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090-01)
짧은 인생과 영원하신 하나님
시편 90편 1-17절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며 우리의 모든 날을 아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의 삶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생애는 짧고 고난이 많으며, 이러한 제한된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여정을 계획하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셔서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도와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의존하며 그분의 지혜를 구할 때, 우리는 참된 평안과 만족을 찾을 수 있습니다.
- 본 시는 인생의 덧없음을 회고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간구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을 운명이 된 인간의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님께 짧고 어무한 인생을 살 지혜와 즐거움을 주시길 간청합니다.
우리의 거쳐이신 주 하나님(1-2)
우리가 인생의 어려움과 불확실함 속에서 의지할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전과 평안의 근원이시며, 우리의 삶과 미래를 다스리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안정과 쉼을 찾을 수 있으며, 그분의 사랑과 인도를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그분의 뜻을 따를 때, 우리는 참된 평안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1-2)
하나님을 향해 ‘주여’(아도나이)라고 외치며, 시인은 하나님께서 대대에 걸쳐 그와 이스라엘 공동체의 거처가 되셨다고 선포합니다. ‘거처’는 사자나 승냥이 등 짐승의 ‘은신처’(나 2:12: 렘 9:11). 하나님의 ‘거주지’(신 26:15)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인과 공동체에게 거주지가 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히 보호하고 지켜주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세대뿐 아니라 후손 세대 내내 그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분입니까? 그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이미 계신 분이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살아계실 분입니다. 그는 산과 땅과 세계 모두를 창조하신 창조주시며,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주권자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치 않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덧없고 짧은 인생에 대한 탄식(3-10)
인간의 삶은 빠르게 지나가며, 우리는 그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 짧은 생에서 참된 의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인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인도를 구할 때, 우리의 삶은 의미 있고 만족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며 그분의 축복을 간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3-10)
인생의 허무함과 짧음을 강조하며,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을 제한하시고 흙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것을 묘사합니다. 인간의 세월은 70년 혹은 80년으로 짧고, 그 동안의 삶은 고난과 슬픔이 가득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 구절들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일시적인지를 상기시키며, 하나님의 도움과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1) 덧없고 짧은 인생(3-6)
이스라엘의 거처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나.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덧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땅의 흙으로 그를 지으셨고 생명을 축복으로 주셨습니다(창 2:7).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고, 그 대가로 생명을 잃고 다시 흙으로 돌아갈 운명에 놓였습니다(창 3:19). 시인은 여기서 ‘흙’대신 ‘티끌’(가루가 된 것)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죄 지은 인간의 상태를 흙보다 더 보잘것없는 것으로 낮춥니다. 또한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창 3:19)을 인용함으로써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고, 인간의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하나님으로부터 확정된 결정임을 부각합니다. 덧붙여 시인은 하나님과 인간의 편에서 바라보는 ‘시간’에 대해 언급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천년’은 엄청나게 긴 기간이지만, 하나님께는 어제의 한 날이나 밤의 한 순간처럼 짧은 시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천 년을 산다해도 그 기간이 하나님 앞에서는 밤의 한 자락밖에 되지 않으니, 현실에서 그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더 짧고 하찮습니까! 홍수가 몰려와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듯, 하나님 앞에서의 인생은 그렇게 힘없이 사라지고 마는 존재입니다. 잠깐 자는 것처럼 경각의 삶을 살다 죽게 되는 존재입니다. 풀이 아침에 돋아서 꽃을 피우고 자라나 저녁이 되면 시들어 말라버리듯, 인간도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 시기가 있지만 곧 노쇠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의 죄(7-10)
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분노로 주제를 바꾸며, 인간의 유한하고 덧없는 삶이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분노의 결과임을 부각하며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에 집중합니다. 7절의 번역에는 나오지 않으나 이 절은 ‘참으로’, ‘진실로’라는 강조어로 시작하며,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로 인해 인간이 쉽게 소멸하고 두려움에 떠는 존재임을 설명합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가 없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각 사람의 죄와 은밀한 죄가 낱낱이 밝혀집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당신(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9)란 말은 우리가 짓는 죄가 사는 모든 날 동안 계속되므로, 일평생 하나님의 분노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에서 ‘순식간’은 ‘신음’, ‘한숨’의 뜻이므로, 이 문장의 의미는 사람의 일생이 죄와 하나님의 분노의 결과로 인해 한숨을 내쉬듯 한순간에 지난다는 뜻입니다.
10-11절에서도 시인은 인생의 짧은 유한성과 무상함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계속 설명합니다. 창조 직후 사람들은 천 년 가까이 살다 죽었지만(창 5장), 홍수 이후 인간의 수명은 점점 줄어 매년 안팎까지 이르렀습니다(창 6:3; 11:10-26). 시인은 인간의 연수가 70이며 건강하게 살아도 80이라고 말하며 인생의 유한하고 짧음에 대해 한탄합니다. 더구나 그는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10)라고 말합니다. ‘수고’는 ‘노동’, ‘일’, ‘노고’의 뜻이며, ‘슬픔’은 ‘속임’, ‘해로움’, ‘거짓’, ‘불의’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수고와 슬픔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 시인은 죄를 저지르는 인생과 노고와 고뇌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고난으로 차 있는 인생은 새가 날아가듯 신속하게 지나가니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간구(11-17)
우리의 삶은 짧고 덧없는 여정으로,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거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할 때 진실을 잊을 수 있습니다. 참된 만족과 성취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인도 속에서 발견됩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면 하나님께 지혜와 방향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의존하며 그분의 인도를 간구해야 합니다.
11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11-17)
인간의 짧은 생애와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를 대조하며, 우리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도록 기도합니다. 구절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요청하고, 우리의 노력과 작업이 의미를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내용입니다. 이 기도는 삶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에 축복과 만족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11-12)
시인은 덧없는 인생과 하나님의 노여움 앞에 주저앉지 않고, 이를 직시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분노의 능력과 두려움, 즉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미치는 영향력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남은 날을 계수하도록 가르쳐달라는 시인의 간구는 몇 살에 죽는지 알려달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유한하며 덧없고 빠름을 제대로 인지하게 해달라는 간청입니다. 인생에게 주어진 현실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마음의 첫걸음입니다. 전도서에서 전도자는 해 아래 사람의 수고는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누누이 강조합니다(전 1:14). 그러나 그는 그런 현실을 파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런 삶을 받아들이는 실용적인 방법으로서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라”고 권면합니다(전 2:24). 이 권면은 자포자기하고 허랑방탕하게 살라는 뜻이 아니라, 일하고 얻은 것을 만족과 감사함으로 또한 적정선에서 즐기라는 조언입니다(전 11:9).
(2)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13-16)
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긍휼을 회복시켜주시길 간구합니다. ‘돌아오소서’(13)라는 기도는 분노로 멀어진 하나님께서 시인과 공동체에게 돌아와 긍휼을 베푸시기를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언제까지니이까?”(13)라는 질문에서는 하나님의 분노가 크고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그의 공동체가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종, 하나님의 성도임을 상기시킵니다(13,16). 수고로운 삶 속에서도 성도가 여전히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만족과 기쁨을 자기 자신이나 다른 것에서 찾지 않습니다. 오직 아침마다 하나님의 인자가 함께하여 평생 만족하고 즐거워 외치며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참된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으므로, 고통과 재앙의 나날들을 구원의 기쁨으로 바꿔주시길 하나님께 구합니다. 덧붙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쁨이 그들 세대만이 아니라 대대에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3) 주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17)
‘나의 주’를 뜻하는 호칭인 ‘아도나이’로 기도를 시작한 시인은 다시 같은 호칭(‘주’ 우리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맺습니다. 그와 이스라엘 공동체가 행한 일을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해주심으로써 은총을 나타내시길 시인은 기대합니다. 그는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두 번 반복하여 일의 직접적인 주체가 자신들임을 강조하면서도, 그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인생이 행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간섭하여 견고하게 해주시지 않으면 제대로 결과물을 얻을 수 없고 헛되이 끝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덧없는 세월 속에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긍휼과 친절이 필수적이라는 점입니다. 한편, 17절의 간구는 1절의 선포와도 연결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나님께서 시인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원한 거처가 되어주셨듯이(1),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원한 거처로 남아주시길 바라는 염원이 함축되었습니다(17).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시며, 우리의 짧은 생애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미와 인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참된 안정과 평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참된 의미와 기쁨을 더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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