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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04-01)


속죄제, 제사장과 일반 회중

레위기 4장 1-21절


 

예배와 죄는 서로 멋 듯하면서도 참 가까운 사이입니다. 죄와는 상관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예이지만, 또한 죄인들이 드리는 예배입니다.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나오는 자리가 예배입니다. 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 4장은 속죄제의 규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금지 명령을 부주의하게 어겼을 때, ‘죄’는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제사법 가운데 속죄제를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범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속죄(1-12)

죄는 그냥 덮어둘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씻고 속죄해야 할 오물입니다.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절로 사라지거나 그냥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반드시 속죄가 필요합니다. 성도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3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4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5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6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7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8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9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되 10화목제 제물의 소에게서 떼어냄 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11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12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1-12)

 

하나님의 명령은 ‘수행 명령’(performative commandments)인 ‘~하라’와 ‘금지 명령’(prohibitive commandments)인 ‘~하지 말라’로 두 가지로 나눕니다. 금지 명령을 어겼을 때는 수행 명령을 어겼을 때보다 심각하게 다루었습니다. 고의로 금지 명령을 어기면 그 행위를 반역죄로 다루었습니다. 레위기 4:1-5:13까지 속죄제를 다룹니다. 우선 속죄제를 드리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제물을 달리하여 구분합니다. 제사장(수송아지, 3-12), 회중(수송아지, 13-21), 족장(숫염소, 22-26), 평민(암염소, 27-31; 어린 암양, 32-35).

 

(1) 제사장의 죄와 제물(1-3)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상황이 1-2절에 진술됩니다. 그럼 누가 속죄제를 드립니까?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한 사람’입니다(2). 그릇 범했다는 것은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새번역)입니다. 금지된 여호와의 계명을 비고의적으로 무심코 어기는 경우입니다. 단 하나라도 범죄해도 속죄제를 바쳐야 합니다. ‘그릇’(비쉐가가)이라는 단어가 속죄제를 이해할 때 핵심이 됩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알지만, 고의성 없이 계명을 어긴 경우를 의미합니다. 의도적으로 저지른 잘못은 속죄제 대상이 아닙니다. 이 경우에 이스라엘이든 외국인이든 백성 중에서 무조건 끊어집니다(민 15:30).

 

(2) 소의 안수와 도살 및 피 의례(4-7)

 

누구를 위한 속죄제인지에 따라 피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대제사장과 회중 전체를 위한 속죄제에서는 성소로 가져가 성소 휘장에 뿌리고 향단에 바릅니다. 반면에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 뿔에 피를 바르는 속죄제는 족장과 백성을 위한 속죄제입니다. 또한 남은 고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제사의 주체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제사장과 회중 전체를 위한 속죄제에서는 제물의 기름 부위를 떼어 번제단에서 태운 후에 남은 고기는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모두 불사릅니다. 그러나 족장과 백성을 위한 속죄제에서는 제물의 기름은 번제단에서 태우고, 남은 고기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대제사장의 범죄는 백성들에게 직접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하게 처리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범죄가 “백성의 허물(아샴)”이 된다고 합니다. 대제사장의 범죄로 백성들이 의도하지 않게 범죄하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어떤 경로를 통해 그 죄를 깨닫게 되었다면(13),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3). 대제사장이 비록 실수로 죄를 지었더라도 그 영향력이 공동체 전체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제사장의 책임과 의무가 막중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피의 처리에 대해 더 자세히 보면, 대제사장들의 속죄제를 홀로 집행하는 대제사장은 수소를 잡은 뒤 그 피를 사발에 받아 회막 안으로 들고 들어갑니다. 그 피는 손가락에 묻혀 휘장 앞에 일곱 차례 뿌리고(히자개) 향단의 네 뿔에 바릅니다. 두 가지 피의 의례는 향단과 그 주변을 청소하기 위함입니다. 피로 청소하는 대상은 향단이고, 목표로 하는 공간은 내성소입니다. 손가락으로 제단 뿔에 피를 바르고 손가락으로 제단 주위에 일곱 차례 흩뿌리는 것을 통해 제단과 그 주변을 정화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은 피는 제단 밑에 쏟습니다(7, 18).

정리하면, 속죄제에서 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제단 부근에 손가락으로 흩뿌리고 제단의 네 뿔에 손가락으로 바르고 남은 피를 제단 밑에 쏟습니다. 내장을 덮거나 내장에 붙어 있는 기름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는 작업과 번제단에서 불사르는 과정은 화목제와 동일하지만, 수송아지 가죽과 고기와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을 포함한 전체를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르는 규정은 속죄제에서 추가되고 있습니다. 아론이 처음 대제사장으로 위임될 때 자신과 회중 전체를 위한 속죄제에서 피를 성소로 갖고 들어가지 않는데(9:8-11), 이는 전에 성소에 들어간 적이 없어서 오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의 속죄제(13-21)

우리는 종종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귀 기울여 주십니다. 우리가 무지로 죄를 범하였을 때, 그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무지로 인해 죄를 범했을 때의 상황을 다룹니다.

 

13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14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15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16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17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18또 그 피로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는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19그것의 기름은 다 떼어 제단 위에서 불사르되 20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 21그는 그 수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가져다가 첫 번 수송아지를 사름같이 불사를지니 이는 회중의 속죄제니라(13-21)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무지로 죄를 범했을 때, 회중이 제물을 드려 하나님께 속죄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죄를 인식한 후, 제사장이 수송아지를 가져와 그 피를 성소에 뿌리고, 제물의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도모하게 됩니다.

 

(1) 회중의 죄와 제물(13-14)

 

여기서는 이스라엘 온 회중의 속죄제를 다룹니다. 회중을 위한 속죄제 제물로는 대제사장처럼 흠 없는 수송아지를 요구하십니다(14). 회중(에다)이 금지 명령을 어겨 죄를 지을 때도 대제사장의 사례와 동일한 기준이 적용됩니다. 다만 대제사장의 사례에서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가 나오는데, 그것은 회중이 죄를 지은 뒤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경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13-14).

 

(2) 소의 안수와 도살 및 피 의례(16-18)

 

제사자는 제물의 짐승을 회막으로 끌고 와서 머리에 안수하고 잡습니다. 대제사장이 그 피를 받아서 성소로 들어가 성소 휘장 앞에서 일곱 번 그 피를 뿌리고, 성소 안 향단 뿔들에 피를 바르며, 남은 것은 성서 뜰에 있는 번제단에 쏟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의 경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족장과 평민이 부지중에 범한 죄를 속죄할 때는 다릅니다. 제사장은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성소 뜰의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남은 것은 번제단 아래 쏟습니다. 피를 바르는 위치가 다른 것은 오염의 범위와 위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절차를 진행하는 사람은 그 공동체에서 법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고, 권위를 인정받는 장로들입니다(16).

 

(3) 소의 기름과 일부 내장 사르기 및 잔존물 소각(19-21)

 

회중의 경우 제사장의 경우와 달리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라는 문장이 덧붙여져 있습니다(20). ‘속죄’의 주제와 관련된 히브리어 동사는 ‘카파르’와 ‘살라흐’입니다. ‘덮다’라는 본래 의미를 갖는 ‘카파르’는 ‘제거하다’ 혹은 ‘용서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덮어주시거나 멀리 옮겨버리거나 제거하시는 일이 곧 속죄와 용서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문장의 ‘살라흐’는 ‘용서하다’와 ‘속죄하다’의 뜻을 가지며,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은 사람 스스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임을 전제로 하는 중요한 의미의 용어입니다. 20절의 속죄에 관한 규정과 설명은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 속죄제의 절차를 여호와의 율법의 규례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절차를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이루어 짐으로 사람의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한글개역(개정)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으나 “(회중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의 히브리어 원문은 ‘회중의 눈에서 그 일이 숨겨질 때’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회중으로 번역된 두 히브리어 ‘에다’와 ‘카할’이 등장합니다. ‘에다’와 ‘카할’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4절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함께 공동체 차원의 잘못을 죄로 인식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건전하고 바른 관계 회복을 위한 공동체 전체의 인식과 합의, 공동체 의식과 함께 율법에 내한 공통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율법에 대한 인식과 그 율법에서 규정하는 죄의 문제를 함께 이해하고 깨달아갈 때 형성됩니다. 이스라엘 회중의 대표인 장로들이 제사장과 함께 공동체를 위한 속죄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공동체가 함께 경험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정체성이 강화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죄 사함이 일어납니까? 죄를 깨닫고 인정했을 때입니까, 제물을 드릴 때입니까? 여러 학자들은 제사장이 속죄제 고기를 먹는 행동을 통해 죄가 없어진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제사는 거룩하기에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제물을 잡아야 한다는 규정을 볼 때, 죄로 인해 부정한 사람이 제사를 드려 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부지중에 지은 죄를 깨닫고 속죄제를 드리려고 할 때,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자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여기 ‘사함을 받으리라’(21)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이미 받은 용서를 속죄제를 통해 공식화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즉, 속죄제는 이미 이루어진 회복에 대한 공식 절차이며 또한 확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제사가 사함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속죄의 중요성과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중보의 역할,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깊이 다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아시며,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속죄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죄 제사를 통해 죄 사함을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는 완전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 앞에서 그 은혜를 기억하며 회개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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