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03-01)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의문점
로마서 3장 1-8절
사람들은 살아가면 많은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대해서 많은 질문과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행동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친절하게 하나하나 대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은혜가 풍성하신 분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길 축복합니다.
그 동안에 유대인들은 스스로 우월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민족들은 멸망해도 자기 민족만은 구원을 받는다는 어처구니없는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인 이방인은 물론이고 유대인들까지도 죄인임을 지적했습니다. 이것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파괴 되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의 지위를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서 몇 가지 반론들이 제시될 것입니다. 그 반론들을 대략적으로 논합니다.
유대인이 존재할 이유(1-2)
로마서는 ‘복음’에 대해 소개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을 먼저 소개합니다.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겉으론 그럴싸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서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그런 모습입니다. 겉으로 하나님의 자녀라지만, 속에는 이방인들보다 더 탐욕스럽고 죄악으로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1-2)
앞에서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죄와 심판 아래 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로마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 성들이나 이방인 성도들 모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주장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까지도 심판하신다는 주장을 듣고, 제기될 세 가지 질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방인과 비교했을 때,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인가?’, 다음으로 ‘우리가 불의해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의가 들어난다면, 진노를 내리신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해도 되는가?’ 등입니다.
⑴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인가(1)
첫 번째 질문인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입니다. 이 첫 번째 질문은 2장 17-24절 말씀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 아니다’고 반문합니다. 이러한 반문이 일어날 수 있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행합니다.
사도 바울의 주장은 할례나 혈통을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유대인의 특권의식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외형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행한 사람들만이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진리라고 여겨왔던 내용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변하고 삶이 변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 일뿐, 몸에다 할례를 행하는 것만으로는 저절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⑵ 그에 대한 대답(2)
이제 이런 질문이 대두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냐?’는 자문에, 즉각적으로 ‘유대인의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깐 ‘유대인으로 태어나는 것, 언약의 후손으로 할례 받은 것이 하나도 유익이 없느냐?’는 이런 질문입니다. 바울의 즉각적으로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고 대답합니다. 절대로 유대인 됨이나 할례 받음이 무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율법과 할례가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책임을 맡겨준 것입니다. 율법과 할례가 유대인들에게 구원을 보장해 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는 유대인들이 소중한 존재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특권’은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고 소개합니다. 유대인들의 유익한 하나님의 일은 많았지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펼쳐 나가는 말씀의 통로이자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구약성경을 의미한 것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소유했다고 해서 저절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유리한 점입니다.
언약을 맺을 때, 언약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서약합니다. 출애굽 19:5-8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2:1-29에서 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언약의 약속에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언약(계약) 관계에서는, 한편이 약속을 어기면 다른 편은 자동적으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주신 약속에 대하여 신실하심을 유지하십니다(참조 15:8). 사람은 다 거짓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참되십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하나님의 신성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성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폐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유지하고 전달하셨습니다.
유대인이 존재할 이유(3-4)
빛이 어두움 가운데서 더 밝게 빛을 발하는 것처럼, 인간의 불신실한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불순종에 대한 심판은 변명의 의지가 없고, 하나님의 지혜는 그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결국 불순종하였음을 지적합니다.
3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3-4)
유대인들의 유익 가운데 가장 큰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인데, 이것은 또 다른 질문을 일으킵니다. 그 질문은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3)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께서 본래 말씀을 통해 약속하셨던, 그 하나님의 나라인 아브라함을 통해 온 민족이 복을 얻는 계획은 사라지는 것이냐?’는 질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가 그 말씀을 받은 사명을 잘 감당치 못하여 신실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을 선택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지만 그 말씀을 따라지 않고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계획이 사라지는 것이냐 라는 지적합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도 실패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4a)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함이 이스라엘의 불신실함 때문에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인간의 신실하지 못함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무너뜨릴 수는 없으며, 인간이 아무리 약속을 깬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신다고 바울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선택했을 때,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신실치 못한 행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구약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가 인용하는 구절은 시편 51:4의 후반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칠십인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4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시편 51:4)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회개하며 지은 시이며, 51:4은 다윗의 신실치 못함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더 쉬운 성경으로 살펴보면,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의 눈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유죄 선고가 마땅할 뿐입니다. 주님의 유죄 선고는 옳습니다.’(새번역성경)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분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판단과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사실은 인간의 신실치 못함(다윗의 범죄)에 의해 뒤집히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지만, 그 말씀에 대해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실로만, 그들을 거룩하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이 실수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은 신실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심을 확증시켜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변질시킨 궤변(5-8)
인간의 하나님의 모든 길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불순종하면 이방인들을 통해서 사역해 나갈 것입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상상도 못할 불경건한 생각이라고 할 것입니다.
5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5-8)
하나님께서 선택한 유대인들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실패한 이유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결코 폐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이 불의할수록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더욱 극명하게 대조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⑴ 불의하지 않는 하나님(5-6)
바울은 몇 가지 부가적인 질문으로 자기의 주장을 이끌어 나갑니다. 이번에는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시냐?’라고 묻습니다. 그는 즉시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라고 대답합니다.
만일 우리의 신실치 못함과 범죄한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 아닙니까? 더 나아가 사람들의 불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더 악한 일을 해서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까?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바울은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불의하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거짓말투성이가 될 것입니다. 그분이 범죄한 유대인들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것은 절대로 불의하지 않습니다.
⑵ 예상 가능한 두 가지 반론(7-8)
바울은 질문과 대화식을 통한 교육 방법을 사용하여 유대인들로부터 제기될 만한 추가적인 질문들을 먼저 던집니다. 5절에서 ‘언약의 파트너인 유대인들의 신실하지 못함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움이 들어났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것이 합당합니까?’, ‘유대인의 불신앙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를 질문에 파생되는 또 다른 질문들을 던집니다. 바울은 ‘나의 거짓말이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더 풍성히 드러내어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나를 죄인처럼 심판하겠느냐?’(7)입니다. 심지어는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8)라는 보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직접 받았던 비방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바로 바울이 그런 복음을 전하고 다닌다고 공격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바울의 설명한 복음은 악을 더 조장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6:1,15). 이 단락에서 바울은 일단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불의할 수 없다’(5,6)는 강한 부정만을 남기고 추가적인 논의는 뒤 단락으로 넘깁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8)고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신 분임을 다시 상기시킵니다(참고 6). 세상을 심판하실 분에게 불의가 있다면 그가 세상을 심판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주제는 다음 3:29-30절에서 다룹니다.
29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 3:29-30)
사람의 신실함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나면 사람에게는 구원과 결실을 맺게 됩니다. 반대로 사람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나면 진노의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죄과대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의로움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자세하게 반박하기보다는 강한 부정을 하고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5:20-6:4에서 다시 이 문제를 자세히 거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손상시키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궤변으로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냈으니, 하나님의 선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더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좋겠구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이방인처럼 심판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궤변이요 억지입니다. 그리고 책임 회피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2장에서 바울은 종말론적인 심판과 관련하여 유대인의 율법 소유와 할례의 특권을 박탈한 다음, 3:1-8에서는 유대인의 항의에 대하여 답변합니다. 3:1-4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신실하심 안에 있는 유대인의 유익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3:5-8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방종주의의 위험을 취급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성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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