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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2-02)


시온의 회복과 하나님의 영광의 약속

시편 102편 12-28절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고난을 아시며 응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습을 볼 때, 그분의 뜻과 계획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과 예루살렘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모든 민족이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회복의 역사는 세상에 찬양이 퍼져나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 시인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찬양하면서 뭇 나라들과 왕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여호와가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것을 확신합니다. 또한 헐벗은 사람의 기도와 갇힌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는 여호와를 신뢰하며 그의 종들이 평안할 것을 믿습니다.

 

신뢰와 확신(12-2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기다림 속에서 구속과 회복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시온의 회복 과정에서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영광이 열방과 왕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시온과 예루살렘을 통해 나타나며 모든 민족들이 그분의 권능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12○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13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14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

15이에 뭇 나라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이 땅의 모든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16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17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18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19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20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2그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12-22)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분으로, 시온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시온의 회복을 바라며, 하나님의 종들은 시온의 돌들과 먼지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 이로 인해 열방과 왕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고난 당한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 영원하신 여호와의 긍휼(12-14)

 

시인은 탄식을 멈추고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여호와가 영원히 왕좌에 앉아계신 것과 여호와에 대한 기억이 대대에 이를 것이라 확신합니다(12). 첫 글자가 접속사 ‘그러나’(바브)로 시작합니다. 시인의 날이 그림자처럼 순간이라는 탄식에 찬 고백과 대비됩니다. 시인이 자기 생명의 덧없음, 곧 생명의 일시성을 노래했다면(3,11), 이제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와 그분에 대한 기억, 그의 명성이 대대로 영원할 것을 확신하는 목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에 대한 ‘기억’, 곧 그의 탁월하고 능숙한 솜씨와 거룩한 이름이 대대로 이어질 것이라 고백합니다. 기억은 여호와가 행하신 것을 기념하는 표지입니다(시 11:4). 시인은 좀 더 구체적인 언어로 신뢰를 표현합니다. ‘당신이 일어나셔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시온을 향해 은총을 보여줄, 정해진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13). 시온은 언약과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장소이며, 그 자체로 여호와의 은혜를 증언하는 기념물입니다. 그런 시온을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모성애에 기반한 사랑을 보여주는 행위이고, 은혜를 베푸는 것은 친절하고 자비로운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을 때 보이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을 보여달라는 간절한 호소입니다(출 34:6). 이제 하나님의 근본적인 속성을 보여주실 ‘정해진 때’가 이르렀다면서(13c) 하나님께서 행동하시기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시인은 하나님께 당신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기뻐하고 시온의 티끌도 은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14). 이는 하나님께서 동정심을 발휘하도록 예루살렘의 파괴된 상태를 상기시키려고 애쓰는 태도입니다. 즉 파괴된 시온을 원상태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하는 호소입니다. 예루살렘 곧 시온의 파멸은 하나님 약속과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여호와의 이름과 영광(15-16)

 

시인은 시온을 향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나타날 것을 믿고(13-14), 그때 뭇 나라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이 땅의 모든 왕이 주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라 확신합니다(15). 시인은 뭇 나라들과 모든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를 주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6). 시온의 회복은 백성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시온의 재건 그 자체가 여호와를 계시할 것입니다.

 

(3) 빈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양(17-18)

 

시인은 여호와가 빈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셨음을 고백합니다(17). 하나님께서 시온에 임하신 것은 빈궁한 자, 즉 ‘헐벗은 자’, 가장 취약한 자들의 기도를 듣기 위함입니다. 시인은 하나님만이 힘없는 자들을 해방하시고 그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분임을 믿습니다. 시인은 불평과 탄식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무한 신뢰를 표현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해 기록되고, 창조될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라 확신합니다(18). ‘창조될 백성’은 누구입니까? 문맥상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해방된 포로들로 구성된 새로운 세대를 뜻할 것입니다. 평행관계를 고려해도 ‘장래 세대’와 동의어처럼 쓰였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의 회복과 헐벗은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여호와를 믿고, 이것을 목격한 자들의 기록을 통해 장래 세대까지 여호와가 찬양받는 것을 상상합니다.

 

(4)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섬김(19-22)

 

시인이 찬양의 이유를 말합니다. 여호와가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고, 하늘에서 땅을 살펴보셨기 때문이고(19),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죽게 된 후손을 해방하시기 때문입니다(20). 19-20절 시행은 찬양의 이유에 대한 요약적 진술입니다. 시인은 미래를 상상하며 하나님께서 어떤 성품을 가지신 분인지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굽어보시고, 살펴보시고, 들으시는’ 분이고, 후에는 해방하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목적을 밝힙니다. 즉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의 영광이 예루살렘에서 선포되기 위함입니다(21). 그때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길 것입니다(22). 이 시편 후반부 첫 단락(12-22)을 주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입니다. 여호와가 여섯 번 반복됩니다(12,15,16,18,21,22). 이와 함께 ‘시온’을 세 번 반복할 만큼 중요합니다(13,16,21). 시인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그의 이름을 시온, 곧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곳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선포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온 열방이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 곧 예루살렘에서 선포할 것을 확신합니다.

 

탄식(23-24)

우리의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의존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날들을 단축시키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삶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계획과 뜻에 맡기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23○그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시며 내 날을 짧게 하셨도다

24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23-24)

 

시인은 다시 자신의 암울한 현실 세계를 인식하며 탄식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 힘을 중도에, 즉 인생 여정 중반에 쇠약하게 하시고, 내 날을 짧게 하셨다고 토로합니다(23). 이렇게 시인은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직시는 언제나 새로움을 열어젖힙니다. 시인은 현재의 비참한 처지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내가 말하겠습니다’(24a)라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당신의 연대는 대대로 무궁합니다’(24). 시인은 ‘나의 하나님’과 ‘나의 중년’을 의도적으로 대비시켜 영원무궁한 하나님께 생명 연장을 간구합니다. 시인은 연기처럼 소멸하고, 풀처럼 시드는 인생의 본질을 알지만(3, 11), 그 짧은 생애주기에서 이대로 더 일찍 끝나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이는 자기의 짧은 날들과 여호와의 무한한 연대 사이의 엄청난 간격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뢰와 확신(25-28)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분이 만물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심을 기억할 때, 우리의 신뢰와 확신은 더욱 굳건해집니다. 삶의 조건이 변하고 어려움이 다가올 때,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하시며, 우리의 변함없는 소망이 되어주십니다. 이 확신은 우리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25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28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25-28)

 

시인은 대대로 무궁한 하나님을 향한(24) 신뢰를 고백하며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시인이 ‘정한 때’와 자기의 나날들과 하나님의 연대를 비교했듯 맨 처음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창조하셨던 때를 언급합니다(25). 시인이 시간 모티프를 활용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하늘과 땅은 없어지지만 당신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조차 옷같이 낡을 것이며, 의복을 갈아입듯 바꾸실 것이라고 말합니다(26). 하나님의 무궁함, 곧 영원성을 더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다시 말해 우주를 표현하는 광대한 ‘하늘과 땅’조차 영원하지 않습니다. 창조자와 피조물은 완전히 구별된 존재로서 창조자만 홀로 불멸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백합니다. ‘당신만 한결같고, 당신의 연대는 끝나지 않습니다’(27). 시인은 하나님의 한결같음, 곧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불변성에 기대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 당신의 종들의 후손이 항상 안전하게 살며, 그 자손도 당신 앞에서 굳건히 설 것이라고(28) 신뢰를 표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한결같으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근거합니다. 이 시는 고통의 현실에서 탄식의 언어로 시작한 기도였습니다(1-11). 그러나 절망을 넘어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시대의 어둠 사이에서 자신의 처지는 여전하지만, 더 먼 미래의 후손들까지 하나님 앞에서 안전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어려움을 아시며 회복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날을 기다리며 소망 중에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며,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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