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03-01)
화목제, 하나님과의 평화
레위기 3장 1-17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제물을 요구하십니다.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며, 이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삶이 온전해야 함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 그분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제사는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습니다.
화목제의 히브리어는 ‘쉘라밈’입니다. 화목제는 희생의 화목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흠 없는 소와 양의 수컷이나 암컷, 또는 염소를 끌어다가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예식에 맞게 불살라 화제로 드립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름은 그분의 것이며,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의 화목제(1-5)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상징합니다. 소의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화목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1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2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3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낼 것이요 5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 위에서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1-5)
소의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제물은 흠이 없고,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은 그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며 나머지는 제사장과 가족이 나누어 먹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이루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소의 안수와 도살 및 피 의례(1-2)
화목제로 소, 양, 그리고 염소를 바치되 번제와 달리 암수 구분 없이 바칠 수 있었습니다. 번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사자는 화목제 짐승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안수의 기능을 최근 ‘소유권의 확인’으로 주장하는 견해가 수용되는 추세입니다. 여러 제사자들 틈에서 자칫 뒤섞일 수 있는 짐승을 제사장 앞에서 자신의 것으로 확인해주는 작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 강력한 근거는 비둘기의 경우 두 손에 감싸들고 오기 때문에 소유권 확인 절차가 불필요해 안수가 생략된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는 여러 가지 반론이 가능한데 결정적인 허점을 짚는다면, 소유권 확인이 불필요한 백성 전체를 위한 짐승의 제사도 안수를 한다는 것과(레 4:14-15), 안수에 앞서 제사장이 분명 짐승을 먼저 검사했을 것이므로 소유권은 안수 전에 확정되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입니다. 안수의 ‘대체’ 기능은 레위기와 민수기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8:5-22에서 레위인들이 임직될 때 그들은 백성의 장남들을 대신해서 성소에 ‘요제’로 바쳐집니다. 이때 레위인들의 머리 위에 장로들이 백성들을 대표해서 안수하는데, 그 순간 레위인들은 백성의 장남들을 ‘대신하여’ 성소에 봉헌됩니다(민 8:16). 또한 레위기 1:4의 논리적 순서에 의하면, 짐승에 안수를 한 후 그 제물이 제사자를 위해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제물이 된다는 점에서 안수는 제사자와 짐승을 ‘동일시’하거나 제사자를 ‘대체’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제사에서 안수의 기능은 ‘대체’가 공통분모입니다. 다만 나중에 우리는 죄를 위한 제사인 속죄제/속건제에서 안수는 추가적으로 ‘죄의 전가’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2) 소의 기름과 일부 내장 사르기(3-5)
소를 잡는 장소는 ‘회막 문’, 즉 ‘회막 입구’로 지정되는데, 동서남북 어느 쪽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번제에서는 ‘회막문에서’(레 1:3), 혹은 ‘여호와 앞에서’(레 1:4)로 지시하는데, 둘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번제에서도 소의 경우는 회막 입구에서 소를 잡으라는 명령 외에 정확한 지점이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번제의 양과 염소의 경우는 도살장소가 ‘북쪽’으로 구체적으로 지정됩니다. 아마도 소는 덩치가 커서 통제가 쉽지 않아 도살 장소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살피는 바와 같이 번제와 달리 화목제에서는 양과 염소를 잡는 곳이 북쪽으로 구체화되어 있지 않습니다(8).
번제에서도 양이 염소보다 먼저 등장하듯이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염소가 속죄제에서 사람의 신분을 대표할 때는 양보다 우위였으나, 제물 자체의 가치로는 양이 우위라는 것이 재차 확인됩니다. 암수의 구분이 불필요한 이유도 이것이 사람의 권위와 신분을 반영하는 제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짐승의 크기는 번제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신분과 재력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암수 구분이 없는 추가적 이유는 화목제가 고기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제의적 잔치를 위한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내장의 기름 부위와 간 꺼풀(간엽), 콩팥, 그리고 양의 경우 기름진 꼬리도 바쳤습니다.
콩팥이 드려지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인간의 감정을 반영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단순히 짐승의 내장 기름을 제거하는 방식에 기인합니다. 콩팥은 기름 덩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내장에 엉긴 기름 덩어리와 같이 도려내집니다. 한편 간 꺼풀로 번역된 ‘요테레트 카베드’는 오래도록 간의 어떤 부위인지 논란이 되어 왔으나, 우리는 이것을 ‘간’으로 해석하기로 합니다. 간엽이 제단에 태워진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은 간을 꺼내 점을 쳤던 이방의 관행을 금지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고대인들이 빨간 장기인 간에서 피가 만들어진다고 믿었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바로 그것 때문에 제단에 바쳐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름과 특정 내장을 제외한 나머지 고기(아마도 남은 내장들을 포함)는 일부 제사장 몫을 뗀 후 제사자가 가져가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제사장의 몫은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이고(레 7:34), 나머지는 모두 제사자의 몫입니다(레 7:34).
양의 화목제(6-11)
양의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헌신을 상징합니다. 이 제사는 흠 없는 양을 선택해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와 삶이 온전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6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제물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7만일 그의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8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9그는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0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낼 것이요 11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음식이니라(6-11)
양의 화목제를 드리는 규례를 설명합니다. 흠 없는 양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장은 그 피와 기름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양의 안수와 도살 및 피 의례(6-8)
양과 염소의 화목제 또한 암수 구분 없이 드려집니다. 8절에서 화목제의 양과 염소의 도살 장소는 ‘회막 앞’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뿐만 아니라 속죄제와 속건제의 경우에도 양과 염소의 중간 크기의 짐승은 번제에 준한 표준을 따라 북쪽에서 잡았을 것입니다. ‘북쪽’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공간 활용의 이유로 북쪽이 지정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단 동쪽은 제단의 재를 긁어 모아두는 곳이고(16) 남쪽은 제단에 오르는 경사로가 있으며, 서쪽에는 물두멍이 놓여 있어 북쪽만이 공간이 남기 때문입니다.
(2) 양의 기름과 일부 내장 사르기(9-11)
양의 경우도 소와 동일하게 기름과 내장부위를 제단에 바칩니다. 특별히 양의 경우, 꼬리를 잘라 바치라는 명령이 추가됩니다. 그것을 ‘미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꼬리 역시 기름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양은 우기에 잘 먹어 양분을 꼬리에 축적해 놓고 건기를 견뎌내는 습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특징적으로 두툼하고 묵직한 기름진 꼬리를 지녔습니다. 현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양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나, 요세푸스에 의하면, 어떤 양은 꼬리가 지나치게 거대하여 작은 수레를 달았습니다. 숫양의 꼬리가 거대했으며, 암양은 이에 반 정도 크기입니다. 어떤 숫양의 꼬리는 30센티미터에 이르는 폭에 12킬로그램이 넘는 무게인데도 뼈는 고작 70그램에 불과할 만큼 순기름 덩어리라 합니다. 이러한 양의 꼬리는 거대한 기름 부위로서 미골을 절단하여 제단에 바쳤습니다(3:9). 그러나 염소의 작은 꼬리나 소의 큰 꼬리는 기름이 아닌 고기 덩어리이므로 제단에 바치지 않았습니다(레 3:3-4, 14-15).
염소의 화목제(12-17)
염소의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염소는 제물로서 흠이 없어야 하며,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삶이 온전해야 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진심을 보시며, 우리의 예배가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이 그분의 뜻에 합당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12만일 그의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13그것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14그는 그중에서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5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낼 것이요 16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7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12-17)
염소의 화목제를 드리는 규례를 설명합니다. 흠 없는 염소를 선택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장은 그 피와 기름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와의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염소의 안수와 고살 및 피 의례(12-13)
마지막으로 화목제로 바치는 짐승은 염소입니다. 염소 또한 소나 양과 마찬가지로 기름과 내장의 일부를 제단에 태워 바칩니다. 염소에 대해 더 특별히 설명할 것은 없습니다. 마지막 단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17절의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라고 요약적으로 반복된 경고입니다. 이러한 준수사항 강조는 그것이 화목제에서 가장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이유는 몇 차례 설명되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피가 곧 생명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는 경고는 레위기 17:11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2) 염소의 기름과 일부 내장 사르기(14-17)
기름을 먹지 말라고 한 이유는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름이 가장 맛있는 부위였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또 어떤 사람은 콜레스테롤 덩어리인 기름이 보건영양학적 관점에서 인체에 매우 해롭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기름이 잘 타 제물 소각을 원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실용적 이유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지방질이 적당히 섞인 고기가 맛있기는 하지만, 바쳐야 하는 지방 덩어리는 먹을 수 없는 부위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요리에 부적합했고, 또한 지방의 인체 유해성은 현대 의학적 관점의 판단에 의한 것이며, 게다가 약간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이유로 내거는 보건영양학적 설명은 ‘기름은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언과 어울리지 않으며, 실용적 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기름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기름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필자는 일차적 이유로 제단에서 아주 잘 탈 뿐 아니라, 타면서 제물의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풍미적 특징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불어 현대와 마찬가지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기름이 부와 풍요의 상징이었으며, 또한 힘의 근원으로 간주 되었을 것입니다.
화목제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으로써 그분과의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화목제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삶이 흠 없는 제물로 드려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회복하고 온전한 삶을 살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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