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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03-02)


할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2)

빌립보서 3장 12-21절


차마 내 말보다 내 행동을 본 받으라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나처럼 사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목회자가 과연 존재하겠습니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바울이 부러우면서도 딴죽을 걸고 싶어집니다. 도대체 바울은 어떤 삶의 길을 걸어왔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유대 할례주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경고를 계속 이어갑니다. 이전 문단에서 자신의 회심 이전과 이후 상태를 비교 설명한 바울은 12절부터 부르심의 상을 향한 지속적 추구의 모습을 언급하고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적용 권면을 이어갑니다. 17절부터는 땅에만 마음 두고 사는 자들과 다르게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살라고 말합니다. 바울 자신과 그의 모습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의 모본을 제시합니다.

 

할례주의자로 인한 위험을 경고(12-14)

 교만한 사람들은 ‘이만하면 됐다.’, ‘더 이상 무엇을 섬기겠는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교만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많은 경험과 경력과 수고와 열매를 가졌지만, 그러한 교만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12-14)

앞 강에서는 신앙생활을 할 때 주의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폈습니다. 본문은 바울을 통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건강한 신앙을 위한 태도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7-11절에서 언급한 회심 이후 상황과 연결해 계속되는 신앙 여정의 모습을 말합니다. 특별히 이전 부분이 주로 가치 비교라는 사고 영역과 관련 있다면(7-8), 이 부분은 그와 관련한 태도와 행위도 보여줍니다. 비록 현재 모습이 회심 이전과 분명한 차이를 가기고 인지만, 바울은 모든 것을 다 이룬 상태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8)이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좋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는 것(11)도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한 추구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단지 부족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그분이 다메 섹으로 가는 길에 먼저 바울을 잡으셔서 거룩한 관계를 시작하셨기에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 것입니다(12).

바울은 이 추구의 모습을 13-14절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형제들아’라는 것으로 먼저 주의를 집중한 후 지금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과거 경험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추구 과정을 강조한 것입니다. 마치 경주자가 종착점을 향해 날리듯 미래에 허락될 온전한 것을 위해 계속 달린다는 말입니다. 경주자가 이기면 월계관을 상으로 받듯, 신앙의 경주 끝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로부터 하나님이 부르신 것에 대한 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된 하나님과의 새 언약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의 관계에 끝이나 완성은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지식으로 관계가 더 깊어갈 뿐입니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더 깊고 친밀한 관계의 시작인 것처럼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그분을 알아가고 그로 인한 사랑이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추구하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무엇이고 그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짜로 알기 때문입니다.

 

참 모본을 따라 바르게 살라(15-16)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 가는 것은 일생 동안 추구해야 할 과제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성공적인 믿음의 경주자에게 상급을 수여하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일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15-16)

바울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그리스도를 닮아 가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주실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미 얻은 구원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믿음의 경주를 달릴 것을 권면합니다.

(1) 이것들을 생각하라(15)

14절까지의 설명에 근거해 ‘우리’라는 표현으로 독자를 포함한 신자 삶에 대한 적용 권면을 합니다.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생각의 영역입니다(15). 온전한 자들은 이것을 생각하자고 합니다. 명령형 대신 권면의 가정법을 사용했지만, 단순 명령보다 더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바울과 동일한 생각을 품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강요는 아닙니다. 혹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서도 계시하실 것이라는 말을 추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리고 믿음이 연약한 자에 대한 배려도 담고 있습니다.

(2) 성숙의 각 단계에 충실하게 살라(16)

권면의 또 다른 차원은 행위 영역입니다(16).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그 단계에 맞게 행하라고 합니다. 지속적 추구 과정을 전제로 매 순간을 그리스도와 함께 정성스럽게 살라는 말입니다. 이런 두 요소를 담고 있는 바울의 권면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한 사고 영역 변화를 통해 믿음의 성장과 추구를 계속해가되 각 단계마다 충실히 살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참 모본을 따라 바르게 살라(17-21)

최선의 학습 방법은 모방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주님을 닮기 위해 치르는 모든 수고를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노력에 대해 보상하고 갚아 주기를 기뻐하십니다. 무의미한 세상의 칭찬과 가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직 위에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끝까지 달라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7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17-21)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전함을 닮아 가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는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을 눈질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와 세상에 양다리를 걸칩니다. 그들은 세상 것에 더 마음을 둡니다.

(1) 명령: 바울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본 받으라(17)

‘형제들아’라는 표현으로 신앙의 모본을 따르는 주제로 옮겨갑니다. ‘너희’라고 표현한 독자들에게 두 그룹의 모본을 소개하고 그들을 따르라고 합니다. 한 그룹은 ‘나’로 표현된 바울 자신입니다. 그가 완전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전 내용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계속 추구해가는 모습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후 18-21절에 의하면 이 땅에 소망 두고 살아가지 않는 모습을 배우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핵심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또 다른 모본은 ‘우리’라고 하는 바울의 모습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삶도 주목해서 보고 배우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 속에 디모데와 에바보라디도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궁극적 모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2:6-11). 전체적으로 예수→바울→바울의 본을 따르는 사람들→빌림보 교인들이 모습입니다. 이런 면에서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사람들이 필요하고 서로 배워가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2) 명령의 이유 1: 부정적 예들(18-19)

모본을 따라 살라고 명령한 이유는 그와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미 여러 번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음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합니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인 되는 핵심인데, 그 반대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빌립보 교회 내의 어떤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만일 그랬다면 바울은 더 직접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나무랐을 것입니다. 단지 독자들에게 신자의 삶에 대해 주의를 주고 합당한 삶을 권면하고 싶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모습이 19절에서 설명됩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자신의 배입니다. 이 땅에서의 소유를 마치 신처럼 받들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 핵심은 돈을 향한 추구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와의 관계나 하늘 하나님의 뜻은 중요치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주는 결과인 영생의 구원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영광은 곧 수치로 여김 받게 될 것이며,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일 것입니다. 1:28에서 언급한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결과와 동일합니다. 현재는 자기들이 잘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어느 날 자신이 추구하고 누리는 것들이 허상인 것과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 명령의 이유 2: 긍정적 예들(20-21)

18-19절 모습과 달리 ‘우리’라고 말하는 진짜 신자들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바울과 그의 본을 따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17). 그들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 시민권을 소유한 자로서의 정체성입니다. 원래는 땅에 속한 자들이었지만, 예수로 인해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하늘 시민권자로서 구원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정체성에 맞게 살아갈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온전함은 주님의 재림 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앞서 언급한 회심 이후 바울의 모습과 동일하며(7-14), 땅의 것에만 집중하는 자들(19)과 대조됩니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땅에 발붙이고 살지만, 하늘에 속한 이중 정체성을 갖고 하늘을 보고 미래를 기대하며 오늘을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지는 21절에서 설명됩니다. 부활의 새로운 몸, 곧 예수의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킨 예수 그리스도가(2:10-11) 신자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 부활이 중요한 것은 새로운 몸을 통해 삼위 하나님과 완전한 사랑의 교제를 영원히 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천국을 소망하는 핵심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백성 혹은 하나님-자녀라는 새 언약 관계의 궁극적 완성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이들은 ‘나처럼 살면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늘 시민은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이다’를 보여줍니다. 성공과 성취로 가득한 인생이라도 자신만 드러내면 본이 아닙니다. 실제로 가득한 인생이라도 그리스도를 드러낸다면 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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