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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08-01)


한시적인 사랑에서 영원한 사랑으로

아가서 8장 5-14절


아가서는 끝을 맺었으나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해피엔딩이면서 열린 결말입니다.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고, 오시겠다는 약속을 붙들고 있습니다. 남은 에필로그는 그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 등불을 준비하는 우리 몫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죽음이나, 물이나, 불이나, 금전, 그 어느 것이나 다 이기고 남을 만큼 강합니다. 연애 시절부터 시작하여, 결혼하고, 위기를 겪고, 더 성숙한 사랑을 하고, 이제 나이가 든 부부는 이런 긴 과정을 통해 사랑의 힘과 강렬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아낍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대화는 그들의 결혼 생활에서 여전히 계속됩니다.

 

노년에 서로 사랑하는 부부(5-7)

사랑은 어떤 위험과 죽음에도 굴하지 않으며, 돈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결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원형입니다. 지위와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에 이른 만큼 사랑이 죽음보다 강함을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깊이 결속하길 원합니다.

5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6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8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5-7)

(1) 노년에 서로 사랑하는 부부(5)

예루살렘 딸들이 이 부부를 소개하는데, 아내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광야부터 올라오는 이(여자)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3:6에서 솔로몬의 가마를 소개하면서도 등장했기에, 이 부부의 결혼식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첫째, 부부는 함께 광야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참조 3:6). 8:5의 부부는 함께 광야에서 올라온 것을 전원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3장과 8장 두 경우가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지형적으로 험난한 길을 뚫고 왔음과 비유적으로 방해물을 극복하고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아내는 그의 사랑하는 남편에게 기대어(‘의지하고’로 번역됨; 5) 있습니다. 마차나 가마 등에 앉아 아내가 남편에게 기댄 모습은 육체적으로 지친 아내의 모습과 그런 아내를 자신의 몸으로 지탱해주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함께 보여줍니다. 이는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아내가 남편을 의지하며 남편도 그녀의 신뢰를 받아주는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부부는 이런 시간을 지나 이제 그들이 중년이나 노년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육체적 결합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아내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남편을 깨운다는 말은 성적 욕망을 암시합니다. 아내는 이 사과나무 아래를 남편의 어머니가 그를 잉 태하고, 산고를 겪고, 그를 낳은 곳으로 연결합니다. 이는 아내가 남편에게 친밀감을 주고 육체적 결합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려는 의도거나, 어머니가 그를 낳았듯이 후손을 갖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2) 사랑의 강력한 힘(6-7)

사랑의 강렬함과 그 힘 앞에서는 세상의 어느 것도 굴복당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을 그의 마음과 팔에 인장같이 두라고 요구합니다. 인장은 그 소유자의 신분을 상징하며(창세기 38:18, 25), 사람들이 이를 손에 반지로 끼거나 목과 팔에 달았던 것입니다. 즉 여자는 자신의 존재가 남자의 내면(마음)과 외면(팔)에 가장 가까이 있기를 바라며, 그에게 속한 자임을 확실히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여자가 이런 요구를 한 데에는, 사랑이 죽음같이 강력하고, 질투가 스몰(무덤)처럼 잔혹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한계이자 끝으로서 누구도 죽음을 막을 수 없지만(전도서 2:16; 3:19; 9:4), 사람은 한계가 없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질투는 자신의 상대 외에 아무도 용납하지 않는 충성, 헌신, 애정을 나타냅니다. 이 사랑의 힘은 불꽃 그것도 가장 강력한 뜨거운 불(여호와의 불'의 의미)과 같아서 많은 물이나 강들도 그 불을 꺼버리거나 쓸어버릴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랑의 가치는 금전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사랑을 사려고 하는 자는 우매하며, 멸시받아 마땅합니다.

 

여자와 오빠들(8-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린양 혼인 잔치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만큰 성숙해가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랑 주님께 평화를 선물할 만큼 성숙해졌습니까? 여인의 오빠들은 결혼하기에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누이를 보호와 봉쇄합니다.

8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9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8-10)

여자는 자신의 오빠들과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오빠들은 여자의 눈에 누이를 돌보는 자들이 아니라 포도원으로 보내 학대하던 자들이었습니다(1:6).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오빠들은 자신들을 누이동생을 돌볼 담당자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8-9). 오빠가 누이의 결혼과 성 문제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시 관습이었습니다(창세기 34장: 사무엘하 13장). 오빠들 눈에 이 누이는 아직 젖가슴도 나오지 않았고 결혼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이의 결혼과 관련하여 그녀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궁리합니다. 그 결론은 그녀가 순결을 지킨 성벽이라면 은 망대를 세워 이를 더 지지할 것이고, 그녀가 난잡한 문과 같다면 백향목 판자로 문을 막아버린다는 계획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1:6의 오빠들의 태도(누이에게 노함)와 행동(누이를 포도원지기로 삼음)은 여동생에 대한 부당한 처사라기보다는 누이에 대한 그들 나름의 보호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8장으로 돌아와, 오빠들의 이 같은 대응에, 여자는 자신은 성벽처럼 순결을 지켰으며, 결혼할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증거로 그녀가 결혼하면 자신이 남편에게 화평을 가져다줄 자임을 밝힙니다.

 

솔로몬이 포도원(11-12)

진실한 사랑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에 억만큼을 준다 해도 살 수 없습니다. 매매하는 사랑, 거리를 둔 사랑, 조건의 사랑, 거래의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기대 이상의 사랑, 예기치 않은 사람, 조건 없는 한결같은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요, 우리가 해야 할 진실한 사랑입니다.

11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12솔로몬 너는 천을 얻겠고 열매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11-12)

이 단락은 솔로몬이 소유한 포도원과 다른 포도원에 대한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이 부분도 해석이 어려운 단락 중 하나입니다. 바알하몬에 포도원을 소유한 솔로몬은 일꾼을 시켜 이를 지키게 했으며 포도원에서 수확이 많아 큰 수익을 얻었습니다. 이 포도원은 실제 포도원이거나 비유적으로 솔로몬의 규방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한편, 어떤 이도 포도원을 소유했는데, 이 사람(여자 또는 남자)은 솔로몬과 달리 자기의 포도원을 스스로 가꾸고 오롯이 자기 것으로 소유함으로써 타인의 개입을 배제하고 포도원으로부터 이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솔로몬의 포도원과 금전과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8:7의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솔로몬이 실제 포도원을 타인의 노동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으나, 여인은 자신의 몸인 포도원을 직접 가꾸고 소유했으므로 솔로몬이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이득을 나눌 필요 없이, 직접 이 포도원을 소유함으로써 모든 이득을 취할 수 있음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남을 약속하는 부부(13-14)

아가서는 서로 갈망하고 기다리면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신랑 되신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그날을 열망하면서 신랑의 영접을 받기에 합당한 흠 없고 순결한 신부로 날마다 단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13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14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13-14)

13-14절은 남녀의 대화로서 아가서의 마지막 대화이자 책의 끝입니다. 여기서 남자의 여자에 대한 호칭은 ‘동산들에 거하는 자’인데, ‘동산’에 대한 문자적(동산), 비유적(여자의 몸) 해석이 가능하므로, 여자가 현재 남자와 떨어져 전원에 있음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남자의 여자에 대한 성적 호감도 나타냅니다. 여자의 남자에 대한 호칭, ‘내 사랑하는 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호칭(1:13; 2:3; 4:16; 5:4; 6:2; 7:14; 8:14 등; 총 25회)으로, 변함없는 여자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부부의 마지막 대화 내용은 서로 떨어져 있어 상대가 그리워, 서로에게 만남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부의 변함없는 사랑과만남에 대한 열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남자는 ‘그대의 목소리를 들려다오’(13)라고 요구하고, 여자는 ‘당신은 내게 달려오라’(14)고 요청합니다. 남자는 이때 친구들이 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여자가 전원에 다른 이들과 함께 있으며 남자 자신과는 떨어져 있어, 그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자기도 여자의 목소리를 듣게 해달라고 요청하며 애정을 표현합니다. 이 장면은 여자가 남자와 약속 장소를 잡는 1:7-8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앞의 1:7-8과 비숫한 동산 이미지를 사용하여, 8:13에서는 유사하고 대조적인 상황을 통해 남녀의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상호보완적으로 묘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여자는 남자에게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 향품이 가득한 산들(‘향기로운 산’으로 번역됨)로 달려오라고 하는데, 이때 ‘향품의 산’은 여자의 몸과 이와 관련된 아름다움, 신비함, 즐거움을 암시합니다. ‘노루’와 ‘어린 사슴’은 여지가 사랑하는 남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2:9, 17을 생각나게 합니다. 남자에게 서둘러 달려오라고 요청하는 여자에게서 만남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아가서가 서로를 그리워하여 상대를 초청하고 만남을 고대하는 남녀의 장면으로 끝나는 것은 남녀의 사랑이 소통을 통해 지속됨을 암시하고 둘이 고대하는 만남과 연합이 이상적인 사랑의 결과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성도도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끊임없는 소통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성령과의 하나 됨으로 선한 행실을 추구하고(에베소서 4:3; 로마서 8:26; 고린도전서 12:7), 신랑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열망(디모데후서 4:8, 요한계시록 22:20)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에 대한 수많은 아포리즘 가운데 서로의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어 써 내려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가운데 신비하게도 우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읽습니다. 사랑에 대해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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