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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02-03)


 바울의 동역자들

빌립보서 2장 19-30절


한국의 대표적 선교단체 중 하나인 죠이선교회는 예수님을 첫째로(Jesus First), 이웃을 둘째로(Others Second), 나 지신을 마지막에(You Third) 두는 삶이 인생의 참 기쁨(JOY)임을 전하며 젊은이 선교에 힘써 왔습니다. 바울에게는 그렇게 사는 두 명의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1:27-2:18에서 교회 문제를 다룬 후 바울은 교회에게 보낼 두 사람을 추천합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디모데는 독자드의 상황을 알고 싶기 때문이며, 에바브라디도는 병이 들었다가 회복되어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가 이미 알고 있고 인정하는 사람들이지만, 바울은 그들을 예수를 따르는 신앙의 또 다른 모본으로 소개합니다.

 

동역자 디모데(19-24)

영적훈련은 고난을 통해서 연단을 받을 때 우리에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도 바울이 자신감 있게 빌립보 교회에게 디모데를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는 것입니다. 이미 그는 많은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너희 교회를 섬기기에 합당한 자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19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19-24)

감옥 안의 바울은 자신의 사정과 인위보다 빌립보 교회의 근황과 인부에 큰 관심을 갖고 심려했습니다. 몸은 사술에 매어 있지만 마음은 성도들을 향한 사랑에 매여 있습니다.

(1) 디모데를 보내기 원함(19)

1:27-2:18을 통해 교회 문제에 대한 권면을 마친 후, 19절부터 주제를 바꾸어 빌립보 교회에 보낼 두 사람을 추천합니다. 그중 한 사람은 디모데입니다. 상황을 보고 될수록 빨리 보내고 싶어 합니다. 독자들의 상황을 듣고 마음에 기쁨과 힘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수감된 사람의 안부를 듣고 싶어 할 텐데, 바울은 그 반대로 말합니다. 독자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2) 디모데를 선택해 보내는 이유(20-22)

19절과 연결해 디모데를 선택해 보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빌립보 교인을 향한 디모데의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만큼 자기와 같은 뜻을 가지고 독자들을 염려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굉장한 칭찬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복음을 향한 디모데의 섬김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만,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 바울과 함께 수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고한다’는 말은 종으로 섬긴다는 말인데, 7-8절에서 예수의 겸손한 섬김과 동일한 표현이나. 즉, 바울이 예수를 본받아 복음을 위해 섬기는 것처럼 디모데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는 디모데의 이런 모습을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합니다.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의 개척자 중 하나였고 그 이후의 모습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의 인정을 이끌어내어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에 공감하게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가지 이유 모두 바울을 중심으로 디모데를 묘사한다는 점입니다. 디모데는 독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바울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고, 복음과 관련해서도 마치 바울의 믿음의 아들처럼 함께 사역했습니다. 독자들이 바울을 사랑하고 신뢰한다면 디모데 역시 그렇게 하라는 의도를 전달합니다. 

(3) 바울의 빌립보 방문에 대한 확신(23-24)

21-22절의 이유 때문에 디모데를 즉시 보내기 원한다고 다시 말합니다. 즉시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얼마 후가 될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상황을 봐서 곧 보내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곧 빌립보 교인들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1:25-26에서 말한 것처럼 독자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입니다.

 

동역자 에바브로디도(25-30)

교회를 섬길 때 때로는 돕는 자라는 자기 Identity를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목회자의 동역자요. 교회에 팀장의 동역자요. 대표 장로님에 동역자요. 이런 동역자 의식을 가지고 함께 일할 줄 아는 그런 지혜로운 자가 될 때 그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25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25-28)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복음을 위해 충성하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자신의 안위보다 교회의 안위를 걱정합니다. 성도들이 염려할까 근심했다기보다 그의 질병이 교회의 시험거리가 될까 근심한 것입니다.

(1)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려 함(25)

19-24절의 니모데에 이어 에바브로디도도 추천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것들을 가지고 온 사람입니다. 바울이 그를 소개하는 방법이 놀랍습니다. 무려 다섯 가지 표현을 사용해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바울은 그를 형제라고 소개합니다. 함께 하나님의 자녀 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를 바울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역자와 군사로 묘사합니다.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도와 동일한 일을 하는 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 빌립보 교회가 믿고 보낸 사자이고 돕는 자입니다. 정리하면 그는 하나님이 인정한 자녀이며, 바울도 인정한 복음 사역자이고, 교회도 인정한 섬기는 자입니다. 에바브로디도의 귀한 섬김을 알아주라는 의도입니다.

(2)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이유(26-27) 

25절과 연결해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표면상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에바브라디도가 독자 모두를 너무 보고 싶어 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독자들이 들은 것을 알고 근심했기 때문입니다(26).

바울의 소개에 의하면 에바브로디도는 참 귀한 신앙인입니다. 우선적으로 그는 바울의 복음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교회를 대표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왔습니다. 복음에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또한 병든 자신보다 자기 때문에 걱정할 교인들을 더 염려하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6-8절에서 말한 대로 자기를 높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택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또한 복음과 교인을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고 사는 1:12-26의 바울의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이제 그가 회복되어 바울이 다시 보내려 합니다. 27절은 그간의 상황을 요약합니다. 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회복은 에바브로디도에게 좋은 일이지만, 옆에서 지켜 본 바울에게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병은 바울에게도 깊은 근심이었기 때문 입니다.

(3) 에바브라디도를 보내려 함(28)

26-27절의 이유 때문에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려 한다고 다시 말합니다. 그가 돌아감으로 교회가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될 것이고, 또한 교회와 에바브로디도로 인한 바울의 걱정도 해결될 것입니다. 빌립보로 다시 가는 것은 에바브로디도 자신에게도 큰 기쁨일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그의 근심이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바브라디 도와 관련한 이 모든 과정은 교회와 사역자 사이, 교회 성도들 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 에바브라디도 모두는 복음에 충성스러울 뿐 아니라 누구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없습니다. 오직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상대방이 힘들지 않게 되기를 생각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을 통해 그림의 사랑에 기쁨과 웃음을 주십니다. 그분 역시 함께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당부(29-30)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하여 리더인 사도 바울과 함께 일할 줄 알고, 섬기면서 일할 줄 알고, 또 사랑이 충만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일꾼으로서 에바브로디도가 생활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29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28-30)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면서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합니다. 하나는 주님 안에서 큰 기쁨으로 그를 잘 영접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라는 것이다. 앞의 것은 독자들이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뒤의 것에 더 비중을 두는 듯합니다. 30절에서 에바브로디도가 무엇을 했는지를 추가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바울의 복음 사역에 물리적으로 함께하지 못한 것을 에바브로디도가 채웠습니다. 사실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바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보낸 것은 교회이기에 교회가 복음 사역에 참여한 것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 일을 수행한 것은 마땅히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태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교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위와 상관없이, 교회 내 유명세와 상관없이, 그리스도께 충실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와 같은 사람들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신성한 믿음의 사람, 곧 하나님 나라의 참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목회도 ‘성공’을 논하는 시절을 삽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찾아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사역자를 보는 일은 희귀한 사건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을 자기의 일보다 먼저 구하는 참 기쁨이 교회 안에 넘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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