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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5-02)


은혜로 부르신 사명과 복음 전파

로마서 15장 14-21절


잘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할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할까요? 잘하는 일을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잘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대부분 이 두 가지가 상충되곤 합니다. 더욱이 우리 인생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양자택일에만 머물지 않고 훨씬 더 복잡합니다. 괴테는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좋아하는 데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삶의 태도로도, 신앙생활에도 매우 타당한 견해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 부름 받은 그의 사도적 정체성과 그간의 선교 사역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아울러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려고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는 사역하지 않는다는 그의 선교 원칙을 소개합니다.

 

로마 교회 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신뢰(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대단치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은 이런 자긍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사역 가운데 비참한 상황까지 겪었음에도 이런 자긍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14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4)

첫 인사 중에서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1:8). 이제 서신의 결론 부분으로 돌아오면서 바울은 다시 로마 교회 성도들의 삶에 대한 신뢰를 표합니다. 바울은 세 가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에 대한 바울의 확신은 이제 로마서의 본론 단락을 그들에게 전한 이후에 더 강해졌습니다. 먼저 바울은 그들이 ‘선함으로 가득한 것’을 확신합니다. ‘선함’이라는 단어는 매우 포괄적인 단어입니다. 아마 이를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외적인 모습을 표현했을 것입니다. 그 선한 삶은 성령을 따르는 행동의 패턴에서 나오는 것으로, 8:1-8에서 말하듯이 성령과 동행하면서 누리는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삶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이 ‘모든 지식으로 가득 찼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구속사 속에서 마침내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지식 등을 포함할 것입니다. 그 지식의 가장 정제된 표현을 그들은 지금까지의 로마서 단락을 통해 들은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이 서로에게 조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로마서 12:3-8에서 바울은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가르쳤고, 로마서 14:1-15:13에서는 자신이 믿는 바를 붙잡고 있으면서도 다른 의견을 가진 지체들을 품을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이제 그 능력과 지혜는 신앙공동체를 굳건히 세워나가는 모습으로 표현될 것입니다.

 

바울의 이방인 선교와 그 향후 계획(15-21)

성도가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드려야 할 제물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산 제물입니다. 먼저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 다른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거룩한 산 제물이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15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15-21)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사명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상관없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하게 되도록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1) 이방인을 위해 부름 받은 바울의 사도적 정체성(15-16)

15-21절 바울의 이방인 선교와 그 향후 계획 15절은 역접 접속사를 통해 14절과 연결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그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오히려 담대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는 것이 14-15절의 흐름입니다. 이것은 아마 로마 교회 내부의 문제를 다루는 14:1-15:13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오히려 담대하게 그러한 권면을 준 근거를 바울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혜’에서 찾습니다. 로마 교회 내부에도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서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바울이 왜 ‘오히려 담대하게’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더 이해가 갑니다. 16절은 그 ‘은혜’가 하나님이 이방인 선교를 위해 그에게 주신 사도직을 가리킨다고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5에서 그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자신의 사직이 ‘은혜’라는 바울의 이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부르셨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또 제의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은유적 의미에서의 ‘제사장’을 일컫습니다. 그는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받음직 하고, 또 성령에 의해 거룩하게 구별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방인이라는 제물이 성령을 통해 거룩케 된다는 생각은 새 언약을 예언하는 예레미야 31장과 에스겔 36장의 배경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성령으로 씻으셔서 구별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예언의 성취가 이방인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2) 자신의 지난 선교 여정을 돌아봄(17-19)

본문에서 바울은 지난 선교 여정을 돌아봅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앞세우는 것을 주목해보시길 바랍니다. 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18절에서 바울은 그 일을 자신이 해낸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통한 그리스도의 역사하심 이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역사하신 목적에 대해서도 주목하라. 바울은 ‘이방인들이 순종하도록’이라는 부사구를 덧붙여 이에 답합니다. 로마서 1:5; 16:26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사역의 목적이 이방인들로부터 ‘믿음의 순종’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적 복음 전파의 목적을 언급하는 구절에서 바울은 예외 없이 ‘이방인들이 순종에 이르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서를 순종의 행위와 분리된 ‘믿음’의 책으로만 읽으려는 이들에게, 로마서가 궁극적으로는 ‘순종’을 목표로 하는 책임을 말해주는 구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리스도는 바울의 말과 행동을 통해, 표적과 기사의 능력을 통해,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일하셨습니다(18c-19). 그 결과를 설명하는 문장에 이르러서야 바울이 다시 주어로 등장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일하신 결과,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의 지역에서 복음을 편만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19b).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의 지역은 지중해 북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바울은 ‘퀴클로’라는 부사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원 모양으로’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아마 예루살렘에서 시리아 안디옥과 소아시아 지방을 거쳐 마게도니아 지방과 인접한 일루리곤 지역에까지 이르는 아치형에 가까운 동선을 염두에 두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완료시제 부정사 ‘페플레로케나이’를 사용하여 이 지역에서의 그의 과업이 완료되었음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그의 사도적 생애가 1기 사역을 마치고 2기 사역으로 전환되는 순간에 처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을 16절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으로, 19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 곧 그의 죽으심과 부활, 그의 승천과 성령의 오심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자비하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을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다음 세대의 생명으로 인도하신 것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은 곧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3)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 사역하지 않는다는 선교 원칙(20-21)

20-2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애쓴다는 그의 선교 원칙을 소개합니다. 동사 ‘필로티무메논’은 ‘어떤 야망을 가지다’, ‘애쓰다’ 혹은 ‘무언가를 명예롭게 여기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는 로마에서도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1:15)이 보여주듯이, 바울이 이 원칙을 얼마나 엄격하게 지키려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바울에게 이러한 원칙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당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간 이가 바울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20b절에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목적절을 덧붙입니다. 바울의 이 선교 원칙이 암시하는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이 지녔던 복음 전파에 대한 긴박함일 것입니다. 바울은 어쩌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긴박하게 임할 것이라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이르기 전에,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이방인이 복음을 듣게 하는 것이 그의 선교적 비전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적 비전을 이사야 52:15 말씀을 통해서 재확인합니다.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는 이 말씀은, 로마서 10:15에서 인용된 이사야 52:17 말씀, 그리고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이르게 하겠다’는 이사야 49:6 말씀과 더불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의 사도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이들이 모두 이사야 49-52장에 집중되어 있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동일한 사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는 사명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다를지라도 언제나 이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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