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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16-03)


영원히 지킬 큰 안식일

레위기 16장 23-34절


 

속죄일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날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본문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죄를 인식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분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 시간, 속죄일의 깊은 의미를 살펴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우리 삶에서 진정한 회복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속죄일에 가장 중요한 속죄제 의식과 아사셀 염소 의식으로 구성된 특수 속죄제를 마무리한 후, 대제사장은 세마포 하얀 옷을 벗고 자신의 정규 대제사장 복장을 다시 입습니다. 이것은 속죄제 의식과 아사셀 염소 의식이 한 묶음의 제사였음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는 대제사장 복장을 입고 자신의 가족과 백성을 위한 두 개의 번제를 드립니다.

 

속죄일의 번제 의식(23-28)

흠 없고 온전하신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완벽한 제사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다른 희생 제사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아론이 회막에서 제사 직분을 감당할 때는 지성소에서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습니다. 제사장의 옷인 에봇으로 갈아입고 하나님께 번제와 속죄 제사를 드립니다.

 

23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24거룩한 곳에서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25속죄 제물의 기름을 제단에서 불사를 것이요(23-25)

 

대제사장 아론은 이제 회막 안에서 세마포 옷을 벗고 마당으로 나와 ‘거룩한 곳’에서 목욕을 한 다음 다시 자신의 평상복, 즉 대제사장 관복을 입습니다. 이곳이 성막 경내의 어느 곳인지, 별개의 시설물이 존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떡상과 등대, 향단이 놓인 매우 엄숙한 본당 건물 안에서 알몸으로 목욕을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소는 마당에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목욕 후 다시 본당으로 들어와 대제사장 복장을 입었을 것입니다. 이때 본당에서 마당으로 알몸으로 왕래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아마 커튼으로 가리며 나갔거나 별도의 목욕용 속옷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옷을 갈아입은 아론은 이제 자신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 즉 두 번제를 연거푸 드립니다. 그리고 속죄 제물의 기름을 그 번제물 위에 올려 태웁니다. 여기서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두 번제를 드리자 백성을 다시 속죄했다고 진술되는 것이고, 또한 속죄제의 기름이 이제야 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번제가 만든 속죄는 또 무엇입니까? 앞서 속죄제와 아사셀 염소 의식으로 성취한 속죄와 별개의 것입니까? 별도의 속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번제를 통해 속죄가 만들어졌다는 의미는 앞서 이미 성취된 속죄의 인준, 혹은 비준의 진술로 보아야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이 번제는 일차적으로 이루어진 속죄에 대한 감사의 성격이 있었먼 것으로 보입니다(예, 12장과 14장에서도 속죄제로 부정결의 문제가 최종 해결된 다음 번제가 드려진다). 분명히 백성의 속죄는 본질적으로 속죄제와 아사셀 염소 의식을 통해 만들어지나, 속죄일 전체의 예식 중 하나라도 누락되면 속죄는 달성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측면에서 이 두 개의 번제 또한 속죄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번제가 드려지고 난 다음 속죄제 기름이 비로소 태워집니다. 원래 모든 제물들이 번제물이 아침저녁으로 계속 타고 있는 제단 위에서 태워지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속죄일에도 매일의 상번제는 아침에 이미 드렸던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그 위에다 소와 염소의 속죄 제물의 태울 부분을 올려서 태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마지막 두 개의 번제가 드려진 뒤에 최종적으로 미루어 놓은 소와 염소의 속죄 제물 기름 태우기가 진행됩니다. 이것은 여러 짐승으로 구성된 거대한 속죄일 예식의 단일한 통합성을 엿보게 합니다.

 

우리가 앞서 관찰한 바는 이것입니다: 두 마리의 염소가 한 속죄제를 구성하고, 또한 그중 속죄제 염소는 속죄제 소와 피가 혼합됨으로써 묶이고,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이 세마포 옷을 입고 두 속죄제와 아사셀 염소의식을 진행하는 것을 볼 때, 결국 소와 두 염소가 모두 결합되어 하나의 속죄제를 구성합니다. 이제 대제사장 옷을 입고 진행하는 번제는 명백히 별개의 제사인데, 이 번제도 속죄제 기름을 나중에 태움으로써 양자가 결합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속죄일 예식의 마무리 의식(26-28)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이나 갈등을 겪은 후에도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예식에서 아사셀 염소를 통해 모든 죄를 광야로 보내는 과정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26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며 27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다가 불사를 것이요 28불사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지니라(26-28)

 

번제를 마친 후 최종적으로 남아 있는 의식은 이제 모든 제사들을 뒷정리하는 마무리 의식입니다. 먼저 아사셀 염소를 보낸 사람이 진영으로 복귀합니다. 이때 그는 옷을 빨고 목욕을 해야 합니다. 이어서 두 속죄제 짐승, 곧 소와 염소의 잔존물을 밖에 내다 불사른 사람이 들어옵니다. 그 사람 역시 동일한 정결 절차를 밟습니다. 여기서 또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복귀 의례의 순서입니다. 만일 두 개의 정결 절차의 순서가 시간 순서대로라면, 흥미롭게도 복귀 의례의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아사셀 염소 의식이 두 속죄제보다 나중에 진행되었는데, 복귀의례는 먼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두 속죄제 의식의 마무리 순서로 고기를 태운 사람이 복귀의례를 거칩니다. 즉, 속죄제 의식의 마무리 절차와 더불어 모든 속죄일 예식이 종결됩니다. 이것은 두 속죄제와 아사셀 염소 의식이 결합되었다는 또 하나의 통합성의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속죄제의 마무리 절차와 더불어 속죄일 예전이 끝난다는 것은 속죄일 예전이 속죄제로 마무리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결국, 이로써 3절에서 속죄 제물을 가져온다는 지침으로 시작된 속죄일 예식은 마지막의 속죄제의 마무리 의식과 더불어 끝나는 가운데, 지정 의례, 두 속죄제, 아사셀 염소 의식, 두 번제, 그리고 마지막의 마무리 의식들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단위의 예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월력의 지정과 추가적 지침(29-34)

속죄일은 죄를 인식하고 회개하는 날입니다. 이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상기시킵니다. 개인적인 성찰과 회개는 정신적, 영적 건강에 중요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치유 과정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결국 속죄일의 의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29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달 십 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30이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31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32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자기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옷 곧 거룩한 옷을 입고 33지성소를 속죄하며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34이는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에 한 번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29-34)

 

속죄일의 날짜와 이날을 위한 대제사장의 자격과 백성의 준비를 법제화합니다. 그날은 일곱째 달(Tishri) 10일이며, 그날 백성들에게 ‘자기 부인’(self-denial)과 ‘안식’이 요구됩니다(29-31).

이어서 그날 예식을 진행할 대제사장은 아버지의 후계자로 기름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한다고 명시됩니다(32-33). 속죄일 준수의 의무는 이스라엘 본토인들만이 아니라 장기 체류하는 이방인들, 현대의 방식으로 하자면 영주권을 가진 사람들도 해당됩니다.

성경에서의 의미론적 범위와 랍비들의 정의에 의하면, ‘자기부인’(29,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에는 금식, 땅 위에서 자기, 옷을 갈아입지 않기, 성관계 절제, 목욕 금지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금욕 행위들은 백성들의 죄 고백과 참회가 역시 동반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자기 부인은 속죄일의 속죄 효력을 위해 필수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속죄일 예식은 무효할 것입니다. 율법은 그 정신은 버리고 빈껍데기를 지킨다고 효력이 발생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0,33-34절에서 속죄일의 목적이 반복적으로 진술됩니다: 성소의 속죄(정화)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 특히 34절은 마지막 결론적 진술로서, 그날의 최종 목적을 선언합니다: 이 규례는 속죄일에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에 한 번 전면적 속죄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아사셀 염소는 속죄제의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이날 특수한 속죄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두 짐승(소와 염소)이 희생되어 그 피는 제사장 집안과 백성들 양자가 발생시킨 성소 각 영역의 오염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모든 죄는 아사셀 염소가 담당하여 광야로 운반해서 제거했습니다. 평일의 속죄제에서는 속죄제 짐승 한 마리가 이 두 역할을 모두 감당했습니다. 그 짐승에게 죄가 전가되었고, 이어서 그 피가 성소에 들어가 오염을 닦아내, 그 짐승에게 제사자의 죄와 성소의 오염이 모두 묻었습니다.

그 짐승의 고기를 오염이 심한 것은 진영 밖에 태웠고, 경미한 오염은 먹을 만하여 제사장의 수고비로 건넸습니다. 그러나 속죄일에는 이 역할이 도살된 속죄제 짐승들과 살아있는 아사셀 염소에게로 양분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속죄일에 아사셀 염소도 속죄제의 일부로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견해의 문제는 살아있는 채 아사셀에게로 보내지는 염소가 엄밀한 의미에서 희생물로 분류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희생은 도살과 피 뿌림, 그리고 고기 처분의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로 그것은 '속죄제' 희생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1) 기능적 측면에서 그 산 염소는 이스라엘의 속죄를 위해 사용됩니다; (2) 또한 그것은 회중이 골라온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3) 그것을 성소로 가져와 여호와 앞에 세워놓아야 합니다; (4) 더불어 그것은 다른 염소와 함께 짝을 이루어 ‘속죄제’로 지정됩니다(5); (5) 다른 희생 짐승들처럼 안수가 시행됩니다(21); (6) 속죄제 짐승처럼 아사셀 염소도 최종적으로 광야에서의 죽음을 내다봅니다. 마지막으로 속죄일에 처리된 죄는 무엇입니까? 평일에 속죄제/속건제로 죄가 처리되어 왔다면, 이 죄는 무엇입니까? 평일에 백성들의 비고의적 죄와 신체적 부정결은 일반 속죄제를 통해 해결되었으므로, 이미 해결된 그 죄와 부정결들은 해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레위기의 속죄제 시스템 속에서, 속죄일까지 누적된 죄들은 평일에 용서받지 못한 악행이나 망각해서 깨닫지 못해 해결되지 않은 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속죄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이 의식은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정리하고, 그것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경험해야 합니다. 또한, 아사셀 염소를 통한 죄의 전가는 우리의 책임을 일깨워줍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진정한 치유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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