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04-01)
삶을 위한 경쟁(1)
전도서 4장 1-8절
요즘은 책이 잘 팔리지 않습니다. 그중에 조금 팔린 책은 ‘자기관리’, ‘리더십’, ‘시간관리’, ‘성공학’ 등이 있습니다. 사회적 풍토가 그러다 보니깐, 기독교 서적들도 그런 종류의 책들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한결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책의 방향들은 자신의 목적(비전)을 이루기 위한 지침서들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합니다. 이렇게 노력을 해서 꿈을 이룬 사람들은 행복할까요?
솔로몬은 꿈을 이룬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고 있습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 중에는 행복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아주 극소수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이룬 꿈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합니다. 꿈을 이루었지만 자신보다 더 큰 것이 있음을 보고 시기와 질투합니다. 꿈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삶이 공허합니다. 이 말씀은 꿈을 이룬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만족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권위를 위해 산 사람(1-3)
얼마 전까지도 우리나라도 미얀마처럼 권력에 의한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민주’와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잡아서 투옥시키고 고문하고 심지어는 암암리 사형까지 시켜버렸습니다. 이렇게 포악한 이유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또 무력입니다. 무력이 있는 권력자들의 포악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아무 말 못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분이 끓어올라서 화병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1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1-3)
죽음으로 끝이 날 유한한 인생의 본질을 살폈던 전도자는 이제 실제적인 삶에서 드러나는 부조리함과 고통에 눈을 돌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실례를 들며 설명합니다.
삶의 실상에서 드러나는 부조리와 고통과 관계해서 전도자가 첫 번째로 지적한 문제는 ‘학대(虐待)’와 ‘압제(壓制)’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나 이것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사회적 배경은 지금부터 3000년 전입니다. 하지만 저도서 4장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느껴집니다. 동물에게만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도 역시 약육강식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사람들의 타락한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솔로몬 당시에도 많이 보았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1)라고 합니다. 학대 받은 자들은 당연히 그 가혹함으로 인해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고통을 더하는 것은 학대 자체보다 불의가 계속 자행된다는 사실입니다. 학대로 인한 고통은 물론 공의가 행해지지 않는 현실로 인한 절망과 억울함으로 더욱 괴롭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학대를 받으면서도, 힘 있는 자의 권세가 무서워서 아무 말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더 힘든 것은, 억울하게 당하는데도 어느 한 사람 위로해주지 않은 것입니다.
학대와 압제가 자행됨에도 그것이 시정되지 않는 불의한 현실의 심각성에 대해 전도자는 크게 두 가지로 지적합니다. 첫째는 학대받는 자가 무고히 당하는 고통으로 인해 슬퍼하나 이를 관심을 가지고 위로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각박하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학대하는 자는 권세를 가진 자로서 공의를 시행할 책임과 의무가 그에게 있음에도 오히려 무고한 자들을 압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으로서 전도자는 이 같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큰 관심과 책임을 느끼고 이를 바로잡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어느 한 사람의 의지나 능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계와 절망을 느껴 다음과 같은 토로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2-3)
문제는 인식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길이 없다면 남는 것은 절망뿐입니다. 학대와 억압이라는 부조리와 모순을 해결할 수 없기에 고통은 필연적입니다. 따라서 이런 고통을 당하고 사느니 죽는 게 낫고 그보다는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권력을 잡고서 무력을 행하는 사람들은 심리는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폭력을 가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목적이 권력이었습니다. 이것을 성취했지만, 누가 자신과 같이 폭력적으로 권력을 빼앗아갈 것 같으니까, ‘자기 보호의 본능’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고생해서 얻은 권력을 누군가가 빼앗아가 가버리면 헛고생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행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이렇게 폭악한 정권을 잡은 지도자 되어서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는 권력을 잡아서 권력의 능력을 누르고 살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역사에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렇게 얻어서 폭력으로 백성들을 지배하다가 죽어간다면, 그가 잡았던 권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의 권력자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권력자를 위한 기도를 권합니다(딤전 2:1-6).
경쟁심을 위해 산 사람(4-6)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우에 사람들이 불행한다고 하는 이유가 물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아마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과거 조선 시대 왕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행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불행을 느끼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을 다른 사람과의 ‘비교(比較)’ 때문입니다.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실상 가운데 전도자가 지적한 두 번째 사례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경쟁심, 즉 시기심입니다.
4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4-6)
많은 사람은 오늘도 새벽부터 돈을 벌기 위해 삶의 현장으로 달려나갑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수고한 만큼 모든 것을 자신이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많이 가지면 정말 행복합니까? 사람은 만족이 없습니다. 평생 물질을 쫓아가다가 죽습니다. 이러한 삶을 행복이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솔로몬의 말을 들어봅시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4)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본성은 다른 사람의 성취와 업적에 대해 순전한 마음으로 칭찬하고 박수치기 보다는, 그것을 이루지 못한 자신과 비교하여 부러워하거나 시기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웃이 잘되는 것을 못 견뎌 경쟁적으로 일을 벌이고 수고합니다. 다시 말해 시기심은 세상의 온갖 노력과 성취의 근거가 되고 이로 인해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웃집에 좋은 것을 가지는 것을 못 봅니다. 어렸을 때, 이웃집 사람들이 그런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시기(猜忌)를 하던지, 밥그릇 하나까지도 좋으면 안 됩니다. 좋은 밥그릇이 있으면 어느 때는 이웃집의 부엌에 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삶은 아무리 좋은 것을 성취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시기는 좋은 편으로 보면 경쟁심이 발동됩니다. 당사자는 평생 불행합니다. 그들은 계속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스스로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5)라고 말합니다. 즉, 자신을 파멸시킨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진정한 행복은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6)고 권합니다. 이곳에서 “한 손에만 가득하고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란 말씀은 번역을 쉽게 하면, ‘두 손에 가득히 수고를 가지는 것보다, 한 손 가득히 평온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좋다(Better one handful with tranquillity than two handfuls with toil(NIV))’라고 번역한 것이 좋습니다.
시기심은 세상의 온갖 노력과 성취의 근거가 되고 경쟁심으로 수많은 것을 얻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양손에 수고(고생)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적은 것을 가지고도 행복한 사람은 잘 조절(control)이 잘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기심은 세상의 일에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으로 세상에는 많은 일이 시작되고 성취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런 경쟁심은 그 동기가 선한 것이 아니고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줍니다. 따라서 그로 인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도자는 시기 때문에 열심히 수고하며 일하는 사람을 게으른 사람보다 낮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라는 말은 게으른 자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 평가로서 부정적인 말이지만, 전도자는 시기심으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자보다 이들이 못하다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방문하고 있습니다. 즉 조금 덜 가지고 덜 이루며 평안하게 사는 것이 고통 속에서 경쟁적으로 일해 많이 가지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시기(猜忌)에 의한 경쟁심으로 일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그에 관한 결과는 불행입니다. 시기를 통해 당신이 아무리 많이 얻었다고 할지라도 불행할 뿐입니다. 이것은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물질을 위해 산 사람(7-8)
모든 사람은 결국 어떤 것엔가 또 누구에겐가 항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돈, 분노, 혹은 두려움, 자만심, 욕망 그리고 자아에 항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상을 만들어 그것에 항할 것입니다.
7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7-8)
솔로몬은 한 가지 헛된 일을 보았습니다. 자녀가 없는 사람이 물질을 악착같이 벌어 들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의 대부분은 노년에 의지할 것이 돈밖에 없다고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들립니다. 머리에 바늘도 안 들어갈 정도로 구두쇠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인생의 종말에는 물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생을 물질에 목숨 걸지 마시길 바랍니다. 물질이 나를 따르게 만들어야지, 사람이 물질을 따르면 그처럼 추잡한 것이 없습니다.
물질 또한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인간이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피조물에 매이는 것은 그것 또한 우상 숭배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물질이 기준이 됩니다. 사람을 판단하는데도 돈입니다. 돈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도둑질도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 돈 거립니다.
솔로몬은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무엇이 헛되다는 말을 한 것입니까? 물질입니다.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물질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악합니다. 물질만을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악한 것입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당신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 두었습니까? 권력에 목적은 둔 사람은 권력 때문에 초라해집니다. 시기심에 발동하는 사람들은 시기심은 살인까지 불러옵니다. 물질에 목적을 둔 사람들은 물질 때문에 망합니다.
피조물을 따르는 사람은 피조물이 우상의 대상이 됩니다. 비록 그것을 우상처럼 모시지 않아도, 삶 자체가 피조물로서 우상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당신을 따르게 하십시오! 피조물을 지배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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