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22-01)
심판하실 이유를 말씀하신 하나님
에스겔 22장 1-16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이름은 심판주입니다. 죄인은 본능적으로 편안한 것만 기억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실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공의롭고 심판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은 죄악에 대해 결코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회개해야 합니다.
-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벨론 왕의 칼에 넘기실 그러실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피의 성읍이 됐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저질러지는 불의와 불법은 그 한계가 없었습니다. 정치와 종교와 사회와 가정이 모두 죄를 범하여 자신을 더럽히기에 열심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은 여호와를 잊었습니다.
철저하게 심판받은 예루살렘(1-5)
요즘 주변에 관계가 어떻습니까? 관계에는 크게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로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수평적으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관계 회복은 수직적인 관계 회복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할 때, 모든 관계 속에서 화평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1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3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4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1-5)
이스라엘의 죄는 피 흘림이라는 사회적 죄와 우상숭배라는 종교적 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는 사회 전 영역을 부정하게 만들었고, 하나님 없는 영적인 공백을 다른 우상을 만들어 채우는 헛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심판의 날을 재촉하는 악행이며 하나님 주신 거룩한 이름을 스스로 더럽히는 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방인 가운데 능욕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1) 말씀의 계시(1-2)
예루살렘을 바벨론 왕의 칼에 넘기기로 결정하신 여호와께서 ‘이 피 흘린 성읍’(피의 성읍)에 그가 저지른 ‘모든 가증한 일’을 알려주도록 에스겔에게 명령하십니다(2; 참조. 20:4).
(2) 포괄적인 고발(3-5)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바벨론의 칼로 치실(21:1-23) 때는 그러실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예루살렘이 피를 흘려 벌 받을 때를 재촉하고 우상을 만들어 자신의 부정하게 만든 성이 됐기 때문입니다(3), 피 흘림과 우상승배가 예루살렘을 특징짓는 표지가 됐습니다. 전자는 윤리적 악행을, 후자는 종교적 악행을 대표합니다. 사회적 폭력과 제의적 타락이 함께 고발됩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명목상으로만 그분을 인정하는 예루살렘의 민낯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유폐당하시고, 사람의 탐욕스러운 힘과 사람이 자신을 위해 만든 신이 주인 행세를 합니다.
예루살렘은 흘린 피로 죄를 짓고 자기가 만든 우상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하면서 심판의 날을 앞당기고 정해진 심판의 연한을 다 채웠습니다(4a).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는 의역으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네 날들을 가까이 오게 했고, 네가 네 해들의 끝까지 갔다.’ 얼마간 풍자적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열심히 가증한 일을 저지르면서 여호와께서 빨리 심판해주시기를 졸랐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쉼 없이 피를 흘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은 예루살렘이 자초한 재앙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고 민족들의 치욕거리와 조롱거리로 만드실 것입니다(4b). 땅의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을 이름이 더럽혀지고 혼란으로 가득 찬 자로 조롱합니다(5). ‘어지러움이 많은’은 ‘소란이 큰’으로, 명성이 컸던 예루살렘이 피 흘림과 우상숭배 때문에 혼란이 큰 성이 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폭력과 거짓이 지배하는 자기파멸적 사회가 됩니다.
구체적인 죄목들(6-12)
한 사회가 종교적인 부분에서 타락하면,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음으로 반드시 사회적인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그 다음 그 사람의 행위는 다시 볼 것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무시하는데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회복되어집니다.
6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7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8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1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12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6-12)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왜 망하게 되는지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수평적으로는 사랑해야 할 이웃의 피를 흘리는 죄와 수직적으로는 섬겨야 할 하나님 대신 우상을 만드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더러워진 예루살렘은 다른 나라에게 부끄러움을 당할 심판의 날을 자초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피의 성으로 만든 가중한 일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오경의 법조문, 특히 레위기 18-20장에 나오는 계명들의 요약에 해당합니다. 전체 열여섯 개의 고발 가운데 세 개는 제의와, 다섯 개는 성적 윤리와, 여덟 개는 사회 윤리와 관련됩니다. 제의적 이탈보다는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불의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18장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성적 타락에 관한 언급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로 가정의 무질서와 붕괴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무질서와 붕괴를 가져옵니다.
(1) 사회적 타락(6-7)
먼저 예루살렘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모든 고관’의 죄가 언급됩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의 타락과 멸망에 가장 큰 책임이 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여기에서 ‘고관’은 왕실에 속한, 왕을 포함한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최고 권력층에 속한 자들이 저마다 제 권력에 따라 피를 흘립니다(6). 오경의 법조문에 상응하는 규정이 나오지 않는 유일한 고발입니다. 큰 권력을 가진 자나 작은 권력을 가진 자나 제 손에 있는 권력을 사적 용도로 사용합니다. 법을 책임진 자들이 정의와 공의에 따라 통치하지 않고, 제 유익을 위해 권력을 임의로 행사합니다. 예루살렘의 법질서가 그 유지와 준수를 위해 애써야 할 자들에 의해 무시됩니다. 둘째 고발은 무질서의 끝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깁니다(7a; 참조. 출 21:17; 레 20:9; 신 27:16; 참조. 출 20:12; 레 19:3a; 신 5:16). 어른의 지위와 권위가 가정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권력과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부모는 짐만 될 뿐이었습니다. 부모조차 무시하는 사회에서 다른 계명들이 지켜질 리 없었습니다. 사회적·법적 약자에 속하는 자들이 악한 사회의 희생물이 됩니다. 나그네가 학대를 당하고 고아와 과부가 억압을 당합니다(7b). 고대 세계에서 집안과 친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기에 이들의 권리는 쉽게 짓밟혔습니다. 특히 신명기 율법은 이들의 보호에 남다른 관심을 보입니다(참조, 신 14:29; 16:11,14; 24:17,19-21; 26:12; 27:19; 참조. 출 22:21-22; 레 19:10,33; 렘 7:6; 22:3).
(2) 종교적인 타락(8)
다섯째와 여섯째 고발은 제의적 타락에 관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성물을 무시하고 그분의 안식일을 더럽힙니다(8; 참조. 레 19:30). 고발의 구체적 내용은 불분명합니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화목제물의 고기를 규정에 따라(참조. 레 15-21) 먹지 않는 것을, 후자와 관련해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안식일에 쉴 수 없게 만들거나 재물을 위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주어 예루살렘(‘너’)은 이러한 제의적 불법이 편만했음을 시사해줍니다. 26절에서는 제사장들의 죄로 언급됩니다.
(3) 사회적·제의적인 타락(9)
일곱째는 중상모략으로 남의 피를 홀리게 하는 자들에 대한 고발입니다(9a; 참조. 레 19:16; 잠 11:13; 렘 6:28; 9:4-5; 마 5:21-22). 이들은 제 이익을 위해 이웃을 불화와 분열에 빠뜨립니다. 여덟째의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9ba; 참조. 18:6)는 산당 제의에 참여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함께 음식을 나눕니다.
(4) 성적인 타락(10-11)
9bβ절부터 11절까지의 다섯 개는 특히 집안의 성적 악행을 고발합니다. 도덕적·성적 타락이 가족과 이웃의 기본 질서마저 완전히 파괴해버립니다(참조. 레 18:6-23; 20:10-21; 호 4:13-14; 암 2:7). 계모와 성적 관계를 갖거나(참조 레 18:7-8; 20:11; 신 23:1; 27:20), 생리로 부정한 여자를 범하기도 하고(참조. 레 18:19), 이웃의 아내와 역겨운 짓을 저지르거나(참조. 레 18:20), 며느리와 추잡한 짓을 하고(참조. 레 18:15), 자기 아버지의 딸인 누이와 관계를 갖기도 합니다(참조 레 18:9).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고 음란을 즐깁니다.
(5) 사법적·경제적 타락(12)
성욕이 가정을 지배한다면, 재판과 상업과 경제에서는 돈이 지배합니다. 열넷째는 불의한 재판에 대한 고발입니다. 재판관은 뇌물을 받고 법을 왜곡하여 의로운 자의 삶을 파괴하고(12a; 참조. 신 27:25), 부자는 변리와 이자를 받고 돈놀이하고(12bα; 참조. 출 22:24: 레 25:35-37; 신 23:20), 이웃을 억압하여 착취합니다(12bβ).
여호와 보시기에 예루살렘의 부패와 타락은 총체적이었습니다. 왕궁과 가정과 사회 어디에도, 법과 제의와 윤리와 경제 어디에도 여호와의 계명은 없었습니다. 12절의 마지막은 이를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너는) 나를 잊어버렸도다.’ 하나님께서 없는 사회에서는 사람이 서로에게 주인이 되고, 서로를 물건처럼 취급합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살기에 피 흘림과 우상숭배가 문제시되지 않습니다.
징계의 선포(13-16)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을 열국 중에 흩으셔서 그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힘을 다 빼고 권력을 꺾어서 다시는 자기 힘을 의지하여 살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힘과 재물을 내려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서실 것입니다.
13네가 불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은 일과 네 가운데에 피 흘린 일로 말미암아 내가 손뼉을 쳤나니 14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 15내가 너를 뭇 나라 가운데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에서 멸하리라 16네가 자신 때문에 나라들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13-16)
이스라엘의 담대한 죄악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까닭이었으므로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결심하십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1) 여호와의 징벌(13-14)
멸망을 재촉하기에만 열심인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멸망의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열여섯 개의 죄악 목록이 ‘불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는 일’과 ‘피 흘린 일’로 요약됩니다(13). 다른 예언자들의 경우처럼 경제적 탐욕과 사회적 폭력이 심판이 주된 원인으로 언급됩니다. ‘손뼉을 치다’는 적대적 반응을 보여주는 행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이 되어 치시기에 예루살렘이 버텨낼 수 없습니다(14).
(2) 유배(15-16a)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주민을 이방 나라들 가운데로 흩트리고 이들의 더러움을 예루살렘에서 제거하십니다(15). 이방에 흩어져 민족들에 의해 수치를 당할 때가 되어서야 이들은 죄를 깨닫고 여호와의 의로운 심판을 인정하게 됩니다(16).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이름은 심판주입니다. 죄인은 본능적으로 편안한 것만 기억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실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공의롭고 심판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은 죄악에 대해 결코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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