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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07-02)


바른 백성으로 인도한 율법

로마서 7장 7-14절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해력이 많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해서 방방 뛰고 화를 낼 수 있겠지만, 나중에 그것을 돌아보면 이해되고 후회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당시는 자기 기준대로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기 때문에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지금까지 율법의 권세에서 벗어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이제 쓸모없어서 폐기처분해야 한가?’에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패기처분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는 율법과 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율법이 존재했던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율법을 통한 깨달음(7-8)

인간은 나약한 죄인이므로 아무리 선하고 아름다운 율법이라도 스스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율법 앞에서 죄성과 정욕이 자극받아 죄가 늘어날 뿐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있는 죄가 범죄의 기회를 자꾸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은혜를 구하지 않고 율법적 행위에 대한 강박만 가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움 없이는 율법의 역기능만 체험하게 될 뿐입니다.

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7-8)

본문에서 바울은 율법의 역할에 대해 말씀합니다. 율법은 죄를 정죄하는 도구로 이용 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지으면서도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율법이 와서 죄를 깨닫게 만들고 영적인 무지를 깨우쳐 줄 때 비로소 죄의식을 느끼며, 죄에 대해 고통하게 됩니다. 전에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계명을 알게 되어 그 계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부모님이나 윗사람에 대한 순종을 배우며 자라납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부모님이나 윗사람에게 반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른들의 마음에 못을 박는 일을 하지만,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왜 간섭하느냐?’고 데듭니다. 그럴 때 어른들이 하신 말씀은 ‘너도 나중에 자식 나봐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당시는 모르지만 나중에 성장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불순종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후회하지만, 그때는 이미 부모님은 늙고 돌아가시고 난 후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영적인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의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에게 죄가 무엇임을 알려는 ‘가이드라인(Guide line)’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약속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잘못된 일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정신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간섭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전한 말은 옳은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순종하는 뼈를 깎는 아픔이 동반됩니다. 순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쉬운 선택을 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습관대로 살고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선지자들이 자신의 걸림돌로 생각하고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런 불순종의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3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눅 13:34)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암탉이 새끼를 보호하려 했던 것처럼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간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까지 죽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부분들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을 순종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 필요합니다. 편안한 길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간섭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처럼 예수님을 죽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죄가 항상 틈을 타서 들어오려 한다고 말씀 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사단은 넘어지도록 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신앙생활하며, 편안한 방법대로 신앙생활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부분에서 가장 큰 실수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을 통한 사망(9-11)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분별하지 못하면 위험합니다. 사단은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순종의 영으로 작용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매우 고상한 신앙생활처럼 포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반대된 생활이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털고 일어서야 합니다.

9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9-11)

바울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위해 율법을 주셨지만, 죄로 인해 율법이 변질되고 왜곡되었다고 말합니다. 앞서 율법을 죄와 연관 지어 살펴보며 매우 부정적으로 언급했던 것과는 기조가 달라집니다. 이 율법을 통해서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9)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생명에 이르게 해야 할 계명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 전적으로 무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가 율법을 통하여 우리를 정죄할 때 우리는 아무런 힘도 없이 굴복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대로 완벽하게 살 수 없습니다. 이것도 죄이고, 저것도 죄이기 때문에 죄의 지뢰밭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죽음의 지뢰밭에서 나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죄의 세력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방법, 당시의 종교적인 습관으로 생명의 길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하지 않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았습니다(사도행전 9:18).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진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게 하는 율법(12-14)

많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우리를 억합하고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율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율법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고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주신 것이 율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12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12-14)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율법이 죄냐?”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오히려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특히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만약에 율법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탐심이 죄라는 것을 율법을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율법은 끊임없이 우리의 죄 된 모습을 들추어 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율법은 우리의 본래 모습을 바르게 보게 하는 선한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나를 책망하고 가르칠 때 나의 전인격이 아프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바로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은 예수님 없이는 죄와 사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죄와 사망의 병을 앓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영원히 구하실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힘으로 날마다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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