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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7-05)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내신 예수님

마태복음 27장 57-66절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두 진리는 개인과 교회 신앙의 근본이자 발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며 좁은 길의 신비를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제자도는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깊이 생각하며 영원히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일입니다.

 

  • 본문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매장하고(57-60) 여자들이 무덤을 향해 앉아 있는 장면(61)과 유대 지도자들이 빌라도의 도움으로 무덤을 차단하는 사건(62-66)으로 구성됩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예수님(57-61)

증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직접 보고 만졌다는 것은 몸의 부활에 대한 신앙의 근거입니다. 기절도 아니고 영혼만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몸이 없는 인간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몸의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몸으로 행하는 사랑이고, 몸을 위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57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57-61)

 

예수님께서 예언의 말씀대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스스로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죽음을 취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십자가에 처형된 시신들을 방치되어 독수리나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말합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장사 되지 않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반역에 동참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없이도 못살 것 같던 사람들도 이 순간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는 아리마데 요셉(57-58)

 

저녁이 되었을 때,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등장합니다. 본문에서는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57)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라는 제자가 빌라도를 찾아갔습니다.

유대 문화에서 저녁이 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 이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에 죽으셨고(마가복음 15:42; 23:54; 요한복음 19:31,41) 날이 저물었습니다.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고 안식일은 62절의 ‘이튿날’, ‘준비일 다음 날’이므로, 아직은 안식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뒤 셋째 날(주일)에,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28:1). 안식일이 되기 전에 빨리 시체를 수습해서 매장해야 합니다.

요셉은 아리마대 출신의 부자였습니다. 마가는 요셉을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마가복음 15:43)고 설명했지만, 마태는 그를 부자로 묘사합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고 새 무덤을 제공할 정도의 재력이 있었습니다. 당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잘 갖춰진 무덤을 제공하는 호의를 보이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처형을 당한 십자가형 범죄자였기에 그의 시체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미 열한 제자들이 도망할 정도로(참조. 26:56; 27:55-56) 예수님과 엮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예수님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요셉은 참 제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태는 ‘또한 예수의 제자였다’라며 요셉을 예수님의 제자로 소개합니다.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58). 요셉은 부자였고 명성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빌라도에게 요청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미리 빌라도를 찾아가서 허락을 받았을 것입니다. 빌라도 역시 예수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다루는 것을 원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범죄자로 취급받은 사람의 사체마저 외면하지 않는 의인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낸 요셉(59-60)

 

요셉의 요구에 빌라도는 응답하였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끌어 내렸을 것이고 요셉은 곧바로 시체를 수습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깨끗한 세마포로 쌌습니다. 이것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요셉이 새 무덤과 새 세마포를 사용했음을 의미합니다. 세마포가 어떤 종류의 옷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나체 상태의 시체를 급히 덮을 용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시체에 세마포로 만든 옷을 입혔는데, 본문에서 시체를 쌌다고 표현한 것은 그런 방식의 옷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요셉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매장해야 하는 급한 상황에서 비참한 대우를 받고 걸레처럼 찢긴 몸을 존귀하게 다루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바위를 뚫어 만든 자신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두었고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놓고 갔습니다(60). 마태는 ‘새’ 무덤인 것을 강조합니다. 누가에 따르면 새 무덤은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이었습니다(누가복음 23:53). 십자가에서 처형된 자는 영예로운 곳에 묻히지 못했으나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위해 새 무덤을 제공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자들은 영에로운 곳에 장사하지 못했지만, 요셉은 당시의 범죄자들이 장사된 것과 다르게 예수님을 영예롭게 매장했습니다.

 

(3) 예수님의 장사에 대한 또 다른 증인들(61)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하는 과정에는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 맞은편에 앉아 보고 있었습니다(61). 그녀들은 십자가 현장에도 있었습니다(55-56). 61절의 ‘그곳에 … 있었다’는 표현은 55절에서 여인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는 내용과 유사합니다.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은 십자가 현장에 있었고, 시체가 묻힌 장소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요셉과 여자들은 죽은 예수님에게 끝까지 지켰습니다. 마태는 시체와 무덤을 목격한 증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아리마대 요셉이 목격자들의 이름입니다.

요셉은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따른 제자들이나 무리와 달리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다만 예수님을 위해 또는 예수님 때문에 희생합니다. 그는 재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19장의 부자 청년과 대조됩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으나(19:16-24), 요셉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로 죽은 자의 시신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요셉은 제자도의 좋은 모본입니다.

여자들 역시 참 제자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죽은 메시아의 길을 이들은 끝까지 따릅니다. 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목격자들 가운데서 더 이상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중심을 차지합니다.

본문의 여성들은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강한 사람들입니다. 여성들이 하늘나라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서 소외되거나 주변부로 몰리는 일은 수난 이야기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믿음 혹은 예수님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은 더 이상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믿음이나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최우선 되는 일로 여깁니다. 제자는 얻게 되는 부산물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합니다.

 

돌로 무덤을 지키는 사람들(62-66)

종교 권력은 예수님을 우습게 여겼지만, 그의 영향력을 인정하였습니다. 기득권 유지에 자신의 방해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회자 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특별 경계령을 내려 원천봉쇄하였습니다. 진짜여서 두려워한 것입니다.

 

62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62-66)

 

예수님의 죽음 뒤에 예수님의 죽음을 염려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자들이 시신을 탈취한 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인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1) 무덤을 지키도록 요구한 종교지도자들(62-64)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한 장면을 잇는 본 단락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무덤을 굳게 지키려는 음모를 꾸미는 내용을 다룹니다. 이튿날, 즉 준비일 다음 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모였습니다(62).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한다는 정보에 따라 속임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회의를 열었습니다(63).

유대 지도자들은 로마 총독에게는 ‘주’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진정한 주이신 예수님께는 거짓말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셋째 날까지 무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명령해달라고 부탁합니다(64). 그래야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치고는 예수가 살아난 것으로 사람들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를 세웁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여전히 백성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또한, 그들은 만일 백성이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면, 순교자가 부활한 것으로 생각해서 메시아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했을 것입니다. 순교자가 부활했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순교자가 죽기 이전보다 더 위험한 일이므로 이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지킬 병력을 빌라도에게 요청합니다.

 

(2) 종교지도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빌라도(65-66)

 

총독 빌라도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합니다(65). 그는 아리마대 요셉에게 예수님을 장사하도록 허락했고 반대쪽의 입장도 들어줍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만인의 요청을 들어주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경비병은 로마 군인들이며(참조, 28:14)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도록 허락합니다. 또는 ‘너희가 갖고 있다’를 명령형으로 이해하면 빌라도의 경비병을 사용하라는 뜻이 더 명확해집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큰 돌로 무덤을 막았으나 경비병들도 시체를 지킬 목적으로 이 돌을 전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막아버립니다(66). 경비병들은 돌과 무덤 사이를 봉인 함으로써 무덤을 안전하게 지켰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따른 여인들은 이 무덤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무덤을 열 이유는 없으므로, 봉인한 것은 부활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사건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자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서 인간의 안전장치인 돌을 제거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는 돌은 일시적으로는 성공으로 보일 수 있을지라도 반드시 제거됩니다.


 

세상이 버린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죽음은 생명이요 부활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묶어둘 수 없었습니다. 부활 신앙은 인생길이 어떠하며, 세상의 진리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신 예수님에 대한 확증이자 그 생명으로의 대담한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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