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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5-03)

 


선교 사역을 위한 미래 사역 계획

로마서 15장 22-33절


사람은 함께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혼자 살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혼자 살는 사람들은 항상 외롭고 불안합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동역자나 같은 뜻을 품은 사람으로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그런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한 동역의 현장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바울은 앞부분에서 지금까지 과거에 했던 사역을 소개했습니다(17-21). 이제는 앞으로 장차 해나갈 미래 사역을 언급합니다. 먼저, 지금 당장 해야 할 사역들에 관해 설명합니다. 바울의 향후 행선지인 예루살렘과 로마와 서버나가 모두 등장하고, 그 도시들을 둘러싼 바울의 소원이 함께 소개됩니다. 예루살렘에서 그의 복음을 확증 받고, 로마 교회가 그의 볶음을 듣고 화해에 이르라 그를 후원해 준다면, 서버나까지 같은 복음을 들고 갈 원대한 계획을 피력합니다.

 

로마 방문 계획과 목적(22-24)

흔히 바울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향해서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명에 매였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 중심적인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의 새로운 면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의 마음속에 여러 사람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22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23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22-24)

바울은 이 부분에서 미래 사역계획과 현재 진행 중인 사역을 설명합니다. 이제 바울이 지중해 동쪽 지역에서 일할 곳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이제 그는 지중해 서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로마를 지중해 서부지역 선교 출발지로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로마에 여러 번 가려고 시도했지만 막혔다고 말합니다(1:10,13). 로마로 가는 길이 막힌 이유에 대해 바울은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8절처럼 ‘사단이 길을 막았다’거나 ‘성령이 막았다’는 언급은 여기서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의 마음은 미래 선교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전에 장애물들이 사라졌습니다. 드디어 바울이 서쪽을 향하여 도약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것입니다. 바울에게 서바나(스페인)는 땅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지중해 세계 동쪽 지역에서 자신의 선교 사명을 완수한 후, 땅끝까지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로마를 중간 경유지나 교두보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수도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으려 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선지가 서바나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예루살렘을 걸쳐 로마로 가기로 결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서바나로 가기를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장 13-15절에서 바울은 서바나를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로마에서 ‘어떤 열매를 맺기 원한다’라는 말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가 원했던 열매 중에 15장 24절에서 암시하는 로마 교회의 재정적 후원인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라는 표현에서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들릴 때 그들의 사귐을 통해 기쁨을 나누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보내주기를 바람이라’라는 길 안내 또는 물질적 지원에 대한 기대를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은 먼 여행을 위하여 특별히 후자를 더 기대한 것 같습니다. ‘보내다’라는 말은 선교 지원을 의미하는 초대 기독교의 언어 표현입니다. 로마는 바울에게 이방선교를 완수할 수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해야 할 사역들(25-28)

큰 꿈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허풍쟁이가 됩니다. 그러나 그 꿈을 현실적으로 이루어 가는 사람을 비전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꿈을 어떻게 세워 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제 지금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명을 완수하는 일도 더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성도들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25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25-28)

바울은 로마로 가기 전에 곧바로 수행할 일이 있었습니다. 25-27절에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왜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힙니다. 그는 ‘성도를 섬기는 일’(25)을 하기 위해서 그곳에 먼저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있는 이방인 교회들이 모은 헌금을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갈라디아가 언급되지 않는 것인데, 고린도전서 16장 1절에 갈라디아 교회들에게도 헌금할 것을 부탁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사역 중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구제 헌금을 모아 가난한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25절과 31절에서 바울은 헌금을 모으는 것을 ‘섬기는 일’ 또는 ‘사역’으로 묘사합니다. 바울이 ‘가난한 자들’(26)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속해 있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주제헌금을 전달하는 것의 목적이 재정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7절에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기쁨으로 얼마를 연보하였습니다. 여기서 ‘연보’로 번역된 단어는 ‘코이노이아’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재정적인 것에 나눔과 더불어 가까운 관계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생각했던 것은 재정적인 것을 나누는 넘어서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친교였습니다. 27절에 바울의 언급은 이 점은 더 분명히 합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같이 나눠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제헌금은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 사이에 유대를 견고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보수적인 신자 중 자기의 이방 선교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 사이의 간격과 분리는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힙니다. 오직 관대한 형제 사랑의 표현을 통해서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이제 복음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방인으로부터 물질적인 선물을 받는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온 복음이 이방 세계로 전파되어 이제 그 열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직접 구제헌금을 예루살렘의 전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삶(29-33)

프로 바둑 기사들은 한 대국당 평균 150개의 돌을 놓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볼 때 ‘왜 저기에 놓나?’하는 순간이 많지만, 프로 기사들은 몇 수 앞을 내다보면서 돌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시간과 상황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시간과 상황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가끔 이해되지 않아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9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31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30-33)

바울은 예루살렘 방문 후 여행 계획을 다시 언급하며 서방으로 갈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라는 표현은, 고대 편지를 쓴 다음 왁스를 사용하여 붙이고, 보낸 사람의 반지를 눌러서 인증하던 것을 비유로 말한 것입니다. 자기가 전달하려는 헌금을 통하여 코이노니아가 제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확신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29절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 친교가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복을 가지고 로마를 방문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그 복을 가지고 로마에 가기까지는 넘어야 될 장애가 많아 있었습니다. 유대 지방에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위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위험을 잘 알고 있던 바울은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기도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인들에게 자기가 우려하고 있는 위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바울은 두 가지를 요청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건짐을 받는 것과 그의 섬기는 일이 예루살렘의 성도들에 의해 잘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사도행전이 이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이유가 실제로 바울의 구제헌금이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잘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가서 좋은 사인과 심을 가질 것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33절에서 축복의 기도를 드림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15장 13절에서 소망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데, 여기서는 평강의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평안의 근원입니다. 이 평안 샬롬은 단순히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함이 경험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끝까지 섬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식지 않는 선교의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여러 지역 교회들을 개척하고 많은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인도한 탁월한 사역자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어떤 사람보다 더 충성하였기에 자신을 개척한 교회에 안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룬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표들을 향한 다름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빚진 자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비친 우리, 또한 주님이 주신 그 일들을 끝까지 충성하며 나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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