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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01-02)


바울의 최우선 순위

빌립보서 1장 12-26절


사람을 만남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항상 만나고 싶은 사람이며, 두 번째는 있으나마나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마지막으로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며,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항상 만나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일수록 은혜가 충만한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본문은 서신의 시작입니다. 첫 주제는 바울의 근황입니다. 수감된 바울을 염려하는 독자들을 안심시키고 오히려 그 상황이 복음이 더 확장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긍정의 소식을 전합니다. 이와 함께 석방될지 순교될지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석방을 통해 독자들의 기도와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어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말합니다. 독자들을 위로하고 상황과 상관없이 복음 안에서의 삶을 계속 살라고 독려하려는 의도입니다.

  

외부 사건들과 바울의 반응(12-18)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란 없습니다. 매인 상황에서 허우적대며 원망했던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바울은 매임을 통하여 주님을 더욱 신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약할 때가 강함인 것을 믿고 매인 상황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2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2-18)

바울이 감옥에 투옥된 일은 오히려 복음 전파에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옥에 갇히지 않았으면 시위대 안에 복음이 전파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고난이 형제들의 담대함을 이끌어냈습니다.

(1) 도입(12)

바울은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서 빌립보 신자들이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에서는 실수는 없으신 분입니다. 바울은 투옥됨으로 그의 사역이 움츠러들기는커녕 진보하고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것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었습니다. 독자들을 안심시키고 ‘복음’과 관련한 권면을 이어가려는 의도입니다.

(2) 갇힘과 진보(13-14)

12절과 연결해서 왜 자신의 상황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두 가지 사건 때문입니다. 하나는 교회 외적 차원에서 불신자들인 시위대와 그 밖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울이 그리스도 때문에 갇혀 있다는 것을 설명할 기회를 통해서이거나 혹은 실제로 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모든’이란 말은 과장된 표현으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사건은 교회 내적 차원에서 동료 성도들(형제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사왕에 자극 받아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바울이 의도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감옥에 갇힌 것은 안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과정에서 일하고 계심을 소개함으로써 복음 때문에 의부로부터 압박 받고 있는 빌립보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3) 두 가지 복음 증거 태도(15-17)

14절에서 언급한 바울 때문에 복음 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추가 설명입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추가 설명입니다. 그들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했으나 어떤 사람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15). 착한 뜻으로 전한 사람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했기 때문에 매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서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16). 그리스도를 투기와 분쟁으로 전하는 자들(15)의 전파 동기는 이기적인 야심이었습니다(17). 바울이 갇혀 있는 동안 고의적으로 바울을 괴롭게 하려고 했습니다. 물리적 고통보다는 경쟁심을 부추겨 바울에게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또 다른 부류는 착한 뜻으로 전합니다.

바울이 복음 때문에 갇힌 것을 알고 좋은 자극을 받아 사랑의 마음으로 전합니다. 이 두 부류는 로마 신자들로서 독자들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언급한 것은 빌립보 교회의 상황과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의 교회 안에서도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경쟁과 비교의식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습니다(4:2-3). 바울은 이에 대한 권면(2:1-4)에 앞서 그들의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4) 바울의 반응(18a) 

앞에서 말한 두 부류의 복음 전파에 대한 바울의 반응입니다. ‘그게 뭐?’라는 반응으로 시작해서 둘 다 괜찮다고 말합니다. 독특한 반응입니다. 보통은 좋은 뜻으로 전하는 쪽을 지지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좋은 뜻으로 복음 전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음을 보입니다. 그 두 부류 모두 바울과 관련해 복음을 전하지만, 정작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전해지고 그 복음으로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면 됩니다. 이것이 그에게 진정한 기쁨이다. 바울의 이런 태도는 10절에서 독자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 곧 바른 지식의 기준과 지혜로 더 나은 것을 분별하는 사랑의 삶을 살 것에 대한 적용입니다. 비교의식이나 경쟁 같은 자신의 유익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이라는 더 나은 가치로 상황을 분별해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이 모습을 말한 것은 그들 또한 동일한 원리로 교회 문제를 대하라고 권면하려는 의도입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은 기도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 기도 내용대로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이며 빌립보 교회의 모델입니다.

 

바울의 내적 반응과 기대(19-26)

사명자의 삶은 자신의 원함과 유익보다 교회를 위한 사명과 유익을 더 앞세운 것입니다. 복음의 진보와 그리스도의 영광은 물론 ‘성도들의 신앙’도 바울이 살아 있는, 또는 살아야할 이유였습니다. 바울은 석방보다 더 간절히 기대와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19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19-26)

살고 죽는 것보다는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웅처럼 죽는 일은 차라리 쉽습니다. 바울에겐 그 편이 더 낫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위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살아서 고난을 감내하기로 합니다.

(1) 바울의 또 다른 기쁨과 그 이유(19-20)

11-18a절과 다르게 이번에는 갇힌 상황에 대한 바울 자신의 반응과 기대를 서술한다. 앞서 말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기쁨 외에 또 다른 기쁨이 있다고 말함으로 시작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오직 자기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구원의 상태에 더 든든히 서 있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를 위해 세 가지요소를 언급합니다. 첫째는 함께 동역하고 있는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이고, 셋째는 그런 삶으로 살고자 하는 믿음 안에서의 강한 열망과 열정입니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갇혀 있는 것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통로가 된 것으로 인해 기뻐한다고 말하고, 그분을 향한 삶이 지속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열망은 3장에서 끊임없이 주를 추구하는 모습을 설명할 때 다시 표현됩니다. 이런 바울의 기쁨 역시 1:10에서 언급한 기도 내용의 적용이기도 합니다. 11-18a절이 외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었다면, 18b-20절은 자신의 상황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이 주 안에서 더 중요한지를 분별하여 적용한 것입니다. 독자 역시 동일한 원리로 적용해야 합니다.

(2)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바울의 갈등(21-24)

‘이는’이라는 접속사로 앞부분을 부연합니다. 자신의 상황이 석방으로 연결될지 죽음으로 이어질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괜찮지만, 바울은 갈등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죽음으로 고통을 끝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그리스도로 인해 영광의 몸, 곧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고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3:20-21).

바울이 삶과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완전함과의 가치 비교 때문입니다. 그 핵심은 과거 십자가/부활을 통해 보이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다(3:7-9). 그것이 확실하기에 미래를 소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신자의 삶은 과거 십자가/부활의 은혜를 발판으로 미래를 소망하며, 오늘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역시 10절에서 말한 진리로 중요한 것을 분별하는 삶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또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독자들이 너무 슬퍼하고 힘들어한 것 같아서,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다. 신앙 안에서 자신에게 최선의 것과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의 모습 사이의 갈등입니다.

(3) 바울의 확신(25-26)

21-24절의 갈등에 대한 바울의 선택과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석방될 것을 기대합니다. 자신의 목숨 보전 차원이 아니라 철저하게 독자들을 위해서입니다.

그의 석방은 믿음으로 바울을 위해 기도하던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을 다시 보게 되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10절의 기도 내용처럼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별하는 사랑의 삶의 적용입니다. 자신의 생명이나 소원보다 성도들의 유익이 무엇인가를 분별합니다. 여기서의 기준은 성도 사랑이다. 이전 18a절과 연결하면 바울의 삶의 기준은 (1) 그리스도와 복음과 (2) 성도들이다.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라는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로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바울을 아낌없이 후원한 교회입니다. 그들은 교회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시기와 다툼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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