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에스라(04-01)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방해와 응전

에스라 4장 1-10절


 

사역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는 이들은 종교적 사역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며, 특정 이데올로기를 가진 집단은 신앙 기반의 활동을 위협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내부의 갈등이나 분열로 인해 사역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이나 부정의에 맞서는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세력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역은 하나님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계속해서 모색해야 합니다.

 

  • 귀환민들은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적들의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치게 됩니다. 대적들은 성전 건축에 자신들도 함께 동참할 것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합니다. 그 후 그들은 협박과 페르시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방식으로 성전 건축을 제지하려 합니다.

 

대적의 제안을 거절한 스룹바벨(1-3)

주변의 압력이나 제안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부의 도움이나 제안이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목표와 가치에 맞지 않는다면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신념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성취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1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1-3)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인 공동체는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귀환민들은 성전을 삶의 구심점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본문은 귀환민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대적들의 반대가 있었음을 밝합니다. 본문은 대적들의 반대에 아하수에로(주전 485-465년)와 아닥사스다 왕(주전 464-424년) 때 있었던 성벽 재건에 대한 방해를 포함시킵니다(6-10). 이 사건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활동하던 시대(고레스-다리오 왕 때)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본문이 연대기적 순서가 아닌 신학적인 주제에 따라 성전 재건의 역사를 돌아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1-10절은 귀환 후 성전 중심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의 중요성과 이 일에 따르는 대적들의 집요한 반대를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문학적으로 성전과 성벽 재건의 업적을 부각시키고, 9장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이방 민족과의 구별이라는 주제를 준비하는 기능을 합니다.

 

(1) 대적들의 제안(1-2)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브네 하골라)이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의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은 회복된 성전을 중심으로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반면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은 당시 유대인들과 갈등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하여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을 ’대적‘이라 부르는 것은 후에 이들이 성전 건축을 반대하고 귀환 공동체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은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자신들도 성전 건축에 동참할 것을 제안합니다(2). 그러면서 그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 시대(주전 681-669년)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2b). 실제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타국인들을 그 땅으로 이주시킨 앗수르 왕은 에살핫돈이 아니라 사르곤 2세(주전 722-705년)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앗수르의 이주 정책은 얼마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적들은 자신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성전 건축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열왕기서에 의하면(왕하 17:29,32-34,41), 그들의 신앙은 여호와와 다른 민족들의 신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대적들의 제안은 귀환 공동체가 당면한 신앙의 순수성에 대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2)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거절(3)

 

대적들의 제안에 대해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족장들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지도자들이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표면상으로는 고레스 칙령 때문이었습니다(3b). 하지만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 실제적인 이유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후 사마리아 지역에 전개된 역사적인 상황과 관련됩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정책은 피정복민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민족적인 동질성을 와해시킴으로 정복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반란의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 것입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과 수도 사마리아는 인종적으로뿐 아니라 종교적으로 혼합된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종교적 순수성을 추구하는 귀환 공동체의 입장에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에 대한 그들의 참여제안은 이런 이유로 거절되었습니다. 귀환 공동체는 비록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정체성이 분명한 공동체로 남기를 결단한 것입니다.

 

대적들의 집요한 반대(4-10)

우리가 마주하는 도전은 신념이나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에 맞서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외부의 압력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주변의 지지나 협력이 없을 때 목표를 이루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공동체의 힘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함께 힘을 모아야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4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9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4-10)

 

본문에서는 유다 백성이 성전 건축을 재개하려 하자, 주변 민족들이 그들의 일을 방해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유다 백성에게 간섭하며, 그들의 사역을 중단시키기 위해 왕에게 고소합니다. 결국, 이들은 유다 백성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게 됩니다.

 

(1) 그 땅 백성들의 반대(4-5)

 

성전 건축의 제안을 거절당한 대적들(‘그 땅 백성’)은 이제 유다 사람들을 위협합니다(4,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은 이제 ‘그 땅 백성’으로 소개됩니다. ‘그 땅 백성’(암 하아레츠)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고 계속해서 그 땅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함께 일컫는 표현입니다(스 10:2,11: 비교 느 9:24; 10:30-31). 그런 면에서 사마리아인들도 ‘그 땅 백성’에 포함됩니다. ‘유다 백성’은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합니다. 당시 유다 자손이 귀환민들의 다수를 차지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의 방해 공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4,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손을 약하게 하는’ 것(라파)은 불안감을 불어넣어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낙담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참조, 삼하 4:1; 사 13:7; 렘 6:24). 둘째, 페르시아 관리들을 뇌물로 매수하려는 시도입니다(5). 결국 그들의 방해 공작으로 성전 건축은 다리오 왕 때까지 중단됩니다(5). 대적들의 방해는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본문은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라는 표현을 통해 이들의 방해가 한시적이었음을 암시합니다.

 

(2) 아하수에로 왕 때의 대적들(6)

 

대적들의 방해 공작은 고레스 통치 이후에도 지속됩니다. 6-10절은 시기적으로 후대에 있었던 별도의 방해 공작을 보도하지만, 대적들의 반대라는 주제로 앞 단락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함에 있어 대적들의 반대가 귀환 공동체의 출발 이후 100여 년 이상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아하수에로(Xerxes 1세, 주전 486-464년) 왕의 즉위 시에 있었던 대적들의 협박입니다. 대적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합니다.

 

(3) 아닥사스다 왕 때의 대적들(7-10)

 

대적들의 참소는 아닥사스다 왕 때도 이어집니다(7-8). 아닥사스다의 통치 연대(주전 464-424년)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던 시기와 같습니다(참조. 스 7-10장).

 

비슬람, 미드르닷,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유다인들을 고발하였습니다(7). 그 글은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인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7b) 8절부터의 내용은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대적들의 참소를 보도합니다. 이 부분은 아람어로 기록된 편지의 원문으로 보입니다. 대적들의 고소는 16절까지 계속됩니다. 고소의 주동자는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로 소개됩니다(8), 르훔은 사마리아의 고위직 관료였던 것으로 보이고, 심새는 공문서를 작성하는 관리였던 것 같습니다. 이들과 더불어 페르시아의 관료들과 지주민들의 이름이 열거됩니다(디나 사람, 아바삿 사람, 다블래 사람, 아바새 사람, 아렉 사람, 바벨론 사람, 수산 사람, 데해 사람, 엘람 사람). 이들 가운데는 오스납발(앗수르바니팔, 주전 668-627년) 왕이 사마리아 지역에 정착시켰던 외국인들의 후손도 있었습니다(10). 본문은 상소한 자들을 총 열 그룹/민족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적들의 방해 공작이 위협적이고 대대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귀환민들이 함께 참여하고자 하는 대적들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정체성을 지키고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회복된 공동체는 외부 사람들과의 경계를 분명히 할 필요성에 근거하여 그들과 인종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혼합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귀환민들의 목표는 여호와 신앙에 기초한 순수한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의 압력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변의 제안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의 목표와 가치에 맞지 않는다면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힘과 협력이 필요하지만, 그 협력이 진정한 목적과 일치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인내와 지혜를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짐을 경험할 것입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