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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02-01)

 


엘리야의 뒤를 잇는 엘리사

열왕기하 2장 1-14절


 

인생에서 좋은 스승과 제자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만큼 스승으로부터 바른 정보와 노하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움으로써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스승에게 제자들은 많은 것을 배우려는 열정과 성장하려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좋은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까? 엘리사에게 엘리야는 좋은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려고 했습니다.

 

  • 이스라엘은 뒤를 이을 후계자도 없이 아하시야 왕은 죽지만, 영적 지도자 엘리야는 후계자인 엘리사를 세워둡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던 엘리야를 사명을 마감한 후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서 하늘로 승천합니다. 이후에는 엘리사를 세워 예언자직의 계승을 엘리야를 대신하게 하십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감의 두 배를 받고 큰 능력을 행합니다.

 

승천을 앞둔 엘리야(1-6)

날마다 말씀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 그것이 가장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일입니다. 고단한 현실 앞에서도 참다운 주권자와 실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 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영원히 사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에게 맡겨졌던 소명의 때가 다했습니다. 그의 시간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1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1-6)

 

엘리야를 통한 주신 말씀을 무시하고 죽은 우상 바알을 섬기던 아하시야 왕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산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한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하시야가 죽은 후 이야기의 초점은 다시 선지자인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향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했던 아하시야는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시길 원하십니다.

 

엘리야는 아하시야에게 죽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합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사명을 정리하기 위해 곳곳을 방문합니다. 이런 엘리야의 마지막 시간들을 그의 제자 엘리사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영원한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십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리실 때’라고 표현합니다. 지상에서 살다가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인물은 성경 전체에서 에녹(창세기 5:24)과 본문의 나온 엘리야뿐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반면, 엘리야는 ‘하늘로 올리셨다.’고 표현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지상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을 알고 그동안 지내던 길갈에서 출발합니다. 이 때 엘리사가 자신과 동행하려고 하자, 그에게 여기 머물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벧엘로 보내시니 자신만 가겠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떠나는 모습을 제자인 엘리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엘리야와는 달리 자신은 절대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제자로서 스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같이 벧엘로 갑니다.

 

벧엘에 있던 선지자의 제자들 50명도 엘리야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에게 나와 ‘엘리야를 여호와께서 데려가실 것을 하느냐?’고 질문합니다. 엘리사는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닙니다. 이런 제자들의 말은 엘리야의 승천이 확실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이 엘리야뿐 아니라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에게까지 엘리야의 승천 소식을 알려준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신도 알고 있으니 이 일로 수선 떨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잠잠히 바라보라는 의미에서 조용히 라라고 당부합니다.

 

4-5절은 2-3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소가 여리고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5-6절도 또다시 반복적인 사건을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엘리야가 요단으로 갑니다. 엘리야와 엘시의 움직이는 경로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길갈은 벧엘 북쪽에 있는 도시이며, 여기서 시작하여 남쪽의 벧엘로 가고 여기서 여리고로 내려갔다가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런 반복적인 예언 확인과 이동은 무엇을 보여주었습니까? 첫째 엘리사가 엘리야와 헤어질 준비를 하는 시간을 버는 역할을 합니다. 둘째는 엘리야가 죽은 것이 아니라 승천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엘리야 시대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고 살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영적 열망과 함께 살아가야할 현실은 너무나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엘리야 시대 못지않게 어두운 시대입니다. 엘리야와 같은 결단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능력을 두 배 요청하는 엘리사(7-10)

하나님 앞에 헌신을 다하는 사람은 상황과 여건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의 길을 묵묵히 순종하며 나갈 뿐입니다.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열정과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달려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7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7-10)

 

엘리야의 승천으로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의 사역은 그의 제자 엘리사에게 온전히 승계됩니다. 엘리야는 그의 제자 엘리사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엘리야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스승에 대한 사랑으로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에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던 스승에게서 떨어지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끝까지 엘리야를 따라갔던 것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드디어 마지막 여행자인 요단 강가에 도착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 50명이 요단 강가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사와 함께 엘리야의 승천을 증언할 증인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사역을 승계 받기 위한 시험을 받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요단 강물을 쳤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양쪽으로 갈라졌고 마른 땅이 들어났습니다. 그 사이로 두 사람은 걸어서 강을 건넜습니다. 물을 처서 강을 가르는 모습은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르는 모습이나 제사장들이 법궤를 들고 요단강에 발을 담갔을 때 요단강에 마른 땅이 드러나던 모습과 같습니다. ‘마른 땅’은 물 밑에 있던 땅이 들어날 때만 드물게 사용하는 단어이며, 출애굽기 14:21과 여호수아 4:17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강하게 임하고 있다는 상징이며, 여기서는 모세의 막대기 대신 엘리야의 옷이 능력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엘리야가 향하였던 기적을 보았고, 마지막 순간에 요단강을 가르는 놀라운 기적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함께 요단강을 건넜던 사람이 엘리사였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 열정이 잘 다듬어지고 검증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귀한 일꾼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 엘리야는 자신의 승천이 가까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엘리사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9)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한결같은 소원을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9)라고 구합니다. 엘리야를 수행하던 엘리사는 그가 떠난 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역을 앞두고 앞에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는 엘리야와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고, 그에 비해 하나님의 사역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쫓아다니며 갑절의 영감을 간청합니다. 여기서 ‘갑절’은 장자가 다른 이들에 비해 두 배의 유산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적 지도력을 계승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원하는 것은 사역의 기술이나 비법이 아니라 영성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능력의 원천, 하나님을 따를 수 있었던 삶의 철학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배웠던 사상들을 온전히 배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는 영적인 통찰력을 구하면서 엘리야에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구하면서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나가고 있습니다(10). 영감의 갑절은 사람들이 줄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한 시대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영적 지도력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입니다.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11)

하나님께서는 하늘위에 초월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로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하늘에서만 전투를 벌이신 것이 아니라 땅에서 인간의 역사에 관여하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들어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하늘로 부르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11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11)

 

엘리야의 승천은 매우 급작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수레와 불말이 나타나 둘 사이를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엘리사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여기서 불수레와 불말은 전승에서 여호와께서 타고 다니신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데리고 가셨음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에게 예고하신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선지자로서 지상에서 사역할 때, 그 많은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고도 아합과 이세벨 같은 악한 지도자들로부터 너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장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엘리사(12-14)

궁극적인 기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인간 지도자는 통로일 뿐이지 실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점점 세상은 어둡고 음란한 우상의 땅에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최고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지도자입니다.

 

12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12-14)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자, 엘리사는 놀라서 부르짖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향해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하며 부릅니다. 여기서 ‘내 아버지’란 표현은 스승을 부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아버지’란 단어와 병거와 마병이란 단어가 같이 결합되면서, 아버지는 보호자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지금 엘리사는 이스라엘을 지키던 보호자로 엘리야를 부른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데리러 온 불말과 불수레를 보고 엘리야에 대해 이런 보호자의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부르는 사이에 엘리야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엘리사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엘리야가 단지 강한 바람에 휩싸여 다른 곳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것을 확인한 엘리사는 혼자 남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여기서 옷을 찢은 것은 스승인 엘리야를 잃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만 엘리야가 죽은 것이 아니기에 애곡하거나 재를 뒤집어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엘리야의 겉옷을 집어 와서 그의 옷으로 엘리야와 동일하게 물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는데, 이것은 자신이 엘리야에게 부탁한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달라고 외친 것입니다. 물을 치니 엘리야가 한 것처럼 물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소원을 들어주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계승자로 인정받는 순간입니다. 엘리야에게 주어진 시험을 통해서 엘리야에게 주셨던 능력이 엘리사에게도 임하였습니다. 그가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승천하고 엘리사가 사역을 계승한 장면에 등장한 ‘불’, ‘바람’의 성령의 이미지는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 사건을 생각나게 함입니다.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자 불의 혀와 같은 것이 각 사람에게 임하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엘리야의 사역이 엘리사에게 계승된 것처럼, 예수님의 사역이 그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된 우리에게까지 계승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갑절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과 함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그리운 시절입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 엘리야에 이어서 엘리사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으로 지도자다운 지도자의 이름이 섣불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지속적으로 좋은 지도자를 세워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사명을 감당했던 엘리야처럼, 하나님을 무시하고 교만함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와 함께 하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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