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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06-02)

 

 


연약한 기드온을 부르심

사사기 6장 11-24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면서 그 특색에 따라 이름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 이레, 여호와 샤파, 엘샤다이 등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본문에는 샬롬이라는 단어는 평화라는 뜻으로서 ‘여호와 샬롬’은 평화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 본문에는 이스라엘은 여사사인 드보라를 통해 구원 받은 후 40년 동안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안정 속에서 또다시 악을 행하였습니다. 미디안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를 받고, 힘들어할 때, 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기드온의 모습은 연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연약한 기드온을 통해 이끌어 가십니까?

 

부르심을 받은 기드온(11-14)

오늘날 교회나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때, 이런저런 불평하며 비판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어두울 때 사람들은 두 가지 점에서 절망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고 더 이상 돌아보지 않는다는 절망감입니다. 둘째는 자신을 자격과 능력이 없어서 시대와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무능력한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그 문제를 기드온처럼 ‘네가 그 문제를 해결하라. 그래서 내가 너를 거기 보낸 것이 아니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11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11-14)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질책하셨지만(8-10), 그들의 부르짖음(6-7)을 지나치지 않고, 미디안의 수탈에 이스라엘 자손은 또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11-24).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고향 오브라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머뭅니다. 11절은 오브라를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로 길게 설명하는데, 본 사건의 마지막에 이곳에 여호와의 제단이 세워집니다(24절). 그 시각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3-5) 포도즙 짜는 곳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바람이 날리는 넓은 장소에서 타작을 하지만 포도즙 짜는 돌 구덩이에서 하면 발각될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을 ‘힘의 용사’(“큰 용사”)라 부르며 여호와가 그와 함께하심을 전합니다(12). 숨어서 타작하는 자를 ‘큰 용사’로 부르는 것은 어울리지 않지만, 하나님의 함께하시면 가능할 것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불러 사명을 주거나 힘을 북돋을 때 언급됩니다(창28:15; 출 3:12; 수 1:5). 이는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셨고 그에게 미디안을 무찌를 힘과 능력 주실 것을 뜻합니다(16). 기드온은 갑자기 낯선 사람이 나타나 타작하는 것을 들킨 것에 놀랐고 그의 말에도 당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신다는 말에 안심했겠지만 그의 정체를 알아채지는 못했습니다. 사자를 “나의 주”(아도니)라고 부르는데 상대를 높여 부르는 표현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메시지가 특별히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미디안의 압제 속에 있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니요?”라며 냉소적으로 응수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지배 아래에 있고 출애굽 때 베푼 구원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로 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고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다며 탓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고 이방의 손에 넘기신 것은 우상숭배 때문임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고 사사들을 일으켜 이방의 압제에서 구하셨는데, 기드온은 이 모든 기적을 묵과한 것입니다. 기드온의 말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고를 엿보게 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가 상호 신의를 다해야 하는 언약 관계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영적, 도덕적 상태를 점검하지 않고, 눈앞의 현실과 이기적인 사고로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나 선지자를 보내 지적한 것도 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8-10; 2:11-13). 기드온의 이런 냉소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즉각 “가서 이 네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는 임무를 주십니다(14). 기드온이 입다(11:1)처럼 실제로 큰 용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이란 단어의 반복(12,14)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14)란 수사적 질문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기드온에게 임할 것을 확신시킵니다. 좀전까지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아무 기적도 행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계획을 세워 두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13)은 믿음이 적고 의심은 많은 기드온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기드온의 거절과 표징의 요구(15-18)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인물들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해 때로 의심하고 실수하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구언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오늘 기드온 역시 그렇습니다.

 

15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17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15-18)

 

기드온은 예기치 못한 부르심과 임무를 거절합니다. 그는 ‘어떻게 제가 이스라엘을 구하겠습니까?’라며 자신에게는 힘도 없고 자격도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문이 므낫세 지파 중 가장 약하고, 자신은 집안에서 가장 작다고 말합니다. 가문의 약함(달)은 가난하고 낮은 신분을, 작음(짜이르)은 어리고 보잘 것 없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실상 그의 아버지의 집에는 열 명 이상의 종들과 수소나 염소 등 가축이 있었고, 많은 돈을 들여 제작해야 할 우상들과 제단도 있었습니다(25, 27;17:4). 기드온과 형제들은 미디안 왕들의 눈에 다 왕의 아들들처럼 보였습니다(8:18). 즉 그의 집안이 상당한 부와 권세를 가졌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사회적 신분과 개인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분의 능력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14).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임을 믿지 못했습니다. 기드온이 이렇게 주저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반드시 함께하실 것을 재확증 하시고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16).

12절과 마찬가지로 기드온에게 그분의 임재와 능력이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을 마치 한 사람 치듯 쉽게 무찌를 것이고 이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기드온은 아직 확신이 없어 자기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르는 분이 정말로 하나님이신지 표징을 보여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아직 여호와의 사자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했기에, 낯선 자가 하나님을 운운하며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추긴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며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의 모습은 모세(출 4:1-8)나 예레미야(렘 1:4-9)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데는 그분께 대한 전적인 신뢰가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줍니다(사 6:8).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표징을 보이기 전까지 그곳에 머물러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사이에 그는 가서 예물을 갖고 와서 여호와의 사자 앞에 차려놓겠다고 설명합니다. “예물”(민하)은 ‘소제’의 의미도 있으나 여기서는 ‘선물’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방문한 천사들을 접대한 것(창 18:3-8)처럼 기드온도 사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수락합니다.

 

기드온에게 표징을 보여주신 하나님(19-24)

지극히 평범하고 약한 자를 들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케 하십니다. 스스로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불가능한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하면서 영광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셨을 때, 지체하지 않고 순종해야 합니다.

 

19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21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19-24)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표징을 보여주시자 기드온은 부르심에 응합니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대접할 음식으로 염소 새끼 한 마리와 무교병을 준비합니다. 염소는 희생제 사용이 아니므로 굽거나 삶아 고기를 준비했고, 남은 것으로 국을 끓였습니다. 가루 한 에바(22리터)로는 무교병을 준비했습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누룩을 넣지 않은 전병을 만든 것입니다. 기드온이 준비한 새끼 염소와 엄청난 양의 가루는 당시 이스라엘의 궁핍한 상황을 고려할 때(3-6) 상대에 대한 아낌없는 호의와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준비한 것을 상수리나무 아래 있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드온에게 고기와 무교병을 바위 위에 올리고 국을 그 위에 부으라고 명했습니다. 기드온이 순종하자 여호와의 사자는 지팡이를 뻗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었습니다. 그랬더니 바위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태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표징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여호와의 사자는 사라졌습니다. 기드온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당황했지만, 그제야 그동안 자기의 대화 상대가 여호와의 사자였음을 깨닫습니다. 기드온은 자신의 요청대로(17) 하나님께서 표징을 보여주셨는데도 감격할 겨를도 없이 자신이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했으니 죽을까 겁에 질립니다. 여전히 그가 믿음이 적고 두려움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기드온에게 여호와는 ‘안심하라(샬롬), 두려워 말라, 네가 죽지 않을 것이라’며 거듭 진정시키고 안심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안심시키는 말씀에 기드온은 마음의 평안을 되찾습니다. 그는 자신이 요구한 표징을 하나님이 친히 보여주셨음을 깨닫고 이에 하나님의 부름에 응합니다. 그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평안)’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제단을 쌓는 일은 그 일을 기념하며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는 의미입니다(창 12:7; 13:18). 저자는 이 제단이 아비에셀 가문의 오브라 성읍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덧붙임으로써 본 사건의 진정성과 역사성을 부각합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때로 무지하고 의심을 품고 있어도 우리를 큰 용사가 되도록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안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명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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