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21-02)
모순된 주장을 비판하는 욥
욥기 21장 17-34절
우리는 믿음대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복 받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을 근본부터 흔드는 때가 찾아옵니다. 그때가 이유 모르는 고난의 시기입니다. 고난 중에는 신학적 물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 부재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 아직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했으므로 현실에서는 다양한 삶의 양상이 나타납니다. 악인들이라도 기력이 넘쳐 기세등등하고 건강하며 안전과 번영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들이 죽을 때조차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도 합니다. 친구들의 말은 한결같이 ‘의인은 흥하고 악인은 망한다’는 법칙을 강조하지만, 이 법칙이 세상에서 그대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심판받는 악인이 드문 현실(17-22)
지금도 악인은 좀처럼 심판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악인의 형통함을 좇아 악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성도는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형통함은 하나님 백성이 영원히 누릴 영과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17○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18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되었도다 19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0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21그의 달 수가 다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17-21)
욥은 악인이 형통을 누리는 엄연한 현실과 악인의 교만한 내면을 지적함으로 친구들이 주장하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얼마나 모순되는지 앞서 지적했습니다. 욥은 나아가 그들의 주장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강조합니다.
(1) 심판 받는 악인이 드문 현실(17-18)
욥은 7절부터 계속해서 현실에서 풍요를 누리는 악인의 삶에 대해 언급하며 세 친구의 ‘악인은 멸망한다’는 논증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악인의 빛과 등불이 꺼지고 자신의 꾀에 빠져 재앙을 당한다”(18:5-12)는 빌닷의 주장에 “얼마나 자주 악인들의 등불이 꺼지고(갑자기 죽고), 그들에게 재앙이 닥치며,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재앙을 할당받느냐?”고 반문합니다. 또 “얼마나 자주 악인이 바람과 폭풍과 같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받아 이리저리 날려가는 지푸라기나 겨(시 1:4)와 같은 처지에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친구들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재앙에 처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욥의 반론입니다.
(2) 악인의 징벌과 후손(19-21)
덧붙여, 욥은 “악인의 징벌이 후손에게 미친다”는 친구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18-19절에서 언급된 것처럼 그의 생애에 일어나지 않고 연기된다면 욥의 친구들은 십중팔구 “하나님이 악인에 대한 처벌을 자손에게 내리시려고 쌓아 두신다”(5:4에서 엘리바스의 주장; 20:10에서 소발의 주장)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자녀가 아니라 죄를 지은 바로 그 장본인에게 갚으셔서 그가 직접 깨닫도록 하셔야 할 것이라고 욥은 주장합니다. 악인이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한 자신의 멸망을 직접 목격하여 전능자의 진노를 마셔야 하지, 만약 악인이 수명이 다해 죽거나 중간에 죽으면 죽고 난 후에 자기 자손이나 자기 집이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말하며 친구들의 주장을 일축합니다.
이와 같은 욥의 주장은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말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선지자들은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이 이가 시리다”라는 속담을 예로 들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자기들이 아닌 후손에게 임할 것이므로 자기들은 상관없다며 죄를 계속 저지르는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그런 속담을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신포도를 먹는 그 자가 이가 시림같이 각기 죄악으로 죽을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선포하였습니다(렘 31:29-30; 겔 18:2-4).
두 사람의 죽음(22-26)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겸손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삶의 지식과 경험을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가르치고 전하는 일은 욥의 친구들이 전한 헛된 위로이며 거짓된 가르침과 같을 뿐입니다.
22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23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4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25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23-26)
욥은 악인의 멸망을 주장하는 친구들의 변론이 결국 자신을 정죄하기 위한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집과 장막을 무너뜨리신다는 거들의 주장을 반박하여, 여전히 악인의 장막이 세상에 존재하며 악인의 운명이 항상 파멸로 끝나지 않음을 말합니다.
(1) 지혜로운 심판자 하나님(22)
욥은 친구들의 자만과 주제 넘은 행동을 빗대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높은 자들을 심판하는 심판주이신데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려 드느냐고 책망합니다. 이와 같은 욥의 물음은 이사야 선지자가 장래에 실현될 여호와의 통치를 예언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조언자도 스승도 없지만 그의 지혜와 비교할 자가 없는 창조주이며 전능자라고 언급한 것(사 40:13-14)을 상기시킵니다. 친구들은 전통과 유전을 통해 배운 제한적인 지식과 경험을 너무 의존한 나머지 욥이나 이사야가 지적한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헤아릴 수 없는 권능을 미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교훈하시는 스승이심(욥35:11; 36:22)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해 치우치게 주장하였습니다. 욥은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2) 서로 다른 두 삶의 같은 운명(23-26)
친구들이 주장하는 ‘의인은 번성하고 악인은 멸망한다’는 공식이 현실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욥은 이제 “서로 다른 두 삶을 사는 사람에게 같은 운명이 임한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이는 기력이 넘치고 신체도 튼튼하여 안전하고 평안히 죽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슬픔과 고통을 품고 행복을 맛보지 못한 채 죽습니다. 여기서 전자를 악인으로 후자를 의인으로 볼 수도 있고 악인이나 의인으로 나누지 않고 이해해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욥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마다 어떠한 다른 삶을 살든 죽으면 결국 흙에 눕고 썩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한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인생은 결코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으며 삶이 어떤 정해진 형식에 따라 흘러가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친구들의 헛된 위로를 거부(27-34)
우리는 이 진리를 기억하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사로 위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의 자리에서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하도록 서로 도와야 합니다. 구주 예수님이 친히 고난 당하셨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우리를 넉넉히 도와주십니다. 이 진리로 서로를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27○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28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31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32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34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27-34)
욥은 악인들도 번영을 누리며 살다가 영광스럽게 죽어 간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의인들이 불행한 일을 겪는 현실의 모순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세의 삶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1) 친구들의 헛된 위로를 책망함(27-28)
욥은 친구들이 욥을 도와주려는 의도는 없이 오히려 해하려는 속셈이 있음을 다 안다며 친구들에 대한 원망을 표현합니다. 친구들이 그러한 의도가 있지 않다면 어찌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욥에게 계속해서 ‘인과응보’의 공식만을 주장하겠습니까?
(2) 악인을 둘러싼 현실(29-33)
욥은 이제 악인의 추악한 삶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천하에 명백히 드러날 것이라는 친구들의 말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빌닷은 악인이 망하여 그의 후손이나 그가 거하던 곳이 다 없어질 것이며 동서남북 사방에서 오는 여행자조차도 악인의 최후 소식을 듣고 경악할 것(18:17-21)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악인이 어디를 가든 재앙과 사망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18:7-13). 이와 유사하게 엘리바스도 악인에게 평생 고통이 있고 형통할 때에도 재앙이 찾아온다고 주장하였습니다(15:20-25). 소발도 악인이 재물을 착취하여 삼킨다 해도 형통함과 즐거움이 그에게 없고 하나님의 진노가 비처럼 다고 하였습니다(20:12-29).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마땅한 진노를 내리시면 차라리 낫겠는데, 악인들은 유유히 재난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악인에게 그의 가는 길이 재난의 길이라 책망하며 누가 그의 사악한 소행을 갚아주겠느냐?”고 욥은 묻습니다.
욥은 마지막으로 악인의 죽음이 임박하고 죽은 후에다 잊힐 것이라는 친구들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악인이 누리는 영화가 그가 죽어 매장될 때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악인의 발자취가 완전히 끊어지고 사람들에게 잊힐 것이라고 빌닷은 주장했지만(18:17-21), 현실에서는 악인이 죽으면 그를 추종하고 옹호하던 많은 자들이 무리를 지어 무덤에까지 그와 동행해주며 그의 덤을 지켜주기까지 한다고 욥은 반발합니다. 악인이 죽어서까지 이런 대접을 받으므로 그가 묻힐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길 정도라고 말합니다.
(3) 친구들의 헛된 위로를 거절함(34)
욥에게 있어 친구들의 위로는 ‘조롱’을 넘어서서(21:3) ‘헛된 위로’이며 친구들의 말은 거짓입니다! 앞서 2절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처지를 이해해주는 것이 욥이 친구들로부터 원하는 ‘진정한 위로’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욥의 처지에서 이해하려 들기보다 욥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욥을 조롱하며 회개를 강요하여 욥에게 ‘헛된’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헛된’으로 번역된 ‘헤벨’은 전도서 저자가 인생의 ‘허무함’을 토로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또한 ‘우상’의 뜻도 있어 여기서는 친구들의 말이 욥에게 허무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틀에 박힌 사고만을 주장한다면 거짓된 것이나 우상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한 가지 방법으로 악인과 의인을 대하지 않으심이 명백한데 친구들이 계속해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욥에게 그 사상을 주입하려 하는 것은 분명 욥을 위로하거나 도우려는 의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친구들의 매정하고 혹독한 말과 태도에 욥의 속은 더 타들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날이 더디게 온다고 잠들어서는 안 됩니다. 깨어 사시기 바랍니다. 바른 진리로 서로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심판을 향해 내달리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주님이 이 땅에 임하셔서 악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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