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1-03)
종말의 징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누가복음 21장 20-28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고난은 삶의 일부분이며, 이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도자이자 보호자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은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며,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21:20-28은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멸망과 역사의 끝에 일어날 징조와 인자의 오심을 설명합니다. 20-24절은 예수님의 승천과 예루살렘의 멸망 사이에 일어날 일을 다룹니다. 예루살렘 도성과 거주민들에게 닥칠 비극을 서술합니다. 25-28절은 역사의 끝에 일어날 징조를 구체화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곳 거주민들이 1세기에 경험한 사건이라면, 인자의 오심은 지상의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될 종말의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의 운명(20-24)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고난은 삶의 일부분이며, 이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도자이자 보호자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은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며,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0○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2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3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20-24)
본문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20)라고 예루살렘 전체의 멸망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루살렘은 포위될 것이며, 이는 예루살렘을 보고 예수님께서 우신 장면(19:41-44)에 사용된 언어와 같이 구약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묘사한 내용을 떠올립니다(사 29:3; 렘 34:1; 44:6,22). 예수님께서는 21-22절에서 예루살렘 멸망의 상황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예고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일어날 끔찍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예루살렘 도성 안에 있는 자들은 즉시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밖에 있는 자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21절은 예루살렘 도성을 탈출하도록 세 번에 걸쳐서 명령합니다. 이런 현상은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예루살렘 포위 장면과도 유사하고, 탈출의 언어도 예레미야 51:45에 근거합니다. 유대 전쟁에 대한 기록을 고려하면,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황제 네로가 죽는 사건이 일어나 전쟁이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든 적이 있기 때문에(유대전쟁사 4:497-98, 501-76), 전쟁이 중단된다고 생각하고 도성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22절은 예루살렘 멸망을 눈앞에 둔 비극의 순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에 임할 비극은 하나님의 보복에 의한 징벌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방문의 날’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보복의 날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록된 모든 것”(22)은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와 예언을 가리킵니다(레 26:14-17; 신 28:15-68; 30:17-18; 왕상 9:6-9; 렘 26:16; 미 3:12). 선지자들은 오만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했으며(사 3:25; 37:3; 렘 4:7; 7:34; 20:46;겔 39:23; 슥 12:3), 예수님 역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거부한 예루살렘이 맞이할 비극적인 운명을 탄식하셨습니다(눅 13:34). 분명히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23-24절은 “그 날에”, 즉 22절의 ‘보복의 날들’에 예루살렘이 맞이할 비극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줍니다. 헬라어 문장을 시작하는 ‘화로다!’는 비극을 극대화하고 6:24-26의 용례를 반복합니다(11:42,43,44,46,52; 17:1). 임신한 여자들과 함께 젖먹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여자들은 도피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발각되기 쉽고 갓난아이를 안고 도피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생명을 지켜줄 수 없는 어머니의 비통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고통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땅”(23)은 세상 전체가 아니라 유대 지역을 지칭합니다. 하나님의 보복이 “이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것은 충격이고 비극입니다.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의 진노라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의 칼날에 쓰러지고 잡혀가는 예고로 강화됩니다(24). 그런데 이방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짓밟히는 기간은 이방인들의 시간이 성취되기까지입니다. 이방인들의 시간은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목적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일시적 기간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때 이후에는 조명이 다시 예루살렘을 비출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이 초토화되고 시온이 이방인들에 의해 모욕당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확장되는 섭리가 실현됩니다(눅 24:47; 행 1:8; 참고. 28:28).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포함되는 것을 보여주는 본문인 24:47은 모든 민족에게 죄 사함을 위한 회개를 전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사도행전의 핵심 주제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것이므로(참조. 롬 11:11-32) 누가행전에서 “이방인의 때”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의 시간입니다(행 28:25-28). 이런 점에서 이방인들의 시간은 교회의 시대와 같은 의미이며(행 28:28),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막 13:10)라는 마가복음의 증언과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온 땅에 나타날 징조와 인자의 오심(25-28)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시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지탱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결국,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25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25-28)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고 나서 곧이어 종말이 임박했음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재앙은 예루살렘과 유대에 국한되지 않고 우주적 범위로 확장됩니다(25-26). 사람들은 땅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고통하고 두려워하고 혼절하며(25b/26), 하늘에서는 우주적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25a/26b). 천체가 흔들리는 것은 인자가 하늘에서 올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25a/26b). 해와 달과 별들은 고대에 알려진 세 가지 천체입니다. 26b절에서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모습은 이사야 34:4, 학개 2:6의 인유입니다. “하늘의 만상”(사 34:4)은 ‘천군’을 가리킵니다. 인자가 오기 전에 하늘에 거하는 보이지 않는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이런 징조들 때문에 땅의 사람들이 두려워할 것입니다(25b/26a). 역사의 끝에 사람들은 큰 능력과 영광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를 볼 것입니다(2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영광에 들어가 계시고(24:26) 권능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22:69).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인자로 고난을 받음으로써 낮아진 모습을 보였으나, 부활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 권능과 영광의 인자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인자의 초림(5:24; 9:26)과 재림의 차이는 권능과 영광입니다. 인자의 오심을 사람들이 보는 개념은 스가랴 12:10(참조. 계 1:7; 요 19:37)에 나오며, 다니엘 7:13에서는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를 보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3인칭 복수형인 ‘보다’의 주어는 사람들 전체를 지칭합니다. 즉 인자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등장할 것입니다. 인자는 사람들을 향해 오실 것입니다. 인자의 오심을 예고하는 피조 세계의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제자들은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의 “이런 일들”(직역하면 ‘이것들’)은 피조세계 전체에 일어날 징조들(25-26)과 인자의 오심(27)을 가리킵니다. ‘너희의 머리’의 ‘너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가리키고, 26절의 “사람들”과 대조됩니다. 인자의 오심은 사람들에 대한 심판과 구속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징조가 나타나면 공포에 질릴 것이지만(26) 신자들은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머리를 드는 동작은 하나님의 개입에 의해 절망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과 감격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인자와 관련된 징조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두려움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기대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에 참여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의 붕괴와 인자의 오심은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나는 다른 사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인자가 오기 전의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인자가 오는 징조는 아닙니다. 초기 교회는 인자의 오심을 미래에 일어날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개입으로 이해했습니다. AD 70년의 성전 파괴가 구속이 가까운 것을 알리는 희망의 계기가 될 수도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될 때 도망하라는 명령이 문자적, 실제적 의미를 담고 있듯이 인자의 오심도 실제 현상입니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의 성전)의 붕괴와 인자의 오심은 다른 사건이고, 두 사건 간에는 시간의 간격이 존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속량, 즉 해방이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마지막 때에 예고된 고통에서 구출되는 ‘해방’에 가까운 의미입니다. 인자의 재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방을 선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깝다’를 현재형으로 사용함으로써 인자가 오는 시간의 임박성을 강조합니다. 사실상 피조 세계에 일어날 마지막 징조와 인자의 오심 사이의 간격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윤리를 높인 도구는 경고였고, 경고의 근거는 인자의 오심(재림)이었습니다. 늦게 오거나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긴장을 풀고 사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신자는 인자의 재림을 확신하고, 그 날이 소망의 날인 것을 믿으며, 주를 위해 인내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맞닥뜨리는 불안과 시련은 우리를 시험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준비와 믿음은 우리가 직면할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평안을 유지하는 힘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핵심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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