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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4-01)


홍해 앞에서 시험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4장 1-14절


 

과거의 유혹이나 실패가 우리를 다시 붙잡으려 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전진해야 합니다. 현실이 아무리 두려워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며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기회입니다.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뒤돌아서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진 치게 하였고, 바로가 강퍅하여 병거 600승을 타고 추격해 오지만, 애굽 군대를 인해 영광을 얻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는 추격해 와서 이스라엘 진 친 곳에 미쳤습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구원하고 싸우실 것이기에 가만히 보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홍해 해변에 숙영한 이스라엘(1-4)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그분은 때때로 예기치 않은 상황에 우리를 놓으십니다. 우리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고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목적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의 계획은 언제나 우리를 위한 최선의 길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1-4)

 

에담을 떠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돌이켜” 홍해의 어느 해변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방향을 ‘돌이켰다’는 뜻은 남동쪽의 내륙으로 곧장 직진해서 애굽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서쪽의 애굽 영토 쪽으로 다시 들어왔음을 뜻합니다. 정확한 위치를 적시하는 몇 군데 지명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2절의 “바다와 믹돌 사이”에서 “바다”는 앞서 언급된 홍해가 명백합니다. 홍해의 히브리어 ‘얌 수프’는 문자적으로 ‘갈대 바다’인데, 이로 인해 많은 비평학자들이 홍해를 바다가 아닌 갈대가 자라는 호수 주변의 내륙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즉, ‘얌 수프’는 홍해(red sea)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갈대 바다(reed sea)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가 갈라져 그곳을 건넌 게 아니라 갈대가 무성한 내륙의 호수 근처를 통과했을 뿐입니다. 반면에 기적을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건넌 것은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다만 앞서 나온 재앙들이 원래 애굽에서 있었던 자연 현상의 특별한 발생인 것처럼 홍해의 기적도 자연 현상의 특별한 발생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연주의적 설명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한 홍해는 갈대가 무성히 자란 비터 호수(bitter lake)였으며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현상이 특별하게 발생한 덕분에 그들이 그 호수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Rashi; Cassuto). 오늘날 비터 호는 수에즈 운하가 관통하는 거대한 호수로 바뀌었으며 운하와 연결되어 있기에 바닷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카토는 그러나 고대에는 비터 호가 다소 규모가 작은 여러 호수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중 가장 큰 호수를 건넜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는 당시 비터 호가 바다의 만조 시에 홍해와 연결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밀물 때는 바닷물이 들어와 채우고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면서 물이 갇힌 여러 호수들이 생겼을 것이라는 추론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고대인들은 비터 호를 바다로 간주했으며 그곳을 ‘얌 수프’라 불렀습니다(Cassuto). 다만 그 호수는 특수하게 민물 습지와 겹쳐 있는 이유로 해변에 거대한 갈대밭이 조성되어 ‘갈대 바다’를 뜻하는 그런 명칭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변의 여러 지명들은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뜻을 고려해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한 바닷가의 위치는 비터 호수 서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수토는 어떤 프랑스 학자의 심도 있는 현지 탐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에담”은 비터 호의 북쪽으로 추론되며, “믹돌”은 남쪽으로 더 내려와 호수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2절에서 그들의 행진이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해변가로, 말하자면 남서쪽을 향해 다시 애굽 내륙으로 약간 들어오는 방향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믹돌과 비하히롯은 비터 호수에 아주 잘 어울리는 지명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바알스본(바알츠폰)은 가나안 방식의 이름인데 ‘북쪽의 바알’을 뜻합니다. 카수토가 인용한 애굽 문헌에 의하면, 바알스본 역시 망대가 있던 지역의 하나로 추정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지명들은 바다를 끼고 있는 애굽의 서쪽 국경과 잘 어울리며 과거에는 바다와 주기적으로 연결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비터 호수 주변이 유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착각 속에서 마음을 바꾸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 번 성경 저자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4). 바로가 보고받은 첩보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돌이켜” 엉뚱한 길로 들어가 방랑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경로는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추격해 온 애굽의 온 군대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이 영광을 얻을 것이고 애굽 백성은 그분이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방향을 "돌이켜" 홍해의 어느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4).

 

마음이 변한 바로의 추격(5-9)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문제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한 결말로 이끄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시련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인내하면 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5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5-9)

 

이스라엘 백성이 도주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바로와 신하들은 마음이 바뀌어 그들을 풀어준 것을 후회합니다(5).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바로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가라고 했으면서 그와 신하들은 왜 그들이 도망갔다는 사실을 이제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까? 여러 학자들이 바로는 3일 길의 여행과 그들의 짧은 종교 축제만을 허용했기에 ‘그들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추격전을 벌였다고 해석합니다(Cassuto; Enns). 그러나 이미 독자들이 다 알고 있듯이 바로와 모세는 사실 노예 해방이 걸린 벼랑끝 협상으로 담판을 지었습니다. 따라서 위의 표현은 그들의 탈출극이 실제로 현실화하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너무 성급히 그들을 풀어줬다고 생각하며 후회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그리하여 바로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최종적 허락을 했으면서 그것을 스스로 번복합니다. 5절의 “우리를 섬김에서”라는 바로의 말은 흥미롭습니다. 출애굽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바로를 섬김에서 하나님을 섬김으로’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섬김’ (아바드)의 대상은 바로와 그의 제국이었습니다. 이제 그 ‘섬김’은 하나님과 그분의 제국을 향합니다.

 

바로는 전차 부대를 소집합니다(6). 그는 친히 자신의 병거에 올라 군대(‘백성’)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600대의 특수 병거를 소집했으며, 모든 일반 병거를 출동시켰습니다. 지휘관들도 총동원되어 모든 병거를 진두지휘했습니다. 바로는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헤매며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바로의 전차 부대는 급히 달려가 이스라엘의 숙영지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병거들”, “마병”, “군대”라는 표현에 비추어 볼 때, 그 군대에는 아마 강력한 보병 부대도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려워하며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10-14)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설 때가 있습니다. 그때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순간에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라’는 모세의 말처럼, 우리가 당면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선택해야 합니다.

 

10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0-14)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온 것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은 공황 상태에 빠져 극심한 두려움 가운데 여호와께 울부짖었습니다(10).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왜 쓸데없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끌고 나와 다 죽게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11). 이것은 앞서 모세와 아론이 바로와의 최초 협상에 실패한 뒤 그것이 오히려 가혹한 중노동이라는 결과로 돌아오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비난했던 말입니다(5:21). 그들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 것보다 더 나았을 것이라고 따집니다(12).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불순종, 믿음이 없는 습관적 불평은 이미 출애굽 직후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앞으로 그들의 광야 40년 여정 동안 무수히 반복될 불순종과 반항, 그리고 불평을 예고합니다.

 

모세는 침착하게 백성들을 진정시킵니다. 그는 놀라운 믿음의 사람입니다. 모세는 백성을 향해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가 어떤 구원을 베풀어주실지 지켜보라고 소리칩니다(13).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진술이 모세의 입을 통해 선언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실 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이것은 광야 40년 생활과 특히 여호수아서의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전투 수칙입니다. 여리고성 정복은 이 신학적 전투 수칙이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된 전투였습니다. 군사들은 그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 주위를 돌기만 하고 마지막에 나팔을 불고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 성이 정복되었습니다. 지금 여호와께서는 바로 그렇게 그저 백성이 지켜보는 중에 친히 이집트 군대를 격멸하실 것입니다.


본문에는 우리 신앙 여정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도전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줍니다. 과거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눈앞의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기회이며,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완전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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