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06-01)
레위기 5장 14절-6장 8절
레위기 5장 14절-6장 8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정직한 회개와 진정한 속죄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보고, 우리의 삶 속에서 이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함께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우리의 신앙 생활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속건제의 히브리어는 ‘아샴’인데, 기본 의미는 ‘죄’와 그에 따른 ‘죄책’ 나아가 그것에 대한 구체적 책임이 강조된 ‘배상’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가 제의 법안에서는 제사 용어로 특화되어 ‘속건제’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대다수 영어 성경은 여전히 전통적 번역인 ‘속건제’(guilt offering)를 유지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의미를 반영하여 ‘배상제’(reparation offering)를 선호합니다. 한글개역(개정)의 ‘속건제’에서 ‘건(愆)’은 허물 건(愆)입니다.
여호와의 성물에 대한 범죄와 속건제 규정(14-16)
하나님께 봉헌된 물건은 성물입니다. 성도가 부지중에 성물이나 계명을 어겼다면 회개하고 물어내야 합니다. 부지중이라도 성물이나 계명을 어기는 것은 죄입니다. 성도는 교회의 재정과 물건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 죄를 범한 경우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5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양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16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14-19)
여호와의 성물에 대한 부지중의(비쉐가가) 범죄는 히브리어로 ‘마일’로 불립니다. 이것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한 죄’(레 6:2), 곧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위반’을 의미합니다. 예외적으로 민수기 5:27은 아내가 부정을 저질러 남편의 신뢰를 깨트리는 사례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의 결혼 서약 파기라는 점에서 넓게 보면 ‘믿음의 위반’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5:14-6:7의 속건제 규정에 나오는 이 ‘마일’ 죄의 목록들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뉩니다: (1) 성물을 훼손하는 죄; (2)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서약의 위반. 이 마알의 죄는 속건제가 요구됩니다.
우선 성물을 침해한 죄는 속건제를 바쳐야 합니다(5:14-16). 그러나 이 성물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성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성소의 시설물과 비품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소에 바쳐진 봉헌물들(고르반)입니다. 우선 성소에 안치된 물건들은 모두 매우 중대한 성물들입니다. 만일 자격이 없는 사람이 만지면 무서운 징벌이 내려집니다. 예를 들어, 웃시야가 멋대로 제사장 구역인 내성소에 들어가 향을 피운 마알의 범죄에 대해 즉각 나병의 징벌이 내려졌습니다(대하 26:16-18). 따라서 이 성물의 침해는 다른 종류의 것인데 랍비들은 그것을 사소한 성물(minor sancta)이라 불렀습니다. 그것은 성소에 바쳐진 봉헌물들입니다: 십일조나 첫 수확물, 그리고 각종 서원의 제물 등.
예를 들어, 만일 누군가가 부지중에, 즉 실수로(그릇) 십일조의 봉헌을 하지 않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면 그는 벌금과 더불어 속건제를 바쳐야 합니다. 벌금은 원금에 5분의 1, 즉 20%를 더하여 내야 합니다. 이어서 그는 하나님께 ‘참으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레 5:19) 속건제의 숫양을 바쳐야 합니다. 이 숫양은 성소의 세겔로 정해진 값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1세겔은 약 11-12그램 정도인데, 고대에 이 값이 어느 정도 가치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정했을 것으로 추론되는 이 표준적 숫양의 값이 정확히 몇 세겔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 짐승의 값은 언제나 유동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암시되는 것은 만일 어떤 사람이 ‘고의로’ 십일조를 비롯한 성물을 빼돌린다면, 속건제로 해결될 수 없는 중범죄로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징벌이 가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수를 한다면 아마 원금에 20%를 더한 벌금과 속건제의 숫양을 바침으로써 용서를 받았을 것입니다. 속건제에서는 계급이나 신분에 따른 제물의 차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벌금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원금의 20%였으며 희생 짐승은 숫양이었습니다. 성물의 피해를 배상하고 속건제 숫양을 바침으로써 그를 위해 속죄가 이루어지고 그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어긴 범죄와 속건제 규정(17-19)
하나님께 대한 책임은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웃에게 정직하게 대하는 것은 공동체의 신뢰를 쌓는 데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는 것은 회개의 첫걸음이 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와 행동의 개선을 동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를 항상 용서해 주십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17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18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 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19이는 속건제니 그가 여호와 앞에 참으로 잘못을 저질렀음이니라(17-19)
이 조건절 문장은 4장의 속죄제에서 나타나는 금지 명령 위반에 대한 문장과 동일합니다. 따라서 왜 여기서는 속건제가 요구되는지 혼동을 일으킵니다. 학자들은 현재의 문맥에서 ‘여호와의 계명을 어긴 범죄’는 단순한 도덕적 금지 명령이 아닌 성물의 침해와 관련된 죄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원금의 20%를 더하여 배상하라는 요구가 없습니다. 이 상황은 다음과 같이 이해됩니다. 그 사람은 무의식중에 성소의 어떤 비품을 손상시키거나 오염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성물을 침해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따라서 배상금 요구는 뒤따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속건제의 숫양을 드림으로써 성소를 침해했을지도 모를 자신의 죄로부터 홀가분해집니다. 19절은 이러한 배상이 요구되는 잘못들은 명백히 여호와께 대한 범죄라고 분명하게 진술합니다.
이웃의 재산에 대한 범죄와 속건제 규정(6:1-6)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신실한 성도는 이웃과 그 소유물에 대해 정직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웃에게 죄를 범했을 때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남의 물건을 착취하거나 변명하는 것은 죄입니다. 훔친 물건이나 주운 물건은 본래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해 주인에게 돌려보내야 합니다.
6: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3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4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5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6그는 또 그 속건 제물을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곧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 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고 갈 것이요 7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1-7)
여호와 앞에서의 서약이나 맹세를 파기하면서 일으킨 타인의 재산 침해도 ‘마알’로 규정됩니다. 범죄자는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는데’(6:2). 이를테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여서 탈취한 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사실을 부인합니다. 예컨대, 물건을 잃어버렸다거나(속임수), 자신이 물건을 맡은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도둑질), 나아가 이웃에게 모종의 압력을 가하여 강탈합니다(착취). 또한 물건을 주운 뒤 거짓으로 하나님께 맹세하여 시치미를 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과 사기, 불의한 분실물 습득은 맹세가 수반되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칼을 든 강도 짓이 아니지만, 교묘한 합법적 수단으로 이웃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임금 착취나 임금 체불과 같은 범죄라 할 수 있습니다(예, 레 19:13). 범죄자는 그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되 원금에 20%를 더하여 배상금을 물어줘야 합니다. 아마 죄가 드러나는 날, 즉 사건의 진상이 파악된 뒤 그런 배상절차가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이어서 범죄자는 성소에서 정한 값에 맞는 숫양을 성소에 가져가 속건제로 바쳐야 합니다.
이 재산상의 피해는 벌금이 불과 원금의 20%에 지나지 않으며, 추가로 숫양 한 마리를 성소에 바칠 뿐입니다. 여기서 우선 여호와의 재산에 피해를 입힌 잘못은 ‘부지중에 저지른 범죄’로 규정됩니다(레 5:15). 그러나 레위기 6:1-7에서 이웃의 재산에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명백히 고의적입니다. 즉, 그것은 ‘속임수’, ‘도둑질’, ‘거짓말’ 등을 통해 남의 재산을 집어삼키는 악랄한 범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금은 미미한 수준인 원금의 20%입니다. 대조적으로 출애굽기에서는 양이나 소를 도둑질한 것에 대한 벌금은 네 배 혹은 다섯 배입니다(출 22:1). 즉, 양을 한 마리 훔치면, 네 마리를 갚아야 하고, 소를 훔치면 다섯 마리를 갚아야 합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법이 충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레위기 6:1-7의 사례들은 남의 재산을 속임수로 취득하거나 강탈한 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수를 한 상황이 틀림없습니다. 속건제는 ‘참회’와 ‘죄책감’을 동반하는 제사이기 때문에, 분명히 그 범죄자는 나중에 심경에 변화가 생겨 잘못을 인정하고 물건을 원주인에게 돌려줬을 것입니다. 이때 주인에게 원금의 20%의 벌금을 내고 여호와께도 범죄했기 때문에 속건제 숫양을 바칩니다. 한편, 속건제의 경미한 벌금에 대해 어떤 사람은 회개를 권장하여 힘없는 사회적 약자였을 피해자의 재산을 되찾아주려는 의도와 취지가법에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즉, 속건제 규정은 자수를 유도하기 위한 징벌 감면책이기도 합니다.
한편, 속건제는 피를 뿌리는 방식을 볼 때 속죄제가 처리하는 죄와 달리 성소를 더럽히지는 않은 죄로 추론됩니다. 속건제의 피는 번제와 화목제의 피와 동일한 방식으로 제단에 끼얹습니다(자라크). 그러나 속죄제는 뒤에 자세히 살피겠지만, 제단과 성소 내부를 씻어내는 특유의 동작으로 피를 제단에 처리합니다. 따라서 속건제의 경우 피로 제단을 닦아내는 일이 없이 단지 오분의 일을 더한 배상과 숫양을 바침으로써 해결되는 죄로 추론됩니다. 마지막으로 속건제의 남은 고기는 먹는 속죄제의 고기와 같이 집례하는 제사장이 먹어야 합니다.
구약에는 다양한 속건제의 사례들이 나타납니다. 속건제의 숫양은 현재와 같이 어떤 성물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입혔을 때에만 드리는 제물이 아니었습니다. 악성 피부병(나병)이 완치된 사람이 진영에 복귀할 때 속건제의 숫양을 드렸고(레 14장), 나실인이 서약 기간에 사체와 접촉해서 더럽혀지면 재서약을 위해 두 마리의 새를 번제와 속죄제로 바치고 이어서 속건제의 숫양을 바쳤습니다(민 6:7-21).
한편, 속건제는 숫양의 형식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숫양이 아니어도 피해에 대한 어떤 물적인 배상을 ‘아샴’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예, 삼상 6장). 매우 흥미롭게도 이사야 53:10에서 의로운 종의 죽음이 속건 제물로 간주됩니다. 이 종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대신 지불하는 배상(아샴)의 희생입니다. 따라서 이 죽음의 성격은 명백히 배상으로 드려지는 속죄제 희생의 죽음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예수님의 죽음을 속건제 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유지하고 이웃과의 정직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신앙생활의 본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와 용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공동체 내에서 신뢰와 사랑을 증진시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다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성장과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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