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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11-01)


지혜로운 자의 삶

전도서 11장 1-10절


부모님들은 대부분 자신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봐서, 자녀들에게 될 수 있으면 안전하게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무슨 무슨 일을 하라!’는 긍정적인 말보다, ‘이것, 저것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말을 많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축복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누립니다.

 

  • 솔로몬은 지금까지 전도서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이론들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1장부터 12장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로 설명하면서 전도서를 마무리를 짓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권합니다. 본문은 그 중에 처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관용의 미덕(1-2)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둘째, 세상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능력입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변화를 감지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인간 관계와 변화 대응 능력은 미래를 성공적으로 준비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1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1-2)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 있으면, 유난히 관심을 가집니다. 자신과 관계가 없으면, 사랑과 관용이 적은 편입니다. 무관심하려고 합니다. 상관했다간 자신만 다친다는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과 관용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은 하는 말은, 당시에 속담을 인용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곡식을 파종하는 방법이 발달되지 않았습니다. 나일과 같이 큰 강들은 배를 타고 상류로 올라가서 강물 위에 씨앗을 뿌립니다. 그러면 이 씨앗들이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 가면서 강가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추수 때에는 이삭만 잘라서 추수합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을 향해 ‘네 식물을 강물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라’라는 속담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래를 위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1)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사람들이 보험을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래의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삶에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를 위하여 준비해 놓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포용하면서 그들을 위해 배려를 합니다.

 

(2) 모든 사람을 위한 배려

 

2절에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때, 자신만 이해하고 함께하는 사람들만 배려하는 것은 진짜 배려가 아닙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 통한 사람들과는 편한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점점 시야가 적어져 버립니다.

 

35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8:35)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든지 친구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경험이 모든 것이 옳고, 자기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적으면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짚 발고 올라서야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사람의 단점을 헐뜯어야만 자신이 성공한 성도인 줄 착각합니다. 결국은 모두 공멸(共滅)하는 지름길입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서로 살아나는 상승(相乘)의 원리를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 사랑은 곧 자신을 위한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같이 동거동락(同居同樂)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고 같이 일어서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과 미움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당신이 무엇을 뿌리는가에 따라 그 열매를 다음에 그것에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둡니다.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할 때, 무관심과 미움으로 심게 되면,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재앙의 열매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잠언 28장 27절에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심으면 때가 되면, 온 세상이 평화롭게 자유로운 좋은 열매로 돌아와 거둡니다. 잠언 19장 17절에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베풀만할 때, 베풀어야 합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 14:3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의 보좌를 버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 낮아지셨습니다(막 2:17). 주님의 자녀들이 된 당신도 주님을 따라서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시대와 추세를 살핌(3-4)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솔로몬과 같이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판단을 요구합니다.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대책을 세워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결국, 믿음과 지혜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3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4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3-4)

 

특별히 4절에서 “풍세를 살펴보는 자”나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시대를 읽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실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조롱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될 사실을 알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안고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세상의 문화는 점점 타락해져 악해져 갑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세상을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점점 죄악의 불길이 타오른데 세상 탓 만해야 합니까! 악한 세상을 피하는 것이 지혜입니까! 당신은 지금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썩어져 가는 세상만 바라보고 있다면, 당신 또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져가니깐, 이 더러운 세상 꼴을 보지 않고 기도원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이 세상을 이끌고 나가는 사람이지, 세상이 악한 물이 들었다고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어만 한다고 보수(保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경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비만 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공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지만, 진리의 검(劍)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가서 담대히 싸워야 합니다. 이 시대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대안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악한 세력에 자리를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모든 면에서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을 주관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풍속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세대를 읽으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변화를 잘 읽고 그곳에 적절하게 잘 대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적기와 실천의 시기(5-8)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태도를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일할 수 있는 적기(適期)를 알 수 없지만, 지금 일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미래를 준비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 열매를 거둘 때가 있을 것입니다.

 

5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6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7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8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5-8)

 

‘지혜로운 사람’은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무조건 아무 때나 씨앗을 뿌린 것이 아니라 적기에 뿌려야 합니다.

 

(1) 시기를 알아야 축복을 누림(5-6)

 

사람에게 좋은 기회는 3번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기회를 언제 주실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화가가 ‘기회’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마치 올챙이와 같은 모양으로 그렸습니다. 이유는 기회가 왔을 때, 처음에 잡으면 쉽게 잡을 수 있지만, 나중에 잡으려 하면 빠져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실천이 없으면 이론가나 사상가일 뿐입니다.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 축복을 받기 위해 삽니까? 지금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어떤 씨앗이 축복으로 열매를 거둘지 모릅니다. 적기라고 생각하면 열심히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4계절 자연을 통해 교훈해 주십니다. 봄에는 씨앗을 뿌려야 하고, 여름에는 가꾸어야 하며, 가을에는 추수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겨울에 편하게 쉴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선배들을 통해 교훈하십니다. 우리가 항상 젊은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선배들이 가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가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기회에 대해서, 5절에서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고 합니다. ‘기회’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기회를 위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요행을 바라고 있습니까? 복권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요행은 기회가 아닙니다. 자신이 수고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포기해 버린 사람은 이미 축복을 다 받아버렸습니다. 많은 기회가 다가와도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씨는 뿌리지 않으면서 요행을 바랍니다. 또 열심히 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유가 많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자신 앞에 먹을 밥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숟가락질을 하기도 귀찮아합니다(잠 19:24). 자신이 지금 일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고 잠만 잡니다. 이불 속에서 놀면서 생각은 많이 합니다(잠 26:14). 하루 저녁에도 빌딩을 수십 채를 지었다 부수었다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잠언 6장 9절에서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권고합니다.

 

(2) 부지럼함을 통한 복을 누림(6)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사람들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시대의 흐름을 파악합니다.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 되어지면 열심히 씨앗을 뿌리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씨앗을 뿌려야할 때 부지런히 쉬지 않고 뿌립니다. 그래서 6절에서 “6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고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와 자신의 사업에 부지런히 마음을 두어라고 합니다(잠 27:23).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성공의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신지 모릅니다. 당신이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만한 사람은 믿음의 생활도 축복 받을 만하게 합니다. 심방을 해보면, 벌써 말씀의 축복을 받을 집은 다릅니다. 말씀 앞에서 너무나 정숙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22:13)

 

당신에게 오늘 가장 행복한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하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인생의 최대로 놀라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을 위한 충고(7-10)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을 위한 슬기임을 교훈한 데 이어 본 단락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절정기인 청년 시절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충고하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특별히 젊은 시절의 삶에 관해 언급한 것은 청년의 때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운 시기인 동시에 잘못 행할 위험성 또한 높은 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젊은 시절을 위한 전도자의 충고 역시 이제까지 그가 참된 삶과 관련해서 강조했던 바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인생의 젊은 날이 덧없이 지나갈 것을 생각하고 주어진 삶을 누리되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기억하여 세월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7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8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9○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10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7-10)

 

본문은 젊은 날의 기쁨을 누리되, 모든 행위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내용입니다. 젊음의 활력을 즐기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젊은 시절의 쾌락과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에는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 삶을 즐기라(7-9)

 

참된 삶을 사는 것과 관련해서 특히 젊은 시절에 관한 교훈을 주기에 앞서 전도자는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합니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7). 이 구절은 ‘삶에 대한 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빛”은 태양 빛을 뜻하는 말인 동시에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살아서 태양빛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지극히 기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과 슬픔을 만나고 끊임없이 수고해야 하며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삶을 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조건 속에서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날을 생각할지로다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8), 사람은 사는 동안 죽음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현재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삶이 얼마나 속히 지나가고 덧없이 끝나게 되는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소중하게 생각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지 않습니다. 또한 생명으로 충만한 젊은 시절에는 인간의 한계나 불가해한 현실 배후에 있는 창조주의 섭리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인생이 얼마나 연약하고 세월이 얼마나 속히 지나가며 자신이 얼마나 귀한 것을 흘려보냈는가를 아쉬워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9절). 생명으로 충만한 젊은 시절에 마음껏 삶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많은 것을 해보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며 주어진 인생을 풍요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라(9-10)

 

마음과 눈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삶을 즐기라고 한 권면이 결코 방탕하게 살라는 뜻이 아님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9). 전도자는 젊은 날을 즐기고 원하는 것을 좇아 행하라고 했던 자신이 전하려는 뜻이 왜곡되지 않도록 한 가지 단서를 붙이고 있습니다. 맘껏 삶을 즐기되,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고 책임 있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맘껏 누려야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홀려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산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삶을 누리되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여 절제해야 한다는 전도자의 충고는 이어지는 구절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조됩니다.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10). 이 구절에서 전도자는 두 가지를 충고하면서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밝힙니다. 첫째,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근심”이란 ‘고민’, ‘고통’을 뜻하는 것으로 인생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을 떨쳐버리라는 것입니다. 지나친 걱정이나 근심은 삶을 좀먹는 것으로서 적극적인 삶을 방해합니다. 둘째,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이라는 말은 해로운 것을 뜻하는 것으로 참된 삶을 사는 데 해가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해롭게 하는 모든 것들, 즉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과 질병, 그리고 죄 등은 삶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결국 “근심이나 악”은 모두 삶을 파괴하고 생명을 해치는 것들로서 전도자가 이런 것들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하는 이유는 삶이 덧없이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와 청년의 때 다 헛되니라.” 여기서 “헛되다”는 말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신속히 가는 젊은 날을 허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 젊음을 누리는 것, 그것이 최선의 삶입니다.


본문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지혜로운 태도를 강조합니다. 먼저, 가진 것을 나누고 투자하여 미래를 대비하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삶의 모든 순간을 즐기되, 젊음의 때를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넷째, 어둠의 날, 즉 고난의 때가 올 수 있음을 기억하고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결국, 전도자는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면서도 지혜롭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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