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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51-06)


바벨론의 최후를 선포하는 스라야

예레미야 51장 54-64절


 

예레미야 46장에서 시작된 바벨론 제국의 몰락에 대한 긴 단원이 끝이 납니다. 두루마리가 유브라데 강물에 가라앉는 사건은 제국의 물락을 의미합니다. 강대국 바벨론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주께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파멸의 왕인 바벨론을 영원한 잠에 빠져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하십니다. 파괴자들에 의해 정복된 바벨론이 잿더미가 됩니다. 보복하시는 여호와의 정의가 바벨론에 남김없이 집행됩니다.

 

보복의 하나님 여호와(54-58)

성도들의 교만은 주변에 우려할 일이 많음에도 세상의 것에 만족하여 간절하고 애절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교만입니다. 바벨론의 교만은 자신들이 평생 동안 누렸던 것들은 다른 나라를 멸망시켜서 얻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누리면서도 자신들은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그들은 이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54바벨론으로부터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도다 갈대아 사람의 땅에 큰 파멸의 소리가 들리도다 55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황폐하게 하사 그 큰 소리를 끊으심이로다 원수는 많은 물 같이 그 파도가 사나우며 그 물결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도다 56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이르렀음이라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 57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 58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의 성벽은 훼파되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잔하리라(54-58)

 

바벨론의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악을 응징하시며, 보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무너지는 날 스스로 안전을 장담하던 자들이 먼저 무너질 것입니다. 고관들과 지혜 있는 다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휘하게 하시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⑴ 바벨론의 최후(54-56)

 

멸망에 처한 바벨론은 울부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54-56절에서는 ‘소리’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큰 파멸과 무너짐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멸망시키는 자를 보내 바벨론을 치게 하시기에 성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는 ‘큰 파멸’(참조 4:6; 6:1; 14:17; 48:3; 50:22)의 소리가 들립니다(54). 다른 민족을 혼돈과 죽음에 빠뜨렸던 바벨론 제국이 혼돈과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황폐하게 하시고 그곳에서 ‘큰 소리’가 사라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55a). 바벨론은 자신의 ‘큰 소리’를 빼앗기고 다른 무서운 소리를 듣습니다. ‘원수는 많은 물 같이 그 파도가 사나우며 그 물결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도다’(55b). 침략자들의 기세가 거센 파도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비유됩니다. 적들은 홍수처럼 밀려들어와 바벨론 전역을 황폐케 만들었습니다. 바벨론은 물의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범람하는 물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이제 원수들이 범람하는 물처럼 밀려들어와 공격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철옹성과 같은 요새는 원수의 공격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큰 소리’는 한편으로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며 내는 소리로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바벨론의 모습을(참조, 50:11), 다른 한편으로는 기세등등하게 민족들을 침략하는 바벨론 군대의 모습을(참조. 4:13) 대표하는 것 같습니다. 대도시의 활기와 번영을 상징하는 ‘큰 소리’가 사라지고 죽음의 영역에 속하는 절박함과 간절함의 ‘부르짖는 소리’와 ‘큰 파멸’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큰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민족들을 짓밟던 자들이 침략자들이 내지르는 요란한 소리를 듣습니다. 반드시 되갚으시는 ‘보복의 하나님’(56) 여호와께서 침략자의 편에서 싸우시기에 바벨론에 쳐들어오자, 바벨론의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부러집니다. 적에 맞서 싸워야 할 용사들이 싸움을 포기합니다.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바벨론의 전투 능력을 마비시키기에 적의 공세를 조직적으로 방어하지 못합니다.

 

⑵ 바벨론의 영원한 집(57)

 

왕이신 하나님께서 진노의 잔으로 바벨론 안에 있는 모든 지위에 사람들을 잠들게 하시고 그들의 수고를 불태우신다고 하십니다.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57; 참조. 39). 바벨론이 자랑하는 통치 조직과 지혜가 무용지물이 됩니다. 중앙과 지방에서 전투를 계획하고 지휘해야 할 자들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보복’은 바벨론의 모든 지도자들을 취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바벨론이 고레스에게 침략 당할 때, 그들은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폭력 없이 그 성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은 자기중심에 빠진 사람들이며, 극도에 이기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며 시대를 읽지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교만한 사람들은 언제 떠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습니다.

 

⑶ 잿더미가 된 바벨론(58)

 

지도자들이 판단력과 용기를 잃고 제대로 맞서지 못하기에 바벨론의 두터운 성벽과 높은 성문도 적의 공세 앞에 무용지물이 됩니다(58a). 성벽이 허물어지고(참조. 50:15; 51:44) 성문은 불타버립니다. 바벨론 신탁을 마무리하는 58b절(참조 합 2:13)의 시야는 바벨론을 넘어 민족들까지 포함합니다. 전체 민족들 신탁의 신학적 요약에 해당합니다.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잔하리라.’(58) 바벨론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의존하거나 유사하게 처신하는 민족들이 폭력과 불의로 얻은 것들이 불타 잿더미가 됩니다. 민족들의 모든 수고는 헛된 것으로, 결국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과거에 바벨론은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지배했습니다. 그들은 비웃으면서 공격하여 약한 나라들을 울부짖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입장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습니다. 바벨론 곳곳에 즐거움과 기쁨에 소리는 모두 다 사라지고 탄식과 절망으로 부르짖는 소리와 죽음 때문에 통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보복하시는 분으로 그 분은 바로 우리가 아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보복의 하나님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큰 사랑은 우리에게 아무런 책임이나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 눈먼 사랑이 아닙니다.

 

확정된 바벨론의 운명(59-64)

민족들이 헛된 일을 도모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비웃으십니다. 제국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권력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심고 세우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와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여십니다. 하나님께서 변치 않으시니 우리의 길은 인정되고 가야 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59유다의 시드기야 왕 제사년에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가 그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갈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씀을 명령하니 스라야는 병참감이더라 60예레미야가 바벨론에 닥칠 모든 재난 곧 바벨론에 대하여 기록한 이 모든 말씀을 한 책에 기록하고 61스라야에게 말하기를 너는 바벨론에 이르거든 삼가 이 모든 말씀을 읽고 62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이 곳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멸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거기에 살지 못하게 하고 영원한 폐허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라 하니라 63너는 이 책 읽기를 다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강 속에 던지며 64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난 때문에 이같이 몰락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하리니 그들이 피폐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끝나니라(59-64)

 

시드기야와 함께 바벨론 왕을 찾아가는 스라야에게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한 책을 바벨론 앞에서 읽고, 그 책을 돌에 매달아 유브라데 강에 던짐으로 책의 운명처럼 바벨론도 멸망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을 보여줍니다.

 

⑴ 표제(59)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말했던 45:1의 경우처럼 다시 예레미야가 명령하는 주체로 등장합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 제사년에’ 왕을 수행해서 바벨론으로 가는 병참감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에게 지침을 줍니다(59). 예레미야는 그에게 두 가지를 명령합니다. 첫째는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두루마리를 바벨론 포로자들에게 선포할 것과, 둘째는 두루마리에 돌을 매달아 유브라데 강 속에 던져서 바벨론의 회복 불가능한 멸망을 시연하도록 명령합니다.

 

⑵ 기록된 바벨론 신탁(60)

 

예레미야의 동역자인 바룩도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이기에(32:12) 스라야와 바룩은 형제 간이 됩니다. 바룩뿐만 아니라 그의 집안이 예레미야를 후원했음을 보여줍니다. 시드기야 왕 제사년은 594년에 해당합니다. 시드기야 왕의 바벨론 방문이 27장에 기록된 사건과 관련된 것이라면, 주변 나라들과의 접촉으로 바벨론의 의심을 사게 된 봉신 시드기야는 주군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다짐하기 위해 바벨론을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27장에서는 표제의 연대기적 정보와 보고된 사건의 시대적 배경이 서로 충돌합니다. 1절의 표제에 따르면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인데, 3절은 시드기야를 사건의 당사자로 언급합니다. 또 27장에 연속된 28:19의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은 27장에 보고된 사건이 시드기야 제사년에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27:1의 연대기적 정보는 아마도 예레미야서의 구성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여호야김 통치 초반이 아니라 시드기야 제 사년에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의 사신들이 예루살렘으로 유다 왕을 방문했습니다.)

36장에서 예루살렘과 유다에 선포했던 심판의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고 바룩을 시켜 이를 성전에서 낭독하게 했던 예레미야가 여기서는 ‘바벨론에 닥칠 모든 재난’에 관해 선포한 말씀을 한 권의 책에 기록하고 이를 스라야에게 넘겨주며 그가 해야 할 일도 가르쳐줍니다(60). 책에 기록된 바벨론의 신탁은 아마도 50:1-51:58에 기록된 말씀 또는 그 일부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기록은 일반적으로 보존을 목적으로 하지만(참조, 32:14), 여기서는 심판의 확정성과 관련된 기록입니다. 한 번 문서로 기록되면 그 내용이 변경될 수 없는 것처럼 바벨론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의지가 최종적으로 확정됐습니다.

 

⑶ 스라야에게 주는 말(61-64)

 

여호와께서 예언자에게 명령을 내리시듯 예레미야가 스라야에게 책의 낭독과 표적 행위의 이중적 사명을 위임합니다. 스라야는 먼저 예레미야가 넘겨준 책에 기록된 말씀을 바벨론에 가서 읽어야 합니다(61).

‘읽다’로 옮긴 단어는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낭독 행위에 관해서는 바벨론에 이르거든, 하라는 막연한 가르침만 주어지고 낭독의 장소나 청자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책을 읽고 나서 할 말도 가르쳐줍니다.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이곳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멸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거기에 살지 못하게 하고 영원한 폐허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라’(63). 내용상 바벨론 신탁의 요약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결정에 속하기에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 모든 땅’과 ‘들짐승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주어 섬기게 하신 여호와께서(27:6) 바벨론을 폐허로 만들고 거기에 짐승도 살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스라야에게 맡긴 두 번째 사명은 표적 행위와 관련됩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예외적인 표적행위입니다. 첫째, 표적 행위의 실행을 명령하는 주체는 언제나 여호와이신데, 여기서만 예언자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둘째, 명령을 받는 자도 언제나 예언자인데, 여기서만 왕의 신하에게 명령이 주어집니다. 여호와(명령하시는 분)와 예레미야(명령을 따르는 자)의 관계가 예레미야와 스라야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스라야는 책에 돌을 매달아 유브라데 강 한복판에 던지고(63) ‘바벨론이 나의 재난 때문에 이같이 몰락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하리니 그들이 피폐하리라’ 하고 선포해야 합니다(64). 돌을 매어 유브라데 강 한복판에 던져진, ‘바벨론에 닥칠 모든 재난’을 기록한 책이 바로 바벨론의 운명입니다. 강바닥에 가라앉은 책이 다시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바벨론도 그렇게 멸망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나의 재난’은 ‘내가 그에게 가져올 재난’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들이 피폐하리라’로 번역한 히브리어 표현은 ‘그들이 지쳐버리리라’를 의미합니다.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는 이곳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이 구절은 58절 마지막에 나오는 ‘그들이 쇠잔하리라’와 동일한 표현으로 59-64절을 앞 단락에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끝나니라’(참조. 48:47)는 직역하면 ‘여기까지가 예레미야의 말들(이다)’가 됩니다. 이 말은 59-64절의 정부가 아니라, 예레미야서 전체를 끝맺는 말입니다. 원문에 따르면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의 말들’(1:1)로 시작해서 ‘예레미야의 말들’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모든 적대감이 완전하게 종결된 샬롬의 통치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이고,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맘몬의 제국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성공과 번영에 물든 신앙은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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