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22-01)
엘리바스의 불가능한 축복
욥기 22장 1-30절
욥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음에도 엘리바스는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욥을 죄인으로 규정하면서 그 죄가 끝이 없다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맹렬히 공격합니다. 엘리바스가 아무리 옳은 말을 했다고 해도 이런 태도로는 상대방에게 결코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 욥과 친구들 사이의 세 번째 논쟁이 시작되었고, 이번에도 엘리바스가 포문을 엽니다. 이것이 엘리바스의 마지막 발언입니다. 이번 발언의 특징은 규범적 지혜의 일반적인 진술에 그치지 않고 욥의 죄를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물론 엘리바스가 언급하는 욥의 죄는 직접 목격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추론해낸 것입니다.
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불만(1-11)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 아무 이득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겸손과 자기 비하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그 무엇보다 우리 인간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십니다.
1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1-11)
엘리바스는 욥의 경건과 지혜를 조롱합니다. 심지어 인강 자체가 하나님께 별 의미 없는 존재인 것처럼 함부로 말합니다.
(1) 징벌은 죄의 증거(1-5)
세 번째이자 마지막 엘리바스의 발언은 신앙의 ‘유익’에 대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15:3에서 욥의 반성적 지혜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했던 엘리바스의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유익’이라는 단어 ‘사칸’은 엘리바스와 그리고 후에 엘리후의 발언에서만 등장합니다(15:3; 22:2; 22:21; 34:9; 35:3). 욥과 욥기의 반성적 지혜는 신앙을 ‘유익’과 ‘이익’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악인들의 생각이고(21:15) 사탄의 생각입니다(1:9-11;2:4-5).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의(=지혜)가 인간에게 유익을 준다고 믿습니다. 이 규범적인 지혜의 패턴을 아는 것을 통해 재앙(넘어짐과 끊어짐, 패함)을 피할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신학은 한발 더 나아갑니다. 의와 지혜는 인간에게 유익이 되지만 그것이 곧 높으신 하나님께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꼐서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인간에게 지혜를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며, 오직 인간에게 도움이 되게 하려고 알려주십니다. 엘리바스는 이 진술을 욥의 무죄 주장을 타파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욥이 아무리 의로움과 온전함을 주장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3). 그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는 겨우 욥 하나를 바로 잡기 위해 욥을 꾸짖고 심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4).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만드는 것, 욥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3). 하나님마저도 ‘이익’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시므로(뿌린 대로 거두시는 분이므로), 욥에게 재앙이 임한 것은 욥을 교육하고 지혜롭게 만드시기 위함이 아니라, 단순히 욥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5). 기계적인 법칙인 인과응보의 규범이 작동한 것뿐입니다.
(2) 욥이 지은 죄와 그로 인한 결과(6-11)
엘리바스는 욥이 지은, 정확히는 욥이 지었음에 분명한 죄악을 나열합니다. 첫째, 그는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았습니다(6a). “볼모로 잡으며”로 번역된 동사는 ‘하발’인데, 이것은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욥기의 핵심 단어 중 하나인 “까닭 없이(힌남)”가 사용되는데, 이 문맥에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란 뜻입니다. 즉, 욥은 사람들을 부당하게 갈취한 것입니다. 상반절만으로는 어떤 것을 갈취했는지 목적어가 나와 있지 않지만, 하반절의 평행구가 그 빈 자리를 채워줍니다. 소위 ‘계단식 평행법(staircase parallelism)’으로 불리는 것인데, 평행하는 구와 절이 의미를 보충해 주거나 선명하게 좁혀 주는 역할을 합니다. 상반절의 “형제”는 “헐벗은 자”와 평행어로서, 둘이 합해 ‘헐벗은 형제’라는 표현이 완성되고, “볼모로 잡으며”와 “의복을 벗기며”가 합해져 ‘의복을 담보로 잡다’라는 상황이 선명해집니다. 가난한 자의 옷을 담보로 잡는 것은 율법 규정에 어긋납니다(신 24:17). 또한 담보를 맡기고 잡는 일에 속임이나 도둑질과 같은 착취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레 6:2). 둘째, 욥은 부유하면서도 가난한 자를 돕지 않았습니다(7-9). 목마른 자와 주린 자에게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7).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의 율법에 이와 완전히 동일한 표현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약자를 보호하는 규정은 많이 있습니다(출 22:25; 23:11; 19:10; 23:22; 15:4-5,7,11 등). 잠언은 더 나아가, 원수에게까지 물과 음식을 제공하라고 가르칩니다(잠 25:21). 욥은 ‘얼굴이 들린 자’로서 땅을 소유하고 있는 힘 있는 자였습니다. ‘얼굴을 들다’라는 숙어는 ‘편애’를 의미합니다(창 19:21; 32:21;민 6:26; 신 28:50; 삼상 25:35 등등). ‘얼굴이 들린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많은 존경을 받는 자를 뜻합니다(왕하 5:1; 사 3:3; 9:14).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할 규범을 지키지 못하고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 것은 악이며 죄입니다. 고아와 과부는 성경에서 사회적 약자(통칭 “가난한 자”)를 대표하는 상징어입니다. 이들을 보호하라는 명령과 이들을 도와주지 않거나 억압하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는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출 22:22; 10:18; 14:29; 24:17, 19-21; 26:12-13;27:19; 1:17,23; 10:2;7:6; 22:3; 22:7,25; 슥 7:10, 말 3:5 등). 엘리바스에 의하면 욥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은 위에서 열거한 욥의 죄악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악을 저지른 죄에게 “올무”와 “두려움”이 되는 것입니다(10). 악인은 자신이 파놓은 함정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는 주제가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고난은 “어둠”과 “홍수”라는 단어로 비유됩니다(11). 하나님께서 주신 재앙을 어둠으로 표현하는 것은 엘리바스의 말에서 자주 등장합니다(5:14; 15:22,23,30). 욥이 처한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엘리바스의 진단은 한 마디로, ‘까닭 없는 고난은 없다’입니다. 사탄의 ‘까닭 없는 신앙은 없다’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욥의 잘못된 생각(12-20)
우리는 다른사람에게 조언해야할 필요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바로잡아주려는 마음은 좋은 것이지만 그에합당한 태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조언이 사실과 진리에 근거해야합니다. 또한상대방의 반응과상관없이 온유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태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도록 신중히 처신해야 합니다.
12○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12-20)
악인이자 죄인인 욥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잘못되었습니다. 옛적부터 악인들이 걸어온 전형적인 길을 욥도 걷고 있습니다(15). 저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12) 악인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구름 뒤에 계셔서 보이지 않으며 단지 하늘의 궁도를 걸어 다니실 뿐이라고 생각합니다(14). 그런 하나님께서 구름 건너 이 땅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들을 알 리가 없고 따라서 하찮은 일들을 일일이 심판하실 리가 없다는 것이 악인의 생각입니다(13). 악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기를 바라고(17a), 하나님이 인간 삶에 개입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17b). 엘리바스는 이 말을 욥이 했다고 말합니다(13).
물론 욥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욥은 오히려 그와 반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7:19-20; 10:4-6; 13:27;14:3,6; 16:9). 욥을 비롯한 악인들은 이러한 잘못과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생각 때문에 자신의 수명을 다살지 못하고 죽고(“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집은 없어져 버리는 운명을 맞이합니다(16). 엘리바스 자신은 이러한 악인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18b). 이 표현은 욥의 표현을 그대로 모방한 것입니다(21:6). 욥은 이 표현을 재앙이 임하지 않는 악인들의 경우를 묘사하며 사용했는데, 엘리바스는 전혀 다른 문맥에서 같은 표현을 적용합니다. 죄로 인해 징벌을 받는 악인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합니다.
회개로의 요청과 의인에게 임하는 복(21-30)
사람들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힘없는 사람이 자기 앞에서 겸손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러한 마음이 소위 ‘갑질’이라는 형태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자세는 자신을 하나님처럼 이기는 교만함의 극치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욥이 자신들 앞에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21○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28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29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21-30)
엘리바스의 마지막 조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하라는 것입니다(21). 흥미로운 것은 개역개정이 “화목하고”로 번역한 단어는 ‘유익이 되다’라는 뜻의 ‘사칸’입니다. 히필형으로는 ‘익숙해지다’(민 22:30)나 ‘친해지다’(시 139:3)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하나님과 유익한 사귐의 관계로 들어가라는 조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에는 ‘유익’이 있고 유익한 결과가 주어집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직접 귀한 “보화”와 “고귀한 은”이 되시며(25); 기도하고 말하는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27-28). 여기에는 조건(까닭/이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 속에 새기고(22), 악을 멀리하고(23), 자신의 소중한 것을 버리고(25),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고(26), 겸손해야 하며(29), 손을 깨끗이 하고 죄 없는 상태가 됩니다(30). 이로써 엘리바스는 모든 말을 마칩니다. 엘리바스의 정죄는 곧 욥에게 반박을 당하고(23:10-12; 29:12-17; 31:7-40),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도 ‘우매’라는 판정을 받게 됩니다(42:7-8).
모든 성도에게 회개라는 단어는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감정을 넘어 진정한 삶의 변화를 이끕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시는 죄에 머물면서 회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덧입어 참된 변화를 이루고 선한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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