많은 민족이 앗수르의 그늘 아래 삶았습니다(6). 그 뿌리가 모든 강과 샘의 근원인 콘물까지 닿았기에 둑의 물에 의존하는 다른 나무들하고는 달랐습니다(7). 심지어 하나님의 동산에서 자라는 백향목들도 그 앞에서는 초라했습니다(8). 잣나무는 그 굵은 가지만도, 단풍나무는 그 가는 가지만도 못했습니다. 에덴의 모든 나무가 그 아름다움을 시샘할 정도였습니다(9b). ‘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9a)는 나무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이 마르지 않는 큰물 덕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속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물에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허락하셔서 그처럼 크고 아름다운 나무가 됐습니다. 압도적인 군사력이 앗수르에 승리와 번성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합니다. 앗수르가 한때 누렸던 영광과 위대함은 하나님의 역사 경륜에 속합니다(참조, 사 10:5-6; 37:26-27).
(2) 교만한 나무의 징벌(10-14)
구름 사이로 높이 솟은 엄청난 키가 나무를 교만하게 만듭니다(10). ‘크고’와 ‘교만하였은즉’은 히브리어(가바호)로는 동일합니다. 나무의 커짐에 비해 해서 으스댐도 커졌습니다. 다른 나무들을 압도하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자신의 한계를 망각했습니다. 나무의 교만이 빠를 초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민족들의 통치자의 손’(여러 나라의 능한 자의 손)에 넘겨 그가 저지른 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교만해진 나무를 쫓아버리셨습니다. 한때 하늘의 모든 새와 들의 모든 짐승을 품었던 나무가 베여 넘어지고, 가지들이 부러져 사망으로 흩어졌습니다(12). 여러 나라의 포악한 다른 민족(참조, 28:7)은 바벨론은 민족을 가리킵니다. 쓰러진 나무 위에는 하늘의 새들이 살고 그 가지에는 들의 모든 짐승이 자리를 잡았습니다(13). 아마도 시신이 매장되지 못하고 날짐승과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표상이 쓰러진 나무에 적용된 것 같습니다. 주전 626년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나 바벨론의 왕이 된 나보폴라살은 메대와 연합하여 주전 612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점령하고 중요한 도성들을 흔적도 없이 파괴해버렸습니다. 구름에 이르기까지 높이 솟았던 나무의 멸망은 마찬가지로 높아지려는 모든 나무에 주는 경고성 교훈입니다(14).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큰 키를 자랑하며 교만에 빠진 나무는 모두 구멍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지하 세계로 내려가야 합니다. 나무들은 레바논 백항목의 처참한 종말에서 가르침을 찾아내야 합니다. 민족들의 흥망성쇠는 역사를 계획하고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에 속합니다. 부와 군사력은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그 힘을 행사할 뿐입니다.
(3) 스올로 내려가는 나무(15-17)
‘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기에(7) 나무가 마르는 일이 없으리라 믿는다면, 이는 헛된 환상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강의 근원인 ‘깊은 바다’를 폐쇄해 버릴 수도 있는 분입니다(15). 그분께서 물의 공급을 끊으시면 아무리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라 할지라도 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올로 내려간 앗수르와 그의 동맹국들의 비참한 운명은 땅의 역사를 결정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16-17).
어느 것이 너와 비길 수 있는가(18)
역사에서 교훈을 어디 못한 그 역사를 반복할 것입니다. 역사는 사람이 아니라,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주인이심을 증명합니다. 앗수르의 운명에서 바로의 운명을 봅니다. 바로는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과 함께 누울 것입니다.
18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18)
2b절의 경우처럼 여호와께서 직접 바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레바논 백향목은 앗수르 왕뿐만 아니라 애굽의 바로도 상징합니다. 앗수르의 운명이 곧 바로의 운명이 됩니다.
바로와 그의 무리가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과 함께 누울 것입니다. 바로를 앗수르 왕에 비교해서 멸망을 선포한 의도는 분명합니다. 바로의 멸망은 아직 미래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불확실한 예언은 아닙니다. 앗수르의 운명을 되돌아본다면, 바로에 관해 선포된 예언의 확실성을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굽을 굴복시켰던 앗수르가 여호와의 심판으로 멸망했다면, 바로를 스올로 내려보내는 것은 차라리 일도 아닙니다. 앗수르를 스올로 내려보내신 분께서 바로의 운명을 결정하셨기에 그에게는 스올로 내려가는 것 외의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교만과 영광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시며, 그들의 멸망을 예고하십니다. 이 비유는 인간의 힘이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상기시킵니다. 교만한 자가 결국엔 멸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겸손과 회개를 통해 회복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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