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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23-02)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예레미야 23장 9-22절


 

한 민족의 죄악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지도자들의 문제입니다. 심판을 선포하는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대상도 역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과연 예레미야가 비난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죄는 무엇이며 참된 선지자는 어떤 사랑입니까?

 

  • 이스라엘에게 있어 정치와 종교는 유다를 지탱해주는 두 축이었습니다. 왕이 대표하는 정치를 고발한 후에 예루살렘의 종교로 시선을 돌립니다. 정전이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는 예루살렘의 종교에서 제사장들의 비중이 훨씬 더 켰지만, 여기서는 고발의 초점을 예언자들에게 맞춥니다.

예언자들의 타락과 그 결과(9-12)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좇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죄악 가운데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 때, 빛 가운데 거하게 됨을 기억하시길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버리고 타락한 유다의 역사가 우리 인생에 재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9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 10이 땅에 간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12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어두운 가운데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어냄을 당하여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9-12)

 

예레미야는 술 취한 사람처럼 떨었습니다.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이 거룩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다 사람들은 간음하고 악행을 저질러 타락해 있었습니다. 언약 백성의 타락으로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약속의 땅이 가뭄으로 메말라 버렸습니다.

 

(1) 예레미야의 충격적 경험(9)

 

예언자들의 타락과 무능력을 고발하는 말씀에 앞서 계시 경험에 대한 예언자의 반응이 언급됩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에 마음이 부서지고 뼈가 떨며 술 취한 사람처럼 됩니다(9). 여호와를 통해 알게 된 예루살렘의 악한 실상과 그 결과에 예레미야는 정신적·육체적으로 탈진합니다. 너무도 엄청난 충격과 절망감 앞에 통제력을 상실합니다.

 

(2) 악행으로 저주 받은 땅(10)

 

10-11절은 탄식의 원인이자 여호와께서 알려주신 계시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땅이 간음하는 자들로 가득합니다. 간음은 백성의 윤리적 타락뿐만 아니라(참조․ 9:1-8)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적 타락(참조. 2:20, 23-25; 3:8-9; 5:17)까지도 포함하는 비유적 언어입니다. 백성의 타락은 무지나 과오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악을 추구하고, 불법적으로 힘을 행사합니다. 백성의 영적·도덕적 타락으로 ‘광야의 초장들’을 포함해 온 땅이 저주를 받아 결실을 거절합니다. 구약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사회와 자연은 독자적 실체이기는 하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서로 영향을 미치고 서로 의존적인 두 실존 공간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계명과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땅에 복(비)을 내려 풍성한 결실로 응답하시고, 불순종하면 땅에 저주(가뭄)를 내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십니다.

 

(3) 여호와의 고발(11-12)

 

일반 백성만 악을 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마지막까지 신실하게 남아 있어야 할 예언자들과 제사장들도 타락에 있어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11). 하나님의 의지와 가르침을 대변해야 할 자들이 그분에게서 멀리 떠나 불경스럽게 처신했습니다. 이들의 악행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성전에서도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악의 소굴로 타락했습니다(참조, 7:11). 예루살렘 거리와 광장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성전마저 죄악에 완전히 장악됐습니다. 부패한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에게 심판이 선언되는데, 이중적으로 주어집니다. 먼저 12절은 심판을 죄의 필연적 결과로 언급합니다. 죄인의 길은 미끄러운 통로와 같아서 멸망의 어둠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는 미끄러운 길을 가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처럼 악인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12b절은 심판을 징벌로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의 죄악에 심판으로 응답하십니다. 징벌의 해에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재앙이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가증한 일(13-15)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인간의 악한 욕망과 꾀를 좇지 않습니다. 반면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죄악 된 욕망에 호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반면 거짓 선지자는 자기중심적이며 인간 중심적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씀 중심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입니다.

 

13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15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13-15)

 

복된 삶을 살려면 복된 원리를 좇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오히려 사마리아의 악행을 답습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처럼 바알을 숭배하고 소돔과 고모라처럼 행악했습니다. 그들은 악을 조장하고 장려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의 삶은 전혀 언약 백성답지 않았습니다.

 

(1) 사마리아의 예언자들(13)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을 고발하기에 앞서 먼저 사마리아의 예언자들을 정죄합니다. 사마리아의 예언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면서 여호와의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습니다(13). ‘바알을 의지하고’는 ‘바알의 이름으로’로, ‘우매함’은 ‘혐오스러운 것’으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예언자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위정자들과 백성을 경고하고 고발하기는커녕 거꾸로 저들을 멸망으로 오도하였습니다.

 

(2) 예루살렘의 예언자들(14-15)

 

사마리아의 예언자들과 유사하게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책망을 받습니다(14). 바알을 숭배하며 혐오스러운 짓을 행했던 사마리아의 예언자들에 비교하여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은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들도 간음을 저지르고 거짓을 말하며 ‘가증한 일’(소름 끼치는 짓)을 범했습니다. 신앙과 윤리에서 타락한 예언자들은 백성의 악행을 고발하기는커녕 이를 합리화해주었습니다(14).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는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신학적 옷을 입혀 이들의 죄악에 신적 정당성을 부여해주었음을 의미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불의와 불법을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 속한 것으로 선포해주기에 아무도 모든 악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들과 이들을 따르는 예루살렘 주민의 악행은 소돔과 고모라에 비교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참조, 사 1:9-1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타락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예언자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십니다(15). 거짓과 악을 참과 선으로 왜곡한 자들에게 쓴 쑥을 먹이시고 독이 든 물을 마시게 하실 것입니다. ‘쑥’과 ‘독한 물’은 이들이 겪어야 할 재앙의 혹심함과 쓰라림을 상징합니다(참조. 8:14). 특별히 예언자들이 심판에 떨어짐은 바로 이들이 예루살렘 부패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악’(불경죄)이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에게서 나와 온 땅에 퍼졌습니다.

 

거짓 예언자들(16-22)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전하는 사람이 참된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러한 지도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뜻을 이 땅에 전하고 계십니다.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면서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꾼이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과 권세를 부여하십니다.

 

1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8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19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0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21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2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16-22)

 

유다가 바벨론의 위협 아래 놓인 주전 7세기에서 6세기로 넘어가는 기간에 이스라엘의 예언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많은 예언자가 서로 여호와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신탁을 선포했는데, 이들의 선포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서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예언자들은 모두 유사한 형식에 따라 말씀을 선포했기에 참된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별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구원과 심판 가운데 무엇이 여호와의 결정에 속하는지 청자들이 임의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대다수 예언자는 구원과 평강을 외쳤고, 유다 백성은 이들의 선포에서 여호와의 의지를 보았습니다. 주전 587년 유다의 멸망은 구원을 선포한 자들이 거짓 예언자들임을 확증해 주었지만, 이를 알았을 때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습니다. 예언이 성취된 시점에서 회고적으로 평가하면 비교적 분명해지지만, 예언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참과 거짓의 평가는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였습니다.

 

(1) 여호와의 경고(16-18)

 

16-18절과 21-22절은 이에 대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해줍니다. 처음 두 가지는 예언의 기원과 관련되고, 다음 두 가지는 예언의 내용과 관련됩니다. 첫째, 거짓 예언자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제 마음에서 나온 이상(묵시)을 말하며 사람들에게 헛된 소망을 심어줍니다(16). 자신의 의지와 판단을 하나님의 계획인 양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보내지 않았는데도 달음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예언합니다(21). 겉으로는 열심히 여호와의 말씀을 떠들지만 실제로는 자기 생각에 불과합니다. 둘째, 거짓 예언자는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했음에도, 마치 회의에 참석했던 것처럼 그분의 결정을 선포합니다(18과 22a). 여호와의 의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경험이 없음에도 예언을 합니다. 셋째, 거짓 예언자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분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평안(샬롬)을 선포하고, 자기 마음의 완악함을 따르는 자들에게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이들의 무죄를 변호해줍니다(17). 악인에게 면죄부를 발행해줍니다. 여호와를 무시하고 악한 생각과 폭력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자들을 복 받은 자들로 만들어줍니다. 넷째, 거짓 예언자는 백성을 회개시킴으로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22b). 백성의 악한 행실을 보고도 고발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오히려 이들에게 평안을 선포합니다. 이들은 백성의 악과 타협한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거짓 예언자는 청자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제 마음속에서 만들어내 선포하는 자입니다.

 

(2) 예레미야의 위협(19-22)

 

예언자가 화자로 등장하는 19-20절은 거짓 예언자들에게 심판을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거짓을 선포한 자들에게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분노를 쏟아부으실 것입니다(19). 현재의 문맥에서 ‘악인’은 거짓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회오리 바람이 모든 것을 날려버리듯이, 그분의 진노는 거둬지지 않고 거짓 예언자들을 모두 진멸할 것이다. ‘끝날’은 종말보다는, 여호와께서 결정하셨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미래에 속한 날을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자들이 당장은 심판받지 않을지라도, 때가 되면 반드시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 두 절과 거의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말씀이 30:23-24에도 나옵니다.


참된 선지자는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번영과 복의 메시지만 전하는 영적 지도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평화와 축복을 기원하는 언행을 삼가야 합니다. 우리가 듣기도 하고 전하기도 하는 메시지의 근거는 항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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