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16-02)
속죄 제사가 필요한 인간
레위기 16장 11-22절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대제사장이며 궁극적인 희생제물입니다. 그는 지상의 대제사장과는 달리 완벽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완벽함 덕분에 자신을 위해 희생제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희생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의 죽음은 모든 인류의 죄를 씻는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는 신과 인류를 연결하는 중재자입니다. 그의 희생은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길입니다.
- 속죄일 예전을 위한 모든 제물이 준비되어 역할이 결정된 뒤, 아론은 먼저 두 번의 속죄제를 실행합니다. 하나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소의 속죄제이고, 다른 하나는 회중을 위한 염소의 속죄제입니다. 두 짐승의 피가 각각 지성소와 내성소에 반입되어 각 기물과 공간을 씻기 위해 뿌려지고, 마지막에 두 피가 혼합되어 마당의 번제단에서 뿌려집니다. 이어서 대제사장 아론은 아사셀 염소 의식을 진행합니다.
속죄일의 속죄제 의식(11-19)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죄를 지을 수 없으며,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거부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고백을 통해 활동하는 삶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와 우리의 모든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마리아의 힘은 우리가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변화와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11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12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13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14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15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16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17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18그는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19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11-19)
본문에서는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위해 자신의 죄를 위한 희생양을 드리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그는 그 양의 피를 성소에 뿌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또 다른 염소는 ‘아사셀 염소’로 보내져 백성의 죄를 상징적으로 짊어집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수행합니다.
(1) 아론과 그의 가족을 위한 속죄제(11-14)
대제사장 아론은 먼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속죄를 위해 속죄제 수소를 잡습니다. 이어서 피를 뿌리기 전에 향로(출 25:38 ‘불똥 그릇’)를 취해 향을 피운 뒤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지성소 안을 향연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때 향연은 히브리어로 ‘구름’이라는 뜻입니다. 시내산 위에 발현된 여호와의 불과 광채의 영광이 구름으로 가려져 산 아래의 백성들이 죽지 않았으며, 모세가 산 정상 위로 올라가 죽지 않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아론은 향로를 놓고 밖으로 나와 받아놓은 수소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 위에 한 번 뿌리고 이어서 그 바닥에 일곱 차례 뿌립니다. 이런 피 뿌리기는 명백히 속죄소를 씻어내고 지성소를 청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향료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당의 놋제단에서 태운 단순한 ‘유향’보다 비싼 것은 내성소의 향단에서 태운 ‘향기로운 향’이었고, 가장 비싼 것은 지성소에 사용된 ‘곱게 간 향료’였습니다.
(2) 백성을 위한 속죄제(15-19)
이어서 대제사장 아론은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은 뒤 그 피를 가지고 다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동일한 피 의례를 수행합니다. 그 후 그 짐승들의 피를 내 성소에서 뿌리는데, 마찬가지로 향단 위에 한 번 뿌리고 향단 앞의 바닥에 일곱 번 뿌려 향단과 그 공간을 청소했습니다(16). 피 의례의 마지막 단계로 아론은 두 짐승의 피를 마당으로 가지고 나와 놋제단의 네 모퉁이 뿔에 바르고 손가락으로 그 위에 일곱 차례 뿌립니다. 이때 소의 피와 염소의 피가 혼합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바르고 뿌리는 마당의 피 의례가 한 차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 두 짐승의 피의 혼합은 두 개의 속죄제가 결합되어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이미 두 염소가 한 속죄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마리가 피의 혼합을 통해 소와 결합됩니다. 따라서 짐승 세 마리가 모두 연결고리들을 통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피 의례를 통해 제단이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됩니다(한글개역개정의 ‘성결케 되다’는 오역). 여기서 밀그롬과 게인은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된다’에 대해 깨끗함은 제단에 피를 바른 결과이고 거룩함은 제단에 일곱 차례 피를 뿌린 결과라고 주장하나 이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레위기 4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언제나 피를 일곱 차례 뿌리는 효과는 정화력입니다. 만일 여기서 일곱 차례 피뿌림이 성화를 가져온다면, 레위기 4장에서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양자가 달라야 할 그 어떠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일곱 차례 피 뿌림은 양자 모두에서 정화의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왜 ‘거룩하게 되다’가 이어집니까? 속죄일의 속죄제 피 의례는 두 차례에 걸친, 더욱 특수한 방식의 피 뿌리기였기에 철저한 청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철저한 청소의 결과가 거룩의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미 제단과 성막은 거룩합니다. 따라서 이 ‘거룩의 성취’는 다만 오염으로 거룩이 훼손되어 있는데, 그것을 피 의례로 철저하게 씻어냄으로써 다시 원래의 완전한 거룩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거룩하게 되었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해석은 이것입니다: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된다.”
16절의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부정과 악행과 모든 죄’는 19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으로 요약됩니다. 이 부정은 유출이나 피부병과 같은 의식적 부정결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죄로 인해 발생한 이스라엘의 부정함을 말하며, 또한 그것이 성소에 전염되어 성소에 엉겨 붙은 그들의 더러움을 말합니다. 19절은 그것을 정확히 밝혀주고 있으며, 속죄제의 피가 바로 그것을 닦아낸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아사셀 염소 의식(20-22)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는 개인의 영적 성장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또한, 공동체의 죄를 함께 짊어지는 연대감과 책임감을 강조합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누는 것이 진정한 치유로 이어집니다. 결국, 속죄는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회복을 위한 과정임을 일깨워줍니다.
20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 21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22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20-22)
이어지는 순서는 아사셀 염소 의식입니다. 21절의 해석은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 악행, 죄’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즉, 이 살아있는 염소 머리 위에 아론이 두 손을 안수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와 ‘악행’과 ‘죄’를 고백하여 그것들을 그 염소 위에 전가합니다. 그 염소는 미리 임명된 어떤 사람이 먼 광야로 데려가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풀어놓습니다. 구체적으로 ‘에레츠 게제라’는 멀리 떨어져 있는 황무지를 말합니다. 이로써 백성들의 모든 죄가 진영 밖으로 방출되어 제거됩니다. 21절의 삼중적 악인 불의, 악행, 죄가 22절에서 ‘불의’로 요약됩니다. 즉, 한마디로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된 것은 백성의 ‘죄’입니다. 반면에 16절에서 ‘부정, 악행, 죄’로부터 성소가 씻기는데, 그것이 19절에서 ‘부정’으로 요약됩니다. 한마디로, 속죄제의 피로 씻긴 것은 성소의 ‘부정’입니다. 요약하자면, 성소의 부정결은 두 속죄제 짐승이 씻어내고, 그것을 발생시킨 백성의 모든 죄는 아사셀 염소가 대신 짊어지고 제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유보한 쟁점들을 다룹니다. 우선 ‘아사셀’의 정체입니다. 그곳은 아사셀(Azazel)의 지역인데, 히브리어 ‘아자젤’이 악령의 이름의 잔재인지 아니면 낭떠러지나 험한 계곡과 같은 지명을 가리키는 고어인지 논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힘’과 같은 설명식으로 만들어진 단어라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오랜 전통 속에서 그것은 22절의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암시된 바와 같이 일종의 험한 낭떠러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에 저 멀리 광야에 숫염소 형상의 악귀가 거주하고 있다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레위기 17:5에서 추론컨대, 아마도 이미 이집트 땅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들판에서 염소 신을 섬기는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아사셀은 악령의 이름으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가 살아있는 염소를 통해 그 죄들이 원래 기원했던 아사셀 악령에게 되돌아갑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더럽히고 또한 자신들의 처소와 진영, 나아가 성막을 더럽힌 그 쓰레기들을 즉시 청소해서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 수단이 바로 속죄의 제사들인 속죄제/속건제였습니다. 이런 청소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반복되었지만, 마치 장롱 밑이나 마루 아래의 잘 보이지 않는 어떤 과자 부스러기나 간혹 큰 덩어리의 오물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거하지 못하고 누적되어가는 쓰레기들이 있었습니다. 날을 잡아 집안 대청소를 하듯이 이스라엘도 일 년에 한 차례 날을 잡아 국가적 대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입니다.
아사셀 염소가 최종적으로 백성의 속죄를 위해 죄를 대신 짊어지고 광야로 방출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앞서 언급한 10a절 어구의 정확한 해석을 시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카페르 알라이브’ 이 어구에 대해 학자들마다 자신의 속죄제 이론에 따른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부정사 구의 주어는 아론이고 마지막의 목적 대명사는 염소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일단 문자적으로 풀어서 해석한다면 이렇습니다. ‘그가 그것(염소)을 위해(알) 속죄하기 위해’. 그러나 학자들은 짐승을 속죄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럽기에 전치사 ‘알’에 대해 다른 해석을 시도합니다: ‘그가 그것 위에서, 그것을 통해서 속죄하기 위해.’ 하지만 이런 해석은 전치사 알의 용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억지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이 어구의 주어는 아론이 아니라 아사셀 염소입니다. 그렇다면 뒤의 목적격 대명사는 ‘그것(염소)’이 아니라 ‘그’(아론)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10절의 문장이 수동태로서 아사셀 염소가 주어라는 사실을 통해 지지를 받습니다. 그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세워진다’(수동태), 전체를 풀어 해석하면, ‘그 염소를 여호와 앞에 세워둬 그것이 그를(아론) 속죄하도록 하기 위해 아사셀에게로 광야로 보낼지니라.’ 다시 말하자면, 아사셀 염소는 ‘그’, 즉 ‘아론’을 속죄합니다. 이것은 21절에서 아론이 백성 전체를 대표해서 그 염소의 머리 위에 안수하여 백성의 모든 죄를 전가한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타당한 해석입니다. 그 염소가 백성을 대표하는 아론을 속죄할 때 백성이 결국 속죄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인정과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대제사장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또한, 속죄의 의식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연대감을 잊지 않고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책임을 함께 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치유와 회복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03 레위기(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위기(32) - 레위기 17장 1-16절 - 피를 통해 배우는 생명의 소중함 (2) | 2024.10.24 |
---|---|
레위기(31) - 레위기 16장 23-34절 - 영원히 지킬 큰 안식일 (3) | 2024.10.23 |
레위기(29) - 레위기 16장 1-10절 -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속죄 제물 (1) | 2024.10.23 |
레위기(28) - 레위기 15장 19-33절 - 부정함의 의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하기 (2) | 2024.10.23 |
레위기(27) - 레위기 15장 1-18절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결함 (2) | 202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