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9-02)
진정한 자기 인식과 회개의 길
시편 139편 13-24절
팀 켈러는 고통에 대해 다루면서 “하나님을 그분 자체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바라보게 될 때에야 우리는 현실과 맞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고난에 다가가는 그의 자세는 시인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 하나님께서 세상의 각 사람을 창조하신 일은 십히 놀랍습니다. 창조를 통해 나타나는 그의 지혜와 능력이 지대하므로, 그 일부조차 간파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지으신 각 사람에 대한 수많은 계획을 갖고 계시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중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에 대한 합당한 구원과 심판도 예고되어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13-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체가 형성되기 전부터 우리를 보시고 계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섬세한 창조의 손길을 감사히 여기며, 그분의 계획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바다의 모래보다 많으며, 그 계획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위해 세우신 계획의 깊이를 인식하고, 그분의 지혜를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3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13-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내장을 창조하시고 모태에서부터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존재를 경이롭게 창조하셨으며, 그 계획과 생각은 바다의 모래보다 많고 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생각과 계획 속에서 항상 그분과 함께하며, 그분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1) 나를 지으신 하나님(13-16)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시고(1-6) 어디서나 계신(7-1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잉태되고, 태어나, 살아가는 생에 전체에, 그의 세밀한 섭리하심을 나타내십니다(13-18). 13절에서 시인은 그를 창조하신 이가 하나님께서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내장을 지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시인의 몸 안의 모든 장기와 필요한 것들을 제조하셨음을 표현합니다. 시인의 어머니 태에서 그를 만드셨다는 고백은 하나님께서 그를 모태에서 수놓듯, 실로 짜듯,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드셨음을 표현합니다. 시인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14)로 말하는데, 이 번역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창조하신 행위가 놀랍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직역하면 ‘내가 기묘함으로 다르게 대우받았기 때문이니이다’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경이로운 창조물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또는 ‘만드신 것들’)의 놀라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감탄하여 시인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14).하나님의 창조는 그와 그의 피조물의 관계가 첫출발하는 지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인이 모태에서 형체(뼈들)와 형질(태아)을 이루어 갈 때에도 이미 그를 보셨습니다(15,16).시인이 지움을 받은 곳으로 ‘은밀한 곳’과 ‘땅의 깊은 곳’이 언급되는데(15), 둘 다 어머니의 ‘태’의 비유적, 시적인 표현입니다. ‘땅의 깊은 곳’이란 표현은 인간이 ‘흙’으로 지음 받았음(창 2:7)을 암시하며, ‘깊은 곳’은 ‘은밀한 곳’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르게 신비롭게 지음 받았음을 뜻합니다. ‘기이하게 지음을 받았다’(15)는 ‘~을 직조하여 만들어지다’, ‘수놓아 만들어지다’의 뜻이며, 장인이 형형색색의 실로 짜서 옷감을 만들 듯, 옷에 장식을 수놓듯,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 아름답고 정교하고 창조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이 모두를 보셨다’(15)는 말은 단순히 그가 과정을 다 지켜보셨다거나 그 과정을 아신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한 생명이 잉태되어 태어나는 전 과정이 하나님의 보살핌, 계획, 개입, 주관 안에 있음을 함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출생 전 과정을 아실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을 미리 다 아십니다. 시인은 자기가 사는 날이 정해졌고, 그가 하루도 살지 않은 때에도 그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었다고 진술합니다(16). 이는 사람의 운명이나 한계를 한탄하거나, 이 점을 지적하는 의도가 아닙니다. 이 진술은 첫째, 각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근본적으로 나타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 대한 나름의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셨음을 함축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각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시므로 생에 전체를 돌보실 것을 암시합니다.
(2)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17-18)
시인은 자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이미 갖고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고 그 능력에 놀랍니다.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쟁각'은 보배롭습니다(17). ‘생각’은 ‘의도’, ‘목적’의 뜻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배로운 생각이나 계획이나 목적은 모래보다 많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그의 ‘생각’까지도 밝히 아시냐(2), 인생은 하나님께서 가진 ‘생각’의 일부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17-18; 시 40:5; 잠 3:11; 롬 11:33-34). 하나님께서는 각 인생에게 이토록 세밀한 관심을 보이며, 그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제대로 깨닫는다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시인은 잠에서 깨어난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있음을 인지하며, 그의 임재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심판과 신원의 하나님(19-24)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고 그분의 시선 아래에서 진정한 자기 인식을 갖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하나님께 고백하며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원한 길은 단순히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19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21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22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9-24)
시편 기자는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원수와 대적을 미워하며, 그들과 멀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 우리는 악과 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하나님께 정의를 구해야 함을 배웁니다.
(1)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19-22)
19절부터는 내용과 분위기가 ‘감탄에서 탄식으로’ 전환됩니다. 앞 1-18절 단락에서는 인생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의 신비로움에 매료된 시인의 감탄이 가득 차 있으나, 19절에 와서는 갑작스럽게 들리지만, 악인을 향한 시인의 응징의 기도로 시작하여, 그들에 대한 고소와 탄식이 빗발치고(19-22),뒤를 이어 하나님의 신원과 인도를 바라는 시인의 간구로 마무리됩니다(23-24).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속에 있는 시인은 그와 반대 무리인 악인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확신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각사람에 대한 수 많은 계획을 고의 섭리로 주관하심을 인지했습니다. 또한 그의 다스림 속에는 그를 사랑하는 자와 그를 미워하는 자를 향한 구원과 심판의 계획이 있을 것임도 확신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여 주(당신)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19)라는 시인의 말은 섬뜩하게 들리지만, 이는 하나님의 확고한 심판이 악인에게 있기를 기원하는 진술입니다. 악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나 두려움이 없는 자들로,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부패한 자들입니다(시 14:1; 36:1-4). 악인들은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직역하면‘피들의 사람들’, 19)로 불리는데, 이는 그들이 폭력적이며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는 무리임(시 37:32; 38:12)을 시사합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도 악의로 말하며, 그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원수들’입니다(20). 그러므로 시인이 그들에게 ‘나를 떠날지어다’라고 명합니다(19).이 명령은 그들이 시인에게 저질러 온 악행을 그만두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또한 악인의 무리가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시인이 용납할 수 없음과 그들이 결코 시인과 그의 공동체에 낄 수 없음을 함축합니다(시 1:5). 이어서, 21-22절에서는 ‘미워하다’라는 동사가 반복되어 ‘하나님에 대한 악인의 미움’과 ‘악인에 대한 시인의 미움’의 관계를 기술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에 대항하여 ‘치러로 번역됨, 21)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수’(20)인 악인들은 곧 ‘시인의 원수’(22)가 됩니다. 악인에 대한 시인의 미움은 큰 적대감이므로, 시인은 그들 무리와 완전히 분리됩니다(22).악인들이 시인의 무리에 낄 수 없듯이(19), 시인도 그들의 무리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시 1:1-2,5). 한편, 다른 시편에서는 의인을 억압하고 해를 끼치는 악인을 단순히 ‘의인의 원수’라 부르지 않고 ‘여호와의 원수’라 불렀습니다(시 37:20). 의인을 핍박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그의 말씀에 반역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신원을 간구(23-24)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를 살피셨고 아셨음을 고백하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1).이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살피고, 마음을 아시며, 조사해보고(‘시험하사’, 23),자신의 생각을 파악하시길 구합니다. 이 간구는 액면 그대로 간구가 아닙니다. 이는 앞서 악안에 대한 진술(19-22)이 시인의 개인적 원한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자신이 불의에서 떠난 자이며 하나님께 헌신된 자임을 증명하려는 방책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를 점검하셨고 아셨습니다(1).그의 모든 생각과 언행을 아시므로, 시인은 그 앞에 떳떳합니다. 시인은 자기 안에 ‘고통/곤경의 길’(‘악한 행위’로 번역됨)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보시고, ‘영원의 길’(‘영원한 길’로 번역됨)로 인도하시길 간구합니다(24). ‘고통의 길’은 ‘영원의 길’의 대조 어구이므로, 하나님과 반대되는 길, 고통을 주거나 고통에 이르는 길, 악의 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인생 여정의 길을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시고,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정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분의 용서와 치유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직하게 나아갈 때,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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