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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30-01)


애굽의 심판을 경고하신 하나님

에스겔 30장 1-26절


 

애굽의 패망 직전에 여러 가지 '팔'이 등장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팔과 애굽 왕의 바로의 팔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 하나님께서 진정한 힘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강한 팔을 놔두고 갈대 지팡이 같은 애굽의 팔을 의지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팔의 본색을 알고, 어떤 팔에 의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 애굽에 여호와의 날이 선포됩니다. 이날은 애굽의 멍에와 교만을 꺾는 날, 여호와께서 보내신 칼이 애굽과 그의 동맹국들을 치시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고 제물은 약탈당하고 성읍들은 폐허가 되고 땅은 황무지가 되고 주민들은 사로잡혀 끌려갑니다. 민족들 위에 민족들 위에 군림하던 애굽이 여호와의 칼을 손에 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임하는 여호와의 날(1-19)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민족들의 운명과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열강의 각축장처럼 보이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계획에 따라 세상을 경영하시기에 그분께 의존하는 민족은 그분 안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찾을 수 있습니다.

 

1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통곡하며 이르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 하라 3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 4애굽에 칼이 임할 것이라 애굽에서 죽임 당한 자들이 엎드러질 때에 구스에 심한 근심이 있을 것이며 애굽의 무리가 잡혀 가며 그 터가 헐릴 것이요 5구스와 붓과 룻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및 동맹한 땅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칼에 엎드러지리라 6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믹돌에서부터 수에네까지 무리가 그 가운데에서 칼에 엎드러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황폐한 나라들 같이 그들도 황폐할 것이며 사막이 된 성읍들 같이 그 성읍들도 사막이 될 것이라 8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9그 날에 사절들이 내 앞에서 배로 나아가서 염려 없는 구스 사람을 두렵게 하리니 애굽의 재앙의 날과 같이 그들에게도 심한 근심이 있으리라 이것이 오리로다 10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으로 애굽의 무리들을 끊으리니 11그가 여러 나라 가운데에 강포한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그 땅을 멸망시킬 때에 칼을 빼어 애굽을 쳐서 죽임 당한 자로 땅에 가득하게 하리라 12내가 그 모든 강을 마르게 하고 그 땅을 악인의 손에 팔겠으며 타국 사람의 손으로 그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3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 우상들을 없애며 신상들을 놉 가운데에서 부수며 애굽 땅에서 왕이 다시 나지 못하게 하고 그 땅에 두려움이 있게 하리라 14내가 바드로스를 황폐하게 하며 소안에 불을 지르며 노 나라를 심판하며 15내 분노를 애굽의 견고한 성읍 신에 쏟고 또 노 나라의 무리를 끊을 것이라 16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리니 신 나라가 심히 근심할 것이며 노 나라는 찢겨 나누일 것이며 놉 나라가 날로 대적이 있을 것이며 17아웬과 비베셋의 장정들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그 성읍 주민들은 포로가 될 것이라 18내가 애굽의 멍에를 꺾으며 그 교만한 권세를 그 가운데에서 그치게 할 때에 드합느헤스에서는 날이 어둡겠고 그 성읍에는 구름이 덮일 것이며 그 딸들은 포로가 될 것이라 19이같이 내가 애굽을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1-19)

 

7장에서 이스라엘에 선포된 여호와의 날이 이번에는 애굽에 선포됩니다. 이스라엘에 분노를 쏟으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갈대 지팡이 애굽을 칼로 치십니다.

 

(1) 임박한 여호와의 날(1-9)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기에 애굽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슬프다 이 날이여’하고 울부짖는 것뿐입니다(2).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께서 친히 땅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날로, 애굽이 멸망의 심판에 넘겨집니다. 현 문맥에서 3절의 ‘구름’은 어둠과 동의어로 재앙을 상징합니다. ‘여러 나라들의 때’는 나라들이 심판에 넘겨지는 때입니다. 여호와의 날의 파국적 재앙이 구체적으로 기술됩니다. ‘애굽에 칼이 (쳐들어)오리라. 애굽에서 살해당한 자들이 쓰러지고 재물이 약탈당하고 그 기초가 허물어질 때 구스에 심한 근심이 있으리라’(4절의 사역). 애굽이 침략군에 의해 너무 처참하게 짓밟히기에 그 남쪽에 있는 구스가 전율에 사로잡힙니다. 애굽에 쳐들어오는 ‘칼’은 10-11절에 의하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군대를 가리킵니다. ‘터’는 일차적으로는 건물의 기초를 의미하고, 비유적으로는 애굽의 버팀목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침략군의 파괴 행위로 재건이 불가능하게 건물의 기초마저 허물어지고, 애굽이 자랑하던 용병들로 구성된 군사력이 완전히 붕괴됩니다. ‘구스와 붓과 룻과 모는 섞인 백성과 굽과 및 동맹한 땅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과 함께 칼에 맞아 쓰러집니다(5). 구스와 붓과 룻의 백성이 조약의 의무에 따라 파견된 동맹군인지 그 나라 출신의 용병들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뒤따르는 세 집단이 용병들이기에 나란히 등장하는 여섯 집단 모두를 같은 부류로 간주하는 것이 문맥에 더 일치합니다. 애굽은 일찍부터 이방 사람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군대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했습니다. 애굽 남쪽의 나일 강 상류의 넓은 지역(오늘의 에티오피아와 수단과 소말리아)에 자리 잡은 구스는 오래전부터 애굽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에스겔 27:10을 제외하고 언제나 구스와 함께 나오는 붓은 보통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지역에서 찾습니다. 이 세 나라는 같은 순서로 예레미야 46:9에 바벨론과 싸우기 위해 갈그미스로 올라가는 애굽 원정군의 일원으로 나옵니다. 굽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름입니다. ‘섞인 백성’은 애굽에 정착한 이 민족들에서 차출한 용병을, ‘동맹한 땅의 백성들’은 문자적으로는 ‘언약의 땅의 아들들’로 유다 출신의 용병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침략군의 공세 앞에 애굽의 엘리트 군대마저 궤멸 당하고 믹돌에서 수에네까지(29:10) 사람들이 모두 칼에 맞아 쓰러집니다(6). 여호와의 칼이 치기에 멸망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는 5절의 용병들을 가리킵니다. 18절에도 나오는 ‘교만한 권세’는 문자적으로는 ‘힘의 자랑’(자랑스러운 힘)으로, 24:21(‘너희 세력의 영광’)에서는 여호와께서 더럽히시는 그분의 성전에, 33:28(‘그 권능의 교만’)에서는 황무지가 된 이스라엘 땅에 적용됩니다. 여호와의 징벌로 이스라엘의 영화가 끝장나듯이 (참조. 레위기 26:19) 애굽의 영화도 땅바닥에 떨어집니다.

7절은 29:12a을 받아 애굽의 황폐함을 기술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부유했던 애굽이 황폐한 나라들같이 황폐하게 되고, 그 성읍들은 폐허가 된 성읍들같이 됩니다. 칼의 심판으로 기술된 여호와의 날이 여호와에 의한 불의 심판으로 선포됩니다(8). 여호와께서 애굽에 불을 지르시고 모든 돕는 자들을 멸하십니다. 나일 강의 뱃길을 통해 애굽의 멸망 소식이 구스에도 전해집니다. 애굽이 여호와께서 보낸 칼과 불로 황폐해졌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나일 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을 통해 전해들은 구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9). ‘이것이 오리라’는 의에 따르면 ‘보아라, 실로 이것은 오고 있다’로, 애굽의 심판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심판의 도구 느부갓네살(10-12)

 

애굽에 쳐들어오는 칼이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 군대의 손으로 애굽의 무리를 없애버리십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가장 잔혹한 민족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고 와서 칼로 애굽을 처서 시체로 땅을 가득 채우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29:3)고 주장하는 바로에게 누가 나일 강의 주인인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분께서 애굽의 젖줄인 나일 강을 말리시고 그 땅을 침략자들에게 넘기십니다. ‘악인의 손에 팔겠으며’는 여호와의 절대 주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바벨론의 애굽 침략은 여호와께서 애굽을 바벨론의 손에 팔아버리신 결과에 불과합니다(참조. 29:18-20). 느부갓네살에 의한 애굽의 심판은 다른 한편으로는 애굽에 의존하는 유다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유다는 애굽에서 구원자를 찾는 어리석음에서 떠나야 합니다.

 

(3) 전면적인 심판(13-19)

 

심판 받을 애굽 성읍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 황폐하게 할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12)의 구체적 예시가 됩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의 남과 북에 있는 성읍들을 분노와 불로 치십니다.

놉(Memphis)은 카이로 남쪽의 주요 성읍이고, 바드로스(Pathros)는 애굽의 남부 지방을 가리키고, 소안(Zoan)은 나일 삼각주에 있던 성읍이었습니다. 노(Thebes)는 상 애굽에 있던 성읍으로 아몬 신을 섬겼고, 애굽어로 요새를 뜻하는 신(Pelusium)은 애굽의 북동쪽 경계에 있던 방어용 성읍이었습니다. 온(On; Heliopolis)은 카이로 북쪽 나일 삼각주의 분기점에, 비베셋(Pi-beseth)은 보다 북쪽에, 드합느헤스(다바네스)는 나일 삼각주 동쪽 연안에 있었습니다. 16절의 ‘노나라는 찢겨 나누일 것이며’는 ‘노는 쪼개질 것이며’로, 적이 노(테베)의 성벽을 부수고 성안으로 진입한다는 의미입니다. 18절의 ‘애굽의 멍에’는 애굽이 봉신국에 지운 멍에로 여기서는 뒤따르는 ‘교만한 권세’처럼 애굽의 통치권을 가리키고, 날의 어두워짐과 구름에 덮임은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 재앙을 상징합니다.

 

바로의 꺾인 팔(20-26)

세상 권력은 보이는 것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을 홀로 살아가야 한다면 약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겠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친구를 찾는다면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분이 우리의 친구라면, 세상은 우리에게 더 이상 위협적일 수 없습니다.

 

20열한째 해 첫째 달 일곱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1인자야 내가 애굽의 바로 왕의 팔을 꺾었더니 칼을 잡을 힘이 있도록 그것을 아주 싸매지도 못하였고 약을 붙여 싸매지도 못하였느니라 22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애굽의 바로 왕을 대적하여 그 두 팔 곧 성한 팔과 이미 꺾인 팔을 꺾어서 칼이 그 손에서 떨어지게 하고 23애굽 사람을 뭇 나라 가운데로 흩으며 뭇 백성 가운데로 헤칠지라 24내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고 내 칼을 그 손에 넘겨 주려니와 내가 바로의 팔을 꺾으리니 그가 바벨론 왕 앞에서 고통하기를 죽게 상한 자의 고통하듯 하리라 25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주고 바로의 팔은 내려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고 그를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26내가 애굽 사람을 나라들 가운데로 흩으며 백성들 가운데로 헤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20-26)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군대와 왕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이 구절에서는 애굽의 힘이 약해지고 그 땅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과 구원을 경험할 것임을 강조하시며, 그들을 통한 구원의 계획을 드러내십니다. 이로써 애굽의 패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이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바로의 부러진 팔(20-21)

 

‘열한째 해 첫째 달 일곱째 날’은 주전 587년 4월 29일로,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함락당하기 3개월 전쯤입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 주어진 말씀입니다. 유다가 도움을 학수고대하는 바로의 처지는 유다만큼이나 절망적입니다.

 

(2) 바로를 대적하시는 여호와(22-23)

 

여호와께서 직접 바로의 두 팔을 꺾어 칼을 잡을 수 없게 만드십니다(21-22). 여호와께서 치셨기에 도와줄 자를 구하지 못합니다. 애굽은 전쟁에서 패하고, 백성은 목숨을 구하려고 주변 나라들로 흩어집니다(23). 유다의 살대 지팡이 역할을 하던 애굽이 유다와 동일한 운영에 떨어집니다. 전쟁의 패배를 시사해주는 22절의 ‘꺾인 팔’이 주전 605년 갈그미스의 참패와(렘 46:2), 또는 주전 601년 애굽 국경에서 벌어진 바벨론과의 전쟁과, 또는 주전 588년 예루살렘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바벨론 군대에 격퇴당한 호브라의 원정과(렘 37:5-11) 관련한 언급인지는 불분명합니다.

 

(3) 바벨론 왕을 강하게 하시는 여호와(24-26)

 

바로의 두 팔을 부러뜨려 칼을 들지 못하게 하시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의 팔을 강하게 해주시고 그의 손에 당신 칼을 쥐어주십니다(24-25; 참조, 21:8-21). 애굽과 바벨론의 싸움은 겉으로는 패권을 장악하려는 강대국 간의 다툼이지만, 실제로는 여호와의 결정이 땅 위에서 성취돼가는 과정입니다. 애굽과 바벨론은 역사 무대의 종속 변수에 불과할 뿐입니다. 애굽의 패배와 바벨론의 승리를 보고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임을 인정하게 됩니다(26).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대한 심판을 통해 자신의 주권을 드러내십니다. 이 심판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위한 계획의 일환입니다. 애굽의 패망은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로,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회개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신실한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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