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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52-01)


영원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시편 52편 1-9절


 

성경은 종종 사람을 나무에 비유합니다. 특히 시편 1편은 의인을 시냇가에 심긴 나무로, 악인은 바람에 날리는 겨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의 나무와 겨의 이미지처럼, 시편 52편도 의인과 악인의 삶을 선명하게 비교하고 있습니다. 시편 52편을 통해 하나님께 뿌리를 내릴 사람들의 행복을 묵상해 보도록 합시다.

 

  • 선보다 악을 더 사랑하면서 악한 계획과 거짓을 꾀하는 포악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악으로 자기를 강하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멸하시되 땅에서 나무의 뿌리를 빼듯 완전히 멸망시키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의인은 하나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처럼 번성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며 이를 감사하고 더욱 주님을 사모합니다.

 

파괴적인 악과 거짓을 꾀하는 악인(1-4)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도엑과 같이 자신의 이적인 목적을 위해 권력에 아부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상관하지 않는 자들이 유명한 자, 힘 있는 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언젠가 땅에서 뽑혀 나갈 날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악인들이 영웅 대접받는 현실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모습 앞에서 결코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1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4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1-4)

 

시인이 악인을 향하여 고발하는 질문을 하면서 시를 시작합니다.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포악한 자”는 히브리어의 ‘용사’ 또는 ‘강한 자’를 의역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전쟁의 무사로서 힘이든 또는 재물의 풍부함(7)으로든, 어쨌든 권세를 가진 힘 있는 자요 강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 강한 자는 자신의 악행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강한 힘뿐만 아니라 그 힘과 능력으로 악을 행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이 강한 자의 악하고 교만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개역개정에서는 이 강한 자를 “포악한 자”라고 부릅니다.

 

(1) 악인에 대한 고발 질문(1)

 

악인을 고발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라고 말합니다(1). 강한 자가 힘과 악을 무기로 교만하게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때 이에 대한 대안은 변치 않고 항상 지속되는 하나님의 사랑(인자하심)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변함없는 인자하심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므로 포악한 자가 힘과 악행으로 세상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하실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입니다. 1절은 악인과 의인이 인생에서 안전이든 성공이든 무엇이든 그들이 추구하는 방법의 차이를 대조합니다. 악인은 악을 행하는 것 속에서 자신의 안전과 성공을 추구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찾습니다.

 

(2) 악과 거짓을 사랑하는 악인 묘사(2-4)

 

2절은 “포악한 자”가 행하는 악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그가 마음속으로 파멸의 계획을 짜고 거짓말을 하여 이를 실행합니다. 거짓말로 파멸을 일으키는 그의 혀는 마치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날카로운 칼과 같습니다. 그는 거짓의 일꾼이요. 거짓의 달인입니다. 4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는데, 마치 맹수가 짐승을 잡아 삼키듯 그는 사람을 삼키는 말, 즉 남을 해치고 파멸시키는 말들을 좋아합니다. 따라서 “포악한 자”라고 불렀다가 이제는 그를 “간사한 혀”라고 부릅니다. 이는 그의 인격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거짓말을 해서 다른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자입니다. 그의 됨됨이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는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바른 것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말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자입니다(3).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희생시키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파괴되든 상관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선과 악, 참과 거짓의 기준이 없습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5)

거짓과 악한 말로 악을 행하며 해를 끼치는 포악한 자들은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멸망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포악한 자들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확신했기에 악인의 심판도 확신했습니다.

 

5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5)

 

시인은 이러한 “포악한 자”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며 악행으로 이룬 삶을 자랑했던 자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선고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네 개의 단어를 통해 표현됩니다. 멸하고, 붙잡아내고, 장막에서 뽑아내고, 뿌리를 빼실 것입니다. 쌓아놓은 것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리거나 무너뜨리듯 그를 완전히 멸하겠다고 하십니다. 그가 든든하게 여기는 그의 장막에서 그를 붙잡아내어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갈기갈기 찢듯 그를 찢어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치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듯 산 자들의 땅에서 제거되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심판의 표현들이 모두 무서운 파국을 당하되 완전하게 파멸되어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영원히 멸망할 것을 말합니다.

 

악인에 대한 의인의 경계(6-7)

악인의 심판은 공의를 실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 다른 것을 의지하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재물이나 자기 실력을 의지하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입니다. 그렇게 사는 교인들이 많다는 사실은 더 놀라운 아이러니입니다.

 

6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7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6-7)

 

6절과 7절에서는 “포악한 자”의 심판에 대해 확신하는 의인의 반응이 나옵니다. 여기서 의인은 시인이 속한 그룹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악인을 완전하게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보고 의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계로 삼을 것입니다. 또한 악인들의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교훈을 삼을 때 그의 삶이 가소로워 그를 비웃을 것입니다. 1절에서는 그를 부를 때 ‘용사’ 또는 ‘강한 자’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이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살아있을 때는 용사요,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신만만한 강한 자였으나 멸망 후에는 평범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같은 어원의 단어를 사용하여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파멸을 강하게 대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악인의 삶의 특징을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힘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힘”은 원어에서는 ‘피난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자신의 전 존재와 미래를 맡긴다는 뜻입니다. 이 악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 성공이든 안전이든, 무엇이든 가능하고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재물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고,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재물만을 추구하고 자신의 삶을 다 쏟아붓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는 악행으로 자신을 강하게 하고 든든하게 지킬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물을 위해 그리고 재물을 무기로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파멸로 몰아가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악한 자에게 악이 임하고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자에게 파멸이 임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끊이지 않고 영원히 있다는(1)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의인(8-9)

성도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확신함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포악한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확고하게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같이 형통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모순투성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8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8-9)

 

시인은 “포악한 자”와 대조적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시인은 절의 의인의 무리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는 의인은 하나님의 집에 심긴 푸른 감람나무와 같다고 칭송합니다(8),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로 열매도 귀하지만 번성함과 긴 수명을 특징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겼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을 공급받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뿌리가 뽑힌 나무와 같은 “포악한 자”와 달리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뿌리를 박고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 영원히 번성하며 삶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을 받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때문에 영원히 감사하겠다고 서원합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들, 곧 경건한 자들 앞에서 주의 이름을 사모하겠다고 선포합니다(9). 이름은 존재 자체를 나타내므로 주의 이름이 선하다는 것은 주님의 선하심을 말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포악한 자”들에게 심판하실 것이라는 확신은 의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모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호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그 이름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는 자, 선과 의를 사랑하는 자와 악과 거짓을 사랑하는 자, 그 삶이 뿌리째 뽑히는 자와 생명의 근원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는 자가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형태가 있는 것 같으나 인생은 이렇게 크게 둘로 대변됩니다. 이런 면에서 시편 52편은 인생의 두 가지 길,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있으며, 그 각각의 길들의 결과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1편의 교훈을 그대로 반향합니다. 더 나아가 이 시편은 진정한 안전과 부와 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에는 악한 계획을 세우고 자랑하는 강포한 영웅들이 많습니다. 그들 때문에 의인들은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낙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영웅들은 잠시 번영하는 것처럼 보일 뿐, 곧 그 뿌리가 뽐혀 버려진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뢰하며 그분의 말씀과 은혜에 뿌리를 내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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