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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17-01)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

민수기 17장 1-13절


 

참 지도력은 하나님께서 확정하십니다. 누가 참 지도자인지,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지도력을 주셨는지, 하나님께서 누구를 우리의 지도자로 세우셨는지, 우리가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이러한 문제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바른 방향을 제시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바쁜 시대에는 필요한 요소이고 추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지도자를 확증해 보여주십니다. 그의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고라의 반란이 지난 뒤,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의 지휘관들과 온 회중을 소집하여 누가 제사장직을 위해 선택받았는지 재확인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추가적 조치는 백성들이 다시는 제의적 제도와 규범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의 지파장들에게 지팡이 하나씩을 준비하여 모일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1-5)

우리는 언제 불평합니까? 자신의 뜻대로만 고집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구하지 않을 때입니다. 대부분 자기 자리에 충실하기보다 타인의 자리를 넘볼 때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위치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각자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며 사람들은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3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4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5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1-5)

 

고라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그가 원했던 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만 주어진 제사장의 직책을 모든 레위인에게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심으로 아론의 지위를 확증해 주셨습니다. 한 번 더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확증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별로 우두머리의 지팡이를 가져오게 하시고, 그 지팡이에 수령의 이름을 쓰도록 하십니다. 히브리어로 지팡이와 지파는 같은 ‘마테’입니다. 각 지파에서 각각 지팡이를 가지고 오라는 말 자체가 언어유희입니다. 지팡이는 그것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권위와 지도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의 지팡이에 수령의 이름을 쓰게 하셨는데, 특별히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 아론의 이름을 쓰도록 명하십니다. 각 지파 수령의 이름은 따로 소개하지 않지만, 아론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소개한 것부터 이야기의 결론을 짐작하게 합니다. 실제로 고핫은 레위의 둘째 아들이기 때문에 아론의 이름이 레위 지파의 우두머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 아론의 이름을 쓰게 하심은, 레위 지파의 지도력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대제사장의 직분을 따른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서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하셨는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질서가 무엇인지 명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앞선 고라의 반란은 분명 제의적 목적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진행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출발은 고라의 제사장직 찬탈이었고, 이어서 다단과 아비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반란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론 가문의 권위가 가장 우선적으로 공적으로 확증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판정이 결정되면 정치적 쟁점도 자동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아론 가문의 적법성 확인은 이차적으로 모세의 권위의 재확증으로 이어집니다. 아론에 대한 도전 또한 결국에는 모세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모든 지파들이 모인 앞에서 아론의 지팡이는 제의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를 동시에 증명하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16장에서부터 시작된 지도력에 대한 시험을 종결하고, 백성의 불평을 그치게 할 것입니다.

 

모세의 실행(6-11)

이 세상에는 사는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각자에게 부족한 흠결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기에 사명자로 세우신 것은 아닙니다. 각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옷 입히셨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무시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6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매 그들의 지휘관들이 각 지파대로 지팡이 하나씩을 그에게 주었으니 그 지팡이가 모두 열둘이라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 7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8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9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집어들었더라 10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11모세가 곧 그 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6-11)

 

아론의 제사장적 연달아 위협을 받는 상황에 눈감지 않으십니다. 손수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12지파 대표들에게 지팡이 하나씩 가져와 이름을 새기게 하십니다.

 

(1) 지팡이를 증거의 장막 안에 둠(6-7)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는 지파별로 지팡이를 받았습니다. 그 지팡이는 열둘이고 그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는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포함되고, 레위 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요셉 지파로 다시 묶였고, 레위 지파를 포함해서 열두 지팡이가 되었다는 주장은 일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후 역사에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계수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다시 하나로 묶어서 계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열두 지파에서 지팡이를 가져오고 레위 지파의 대표로 아론의 지팡이를 가져왔다면, 지팡이의 숫자는 모두 열셋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라는 표현은 열두 지파의 지팡이 가운데 아른의 지팡이도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각 지파로부터 가져온 지팡이는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증거의 장막은 지성소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2) 살구 열매가 열린 아론의 지팡이(8-9)

 

하나님께서는 열세 개의 지팡이 중에서 선택하신 지파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실 것입니다. 생명력이 없는 죽은 나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 혹은 지파를 통해서 이스라엘에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튿날 아침 모세가 다시 성막으로 들어가 지난밤 놓아둔 지팡이 중에서 오직 아론의 지팡이만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맺혀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들어가 본즉’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여기서 ‘보다’라는 말은 감탄사에 해당합니다. 모세가 들어가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라 외마디 감탄사를 쏟아낸 것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생물학적으로는 죽어 있던 지팡이에 열매가 맺힌다는 것은 놀라운 이적입니다. 모세는 즉시 지성소에 있던 지팡이들을 가지고 나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확인시켜주고, 각 지파의 지팡이를 나눠주었습니다. 여기서 “장막 안 여호와 앞”은 10절에 비추어 볼 때 지성소가 분명합니다. 지성소는 속죄일 규례가 확립된 후에 대제사장만이 속죄일인 7월 10일에 입장이 가능했는데, 어떻게 모세가 그 위험한 공간에 들어갔으며 또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입장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가 시내산 정상 하나님의 임재 현장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호출을 받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3) 증거궤 앞에 보관한 아론의 지팡이(10-11)

 

모세는 각 지파의 지팡이를 즉시 되돌려 주었지만, 싹이 나고 살구 열매를 맺은 아론의 지팡이는 돌려주지 않고 하나님의 증거궤 앞에 두었습니다. 이 지팡이는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에게 경고의 표가 될 것입니다. 고라의 반란 사건 이후, 향로를 펼쳐 제단을 덧입히게 하여 반역을 경고하는 언약적 표 혹은 기념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다시는 반역을 저지르지 않도록 경계하시기 위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기억의 장치로 두십니다.

 

백성들의 두려움(12-13)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받은 사람은 교만하게 행하지 말고,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충성하면 됩니다.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거나 사람들을 압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는 그 권위를 인정하며 사역을 함께하면 됩니다.

 

12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13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12-13)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아론의 지도력을 하나님께서 직접 확증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곧장 죽음의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들은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모두 죽으리라고 말합니다. 문맥상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예배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성소를 침해하는 죄를 범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라고 반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빠진 것은 곧장 18장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 대한 규정들의 배경이 됩니다. 이제 아론은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권위의 상징인 지팡이를 가지고, 백성을 죽음의 공포에서 건져내어 그들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제사장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와도 연결되어 해석되었습니다. 이사야 11:1-2에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한다고 말씀함으로 본문의 이미지를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참 구원과 소망이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절망감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죄 많은 존재임을 깨달을 때, 그는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지성소를 넘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망하게 되었나이다’하며 절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적 요구를 모두 담당하셨기에, 이제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녀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만민이 평등하지만, 역할과 직임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에 순종하고, 다른 사람의 역할과 위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하지 못한 이스라엘이 뻐아픈 대가를 지불했던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기 백성이 또다시 그런 아픔을 겪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마음을 헤아리고, 그 뜻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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