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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04-02)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

빌립보서 4장 10-23절


헌금은 항상 민감합니다. 복 받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거나, 반대로 아예 무시당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복음 사역을 위해 보낸 선교 헌금을 받고 매우 기뻐합니다. 동시에 성도들이 그의 기쁨의 원인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전합니다.

  

교회 내외적 문제들에 대한 마지막 권면을 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교회가 보내준 선물에 대해 감사합니다. 하지만 감사 표현이 또 다른 선물을 요구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조심하면서 교회가 보내준 선물의 의미를 계속 부연합니다. 이후 빌립보 교회가 인사하라는 것과 함께 독자들을 향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인사를 전달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전달한 선물에 대한 감사(10-20)

성숙함은 절대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배우고 훈련해서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재정적 문제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인정함으로 자족함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습이 구체적 영역에서 성숙해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0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10-20)

바울은 자기의 괴로움에 동참한 빌립보의 형제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바울이 사역 초기에 마게도냐를 떠날 때 주고받는 일에 참여한 교회는 빌립보 교회뿐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처럼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실 때, 손을 펴서 돕기를 주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1) 선물에 대한 감사(10)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말함으로 빌립보 교회의 선물에 대해 감사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선물을 ‘나를 생각하던 것’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물질 차원이 아니라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주고받음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아마도 한동안 교회는 바울이 필요한 것을 돕지 못했던 듯합니다. 바울을 생각하는 것이 다시 일어났다고 말하고, 생각이 있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절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선물을 밝히는 속물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제 다시 싹이 났다’는 표현입니다. 그동안 안 했던 것에 대해 나무라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자신이 기뻐한 것은 순수하게 독자들의 사랑의 마음 때문이었음을 11-13절에서 부연합니다.

(2) 오해의 여지를 없앰: 선물을 더 요구하는 것이 아님(11-13)

10절 표현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설명을 추가합니다. 자기가 무엇인가 부족해서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이미 지나온 과정 동안 없어 본적도 있고 풍족하게 누린 적도 많기에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13). 이 말은 하나님으로 인해 불가능한 일이나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의지해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가난한 상황이 해결 안 될지라도 여전히 만족하며 사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기쁨은 단순히 선물이라는 물질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1차적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독자들의 사랑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후 14-20절에서 바울은 그 선물의 의미와 그에 대한 반응들을 서술합니다.

(3) 선물의 의미 1: 바울의 사역에 동참한 것(14-16)

11-14절과 연결해 독자들이 전한 선물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비록 선물을 계속 바라고 기뻐한 것은 아니지만, 바울이 어려운 처지에 있던 것은 사실이고 그들의 선물은 큰 도움이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다’는 표현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바울과의 관계에 근거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 선물은 독자들이 바울을 도왔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복음 사역에 동참한 것입니다. 이미 독자들은 교회가 세워진 이후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에는 스스로 일하면서 경비를 충당했지만, 그때에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헌금은 받았습니다(고린도후서 11:9). 아마도 고린도 교회의 것은 교회의 분열과 경쟁에 휘둘릴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빌립보 교회의 것은 순수하게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주도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구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로마서 15:26). 이런 면에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보내온 선물은 물질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지만, 바울이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에 함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7의 표현처럼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독자들이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된 것입니다. 보내는 선교사의 일을 잘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4) 선물의 의미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목(17-18)

빌립보 성도들이 보낸 선물의 또 다른 의미를 설명합니다. 14-16절에서 말한 내용이 마치 후원을 요청하는 것 같은 오해를 낳을까 봐 바울은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다’라고 다시 말합니다. 불욕에 어두운 사람으로 보일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후원했던 일을 말한 까닭은 그들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상업적 표현으로 독자들의 계좌에 이익이 쌓인다는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독자들이 했던 과거와 현재의 동참이 왜 그들에게 이익인지 두 가지 이유를 통해 서술합니다. 첫째, 이미 바울은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경험하고 있기에 그의 표현은 욕심이나 아첨의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독자들의 행위를 인정하고 칭찬한 것이며 그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입니다. 둘째,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보내준 선물이 감사한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그 선물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고, 그분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묘사합니다. 자신을 신격화하여 자기에게 한 일이 그분께 한 일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를 사랑한 것과 복음에 동참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의 표현처럼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살아 있는 제물로서의 삶입니다. 예배 표현을 사용해 하나님께서도 칭찬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 선물에 대한 반응: 하나님이 갚아주심을 바람(19-20)

독자들의 선물에 대한 바울의 반응입니다. 18절의 ‘채우다’라는 말과 연결해 이전에 독자들이 바울의 필요를 채웠기에, 이제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모든 풍성한 대로 독자들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물질적으로 줄 것이 없고 그런 상황도 아닙니다. 대신 ‘나의’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평생 바울과 함께하셔서 그의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이 독자들의 모든 필요도 채우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하나님의 채움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하나님/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 됨으로 복음 사역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그분의 은혜를 얻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채움의 삶은 하나님, 곧 ‘우리’(바울과 독자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귀결됩니다(20).

1:9-11에서 독자들의 삶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중 정체성으로 잘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원하는 목회자의 마음과 궁극적으로 삶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께로 맞춘 신앙인 바울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안 인사와 축도(21-23)

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성격과 성장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차이를 넘어 서로에게 문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반겨 주고 따뜻하게 인사하는 것에서부터 교회의 연합은 견고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상처를 받아 관계가 소원해진 지체에게도 먼저 악수를 청하기 바랍니다.

21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21-23)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전하면서, 특히 로마 황제의 집 사람들 중 몇 명이 빌립보의 집 사람들에게 전하는 인사를 언급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1) 문안 인사(21-22)

편지의 마지막 부분인 문안 인사입니다.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함께 있는 형제들, 곧 바울의 동역자들이 문안합니다. 아마도 디모데와 누가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또한 특별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몇이 바울의 편지를 통해 빌립보 성도들에게 인사합니다. 이들은 황제에게 속한 노예나 자유민으로서 예수를 믿는 어떤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인사는 빌립보 교회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놀랍고 반가운 소식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처럼 로마가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황제가 아닌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 축도(23)

빌립보 성도들의 심령에 함께하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독자들의 모든 영 안에 가득하기를 원하는 축도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바울 편지의 전형적인 마무리입니다.


빌립보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교회를 향한 바울의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는 사도 바울의 어려움을 돕고 사도는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관계 안에 흐르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오늘날의 교회에 절실합니다.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 간에, 그리고 성도들 간의 관계가 사랑으로 연합할수록 교회는 이 어두운 세상을 향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거룩한 능력을 강력하게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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