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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3-02)


벧엘의 선지자와 유다에서 온 하나님 사람

열왕기상 13장 11-19절


오래전 세계 각국의 체인점을 두고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이 경영난에 빠져 있을 때, 수입증진의 일환으로 호텔 내에 도박장을 만들자는 의견이 주주총회에서 수렵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의견은 끝내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 호텔의 회장이었던 클리머 라는 사람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성도였던 클리머 회장은 자신을 압박하던 주주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합니다. “내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하나님과 호텔내에 절대로 도박장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지금 그 약속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회장직을 사임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당시에 호텔에 회장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셨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그와 그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할 때만 가능합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불순종의 심판을 경고한 후 유다로 돌아갑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벧엘의 노인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고, 그를 속여 집으로 데려가 떡을 먹으라고 청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상기했지만, 선지자의 일과 호의에 방심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맙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11-19)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늘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며,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이 되도록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고, 묵묵히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의뢰하면서 주님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11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12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의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그가 타고 14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15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11-19)

여로보암 통치(12:25-14:20)의 둘째 단락(13:1-34)중 둘째 에피소드인 13:11-32은 벧엘의 한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의 만남을 배경으로, 하나님의 사람의 불순종과 심판을 기술합니다. 이 부분은 앞뒤(1-10, 33-34)에 기록된 여로보암의 불순종을 부각시키고, 선포된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를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1) 벧엘의 늙은 선지자(11)

벧엘에 거하는 한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 산당에서 행한 일과 그가 왕에게 선포한 여호와의 계시 등 모든 일을 아들들에게서 전해 듣습니다. 그가 “선지자”로 소개되고(11), 스스로도 선지자라 일컬으며(18), 여호와의 계시를 받고(21), 후에 “사마리아(‘북이스라엘’을 지칭)에서 온 선지자”(왕하 23:18)로 불린 것을 볼 때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임에 확실합니다. 다만 그를 참된 선지자로 여기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그는 아들들과 함께 우상숭배가 만연한 벧엘에 잔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여로보암은 아무 백성이나 산당 제사장 자리에 앉혔고, 북이스라엘에 상주하며 예루살렘의 성전 직무를 담당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다 파면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위해 집과 산업을 버리고 남유다로 돌아갔습니다(대하 11:13-16). 이때, 하나님을 찾는 북쪽 백성들도 이주했으나, 이 선지자 가족은 벧엘에 남았습니다. 물론 참 선지자나 신앙인이 다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14:4). 그러나 이 선지자와 아들들의 행보는 그들이 여로보암의 새로운 종교 정책을 거부하지 않았거나 타협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둘째, 그는 아들들을 여로보암이 만든 절기에 참여하게 두었습니다. 그들이 벧엘에서 일어난 일을 다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사람의 행방까지 목격한 점(11-12)은 그곳 절기 행사에 가담했다는 증거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아들들의 범죄를 두고 보았듯(삼상 2장), 이 선지자도 본인이나 아들들을 우상숭배의 영향권에 머물게 했습니다. 셋째, 이 선지자는 사람을 속이고, 여호와께 계시를 받았다는 등 거짓말을 서슴지 않습니다(18). 물론 그는 나중에 자기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선언하기도 하고 그가 속인 하나님의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기도 합니다(20-32). 그러나 15-18절에 기록된 그의 유혹과 거짓은 그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2)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 만남(12-14)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듣고 큰 관심을 갖게 된 벧엘의 선지자는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됩니다. 선지자는 아들들에게 물어 그가 간 길의 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리고 신속히 그를 따라잡기 위해 아들들에게 나귀에 안장을 묶으라고 명합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합니다. 나귀를 타고 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쫓은 선지자는 마침내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습니다(14). ‘보았다’는 ‘발견하다’로, 그 사람을 바로 알아봤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그에 대해 소상히 전해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확인 차 그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인지 물었고, 그 사람은 자기가 맞는다고 확인해줍니다. 선지자의 계획대로 만남이 순조롭게 진행되어갑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도 벧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하고 돌아가는 순조로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일의 진행에 있어 순조로움(이나 어려움)이 늘 하나님의 뜻을 진단하는 기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바쁘고 긴장된 일정을 보냈으므로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허기지고 목마르며,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치고 긴장이 풀린 상태였으리라. 그의 목적지가 예루살렘(17km)이라면, 2만 보정도 거리로서 걸음걸이에 따라 2-3시간이 소요됩니다. 목적지가 어디든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경로로 가고 있었으므로(10) 시간이 더 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휴식을 좀 취하고 다시 여정을 계속하려 했을 수 있습니다. 그의 휴식에 대한 이유나 잘잘못을 유추해볼 수는 있겠으나, 확실한 실마리는 없으므로 이에 대한 결론은 열어두는 게 낫습니다.

(3)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 속임과 속음(15-19)

벧엘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의 만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속임과 속음’의 과정을 통해 결국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벧엘의 노인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인한 후, 자신의 소개도 하지 않고 곧바로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의 초대와 하나님의 사람의 반응은 앞서 여로보암과 하나님의 사람 사이의 초대와 반응과 유사하게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를 접대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습니다(왕하 4:8-10). 모르는 나그네라도 환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레 19:33-34). 그러나 선지자의 초대 동기가 미심쩍고,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15)는 초대의 말이 앞서 여로보암의 회유적인 발언(7)과 유사하여 그의 초청 또한 회유임을 암시합니다. 게다가 “떡을 먹으라”는 제안은 하나님이 금한 것이며, 이 행동은 실상 나머지 금령인 ‘벧엘로 돌아가는 것’, ‘물을 마시는 것’을 다 포함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이 이 초청을 수락한다면 여호와의 명령을 다 어기게 됩니다. 선지자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초대하려 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거나 ‘사역자를 대접하는 일인데 뭐 어떠냐’는 식의 섣부른 판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도 이런 점을 짐작할 수 있었겠지만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13), 아버지나 하나님의 사람이 불순종의 길로 가도록 동조한 셈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나 아들들이 여로보암의 행위를 눈감아주거나 따른 것을 고려하면, 그들은 모두 영적으로 무디고,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영적 상태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선지자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지만, 결국은 그의 초대에 응하고 맙니다. 처음 거절의 내용은 여로보암에게 한 말과 대부분 같고, 여기에 선지자와 함께 ‘돌아가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해졌습니다(8,16). 그 후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금령을 선지자에게 조목조목 나열하여(9,17) 그의 거절이 ‘여호와의 말씀’ 때문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여로보암과의 대면은 이 시점에서 끝났지만, 선지자와의 대면은 계속됩니다. 선지자는 그가 초청을 거절하자 자신도 그와 같은 선지자임을 밝힙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초청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절의 이유’로 댔으므로 선지자도 ‘여호와의 말씀’을 ‘초청의 이유’로 되받아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습니다(18).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접대하려 한 동기나 의도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선한지 악한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기와 같은 선지자라 대접하고 싶었는지, 그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의 진위를 시험하거나 확인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욕심으로 이미 벧엘을 떠난 자를 뒤쫓았습니다. 그 사람을 회유하고 속이는 데 단호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천사를 운운하면서라도 자신의 뜻을 이루려 했습니다. 이 모든 행위에는 여호와 경외가 결여되어 있고, 영적, 도덕적 판단력이 마비되었으며, 욕심과 집착이 서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가 말한 여호와의 말씀이 자신이 받은 말씀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임을 주의하지 못했습니다. 자기와 같은 선지자라는 말에 경계심을 풀었고, 여호와가 사자를 보내 자기를 대접하라고 했다는 선지자의 말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결국 그와 함께 벧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명령을 다 어기고 말았습니다.


한 선지자가 다른 선지자에게 거짓말까지 하여 실족하게 할 만큼 이 시대는 어두웠습니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달랐지만 듣고 싶은 말을 해주니 따른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말이나 선지자의 말이 늘 진실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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