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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01-01)


추락한 왕권을 가진 아하시야 왕

열왕기하 1장 1-12절


 

우리 몸은 몸의 컨디션에 따라 신호를 보냅니다. 크게 아프기 전에 전조 증상으로 몸에서 이상 신호들을 보냅니다. 전조 징후들을 무시하다가 발병하게 됩니다. 발병한 후에, 관리를 잘할 걸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을 봅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작은 신호들을 통해 영적 상태에 대해 신호를 보냅니다. 작은 신호 속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수 있을 때, 좀 더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열왕기상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한 왕인 아합이 죽은 것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는 아합에게 내리신 심판들이 실현되면서 시작합니다. 그이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면서 문제는 시작됩니다. 첫째는 속국이던 모압이 반역했고, 두 번째는 왕은 난간에서 떨어져 중병에 걸렸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서기보다 우상을 찾아갔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그에게 죽음이 선포합니다.

 

모압의 반역(1-2a)

인생을 살아가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과 어려움이 닥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생각지 않는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시련의 순간과 어려움의 순간에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서부터 온 신호인지를 분별해 내고 그것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리석은 아하사야를 통해 우리들은 긍정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1-2a)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배반한 왕조를 싫어하신다는 사실이 여기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엘리야가 선고한 대로(왕상 21:29) 오므리 왕조는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아합 왕이 죽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과 똑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들을 행합니다(참고 열왕기상 22:51-53).

 

성경에서는 아합이 자주 거론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훌륭한 지도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는 성실하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을 섬기도록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것은 정치적인 어려움으로 도래합니다. 결과로 이스라엘은 점점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에게 두 가지 어려움을 통해 추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점점 약해짐으로 그 틈을 타서 다윗 시대 이후로 수년 동안 속국이던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합니다(1). 종교적인 배반이 결국 정치적인 불안정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다음으로 설상가상으로 모압의 조공 중단으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마저 자신의 부주의로 다락방 난간에서 추락해서 크게 다쳤습니다(2). 이것은 단순히 몸이 떨어졌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분에서 추락했음을 의미합니다. 다친 후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에서 보여 집니다.

이와 같이 국가적으로 그동안 통치해 오던 속국인 모압 떠나가게 되고, 또한 왕이 병들게 되는 이중고의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아무것도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적으로 주변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임할 때,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그 때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구할 때,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긍휼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추락을 막는 인위적 노력(2b-4)

하나님의 경고의 신호를 느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처음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이지만, 점점 힘겨우면 절대자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우상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하시야 왕입니다.

 

2…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2b-4)

 

하나님의 경고 신호를 느꼈을 때, 아하사야 왕은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점점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하시야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왕위와 언약적 의미를 부정했습니다. 신하들을 보내어 이방신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나을지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부인하는 것은 사소한 죄가 아닙니다. 주를 부인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란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우상을 선택한다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인 아하시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신호에도 무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는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 또한 인정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자신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 뜻을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리신 경고의 표징에 둔감해 어리석게도 회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살아지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을 필요성이 없을 때, 그들은 이방 신상에 의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 자신이 ‘가장 먼저 누구를 찾는가?’, ‘어떤 방법을 강구하는가?’가 하나님에 대한 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아가는가?’ 그러지 않으면, ‘인간적으로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가?’가 중요한 기준점인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인간적인 사람들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와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 한 번 정도,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걸음을 돌이켜야 된 때가 되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신호들에 귀를 기우려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를 행하고 있는 일들은 없는지, 삶에서 고쳐져야 할 부분은 없는지, 더 깊은 순종으로 나가야할 부분은 없는지 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파악하시길 바랍니다. 헛된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던 손을 놓으면 누구든지 하나님 대신 붙들던 것과 함께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사형 선고를 들은 사람(5-8)

하나님을 찾아야할 사람들이 잘못된 우상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있지 않고 반응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반응하십니다. 아하사야의 불신앙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5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5-8)

 

아하시야 왕은 그의 아버지 아합 왕과 어머니 이세벨을 닮아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외부적으로 힘들고 자신이 육체적으로 병든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 우상을 찾았습니다. 그는 에그론 신 바알세붑에게 자기 신하들을 보냈습니다. 단순히 다른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대신에 섬기는 행위입니다. 우상 신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장 큰 범죄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죄의 대가는 무섭고 엄격하게 처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구해야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곳에 도움을 청하려 가는 곳에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선지자 엘리야를 올려 보내십니다.

그 아하사야의 사자들을 중간에서 만나서 두 사자들이 충돌합니다. 엘리야는 하늘같이 높아 보이는 왕의 정치권력 앞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왕의 사자들에게 아하시야 왕이 죽음을 선언합니다. 담대하게 살아계신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은 신 바알세붑을 좇는 아하시야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의 신하들을 꾸짖고,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왕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아하시야의 신하들이 우상 바알세붑에게 묻기 위해 가던 도중에 엘리야를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신하들은 결국 바알세붑에 가서 묻지도 못하고 엘리야를 만나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하사야 왕은 자신에게 돌아온 신하들에게 질문합니다.

 

5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5-6)

 

아하사야 왕은 마땅히 기대했던 바알세붑의 응답이 아닌 다른 응답을 받고 온 신하들에 대한 그의 질문이었습니다. 신하들은 엘리야가 자신들에게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왕에게 전합니다.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6). 첫째는 마땅히 기도해야할 대상에게 기도해야할 것이고, 두 번째는 아하시야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범죄하게 되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던 생명의 줄이 끊어지게 됩니다. 나무가 햇볕을 공급받지 못하면 점점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질 때 일어나는 일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은 마땅히 찾아야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않고, 세상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경고는 절망이고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나라에는 번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회에서는 회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신하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반응을 듣게 됩니다. 그 사실을 듣고 크게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에그론에 있는 바알세붑을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집니다.

 

7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7-8)

 

아하시야 왕은 신하들이 길거리에서 만났던 사람의 말을 전하고 있을 때, 그 말을 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몰랐지만, 왕은 분명하게 그가 바로 엘리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합니다. 자신의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점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하사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7). 어리석은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알면서도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함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도들은 오늘날 거짓이 무성한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담대히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것을 쫓아가는 삶이, 마치 우상을 찾아가는 모습이 없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아마 그런 길로 가고 잇는 사람들에게 도중에서 가로 막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하나님이 없어서 그걸 의지하느냐?’고 호통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와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권위를 무시하는 어리석은 왕(9-12)

하나님을 떠나 세속적 안목을 가진 아하사야에게 그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심판을 선언한 엘리야는 비판적 종교 지식인에 불과했습니다. 아하시야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존경하지도 그 말을 경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생각을 거슬리므로 제거의 대상일 뿐입니다.

 

9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9-12)

 

아하시야 왕은 자신의 신하들에게 심판을 경고할 사람은 엘리야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외모의 특징만으로도 충분히 엘리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듣고 큰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죽음의 공포로 인해 아하시야가 특별한 행동을 취합니다.

 

아하시야 왕은 엘리야를 연행해 와서 그를 심문해서 제거하거나 혹은 입에 재갈을 물려서 아무 말을 못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 차례나 오십부장과 오십 명의 군사를 보내 엘리야를 강제로 생포해 오도록 했던 것입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첫 번째 오십부장과 군사들이 갈멜산에 있던 엘리야에게 가서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라고 외칩니다. 이곳에 두 가지 모순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엘리야를 향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해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두 번째는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갈멜산은 아버지 아합과 영적인 전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준 산이었습니다. 그들은 아하사야 왕의 명령이기 때문에 엘리야는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낮은 지상의 왕의 명령으로 복종시키려 한 것입니다. 왕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을 굴복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겟세마넷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잡으려 왔던 로마 병사들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의 반응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을 떨어뜨려서 너를 불살라 버릴 것이다.’(10)라고 경고합니다. 이미 갈멜산에서 전투와 같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증명해 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권위가 높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성품이나 능력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아하시야 왕은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명령을 듣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엘리야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아하사야 왕의 명령을 집행하러 온 오십부장에게 말했던 것처럼 오십부장과 모든 군사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태워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사야 왕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다른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을 갈멜산의 엘리야에게 보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에게 가서 동일한 말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전과 같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불태울 것을 말하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또 하늘에게 불을 내려서 그들을 태워 죽였습니다. 엘리야는 왕의 마음대로 할 대상이 아닙니다. 엘리야를 체포하기보다는 엘리야가 전한 말씀을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계속적으로 어려움을 맛보다면서도 교만한 마음을 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대변인인 엘리야를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하나님을 향한 적대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대상임을 거부한 채,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완악한 독재자는 주변 사람들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항하는 사람들은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보호해줄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받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도 아하시야 왕처럼 다른 길로 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제 그만 멈추고 포기하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명령은 순종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왕의 명령에만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하여 불어 타서 죽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의 음성에 순종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특히 성도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올바른 영적인 질서를 맺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작은 신호 메시지들을 감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때에 돌아섰어야 했습니다. 마치 히스기야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갔던 것처럼 아하시야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가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담대히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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