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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54-01)


생명을 붙드시는 하나님

시편 54편 1-7절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된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라는 말을 수없이 듣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던 믿음이 금세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겪었던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에게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비결을 배워보겠습니다.

 

  • 악한 자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움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만이 자신을 돕는 분이며 자신의 생명을 붙들어주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자신을 구원해주시고 원수에게는 악으로 갚아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ㄴ지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지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낙헌제로 제사를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도움을 구하는 기도(1-2)

 

다윗의 탄식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다윗의 환난과 위기 앞에서 얼마나 건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호소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한 구원이 소망이시기에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게속 부르짖어야 합니다.

 

1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2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1-2)

 

시인은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그리고 네 개의 명령형 동사를 사용해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먼저 ‘주의 이름으로 구원해달라’고 합니다. 사실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해달라는 것은 심상치 않은 기도입니다. 시인은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기에 자신을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해달라고 합니까? 주의 이름으로 구원해달라는 것은 주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구원해주시는 것도 포함하고, 또한 주님의 이름은 주님 자신을 가리키므로 주님께서 가지신 근본적인 성품(성실하심[5]과 선하심[6])과 권세와 능력으로 구원해주시기를 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해달라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특별한 관계는 4절에서 설명해줍니다.

평행을 이루면서 나오는 간구,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는 앞의 간구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주님의 힘으로 나를 변호해달라는 것은 시인이 강한 자에게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암시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대항할 수 없음을 알고 주님의 능력으로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것입니다. ‘변호하다’는 옳고 그름을 가려서 공의로운 판단을 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강한 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에게 잘못이나 불의한 일이 없는데도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고의 재판장이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한 일을 공롭게 판결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 시인은 다시 하나님을 부르며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셔서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의 횡포(3)

이기적인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음’입니다. 하나님을 잊을 때 인간은 자기만 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에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에게 잘못이 없기 때문에 포악한 자들이 그를 죽이려 하는 명분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3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셀라)(3)

 

3절에서는 시인이 하나님께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히브리 본문에서는 3절 앞에 ‘왜냐하면’이 나와서 간청하는 이유, 즉 시인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낯선 자”들의 공격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낯선 자”(자림)의 의미에 대해 이방 민족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방 민족이 이 문맥에서 어색하게 여겨져서 탈굼과 몇몇 히브리 사본에서는 ‘오만한 자’로 고쳐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방 민족이나 오만한 자로 보기보다는 3절 하반절의 ‘그들이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았다’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낯선 자를 일반적으로 모르는 사람, 또는 시인의 편이 아닌, 시인과 전혀 다른 뜻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았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인에게 있어서(4) 낯선 자의 의미는 하나님을 떠나고 언약공동체에 합당하지 않은 자를 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낯선 자들”과 “포악한 자들”, 두 표현이 평행을 이루어 낯선 자들이 포악한 자들임을 말해줍니다. 포악한 자들이 시인을 죽이려고 그의 생명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포악한 자들은 잔인한 폭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자들입니다. “낯선 자들”과 “포악한 자들”은 구약에서 다섯 번 평행을 이루며 나타납니다(시 86:14; 사 25:5;29:5; 겔 28:7; 31:12). 아마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서 잔인함과 폭력으로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자들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공동체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삶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시편 53편의 하나님께서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과 같다.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자들입니다.

 

심판을 구하는 기도(4-5)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성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돌보시고 악인을 멸하시는 섭리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성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약 1:6) 태도입니다.

 

4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5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4-5)

 

다윗은 포악한 자들이 그의 생명을 없애려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로 고백합니다. ‘나의 생명을 수색하는 포악한 자들’ 앞에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내세운 것입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4)

 

시인의 대적에 대해 말하는 3절과 하나님께 대한 시인의 고백을 표현하는 4절은 상반되는 표현을 통해 시인과 대적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히브리 원문에서 4절은 ‘보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보라’라는 말은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시인과 대적의 대조를 강조하는 효과를 갖습니다.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시인은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주님(아도나이)으로 불러 자신의 주가 되심을 환기시키며 강조합니다. 참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킬 만한 고백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요.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이런 신앙고백은 1절에서 시인이 주의 이름으로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근거, 즉 하나님과 시인의 관계를 잘 드러내줍니다.

3절과 4절을 통해 볼 수 있는 시인과 대적의 대조되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적들은 시인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생명을 붙들어주시는 분입니다. 대적들은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이지만, 시인은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고 자신을 돕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인생에서 정반대의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2) 심판을 구하는 기도(5)

 

시인과 하나님과 대적의 관계를 분명하게 밝힌 후, 5절에서는 악인에 대한 심판을 간구합니다. 포악한 자로부터 억울하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했던 시인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악인의 멸망을 위한 간구로 이어집니다. ‘주께서 그의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실 것이다’는 원수가 시인에게 행하려고 했던 악을 원수에게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악이 나온 곳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악의 부메랑을 믿었습니다. 악한 자가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지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정의를 행하실 것을 믿었다. 악은 반드시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 가운데 시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악인들에게 반드시 보응하셔서 그들을 멸망시켜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서원과 확신(6-7)

어려움이 닥쳐오면 주저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생명을 붙드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선택한 결과가 옳은 일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6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7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6-7)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을 확신하며 서원을 다짐합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포악한 자들이 여전히 그의 생명을 찾아다니는 상황이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고 원수에게 보응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1) 서원(6)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구원을 간구하던 시인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자신의 피난처가되시고 악인들에게 합당한 징계를 내리실 것을 확신한 후 이제는 구원을 받고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제사 드릴 것을 바라보고 있다(6절).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는 낙헌제로 하나님께 제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하겠다고 합니다. 악인을 멸하시고 시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함으로 낙헌제를 드리겠다는 서원입니다.

 

(2) 확신(7)

 

히브리 본문에서는 7절 앞에 '왜냐하면(키 2)이 나와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고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똑똑히 보게 하셨다'의 동사들이 완료형으로 되어 있어서 시인이 이미 구원받은 것처럼 보인다. 구원받을 것에 대한 현재의 확신에 대한 근거로 과거에 구원받은 것을 암시하거나, 또는 시인이 구원받을 것에 대해 너무 확신한 나머지 마치 이미 일어난 것처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과 문제 한가운데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시인은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미 구원을 확신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믿음은 어려움의 한가운데에서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시인은 억울하게 당하는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 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그에게는 환난이 더 남아 있었지만, 우리는 그가 이후에 어떤 영광을 얻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환난을 겪지만,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나의 편이시고 나의 도움이심을 경험하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고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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