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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1-02)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부르심

마가복음 1장 12-20절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 또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를, 혹은 무엇을 따느냐에 따라 생활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예수님을 따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삶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나가십니다. 비록 인간적으로 훌륭하지 못하고 평범할지라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를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듯, 지금도 당신을 부르십니다.

 

  •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동안 세례 요한은 헤롯왕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광야의 시험을 승리하신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전파하십니다. 함께 할 일꾼들을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살던 안드레와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형제 네 명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12-13) ⁂【 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종종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 안에 감춰진 다른 동기들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자신은 철저히 낮추면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12-13)

 

복음을 전파하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마태복음 4:1-11). 예수님께 찾아온 공생애의 시작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이나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영혼들은 없고 죽음의 그림자가 회오리바람처럼 감돌며 생명을 위협을 느끼는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마가는 ‘곧’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마태도 ‘그 때에’(마태복음 4:1)란 단어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즉시 광야로 나가서 시험받으셨음을 암시합니다. 이 시험을 이끄시는 주체는 ‘성령’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단편적으로 예수님의 광야 40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동안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내산에서 모세처럼(출애굽기 24:18), 엘리야 이야기처럼(열왕기상 19:8)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죽음과 소외를 맛보았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시험의 시간을 통과하셨습니다(마태복음 4:2).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본질과 결말을 예시합니다. 시종 드는 천사들과 함께 사탄에 대한 영적 전쟁을 수행하셨습니다. 복음서 시작과 더불어 소개되는 예수님과 그 대적들 사이의 대면은 복음서가 앞으로 진술해 나갈 사탄에 대한 예수님의 전쟁을 미리 내다보게 합니다(3:23-30). 그리고 마지막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사탄을 승리하시면서 복음서가 막을 내립니다.

 

시조인 아담의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을 광야로 만들었고,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순종함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었습니다. 광야를 죽음의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장소에 인간을 억류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사탄과 싸워야 했습니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해 바로를 만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권세에 매여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탄을 먼저 만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 승리는 자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확증인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은 항상 에덴동산과 같지 평안하지는 않습니다. 시험이 없으면 좋겠지만, 예수님께서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던 것처럼, 성도들도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성령님과 천사들과 함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이 가득한 세상에서 승리함으로, 광야와 같이 삭막한 세상을 행복 가득한 에덴동산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갑시다.

 

천국을 선포하신 예수님(14-15) ⁂【 마태복음 4:12-17, 누가복음 4:14-15 】

하나님 나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나라를 모두가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나라를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왕과 백성의 관계로 들어가게 해줍니다. 그래서 당신이 세상을 향하여 외쳐야 할 것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서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자.’고 외쳐야 할 것입니다.

 

14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4-15)

 

마가는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시고, 본격적으로 공생애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소개하기 전에,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게 체포된 사실을 소개합니다. 철저히 순종한 세례 요한을 왜 체포와 순교로 사역을 마무리 시켰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게 역사하는 분이십니다.

 

(1) 세례 요한의 체포(14a)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게 체포당했습니다. 그는 헤롯왕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습니다. 그 불의한 일들을 세례 요한이 지적하다가 잡혔습니다(마태복음 14:3).

비록 헤롯왕은 자신의 뜻대로 세례 요한을 투옥한 것으로 진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숨겨진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세례 요한의 사역이 마무리 졌고, 자연스럽게 사역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갑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가 마무리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신약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태는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마태복음 11:13)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부터 세례 요한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2) 갈릴리로 오신 예수님(14b-15)

 

예수님께서는 광야의 시험을 받으신 후, 갈릴리로 옮기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체포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공생애의 메시지를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에는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때(15a)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찾고’는 ‘그리스도 시대’를 의미하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왕권 통치’를 뜻합니다. 이 복음은 창세 이후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이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②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15b)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우리들 앞에 도래한 상태의 표현입니다. 어두움이 물러가기 위해 빛이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적으로 그렇게 많이 기다리던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소적인 하나님 나라’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신 그 나라는 ‘통치적인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미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람들이 어두움의 권세 아래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심령에 이루이지는 예수님께서 주인 되신 나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이면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우리 심령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이루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3:15).

 

③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5c)

예수님께서는 이제 어두움의 세상 나라는 물러갈 때가 이르렀다는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 오셨고,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왕노릇하실 때가 가까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왕을 영접하는 것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회개(悔改)는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복종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해 이제 그의 백성은 합당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와 ‘믿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의 기초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자격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동안의 삶으로부터 돌아서는 회개로 바른 반응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이 시대를 향해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그 선포에 반응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초청하시는 분입니다. 지금도 당신을 초청하시고 그 초청에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천국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16-20) ⁂【 마태복음 4:18-22, 누가복음 5:1-11 】

세상 나라는 모든 세상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과시하면서 화려하고 웅장하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그렇게 시작하지 안 했습니다. 그의 나라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임합니다(4:30-32).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게 시작됩니다. 그 시작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방법이 매우 독특합니다.

 

16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16-2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시면서 차분하게 제자들을 찾으셨습니다. 12제자들 가운데서 먼저 주목 받을 만한 네 명의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제자들을 선택하는 방법은 당시 전통적인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선택하십니다.

 

(1) 매우 평범한 제자들(16,19)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선택할 때는 세상에서 똑똑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직업도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실 때 장면을,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고 소개합니다. 그들은 한가로이 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꾸준하게 자신의 일,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평범하지만 자기를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일꾼의 자격은 뛰어난 재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순종할 사람을 찾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고기 잡던 어부 베드로나 세금을 착취하던 세리 마태 등과 같은 사람들을 선택해서, 위대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군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한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충성스럽게 일할 일꾼을 찾으셨습니다. 지금도 그런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일꾼으로 찾아 부르십니다.

 

(2) 스승이 부르신 제자들(17,20)

 

일반적인 유대인의 풍습에서는 제자들이 위대한 스승을 찾아가서 제자가 되는 방식을 취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신 방법은 일반적인 방법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스승이 제자들을 직접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거닐다가 바다에서 어부로서 일하고 있던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7)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잠시 머뭇거림 없이 즉각적인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자의 길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위와 주도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버려야 따를 수 있는 제자도(18)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먼저 자신들의 생업과 가족을 버려두고 다음으로 예수님만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전체를 통해 강조되는 제자의 길입니다(8:34-37;10:28-30).

모든 제자들은 부르심이 임했을 때, 한결같이 버리고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18)라고 소개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배와 그름과 아버지 그리고 일꾼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배와 그물은 자신의 생명과 같은 매우 중요한 재산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버렸습니다.

물론 그들이 생업과 가족을 버렸다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가족과 모든 관계를 끊어 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1:29-31).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방식과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삶이 정리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는 그분의 삶과 사역에 철저하게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소유가 많으면 순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청년에게 주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9:2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22)고 반응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초대에 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하게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제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 부르심을 받을 때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중요한 도구인 그물을 버렸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보다 더 좋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나 많은 것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다면,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종이 되지 않는 것은 포기하지 못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도 네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순종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버려두는 대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당신을 예수님께서 부르시는데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것이 남아 있습니까? 먼저 부르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버려놓고 온전하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4) 사람 낚는 제자들(17)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한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고기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는 제자로 요구하심과 그 요구에 반응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각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건설과 확장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전수하고 그분의 선교 사역에 동참할 것이 기대되는 것입니다(3:4, 6:7).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사람 낚는 어부들에 대한 언급합니다(렘 16:16). 그런데 예레미야를 통해 사람들은 모으는 목적은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한 것인데,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는 목적은 심판에서 구원하기 위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움켜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면서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당신이 내려놓아야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제자들에게 풍성한 것으로 더 많이 채우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천국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통해 회개하고 믿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수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랐습니다. 세상의 것들이 많으면 무거워서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세상의 자랑거리들은 모두 내려놓고 제자로 따라갔습니다. 당신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내려놓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 같은 세상이 에덴과 같은 삶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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