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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51-01)

 


상한 심령, 통회하는 마음

시편 51편 1-9절


 

하나님의 사람들은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속에 내재한 죄의 습성은 우리를 끔찍한 죄로 몰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 때문에 그 죄가 더 쉽게 틈을 탑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까?

 

  •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단 한 점도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죄’의 동의어를 4가지나 달리 표현하고 또 모태에서부터, 출생하면서부터 죄가 시작되었다고 고백하며 철저한 죄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만이 자신을 용서하실 수 있다고 고백하며 그 용서로 말미암아 건강과 영적 활기를 되찾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죄 고백(1-6)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기억하시지만, 한 번 용서하신 죄는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역시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철저히 회개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회개는 자신이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죄인임과, 하나님의 용서 외에는 어떤 한 희망도 없음을 고백하며 철저히 뉘우치는 것을 시작합니다.

 

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1-6)

 

이 시는 다윗이 밧세바를 빼앗고 우리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에 대해 나단 선지자에게 혹독한 책망을 들은 후 지은 것입니다. 이 시를 읽어 보면, 다윗이 그 죄를 얼마다 철저하게 회개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1) 인자와 긍휼을 따라 죄를 제하소서(1-2)

 

시인은 간절함과 애잔함을 가지고 “은총을 베푸소서 나에게 하나님이여”라고 외치며 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반역죄(페샤)와 죄악(아온)과 죄(하타트)를 고백하고, 이 모든 더러움을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따라 지워주시고 씻어주시고 깨끗이 제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용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총만이 잃어버린 자신, 소외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멸망과 죽음과 잊힘에서 건져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시인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기로 합니다. 절망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내맡기기로 합니다. ‘은총을 베푼다’는 히브리어 ‘하난’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그냥 주시는 것으로 강요하거나 주장할 수 없습니다. 시인이 은총을 요구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인자를 따라”입니다. ‘인자’(헤세드)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기에 은총의 근거가 되기에 적당합니다. 이것은 병행적으로 나오는 하나님의 많은 긍휼과도 연결됩니다. ‘많은’은 질적인 개념으로, 하나님의 한없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긍휼은 원래 자궁(레헴)을 가리키는 명사의 복수형으로 태 안의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반역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한없이 불쌍히 여기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더군다나 이 ‘죄악’(페샤)은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저지른 반역으로 희생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중죄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반역죄(1)가 지워지기를 바라며, 자신의 죄악(2)은 말갛게 씻기길 바라고, 또 자신의 죄(2)가 깨끗해지길 바란다고 함으로써 모두 ‘정결’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사죄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우슬초로 정결하게 하고’, ‘눈보다 희게 하고’(7), ‘죄악을 지워달라는 간구’(9)로 이어집니다. 이는 정결 의식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레 14:1-9; 민 19:1–22). 말갛게 씻긴다는 것은 ‘여러 번’ 씻는다는 뜻으로, 앞에 나온 ‘많은’ 긍휼과 연결됩니다.

 

(2) 주 앞에서 범한 죄, 주께서 의롭게 판단하실 죄(3-4)

 

시인은 여기서 앞에서 사용한 반역죄(‘죄과’는 1절의 ‘죄악’과 같은 단어)와 ‘죄’라는 단어를 가져와 철저히 자신의 죄악을 고백합니다. 시인의 죄는 시인도 알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결국 하나님을 향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죄가 자기 앞에 있다고 하는데, ‘나의 앞’은 ‘나를 거슬러’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인의 깊은 죄의식을 반영합니다. 죄가 시인을 고발하고 있는 것을 시인은 깊은 감수성으로 매순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인은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무의식중에 지은 실수가 아니라 “내 죄”라고 분명히 책임소재를 밝힙니다. 3절과 4절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자기 자신을 정죄하는 죄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서 감춰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임을 알면서 범한 변명의 여지없는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용서하지 않으시면 그 죄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어떤 판결을 내려도 그것은 정당하며 또 완벽한 판결이 될 것입니다. 4절 하반절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유죄를 선고하실 때 당신은 의로우시고, 심판하실 때 당신은 완전하십니다.” 우리 성경에서 말씀과 심판이 병행을 이루고, 의로우시다와 순전하시다 역시 병행을 이룹니다. 모두 법정적인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3) 모태로부터의 죄악, 주께서 중심에 가르치실 지혜(5-6)

 

시인의 자기 고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갑니다. 이제 그 죄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철저한지를 인정합니다. 어쩌다 한 번 범한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이 죄의 감옥에서 나올 수도 없고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 지속적인 사랑 한없이 불쌍히 여기심이 아니고는 가망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용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지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와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있는 지혜, 죄악의 결과가 가져다주는 참담함을 아는 지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알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것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기서 자신이 ‘죄악 중에 출생’하였고, ‘어머니가 나를 죄중에 잉태하였다’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성적 열망으로 인한 오염의 전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보편성에 대한 문학적 표현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죄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나올 때부터 죄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해법은 ‘주께’(당신께) 있습니다(6). 모태의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에서부터 죄의 영향을 받았으니, 시인의 ‘중심’에서 주께서 무언가 일을 하셔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시인의 양심의 세계를 가리킬 것입니다. 다행히도 주님은 시인의 마음이 진실하기에 기뻐하시고 그래서 남모르게 지혜를 가르쳐주시는 분입니다. 시인이 철저한 자기 절망 가운데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성품이고 기대입니다.

 

죄 용서를 간구(7-9)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상한 심령이 있는지 살피십니다. 상한 심령 없이 기도하고 회개하는 것은 외식이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뿐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고 용서하시지만, 상한 심령 없이는 아무리 작아 보이는 죄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7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7-9)

 

다윗은 자신이 죄악 중에서 출생했고, 어머니가 죄 중에서 그를 잉태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죄에 대해 얼마나 나약한지, 죄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고백합니다. 평생 경건하게 살아온 그가 한순간에 유혹에 무너진 것이 그것을 잘 말해 줍니다.

 

(1) 우슬초로 정결하게 하소서(7)

 

시인은 이제 하나님의 성품에 기대어 1-2절에서 드렸던 기도를 좀더 구체적으로 반복합니다. 시인은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나의 죄를 씻어주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우슬초는 나병에서 나았을 때(민 19:18), 죽음으로 부정해진 자를 씻을 때(민 19:18) 쓰입니다. ‘정결하게 하다’라는 동사도 마찬가지 경우에 쓰이고 있습니다. ‘씻어주소서’(카바스)란 동사는 2절에 나온 바 있습니다. 이것은 ‘빨래하다’란 의미입니다. 자신을 걸레 같은 존재로 본 것입니다. 더러움과 주홍빛 죄가 덮어도 하나님께서 빨래하시면 ‘눈보다 희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흰색은 순수, 정결함, 깨끗함, 기쁨을 의미하기에 용서를 상징하는 색입니다.

 

(2)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8)

 

그렇게 자신이 용서받았다는 ‘즐겁고 기쁜 소식’을 들으면 주님께서 징계하심으로 말미암아 꺾인 시인의 뼈들이 즐거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뼈’는 힘의 근원입니다. 뼈들에 힘이 넘치면 온몸에 힘이 넘칩니다. 그래서 이사야도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58:11)이라고 축복합니다. 시인은 잃었던 건강이나 혹은 깊은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육적으로, 영적으로 치유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3) 죄악을 지워주소서(9)

 

이를 위해 시인은 다시 한번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죄악을 지워’ 달라고 간구합니다. 아무것도 주님 눈에서 감출 수 없으니 이제 방법은 주께서 얼굴을 돌려서 죄를 보지 않으시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1절에서처럼 자신의 죄(값)를 지워달라고 간청합니다. 반역죄뿐만 아니라 그 죄의 실상까지도 흔적 없이 없애달라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 드러나니(시 90:8) 용서와 죄악 지움을 다 함께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사람이 귀한 시대입니다. 겉으로는 잘못했다고 말하고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실상은 제스처만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철저하게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이 더욱 크다는 것을 믿고, 어떤 죄를 지었든지 다윗처럼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받는 자유함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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