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21-01)
예루살렘을 심판할 칼의 노래
에스겔 21장 1-17절
기쁘고 행복할 때 노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도 노래합니다. 슬플 때 부르는 노래를 애가(哀歌)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칼로 비유하는 '칼의 노래'는 슬프고 안타까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아픈 경험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러한 노래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과 그 성소에 거슬러 칼을 드십니다. 의인과 악인을 모두 이스라엘 땅에서 끊으십니다. 산림에 불은 불이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가리지 않고 태우듯이, 여호와의 힘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치십니다. 그분의 칼은 심판이 완전히 이뤄지기 전까지는 다시 칼집에 쫒히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임할 칼(1-5)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이 심각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타락에 대해 탄식해야 할 때 탄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외면이거나 무지입니다. 거룩한 회복은 죄를 보면서 탄식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칼을 준비하여 모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1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3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4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1-5)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십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단락은 20:45-49과 짝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비유의 모호성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1) 선포의 명령(1-2)
에스겔을 ‘비유를 말하는 자’로 조롱하는 자들에게 이번에는 분명한 언어로 말씀이 선포됩니다. 선지자가 부르는 칼의 노래를 들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돌려 성전을 거슬러 선포하고 이스라엘 땅을 거슬러 예언하라고 명령하십니다(2).
(2) 칼로 치시는 여호와(3-4)
하나님께서는 돌아서지 않는 이스라엘 땅과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심판의 칼을 뽑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칼은 원수를 대하듯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거나 방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때 여호와께서 아내로 삼으셨던 예루살렘과 그분의 거처인 성전과 약속의 선물로 주셨던 이스라엘 땅이 그분의 심판에 떨어집니다.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을 이유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고발이 더는 필요하지 않는 단계가 됐음을 시사해줍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을 대적하십니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 이스라엘 땅에서 의인이나 악인이나 가리지 않고 다 잘라내십니다(3). ‘의인과 악인’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킵니다. 칼을 빼 드신 여호와의 모습은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집행될지를 보여줍니다.
‘내가 너에게서 의인과 악인을 잘라낼 터이니, 내 칼이 남에서 북까지 모든 육체를 치려고 칼집에서 나갈 것이다.’(4절 사역) 칼을 피해 도망할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온 땅이 칼에 넘겨질 것입니다. 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칼을 칼집에서 뽑으시고, 4절에서는 여호와의 심판 의지에 따라 그분의 칼이 칼집에서 나갑니다. 칼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칼집에서 뽑히기만을 기다립니다.
(3) 다시 꽂히지 않는 칼(5)
한 번 뽑힌 칼은 다시 칼집에 꽂히지 않습니다(5b). 도중에 그치거나 경감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누구도 칼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칼집에서 칼을 뽑았음을 모든 육체가 알게 됩니다(5a).
4절의 ‘모든 육체’는 칼의 심판에 넘겨진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키고, 5절의 ‘모든 육체’는 민족들까지도 포함합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을 통해 여호와의 능력이 온 땅 드러납니다. 전에 민족들 가운데 당신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게 하려고 인내하셨던(20:9,14) 여호와께서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으십니다. 여호와의 칼에 의한 완전한 멸망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분께서 칼집에서 뽑은 칼의 정체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19절에 가서야 바벨론 왕임을 알게 됩니다.
불을 놓아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모조리 태우시고, 칼로 ‘의인과 악인’을 다 잘라내시리라는 말씀은 에스겔이 앞에서 선포한 하나님의 공의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에스겔은 14:12-20에서 노아와 다니엘과 욥과 같은 의인도 자기 공의로 자기 생명만 건지고 자녀는 건지지 못한다고 말했고, 18:1-20에서는 모든 영혼이 다 여호와께 속했기에 죄지은 자만 죽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긴장은 신학적 전통의 차이보다는 관점의 상이성에서 기인합니다. 14장과 18장은 각 개인의 행위와 책임의 관련성에 초점을 맞춰 하나님의 공의를 논하고, 여기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간주해 심판을 선포합니다. 전자가 하나님의 공의를 율법적 측면에서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후자는 공동체에 임한 심판의 사회·정치적 영향과 범위에 주목합니다.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임하는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재앙은 성격상 집단적이기에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아무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존에 서로 의존적인 나무의 가지와 잎의 경우처럼 개인과 공동체(사회)는 서로 분리될 수 있는 두 실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각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내 또는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가 잘 보여주듯이, 이스라엘 전체가 그분과 언약을 맺고 그분의 아내 또는 아들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 책임을 져야하기에 순종한 전체 이스라엘이 하나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의인이든 악인이든 다, 물론 이들의 운명이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지는 않지만, 언약 백성의 배반을 징계하는 그분의 심판에 떨어집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을 포함한 이스라엘 땅이 여호와의 칼에 넘겨져 모든 육체가 잘림을 당합니다. 에스겔이 선포한 칼의 심판은 전쟁을 가리킵니다.
표적 행위(6-7)
하나님께서는 두렵고 무서운 심판자이십니다. 자기 백성들을 돕기 위해 적들에게 사용했던 칼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죄악이 극심했음을 보여 줍니다. 혹시 우리들에게 죄가 있음에도 돌아서지 않으면, 어쩌면 하나님의 칼끝이 우리를 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6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7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6-7)
말로 선포된 칼의 심판이 이번에는 행위로 선포됩니다. 백성들은 이 무서운 재앙을 통해서 심판의 칼을 뽑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심판을 앞두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허리가 끊어지도록 크게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1) 여호와의 명령(6)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멸망의 고통과 두려움을 표적 행위로 보여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듯이 괴로워하며 탄식해야 합니다(6). 상체와 하체를 이어주는 ‘허리’는 힘의 자리로(참조. 욥기 40:16;잠언 31:17), ‘허리의 끊어짐’은 버틸 수 없는 고통을 시사 합니다. 신명기 22:11은 적의 멸망을 ‘허리를 꺾다’로, 나훔 2:11은 저의 침략에 직면한 니느웨 사람들의 낙담을 ‘허리가 떨리다’로 표현합니다.
‘탄식하다’는 절망적 상황에 지면한 자들의 한숨입니다. 예레미야애가 1:11에 따르면 온 백성이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고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을 먹을 것과 바꿉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의 표적 행위를 본 백성의 질문을 예상하시고 그들에게 줄 답변을 알려주십니다.
(2) 여호와의 해석(7)
7절의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해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는 7:17절의 ‘모든 손은 피곤하고 모든 무릎은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를 정신적·심리적 차원에서 확장한 표현입니다. 들려오는 소문 때문에 사람은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혼이 나간 자들처럼 덜덜 떱니다.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소문이 소문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이번에는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결정하신 칼의 재앙이기에 들려오는 소문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칼의 노래(8-17)
하나님께서 사형 집행인에게 주신 칼은 무섭고 날카로운 칼입니다. 적들을 향하던 칼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겨누게 됩니다. 사방을 에워싼 칼날은 성문마다 지키고 있어서 심판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다할 때까지 칼의 심판이 계속될 것입니다.
8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1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12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13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지면 어찌할까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16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17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8-17)
전승 과정 중에 훼손을 경험한 것 같은 일부 구절 (10b, 13, 14a, 15a)의 원래적 의미를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단락의 전체 내용은 단순합니다. 전쟁 무기인 칼에 집중합니다.
(1) 날카롭고도 빛나는 칼(8-13)
21장에 ‘칼’이 모두 15회(3,4,5,9(×2),11,12,14(×3),15,19,20,28(2)) 사용되면서 단락들을 유기적으로 연결 해줍니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칼의 위용이 반복적으로 묘사됩니다. 날카롭게 잘 갈아 빛나는 칼이요(9,10,11), 내리칠 때마다 번개 치듯 빛나는 칼이요(10, 15), 마구 죽이라고 갈아(10, 15) 살해자의 손에 넘길(11) 살육의 칼, 큰 살육의 칼입니다(14).
(2) 죽이는 칼(14-17)
칼이 사람들을 에워싸고 휘둘러지면, 사람들의 마음은 녹아내리고 많은 사람이 비틀거릴 것입니다(15). 모든 관심이 칼의 무서움을 묘사하는 데 모아집니다. 날카롭게 갈아서 날이 선 칼이 행동에 나섭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성문마다 ‘번쩍번쩍하는 칼’(살 육의 칼?)을 세우십니다(15b).
칼의 배치가 끝나자 여호와께서 칼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십니다. ‘오른쪽으로 돌아라. 왼쪽으로 돌아라. 네 날이 향하는 곳으로 돌아라’(16절의 사역). 여호와의 분노가 풀리기까지 칼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칩니다(17). 문맥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칼을 가시는 분이지만, 이를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또 칼을 휘두르는 ‘죽이는 자’가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나 만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모든 고관이 칼에 넘겨집니다(12).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칼이 그분께서 ‘내 백성’이라 부르시는 이스라엘을 칩니다.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에서 백성을 치실 수밖에 없는 그분의 슬픔 아픔 엿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17절의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는 그분의 단호한 심판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손뼉을 치다’는 칼이 사납게 날뛰도록 부추기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배반한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오직 심판으로만 가라앉혀집니다(참조 5:13;16:42;24:13).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에스겔은 무서운 심판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그들이 보는 앞에서 슬프게 울었습니다. 주위에는 아직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소유를 부러워하지 말고 그들의 영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또한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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